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뷰] 아르코미술관 2022 첫 기획, 《투 유: 당신의 방향》展
[현장리뷰] 아르코미술관 2022 첫 기획, 《투 유: 당신의 방향》展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2.02.24 18: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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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부터 4월 24일까지
이동이 제한된 시대, ‘이동’을 말하다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움직여서 자리를 옮기거나, 바꾸는 ‘이동’에 대한 예술인들의 탐구가 담긴 전시가 기획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 박종관) 아르코미술관(관장 임근혜)의 올해 첫 주제기획전 《투 유: 당신의 방향》이다. 전시 개막에 앞서 지난 23일에는 전시 개막에 앞서 언론공개회를 진행했다. 전시는 24일부터 4월 24일까지 개최되며,

▲지난 23일 열린 언론공개회에 참석한 작가들 (사진=아르코 미술관 제공)
▲지난 23일 열린 언론공개회에 참석한 작가들 (사진=아르코 미술관 제공)

언론공개회에선 임근혜 관장의 인사에 이어 전시 기획을 맡은 김미정 학예사의 기획 발표 시간이 있었다. 자리에는 전시에 참여한 김익현, 김재민이, 닷페이스, 송예환, 송주원, 오주영, 정유진 작가도 함께 참석해 작품 소개 시간을 가졌다. 유아연 작가는 개인사정으로 참여하지 못해 김 학예사가 작품 설명을 대신했다.

전시는 영상, 사진, 설치 작품 20여점으로 구성됐고, 미술관 제1, 2전시실을 모두 사용한다. 공개 되는 작품의 70%는 이번 기획전을 위해 작가들이 제작한 신작이다. 임 관장은 “8명의 참여 작가 절반이 90년대 생이다. 우리 미술관 공간을 신진작가와 함께 나누고 싶다는 뜻을 담았고, 새로운 세대의 참신하고 다각적인 시각으로 주제를 살펴보고자 했다”라고 기획 방향을 설명했다.

김 학예사는 이번 전시가 코로나19 팬데믹 속 벌어진 ‘이동 제한’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에서 촉발된 다양한 변화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동’ 그 자체 의미에서 시작해 코로나19라는 시대 상황 속 ‘이동’이 무엇인가를 탐구해본다. 전시는 총 4가지 형태의 ‘이동’을 다룬다. 물리적인 이동, 온라인상의 이동, 팬데믹 사회 속 산업화된 이동, 사회 속 소수자의 이동을 담아내고 있다.

전시는 관람객들에게 지금 시대의 ‘이동’을 작품 감상 이외로도 경험해볼 수 있는 활동들을 제안한다. 이 활동들 유관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전시의 의의를 공유하고 확장해나간다. 장애인 환승 지도를 기획한 협동조합 무의와 이동 장애인의 미술관 이용 설명서를 제작하고 휠체어 체험 워크숍을 진행할 예정이다. 또한, 건국대 모빌리티인문학 연구원과의 공동 기획으로 오는 4월 15일 국내 봄 학술대회 개최를 준비하고 있다. 전시에서 얘기하고자 하는 다양한 ‘이동’에 대한 경험의 폭과 가치 공유 과정을 추구한다.

▲송주원, 마후라, 2021 (사진=아르코 미술관 제공)
▲송주원, 마후라, 2021 (사진=아르코 미술관 제공)

‘이동’이 숨기고 있던 구조에 대해

《투 유: 당신의 방향》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들의 이동 방향이 어떻게 ‘사회 구조의 형식’과 ‘결속의 방식’을 변화시키는지를 질문하는 제목이다. 모두에게 동등하게 주어진 자유인 줄 알았던 이동이 사실 권력과 배제의 수단이 될 수도 있는 시대임을 지각하고 이동이 가진 오늘날의 다각적 의미와 작동의 형태를 들여다본다. 코로나19로 변화를 맞은 우리는 이전과 같은 사회로 돌아갈 순 없을 것이다. 이동의 방식 및 형식의 문제는 지속적으로 감지될 것이고, 전시는 그 안에 숨겨져 있는 이야기를 끌어낸다.

전시는 8인의 작가가 가지고 있는 각자의 세계관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점이 흥미로운 요소다. ‘이동’이라는 공통된 주제 아래 다른 형태의 이동과 각기 다른 의문과 의심이 녹아있는 면면들이 다채롭다. 8인의 작가 모두 독보적인 세계의 해석을 갖고 작품을 펼쳐냈기에 자칫하면, 전시가 산만해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동’이란 주제 하에 이어지는 작품들이란 것을 인지한다면 전시 말하는 큰 변화와 흐름을 읽어볼 수 있을 것이다.

