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 Issue] 30여 년 정설로 여겨진 나전칠기 역사, 공론장 나와야
[Hot Issue] 30여 년 정설로 여겨진 나전칠기 역사, 공론장 나와야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2.03.16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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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규 실톱 도입, 우리 것인가? 일본 것의 도입인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속 오류, 필자 곽대웅의 방임으로 되풀이
무형문화재 역사·장인 기록, 다양한 견해와 사실 재논의 필요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지난 9일 제 20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고 5년 간 국정을 운영할 새로운 인물이 선출됐다. 지난 13일에는 윤석열 당선인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선을 직접 발표하며 국정 운영의 굵직한 라인을 알렸다. 하나의 조직을 구성해나가는 과정에서, 주요 요직에 어떤 인물들이 자리하느냐에 따라 조직의 방향성과 정체성을 짐작해볼 수 있다. 주요 언론사들은 역대 대통령들이 주목하고 접촉했던 인맥들을 정리하며, 이번엔 어떤 인사들이 요직을 차지하게 될 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020년 발간된 「창립30주년 한국칠예가회」 도록 표지와 수록됐던 곽대웅 교수의 글 '조선시대의 나전도구 실톱과 전성규의 실톱', 해당 글 말미에는 곽 교수 본인이 작성했던 1991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전성규 항목 글에 대해 오류가 있었음을 인정하고 있다.  (사진=서울문화투데이)
▲2020년 발간된 「창립30주년 한국칠예가회」 도록 표지와 수록됐던 곽대웅 교수의 글 '조선시대의 나전도구 실톱과 전성규의 실톱', 해당 글 말미에는 곽 교수 본인이 작성했던 1991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전성규 항목 글에 대해 오류가 있었음을 인정하고 있다. (사진=서울문화투데이)

문화계에도 변화들이 닥쳐오게 될 것이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고 시대가 흘러도 조직에 큰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 분야도 존재한다. 상대적으로 많은 대중이 주목하지 않고, 속해 있는 이들이 큰 목소리를 내기 어려워하는 집단일수록 그런 경향은 짙어진다. ㈔한국공예예술가협회 이칠용 회장은 지난 30년의 시간동안 잘못된 한국 나전칠기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왔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목소리는 공예계 중앙부로 닿지 않고 있다.

본지 서울문화투데이는 1991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발간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곽대웅 목공예가(前 홍익대학교 조형대학 교수, 이하 곽 교수)가 작성한 ‘전성규 나전칠기 장인 (1880~1940)’ 항목에 대한 오류가 2022년 국립중앙박물관 《漆, 아시아를 칠하다》 전시 도록의 오류까지 이어지게 된 과정을 추적했다. 이외에, 문화재청 산하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2006년에 발행한 책 「나전장」에 2007년에 제기된 수정ㆍ재발간 요청 과정과 그 이후에 대해서도 취재했다.

공예예술가협회 이칠용 회장은 최근 본지와 인터뷰 자리에서 한국 나전칠기 역사의 불분명한 정립은 우리 세대가 아닌 후대에 더 안 좋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최근 중국은 한복과 김치를 자신들의 문화라고 우기는 말도 안 되는 사태를 벌이고 있다. 우리 민족이 가지고 있는 문화와 전통예술에 대한 더욱 명확한 정립이 필요한 때다. 특히나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한국 나전칠기 역사의 명확한 정립을 위해 국가와 학계, 공예인이 공식적인 자리에 모여, 과오를 솔직히 인정하고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 공예계의 중론이다.

 

■ 나전칠기 역사 오류, 왜 많은 이들이 알 수 없었을까.

근대 나전칠기의 큰 특징 중 하나는 실톱을 이용한 주름질(줄음질) 기법(자개를 가위나 줄 또는 실톱으로 계획된 무늬대로 오려내 칠면에 장식하는 나전기법)의 도입이다. 현재 우리나라 나전칠기 장인들과 공예계, 학술계에 정설처럼 전해지고 있는 역사는 “조선 나전장 전성규가 일본 다카오카시 ‘조선나전사’ 체류 2년 동안 금속세공용 실톱 사용법을 익혀와 한국에서 주름질 기법의 혁신을 가져왔다”라는 내용이다. 즉, 한국 나전칠기 주름질 기법이 일본에서 착안돼 한국으로 전해졌다는 것이다.

