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세 가지 색으로 반짝이는 움직임…국립발레단 ‘주얼스(Jewels)’
[공연리뷰]세 가지 색으로 반짝이는 움직임…국립발레단 ‘주얼스(Jewels)’
  • 진보연 기자
  • 승인 2022.03.01 20: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립발레단 창단 60주년 기념 공연 ‘주얼스’
지난달 5일~27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서 공연
신고전주의 발레 창시자 '조지 발란신' 작품

[서울문화투데이 진보연 기자]원석이 보석이 되기까지, 수 천 번의 손길이 필요하다. 영롱한 빛깔을 뽐내는 보석도, 누군가에 의해 발견되고 다듬어지기 전까지 그것은 한낱 돌멩이에 불과했다. 세공사는 각기 다른 성질을 갖고 있는 원석들을 하나씩 직접 다뤄보며 기술을 체득해, 가장 투명하고 빛나는 보석을 만들어 낸다. ‘에메랄드, 루비, 다이아몬드’라는 세 가지 보석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발레 작품 ‘주얼스(Jewels)’도 이렇게 탄생했다.

▲신고전주의 발레의 창시자라 불리는 조지 발란신이 창작한 발레 ‘주얼스’
▲신고전주의 발레의 창시자라 불리는 조지 발란신이 창작한 발레 ‘주얼스’

‘주얼스’는 신고전주의 발레의 창시자 조지 발란신(1904~1983)이 반클리프 아펠(Van Cleef & Arpels)의 보석에서 영감을 받아 1967년 창작해 뉴욕에서 첫 선을 보인 작품이다. 전체 3막으로 이뤄져 있으며 에메랄드, 루비, 다이아몬드 세 가지 보석을 각기 다른 음악과 의상, 움직임을 통해 표현한다. 

에메랄드는 파리의 우아함과 세련미를 나타내며 루비는 뉴욕의 빠르고 현대적인 문화를, 다이아몬드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클래식 발레를 상징한다. 별도 무대 장치 없이 오직 발레 무용에만 집중하게 한다는 것은 신고전주의 작품인 ‘주얼스’의 특징이다. 이는 한국인 발레리나 박세은이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 제1무용수 시절 2018년 ‘브루아 드 라 당스(Benois de la Danse)’ 최고 여성무용수상을 수상한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국립발레단 창단 60주년 기념 공연 ‘주얼스’ 가운데 1막 에메랄드 공연 장면 ⓒ국립발레단
▲국립발레단 창단 60주년 기념 공연 ‘주얼스’ 가운데 1막 에메랄드 공연 장면 ⓒ국립발레단

19세기 프랑스 고전 낭만 발레 형식과 프랑스 작곡가 가브리엘 포레의 두 음악 ‘펠리아스와 멜리장드(Pelleas et Melisande)'와 ’샤일록(Shylock)'이 만난 1막 에메랄드는 신승원과 한나래, 김기완, 이재우를 중심으로 2인무와 독무 혼성 3인무 등 다양한 춤의 구성을 그려냈다. 총 7개 장면으로 펼쳐진 에메랄드 특유의 우아함과 부드러움은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무용수들이 표현한 곡선의 몸짓(Port de bras)과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제임스 터글의 지휘가 만나 객석의 몰입을 높였다.

▲국립발레단 창단 60주년 기념 공연 ‘주얼스’ 가운데 2막 루비 공연 장면 ⓒ국립발레단
▲국립발레단 창단 60주년 기념 공연 ‘주얼스’ 가운데 2막 루비 공연 장면 ⓒ국립발레단

3막 중 가장 활기찬 무대인 2막 루비는 스트라빈스키의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한 기상곡(Capriccio for Piano and Orchestra)’으로 이루어져 있다. 스타카토처럼 딱딱 끊어지는 춤은 마치 잘 연마된 보석의 절단면에 빛이 반사되는 듯했다. 무릎을 구부린 포인트 자세로 걷거나 발뒤꿈치로 바닥을 누르는 스텝, 골반을 밀어내는 포즈, 손목이나 팔꿈치를 꺾어 사용하는 등 현대발레 어휘가 사용되며 쉼 없이 뛰어다니며 무대를 누벼야 하는 2막은 무용수들의 기량으로 더욱 빛을 발했다. 특히 아담한 체구의 박슬기와 장신의 정은영이 보여준 표현의 대비, 그리고 그 중심을 단단하게 받쳐준 허서명의 에너지가 돋보이는 무대였다. 