▲23일 언론공개회에서 '새의 경계선3-기생충 순례길' 에서 작품 설명을 하는 김재민이 작가 (사진=서울문화투데이)
▲23일 언론공개회에서 '새의 경계선3-기생충 순례길' 에서 작품 설명을 하는 김재민이 작가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송주원, 김재민이 작가는 ‘물리적인 이동’에 대해 작품을 펼쳐내는데, 사회 구조와 권력에 밀려 점점 중심부에서 밀려나는 존재들을 다룬다. 송주원 작가가 선보인 <마후라>는 아시아 최대 중고차 시장이었지만, 재개발을 앞둔 장안평 일부와 자동차의 풍경 속 퍼포머들의 동작을 담아낸다. <마후라>는 전시장 초입에 가장 먼저 배치된 작품이다. ‘이동: 모빌리티’를 다루겠다는 전시의 인트로와 같다. 도시의 이동과 가장 밀접한 자동차 관련 작품으로 현대사회와 이동의 관계성에 고민할 수 있는 입구를 연다.

송 작가는 장안평에 분해돼 있는 자동차의 부품이 어떤 존재가 분해된 흔적으로 느껴졌다고 말했다. 작가는 퍼포머의 신체와 자동차 부품을 결합해 분해된 부품에 생명력을 부여했다. 퍼포머들은 유령처럼 장안평을 맴돌며 동작을 이어간다. <마후라>는 자동차가 크레인에 이끌려 옮겨지고 파괴되고 이어지는 모든 순간을 연상할 수 있게 한다. 걷잡을 수 없이 빨라지는 기술의 변화 속 도시를 중요하게 구성하던 존재들이 밀려나고, 또 새로운 존재로 완성되는 모든 과정을 담고있다.

▲김재민이, 돼지똥과 아파트, 2022 (사진=아르코 미술관 제공)
▲김재민이, 돼지똥과 아파트, 2022 (사진=아르코 미술관 제공)

김재민이 작가는 좀 더 직접적으로 권력에 의해 재편되는 도시 구성과 이동성을 언급한다. 김 작가는 작품 소개에 앞서 자신이 ‘변두리 지역 출신’이라는 점을 말했다. 김 작가의 <냄새의 경계선3-기생충 순례길>은 영화 「기생충」(2019)의 주요 인물인 오근세와 국문광을 주인공으로 한다. 작가는 극 중 부천과 광명 출신인 이들이 어떻게 서울의 상류층에 입성하고 한편으로 실패했는지를 순례길로 상정해 상상의 기념품들과 아카이브를 비치한다.

작가는 존재가 주변부로 밀려 나는 이유를 ‘냄새’라고 본다. <냄새의 경계선3-기생충 순례길>과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비디오 작품 <돼지똥과 아파트>도 같이 선보인다. 이 작품은 과거 용산과 나주에 있던 공장 및 농장의 이동 과정을 좇는다. <돼지똥과 아파트>와 함께 작가는 발상이 시작됐던 독서실 책상을 함께 설치한다.

김 작가는 “어릴 때부터 칸막이가 있는 독서실 책상에서 많은 안정감을 얻었다. 작품을 구상하게 된 과정과 작품 속에 사용한 자료를 관람객과 함께 공유하고자 했다”라고 작품을 설명했다. 전시장에 설치된 김 작가의 책상에는 실제 앉아볼 수 있고, 작가가 책과 자료 등에 표시해두고 메모를 남겨둔 것을 직접 읽어볼 수 있다. 공간을 느껴보고, 작가의 생각을 함께 경험해볼 수 있는 전시는 밀려나는 존재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또한, 이동에 숨겨져 있던 부조리와 권력관계를 인식할 수 있는 장을 열어 보인다.

▲유아연, 벌레스크, 작품에 포함된 서빙로봇, 관람객은 입장할 때 받았던 진동벨이 울리면 서빙로봇에게 반납해야 한다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유아연, 벌레스크, 작품에 포함된 서빙로봇, 관람객은 입장할 때 받았던 진동벨이 울리면 서빙로봇에게 반납해야 한다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코로나19가 불러온 이동제한‧변화 담아

아르코미술관의 올해 첫 주제 기획전은 지금 이 순간 미술관과 작가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고민한 흔적이 돋보인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달라진 이동의 변화를 주목한 작가들의 작품에는 우리가 직접 겪은 사건과 일상들이 녹아있어 재미를 더한다.

유아연 작가의 <벌레스크>는 비대면 시대의 도래로 급속도로 발전한 배달 문화에 주목해 시대에 따라 변하는 노동의 양상에 주목한다. 작가는 노동을 수행하고 서비스를 제공받는 관계를 전시장에 구현한다. 실제로 자신이 배달 노동을 한 경험을 촬영한 영상 작업과 함께 관람객들에게 진동벨 반납이라는 행위를 제안한다. 관람객들은 미술관에 입장하면서 진동벨을 하나씩 받게 되고, 전시관람 중 진동벨이 울리면 관람객들은 전시장을 돌아다니고 있는 서빙로봇에게 진동벨을 반납해야 한다.

