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훈의 클래식 산책]삶의 찬가, 말러 <아다지에토>
[이채훈의 클래식 산책]삶의 찬가, 말러 <아다지에토>
  • 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 / 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전문 객원기자
  • 승인 2022.03.16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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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전문 객원기자/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전 MBC 음악PD
▲ 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전문 객원기자/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전 MBC 음악PD

말러(1860~1911)는 19살 연하의 알마 신틀러와 결혼할 때 아름다운 <아다지에토>를 선물했다. 오케스트라의 현악기와 하프만으로 꿈꾸듯 노래하는 이 곡은 두 사람의 사랑의 기념비로 남아 있다. 이 곡의 느낌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까? 부드럽고, 따뜻하고, 애틋하고, 안타깝고…? 사랑하는 마음처럼, 음악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담고 있다. 작곡자 말러의 말이다. “나는 말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작곡한다. 말로 할 수 있다면 그냥 말로 하지, 왜 구태여 작곡을 하겠는가?”   

말러의 <아다지에토>를 기억하는 방식도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이 곡은 루치노 비스콘티 감독의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1971)에 삽입돼서 유명해졌다. 음악가 구스타프 아셴바흐는 요양을 위해 베니스에 왔다, 자기 예술이 인정받지 못하는 데 좌절했고 속물스런 예술계 풍토에 염증을 느낀 것이다. 그는 우연히 마주친 미소년 타지오에게 애틋한 사랑을 느낀다. 하지만 타지오에게 다가설수록 죽음의 그림자도 짙어져 간다. 베니스에서 유행하던 풍토병에 걸린 것. 운명처럼 깊어지는 사랑과 죽음의 순간을 아름다운 <아다지에토>가 수놓는다. 죽음을 예감하면서도 사랑을 꿈꾸는 예술가의 숙명은 이른바 ‘낭만시대’의 영원한 주제였다. 영화의 원작인 토마스 만의 소설은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를 모델로 했다. 

미국 사람들은 말러의 <아다지에토>를 들으면 1968년 암살당한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을 떠올린다. 그의 장례식에서 레너드 번스타인이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이 이 곡을 연주했다. TV를 통해 미국 전역에 생중계된 이 음악에 많은 미국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 사랑하는 정치인의 갑작스런 죽음에 충격을 받은 미국 시민들의 마음을 <아다지에토>가 어루만져 준 것이다. 장례식이 끝난 뒤 재클린 케네디는 번스타인에게 감사를 표했다. “내가 들어본 음악 중 가장 아름다웠어요. 이 곡에 대해 전혀 몰랐기 때문에 오히려 더 좋았죠. 모든 신들이 울고 있구나, 하는 신기한 느낌이 들었어요. 눈을 감은 채 영원히 음악에 빠져 있고 싶었습니다.” 

러시아 출신의 피겨 여왕 에카테리나 고르디에바도 말러의 <아다지에토>에 맞춰 연기했다. 1996년 미국 전역에 생중계된 이날 공연의 제목은 <삶의 찬가>(Celebration of a Life). 24살 고르디에바는 혼자 춤춘다. 손짓 하나, 몸짓 하나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이 어려 있다. 관객 모두 눈물을 흘렸고, 그 자신도 눈물을 흘렸다. 공연이 끝난 뒤 그는 말했다. “세르게이가 함께 스케이트를 타고 있는 것 같았어요. 세르게이가 곁에 있기 때문에 저는 두 배로 힘을 낼 수 있었어요.” 

세르게이 그린코프(1967~1995)는 누구일까? 그는 고르디에바의 모든 것이었다. 1984년, 삿포로 동계 올림픽에서 두 사람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세르게이는 15살, 고르디에바는 11살이었다. 고르디에바와 그린코프가 호흡을 맞춘 음악은 미키스 테오도라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였다. 어린 두 사람의 연기는 완벽했고, 꼬마 고르디에바의 앳된 모습은 세계인의 화제가 됐다. 세계의 스포츠 캐스터들은 입을 모았다. “고르디에바는 4살 때 스케이트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구소련에는 이 꼬마한테 맞는 스케이트가 없어서 양말을 여러 겹 껴 신어야 했다지요?” 세계 피겨 스케이팅의 미래는 두 사람의 것이었다. 그들은 1988년 캘거리, 1994년 릴리함메르 동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네 차례의 세계 선수권대회를 석권했다. 고르디에바는 해가 갈수록 키가 커졌고, 그와 비례하여 세르게이에 대한 사랑도 자라났다. 1988년 새해 축하 공연에서 첫 키스를 나눈 두 사람은 1991년 4월 드디어 결혼했다. 이듬해 9월엔 딸 다리야가 태어났다. 두 사람은 사랑했고, 세상은 그들의 것이었다. 그들은 젊음과 행복의 절정에 서 있었다.   

▲1994년 릴리함메르 동계 올림픽에서 베토벤의 ‘월광’에 맞춰 연기하고 있는 고르디에바와 그린코프.
▲1994년 릴리함메르 동계 올림픽에서 베토벤의 ‘월광’에 맞춰 연기하고 있는 고르디에바와 그린코프.

세르게이의 죽음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1995년 11월 20일, 뉴욕 플래시드 호수에서 연습하던 그는 갑자기 심장마비로 쓰러져 숨을 거두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세르게이는 28살, 고르디에바는 24살이었다. 고르디에바는 그가 없는 세상을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왜 여전히 살아 있는 걸까? 세상은 어째서 그대로 돌아가고 있을까?  

사랑하던 세르게이는 사라졌지만 젊은 그는 숨 쉬고 있었다. 그리고 세 살 난 딸 다리야가 방긋방긋 웃고 있었다. 망연자실한 채 쓰러져 있던 그는 석 달 뒤 몸을 추스리고 일어나서 빙판 위에 섰다. 죽은 남편에게 바치는 공연, <삶의 찬가>였다. 말러의 <아다지에토>가 흐르고 있었다. 그는 혼자였지만 세르게이가 곁에 있는 것만 같았다. 세르게이는 빙판 위에, <아다지에토> 선율 속에 살아 있었다. 눈물로 범벅이 된 이날 공연은 TV로 생중계됐고, 고르디에바는 그날의 기록을 <나의 세르게이 : 러브 스토리>란 책으로 남겼다. 인간은 슬픔을 통해서 고결함을 얻는 걸까?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아름다운 말러의 <아다지에토>는 고르디에바의 <삶의 찬가>로 찬란하게 되살아났다. 슬픔의 위대한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