이 기록은 199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발간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곽대웅 교수가 작성한 ‘전성규’ 항목으로부터 시작된다. 곽 교수는 해당 글에서 “통영칠기주식회사에 근무하던 1920년에 일본 다카오카시(高岡市)의 조선나전사(朝鮮螺鈿社)로 초빙되어 갔다. 이 때 제자인 김봉룡(金奉龍)을 데려가 2년 체류하는 동안 금속세공용 실톱의 사용법을 익혀와 자개무늬 제작에 활용함으로써 주름질 기법의 혁신을 가져왔다”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 기록이 사실과 다르다는 견해가 있다. 이칠용 회장이 1982년 실제로 일본 다카오카 나전칠기 단지를 견학하고 구입한 공인 계보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자개일’과 동일한 ‘청패사(靑貝師)’의 시작이 ‘한국 나전-기무라 덴코-한국 공인’으로 표기돼 있다. 한국 공예 관련 학자들은 우리나라 장인들이 일본에 가서 기술을 배워왔다고 하지만, 반대로 故전성규 나전장이 일본에 가 기술을 전파했음을 확인해 볼 수 있는 지점이다.

▲일본 다카오카시 나전칠기 공인 계보, 청패일의 시작이 ‘한국 나전-기무라 덴코-한국 공인’으로 표기돼 있다.
▲일본 다카오카시 나전칠기 공인 계보, 청패일의 시작이 ‘한국 나전-기무라 덴코-한국 공인’으로 표기돼 있다.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이에 대해 서울대학교 미술이론을 전공하고 일본 도쿄대학 인문사회계연구과 박사과정을 이수한 노유니아 박사는 「조선나전사(朝鮮螺鈿社)와 한국 근대 나전칠기」 논문 (『문화재』 제 49권 제 2호. 국립문화재 연구소. 2016 수록)을 통해 좀 더 구체적인 연구과정을 공유하면서, 조선 나전사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노 박사는 논문 맺음말을 통해 “그동안 일제시기의 공예사는 조선으로 건너왔던 일본인 공예가와 연구자들의 사례를 중심으로 서술되어 왔다. (중략) 일본으로 갔던 조선인 칠공예가들의 경험을 통해서 한국 근대 나전칠기 창작활동 전반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는 사실은 지금까지 일제강점기 공예사가 서술되어 왔던 일방적인 흐름에 가까운 관점과는 다른, 인적교류를 통한 보다 복잡하고 다양한 층위의 시각을 제공한다”라고 짚는다.

이러한 노 박사의 논문과 1991년 이후 행해진 여러 연구를 통해 곽 교수는 2020년 「창립30주년 한국칠예가회」 도록 말미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전성규’ 항목에 대한 자신의 글이 ‘오류’였음을 밝히는 글 <조선시대의 나전도구 실톱과 전성규의 실톱>을 실었다. 이 글은 한국 근대 공예 실톱 도입 문제와 전통적인 자개주름질 무늬에 대한 이해를 돕는 의도를 가지고 작성됐다.

해당 글 말미에 곽 교수는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전성규 항목은 본고 필자가 쓴 것인데 그것은 1976년에 간행된 『일사 김봉룡작품집』에 실린 예용해 글 「일사 김봉룡의 세계」의 내용을 인용하여 쓴 것이다. 그 백과사전이 발간된 1991년 이후는 전성규에 대한 오류(실톱도입)가 정설처럼 되었으므로 본고 필자는 책임을 통감하며 이 논고를 쓴 것이다”라고 밝힌다. 이로써 전성규에 대한 오류가 재정립되는 듯 했다. 하지만, 여전히 공예학계 및 대중에게는 이 사실이 전달되지 않고 있다. 어떤 이유 때문일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전성규 항목 온라인 페이지, 빨간 사각형 안 내용이 오류이지만 수정되지 않은 상황이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전성규 항목 온라인 페이지, 빨간 사각형 안 내용이 오류이지만 수정되지 않은 상황이다. (사진=서울문화투데이)

현재 네이버 포털사이트에 ‘전성규’라는 이름을 검색하면 지식백과 페이지를 통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기반한 전성규의 설명을 찾아볼 수 있다. 곽 교수는 1991년 본인이 작성한 글에 대한 오류를 인정했지만, 백과사전에 대한 수정은 진행하지 않았다. 곽 교수는 “「창립30주년 한국칠예가회」도록에 해당 글을 발표함으로써 협회원들에게 사실을 알리고자 했고, 이후 확산되는 논의와 연구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참여할 의사가 있었다”라며 “오래 전 작성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글을 어떻게 수정해야 할 지 알 수 없어서,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라고 입장을 표했다.

한국공예가협회 이 회장은 이에 대해 ‘학자로서 무책임한 행위’라고 꼬집었다. 나전칠기에 대해 배우고자 하는 대중 및 나전칠기 공예를 수학하는 후대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할 수 있다는 것이 이 회장의 지적이다. 그는 “곽 교수가 적극적으로 행동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재발간과 관련 연구와 토론에 임해주길 바란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을 발간한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측은 “오류가 있는 지점이 있다면, 내부적인 검토를 통해서 충분히 수정할 수 있다”라며 “단순 오타나 정보는 빠른 수정이 가능하지만, 깊이 있는 내용의 경우 해당 분야 전문가의 자문과 검토를 통해서 수정을 진행해볼 수 있다. 원고를 작성하신 분의 연락을 기다린다”라는 입장을 전했다.

