[영화학도를 꿈꾸는 청춘, 인문학 파먹기] 2. 마주할 것, 성숙해질 것
[영화학도를 꿈꾸는 청춘, 인문학 파먹기] 2. 마주할 것, 성숙해질 것
  • 윤이현
  • 승인 2022.02.22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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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현(2000년생), 몇 가지 일을 하며 글로 꿈을 써 내려가는 중이다. 류이치 사카모토와 히사이시 조의 음악, 요리 문학가 라우라 에스키벨의 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사랑한다. ‘멀리 갈 위험을 감수하는 자만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알 수 있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도전과 실패, 상처로부터 단단해지는 것들과 친해 보려고 한다. 애완 묘 ‘깨미’와 같은 방을 쓰고 있다. 최근 윤영채에서 윤이현으로 개명했다.
윤이현(2000년생), 몇 가지 일을 하며 글로 꿈을 써 내려가는 중이다. 류이치 사카모토와 히사이시 조의 음악, 요리 문학가 라우라 에스키벨의 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사랑한다. ‘멀리 갈 위험을 감수하는 자만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알 수 있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도전과 실패, 상처로부터 단단해지는 것들과 친해 보려고 한다. 애완 묘 ‘깨미’와 같은 방을 쓰고 있다. 

연구소에 가는 길이 너무 추워서 버스를 탔다. 차창을 비집고 겨울 오후 햇살이 온몸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냉기를 품은 두 다리와 얼굴 근육이 조금씩 풀어지는 듯했다. 버스엔 아이와 엄마, 노인들 그리고 젊은 여성 한 명이 앉아있던 모습이 어렴풋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기억하는 그날 오후 2시의 1020번 녹색 버스 안 풍경은 이러했다. 늘 그렇듯 2인석에 앉아 왼편엔 무거운 가방을 올려놓았다. 그렇게나마 빈자리를 채워놓고 잠시 사색에 잠겼다.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오늘도 갈등을 회피하려 하진 않았던가.’ 따위의 물음을 던지며 곰곰이 오늘 쓰고 남은 마음 상태를 점검하는 시간을 가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려야 할 정류장을 지나치고 동네까지 와버린 상태였다. 나는 다시 가방을 들고 길을 건너 경복궁역으로 향하는 7212번 버스에 올라탔다.

연구소 사무실은 매우 협소한 공간이다. 내게 마련된 영역은 종이를 재단하거나, 파일을 쌓아두는 용도로 쓰던 낡은 책상이 전부다. 아직은 뻘쭘하고 낯설기만 한 장소지만, 주섬주섬 한자책을 펼쳤다. 지금은 동물을 의미하는 한자와 그에 파생된 몇 개의 글자들을 공부하고 있다. 지난날 외워두었던 을 획순에 맞춰 우선 10번 적어보기로 한다. (도타울 독, 위독할 독)(대나무 죽) 자와 (말 마) 자가 결합된 글자다. ‘죽마를 타던 우정으로 해석할 때엔 도탑고 진실하다.’라는 의미를 갖지만, 그와 반대로 대나무로 말을 매우 치니, 가죽이 부어 말이 위독하다.’라는 뜻풀이도 가능하다. 상반된 두 의미를 생각하며 글자를 따라 쓰다 보니 어느새 여덟 번이나 더 쓰고 말았다.

정신을 차리려 톡톡 가볍게 몇 차례 뺨을 토닥이고 다음 한자를 적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때 친구에게 문자 한 통이 왔다. 아까 버스에서 나를 봤다는 내용이었다. 그제야 흐릿하게 저장된 그 버스 안 풍경이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창가에 기대어 있던 실루엣의 여성이 그 친구였던 것이다. 15년 지기 죽마고우를 알아보지도 못할 만큼 정신이 팔려있었다니!

사실 나는 요즘 내 삶의 기억을 되짚어 보고 있다. 그간 반복적으로 자행한 잘못들, 무심결에 주었던 상처들에 대해 곱씹는 중이다. 더는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앞만 보고 달리자던 다짐의 순간들까지도. 그렇게 시공간을 뚫고 달리는 말 위에 앉아, 부끄러운 나와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그 굽이지고 험준하게 지났던 산턱을 소급하다가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아주 어린 시절의 우리 집 분위기였다.

그때 우리 집에서는 우는 것이 금기시되었었다. 엄마 앞에서 아픈 모습을 내비치거나 나약한 소리를 내어서도 안 됐다. 그럼 엄마는 어김없이 매를 들었고, 그 결과 아프거나 서러운 일이 있어도 감추는 버릇이 생겼다. 문제는 성인이 되면서부터였다. 사랑하는 사람들일수록 그들에게 곁을 내어주는 게 어색해졌고 어렵게만 느껴졌다. 서운하거나 속상한 일이 있어도 함구했으며, 마음의 골이 점점 깊어질 때가 되면 야멸차게 등을 돌려 그를 떠나보내야만 했다. 그러고선 전혀 상처받지 않은 척하며 살았다. 몸은 이미 모두 자랐는데, 마음만큼은 어린 시절의 그대로였다. 그렇게 내가 나를 매로 치면서 하루하루를 버텼던 것이다. 그 결과 많은 것들을 놓쳤거나 잃게 되었다.

나는 위독한 상태였다. 대나무 회초리에 의해 가죽이 부어 말의 생명이 위독해졌듯, 나 역시 엄마의 매로, 그리고 이제는 스스로의 채찍질로 아팠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여행의 출발에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뜻밖의 발견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꼬였던 무언가를 해결해보기로 했다. 한 사람 한 사람과의 인연을 돌이켜보며 어린 행동을 반성한 뒤, 진심으로 사과를 전하는 것으로 그 운을 떼었다. 다시는 보지 않을 거라고 매정하게 끊어냈던 이들에게도 말이다. 다행히 그들은 나를 안아주었다. 나는 그 품의 온기를 받으며 서서히 손에 들린 채찍을 내려놓기로 했다.

나를 아껴줄 것.’ ‘자존감과 자만심을 구분할 것.’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한 번씩 되새기며 행동할 것.’ ‘감정은 사라지지만 순간의 행동은 영원히 우리의 기억 속에 남는다는 것.’ ‘과거를 거슬러 자신을 스스로 마주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 이 무거운 여구들이 이번 여행 끝내 얻어낸 금과옥조들이다. 이것들을 말 위에 싣고, 남은 길을 더 걸어보기로 했다.

병든 자신을 발견하여 그것으로부터 진실을 찾아내는 용기, 도타운 것들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자세. 이 여행의 시작과 중간에서 이렇게 을 발견할 수 있었다.

노트 위에 적힌 한자를 한참 바라보기로 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말 위에 죽순을 상형화한 글자가 왠지 말머리 위에 고운 뿔이 자란 것처럼 보였다. 말과 꽃을 나타낸 모양새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여행이 끝날 때 즈음이면 어떤 내가 되어 있을까. 눈부시게 빛나는 한 마리의 사슴이 되어 봄의 꽃밭을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을까. 그때가 되면 우리는, 더는 내 존재의 모습을 외부의 거울에 비치지 않아도 확인할 수 있는, 그런 어른의 형상을 갖출 순 있는 것일까? 그렇게 나를 찾아가는 길 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