▲국립발레단 창단 60주년 기념 공연 ‘주얼스’ 가운데 3막 다이아몬드 공연 장면 ⓒ국립발레단
▲국립발레단 창단 60주년 기념 공연 ‘주얼스’ 가운데 3막 다이아몬드 공연 장면 ⓒ국립발레단

조지 발란신이 유년 시절을 보낸 러시아의 황실 발레를 표현한 3막 다이아몬드는, 순백의 화려함으로 고전 발레가 융성했던 러시아 황실발레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현했다. 러시아 클래식 음악의 거장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3번과 어우러져 발레의 우아함과 황실의 위엄을 상기시킨다. ‘주얼스’의 유일한 무대장치인 커다란 액자를 배경으로 그림을 보는듯한 수석무용수 김리회와 박종석의 아름다운 독무와 2인무가 돋보였으며, 16쌍의 무용수들이 군무로 표현해낸 다이아몬드의 화려함과 반짝임은 ‘보석의 왕’이라는 명성을 춤으로 확인시켜준 무대였다.

‘주얼스’는 낭만발레의 필수요소라 여겨지는 줄거리, 무대장치, 불필요한 마임 등 정형화된 요소가 철저하게 배제된 작품이다. 대신 관객의 시선을 잡아끄는 요소가 바로 의상이다. 발란신이 ‘주얼스’를 구상할 때 출발점이 된 것은 화려한 보석을 걸친 무용수의 이미지였다. 그는 오랜 파트너였던 뉴욕 시티 발레단의 의상 제작자 바바라 카린스카와 함께, 입고 춤추기엔 너무 무거운 보석 대신 그에 가깝게 만든 장식으로 의상을 완성했다. 

때문에 관객들은 미니멀한 무대와 대비되는 화려한 의상을 기대한다. ‘주얼스’의 의상은 공연을 즐길 수 있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볼드한 주얼리를 대신한 자잘한 비즈들과, 컨셉 컬러로 단순하게 대체된 단색 튜튜는 작품의 매력을 반감시켰다. 에메랄드, 루비, 다이아몬드 컨셉에 맞게 장식된 튜튜는 색상뿐만 아니라 보석으로 그들의 특징을 드러낸다. 이러한 점에서 국립발레단의 ‘주얼스’ 의상은 아쉬움을 남긴다. 

▲뉴욕시티발레단의 ‘주얼스‘ 의상들
▲뉴욕시티발레단의 ‘주얼스‘ 의상들 

지난해 초연에 이어 올해 다시 한번 국내 관객들과 만나게 된 ‘주얼스’는, 국립발레단의 창단 60주년을 기념하는 무대로 그 의미를 더했다. 원석에서 보석으로 거듭나기 위해 대중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며 반짝이고자 노력했던 국립발레단의 시간을 빗대 국립발레단의 2022 시즌 첫 공연으로 선정됐다. 국립발레단은 “국내에서 자주 볼 수 없었던 조지 발란신의 작품이자 새로운 움직임을 통해 무용수들의 색다른 면을 감상할 수 있었다는 점, 그리고 다양한 장르의 음악과 발레를 한 무대에서 볼 수 있었다는 점 많은 요소들을 고려해 선정하게 됐다”라고 밝혔다. 스토리라인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오직 무용수의 동작과 음악의 선율에 모든 것을 맡기는 ‘주얼스’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낯설 수 있으나, 부가적인 것들을 덜어내고 움직임만으로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킬 작품으로는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