▲국립중앙박물관 《漆, 아시아를 칠하다》 전시도록 상 표시해 둔 오류를 짚고 있는 이칠용 한국공예예술가협회 회장
▲국립중앙박물관 《漆, 아시아를 칠하다》 전시도록 상 표시해 둔 오류를 짚고 있는 이칠용 한국공예예술가협회 회장 (사진=서울문화투데이)

국중박 전시도록 오류…학계 기존 입장 따른 것

전성규에 대한 오류의 시작이 된 글이 수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전성규가 일본에서 공업용 실톱을 도입했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학계에서도 쉽게 단언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한국 공예와 나전칠기의 역사, 전시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전성규에 대한 오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 것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지난해 12월 시작해 오는 20일까지 개최되고 있는 특별전 《漆, 아시아를 칠하다》 전시 도록 때문이었다. 해당 전시는 아시아의 옻칠과 칠공예 문화를 보여주는 전시로 한‧중‧일의 칠공예작품을 선보인다.

한국공예가협회 이 회장은 이재호 학예연구사가 작성한 해당 전시 도록 수록 칼럼 중 “나전장 전성규가 1921년 일본에서 금공용 실톱을 도입하면서 (중략)”라고 작성된 부분이 수정돼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한국 옻칠 공예 및 아시아의 옻칠을 보여주는 전시에서 근대 옻칠 공예와 무형문화재 옻칠 장인들의 작품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지적했다.

그는 “‘옻칠’이라는 주제로 기획된 전시인 만큼 한국 근대 옻칠 공예를 다뤄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조선 후기 이후 ‘근대’ 옻칠 공예를 제외하고, 현대 공예로 전시가 기획된 것은 구성상 문제가 제기돼야할 점이다”라며 “현대 옻칠 공예를 선보인다는 기획 아래 현대 공예 교수들의 작품만 전시되고, 특히 정해조 작가 작품이 다른 작가들에 비해 많이 전시된 점에 의문을 표한다”라는 입장을 전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측은 이 회장의 두 가지 문제 제기에 있어서, 먼저 전시 도록 상 해당 칼럼은 ‘학계의 기존 논의 성과를 반영해 작성된 글’이라고 설명했다. 국립중앙박물관 노남희 학예연구사는 “현재 학계에서는 전성규가 일본에서 공업용 실톱을 도입했을 것이라고 보는 견해와 이에 대해 단언하기 어렵다는 견해가 있다. 전자는 오래 전부터 통용돼오던 학설이고, 후자는 최근에 새롭게 제기된 견해로, 문제가 제기된 칼럼은 기존 논의를 반영했다. 향후 이에 대해 보다 확실한 학계의 논의가 진전되기를 박물관 측에서도 기대하고 있다”라고 답했다.

한국 근대 옻칠 공예품이 전시 구성 상 빠진 것, 특정 작가 작품이 많이 전시된 것에 대해서 먼저 이번 전시가 한국 칠기 전체를 시대 순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전시가 아니라는 점을 짚고 싶다고 밝혔다. 노 학예사는 “이번 전시는 아시아 공통 도료를 바탕으로 발전한 다양한 칠공예를 조명하기 위해 기획된 전시로, 한국 칠기 공예 전반을 아우르지 않고 있다. ‘근대’ 이외에 ‘선사시대’와 ‘고대’ 자료도 해당 전시에서 빠져있다”라는 입장을 전했다.

덧붙여 “에필로그처럼 구성된 ‘오늘날의 옻칠, 그 물성과 예술성’은 본 전시 구성과 시대적으로 이어지는 구성이 아닌 현재에도 옻칠은 공예문화의 하나로 다채롭게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라며 “에필로그에서 전시된 작가와 작품 선정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과 협력해 진행한 것으로 특정 작가 작품이 다수 전시됐다는 지적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해당 문제의 당사자인 정해조 교수는 “전시를 준비할 때 국립중앙박물관과 전시 기획 측에서 출품 가능한 작품 목록을 제출해 달라 했고 입체작품의 경우 4작품, 평면작품은 2작품 제안할 수 있었다”라며 “나는 작품상으로는 총 4점이 전시됐다. 세트 작품이기 때문에 작품 개별의 수는 16점인데, 이 때문에 내 작품이 다수 전시됐다는 문제가 제기된 것이 아닌가 싶다”라고 말했다.