작가는 이동 행위를 전제로 제공되는 서비스에 불필요한 접촉을 야기하는 반납 행위를 끼워 넣음으로써 지금 시대 플랫폼 노동, 배달 노동의 일면을 꼬집는다. 노동의 주체는 삭제되고 용이하게 결과만을 소비하는 지금 현재의 구조를 눈앞으로 가져와 직접 경험케 한다.

정유진 작가는 팬데믹 상황 속에서 개발된 ‘무착륙 비행’에 주목한 작품 <돌고 돌고 돌아>를 선보인다. 지난해 해외에 착륙하지 않고, 비행의 경험만 제공했던 항공사들의 상품에서 발상을 얻은 작품이다. 출발지와 목적지가 선명하게 정해져있던 이동 수단인 비행기가 하늘을 몇 번 돌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에 대해 작가는 ‘롤러코스터’를 타고 돌아오는 행위와 같다고 본다. 작가는 찰나의 즐거움을 위해 고점과 저점을 반복하는 롤러코스터와 무착륙 비행의 모습은 이동을 위한 이동으로, 소비의 흐름을 끊지 않으려는 시스템과 맞닿아있다고 봤다.

정 작가는 지금까지 꾸준하게 인류가 감당할 수 없는 재난을 꾸준히 작품 소재를 사용해왔다. 코로나19 이전엔 체르노빌, 후쿠시마 원전사태 등에 주목했는데, 코로나19라는 재난 이후 벌어진 상황에서 지금 이 시대의 ‘재난’이 무엇인가에 대해 탐구했다. 자본에 의해 만들어지는 새로운 방식의 이동법, 롤러코스터를 닮은 ‘무착륙 비행’이 또 다른 재난이 아닌지 질문을 던진다.

이외에 김익현 작가는 지난해 벌어졌던 KT통신망 마비 사태를 작품의 소재로 삼아 온라인 상의 이동을 표현한다. 송예환 작가 또한, 네트워크상에서 이뤄진 정보의 이동을 설치 작업으로 구현해 보이지 않는 정보의 공유가 과연 모두에게 공평하고 누구나 충분히 접근가능한 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정유진, 돌고 돌고 돌아, 2022 (사진=아르코 미술관 제공)
▲정유진, 돌고 돌고 돌아, 2022 (사진=아르코 미술관 제공)

오주영 작가는 미래의 이동 기술에 대한 상상으로 게임 형식의 작품을 구현한다. 기후위기 이후의 세상을 상정해 세계의 권력관계에서 이동권이 어떻게 달라지는 지를 주목한다.

미디어스타트업 닷페이스는 코로나19확산으로 진행되지 못한 퀴어퍼레이드를 온라인으로 구현했던 <우리는 어디서든 길을 열지>라는 행사를 전시에 다시금 선보인다.

작품 설명을 한 닷페이스는 전시를 참여하게 된 계기로 한 정치인의 말을 언급했다. 닷페이스는 한 정치인이 퀴어퍼레이드에 대해 “안 보이는 데서 해라”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고 했다. 자신들은 코로나19로 행사가 취소돼 온라인으로 구현한 것인데,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면 퍼레이드가 가진 의미가 전달되지 않을 것이라고 느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대도시 옥외 광고판에 영상을 상영했고, 이번 전시에도 참여해 ‘우리는 어디서든 길을 열 수 있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고자했다고 설명했다.

▲23일 언론공개회에서 '우리는 어디서든 길을 열지' 앞에서 작품 설명을 하는 닷페이스(사진=아르코 미술관 제공)
▲23일 언론공개회에서 '우리는 어디서든 길을 열지' 앞에서 작품 설명을 하는 닷페이스(사진=아르코 미술관 제공)

영상과 설치 작업으로 주로 구성된 전시는 좀 더 입체적으로 주제를 전달해준다. 전시의 시각적 경험에만 몰입한다면, 산만한 느낌을 접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시된 영상 앞에 설치된 좌석에서 영상을 직접 감상하고, 작가들이 주제를 탐구한 흔적을 좇으면 지금 이 시대와 우리, 당신이 나아가고 있는 방향을 인지해볼 수 있는 기회를 열어 보일 것이다.

입장료는 무료이며, 네이버 사전 예약 시스템을 통해서도 관람이 가능하다. 이외 전시 연계 프로그램 상세일정 및 내용은 추후 아르코미술관 웹사이트 및 SNS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