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진의 문화잇기]문화계 큰 스승… 이어령 선생의 영원한 안식
[박희진의 문화잇기]문화계 큰 스승… 이어령 선생의 영원한 안식
  • 박희진 학예사‧칼럼니스트
  • 승인 2022.03.16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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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진 학예사‧칼럼니스트

“‘인간이 선하다는 것’을 믿으세요.

그 마음을 나누어 가지며 여러분과 작별합니다.

내가 받았던 빛나는 선물을 나는 돌려주려고 해요. 애초에 있던 그 자리로, 나는 돌아갑니다.” _이어령

지난 26일, 문화부 초대 장관을 지낸 이어령(1934~2022) 선생의 부고가 전해졌다. ‘함께 별을 보며 즐거웠다.’던 고인의 생전 메시지가 서울 광화문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외벽 미디어 캔버스 ‘광화벽화’에 띄워졌다. 공직자이자 학자, 언론인, 비평가, 교육인으로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석학이자 우리 시대 최고의 지성으로 불렸던 이어령 선생을 사숙하는 이들의 추모가 이어지고 있다.

1990년 우리나라 첫 문화부 장관이었던 이어령 선생은 문화예술인으로는 처음으로 문화부 장관에 올라 국립국어연구원과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설립했다. 88서울올림픽 개폐회식을 총괄 기획하면서 ‘벽을 넘어서’라는 슬로건으로 모스크바 올림픽과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의 냉전의 불화를 허물고 ‘화해의 장’으로 올림픽을 열었다. 분단국가인 우리가 개최한 88올림픽 개회식에서는 하얀 옷을 입은 소년이 정적 속에 굴렁쇠를 굴리며 경기장 중앙으로 달려가는 ‘굴렁쇠 소년’을 연출해 올림픽 개회식을 통해 세계의 평화를 기억하게 했다.

스물셋 젊은 청년 이어령은 기성문단의 권위의식을 비판한 ‘우상의 파괴’ 평론을 한국일보에 실으면서 대중들에게 주목받는 평론가로 화려하게 등단했다. 평생 160권이 넘는 책을 썼고 헤아리기 힘들 만큼 많은 컬럼과 평론을 남겼다. 1960년 서울신문을 시작으로, 한국일보, 경향신문, 중앙일보, 조선일보 등의 논설위원으로 우리 시대에 다양한 문제들을 논하고 자신의 생각을 과감히 밝히며 지식인으로서 당대 최고의 논객으로 활동했다.

고인의 추모 열기는 서점가에서 더욱 뜨겁다. 암 투병으로 시한부 삶을 살았던 그의 죽음은 이미 예고된 부재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독자들이 고인의 생전 뜻이 담긴 책 속에서 그의 부재를 반추하고 있다. 필자 또한 이어령 선생을 추모하는 오늘의 이 컬럼만은 온 신경을 곤두세워 예민한 한 줄 한 줄을 써내려가는 글 쓰는 사람이 아닌 평소 존경하던 스승의 마지막을 담대하게 받아들이고 죽음 앞에 정식하게 자신의 죽음을 써내려간 스승의 글을 읽고 가슴에 새기려한다. 오로지 ‘시대의 지성’이라 불리던 선생의 책 속에 지혜로운 삶의 조언들을 가슴에서 꺼내보려한다. 고인의 책을 통한 배움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그 많은 가르침 가운데, 글을 쓰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필자가 가슴 깊이 세겨둔 선생의 지혜를 되새긴다.

▲이어령 선생 26일 별세(사진=청와대 제공)
▲이어령 선생 26일 별세(사진=청와대 제공)

‘남의 신념대로 살지 마라. 방황하라. 길 잃은 양이 돼라’ _<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서 선생은 100마리 양의 무리 속에 길을 잃은 1마리의 양의 희생에 대해 묻는다. 99마리의 양을 위해 한 마리의 양은 희생되어야 하는 것인가. 어쩌면 고인은 ‘시대의 지성’으로 살아가며 자신의 상상력과 호기심 속에 무리에서 홀로 된 자신의 삶을 ‘한 마리의 양’으로 대변해 물음표를 던진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그의 가르침은 ‘영성과 지성의 논리’로 후회 없는 이어령의 삶으로 되돌아 볼 수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의 삶에서 나 또한 죽음을 잊지 않겠노라 오늘을 정직하게 기록하는 삶을 살아내리라 다짐한다. 그를 통해 선물 받은 새로운 문명과 문화국가를 지향하는 우리들의 삶에 걸맞는 문화를 누리며, 그 길을 다져온 이어령 선생에게 진심어린 감사를 전하며 선생님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