■ 무형문화재(공예) 역사, 어떤 견해가 옳은 것일까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있다. 당대의 기득권층이나 주류 학자들의 연구가 후대에 정설처럼 전해지는 데서 오는 ‘회의감’에서 나온 말이기도 하다. 굴곡의 역사를 살아온 한국은 우리의 얼과 정신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탐구했고, 식민사관을 벗어나기 위한 수많은 활동을 펼쳐왔다. 이는 문화계 역시 동일하게 이뤄졌다. 일본인 학자들의 견해에서 서술된 여러 문화예술사 재정립에 대한 노력을 펼쳤다. 근간까지도 끊임없이 연구가 행해지고 있지만, 분야별로 연구의 편차가 존재하기도 한다. 전통공예사와 무형문화재 기록이 그런 분야 중 하나다. 분야에 다양한 연구가 이뤄지지 않아, 불통의 과정을 겪기도 한다.

문화재청 산하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는 2006년 故송방웅 나전장과 이형만 나전장에 대한 기록서 「나전장」을 발간했다. 이는 당시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인 정해조 위원이 기록인으로 참여해 글을 작성했다. 이후 2007년 故송방웅 나전장은 한국공예가협회 이 회장에게 자필 편지 3장과 함께 책 「나전장」 오류 수정 요청을 함께 해 달라 했다. 송 나전장은 책자에 사용된 용어와 오타, 연도, 도구명에 대한 오류를 지적했다. 이에 이 회장은 문화재청과 국립문화재연구소에 책자 오류 수정요청을 했고, 지금까지도 책자 재발간을 요청하고 있다. 이 회장 측에 따르면 당시 지적한 오류는 192페이지 중 100여 페이지에 해당한다.

▲(좌측)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2006년 발행한 기록물 「나전장」에 故송방웅 나전장이 표시한 오류 지점 (우측)이칠용 회장이 2007년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에 전달한 수정 요청서
▲(좌측)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2006년 발행한 기록물 「나전장」에 故송방웅 나전장이 표시한 오류 지점 (우측)이칠용 회장이 2007년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에 전달한 수정 요청서 (사진=서울문화투데이)

무형문화재 기록은 현재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국립무형유산원으로 업무와 기록이 이관된 상태다. 본지는 국립무형유산원이 해당 사안에 대해 알고 있는지, 재발간에 대한 계획이 있는지를 물어봤다. 국립무형유산원 측은 현재 재발간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2007년 당시 오류가 지적된 사항에 대해 기관과 기록인으로 참여한 정해조 위원이 검토했고, 오타와 용어 지적에 대해서는 온라인 상 공개되는 자료에 모두 수정조치를 했다는 설명이다.

국립무형유산원 홍보팀은 “「나전장」이 절판되지 않은 상황에서 재발간은 어렵다”라며 “2007년 당시 제기된 오류는 상당부분 수용했다”라고 설명했다. 덧붙여 “무형문화재 기록과 전승에 있어서는 계파와 전승자의 견해에 따라서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으며, ‘나전칠기’에 대한 포괄적인 역사를 모두 아우를 수는 없어 책자 발간 사업상 지향하고 있는 분야에 대해 중립적으로 담아내고자 했다”라고 설명했다.

기록자로 참여했던 정 교수는 “당시 인터뷰를 진행할 때 송 나전장의 이야기를 녹음하고 비디오 촬영도 진행했다”라며 “원고 완성 이후에 송방웅 나전장에게 검토까지 요청한 이후에 발간된 책인데, 왜 또 다시 문제가 발생했는지 당황스럽다”라는 입장을 표했다. 이어 “기록물 제작은 무형문화재의 시연을 기록팀에서 함께 지켜보고, 무형문화재가 국가에 지정될 당시 보고서에 기반해 작성된다”라며 오류가 생길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런데, 왜 故송방웅 나전장은 자필의 편지를 남겨가며 「나전장」에 대한 오류를 지적했을까. 이는 현재 무형문화재 나전장이 끊음질 장인과 주름질 장인으로 지정 종목이 구분돼 있는 상황에서 근본적인 문제가 시작됐다고 추론할 수 있다.

故송방웅 나전장 자필 편지에는 “오늘 날에도 주름질 장, 끊음질 장으로 설명하고 구분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몰라도 한참 모르는 처사 아닌지요. 나전장이면 두 가지 다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중략) 기록영화 촬영 시에 나는 주름질, 끊음질 모두 시연 작업했어요. 촬영도 했어요. (중략) 그럼에도 나의 주름질 사진은 하나도 없고, 설명도 없으며 오히려 촬영 당시 전문위원이 말이 없다가 시사회 때 왜 송선생은 남의 영역을 침범하느냐 그 사진 지워버리라고 고함쳤어요”라는 기록이 있다. 故송방웅 나전장의 오류 지적은 이 점을 짚고 있는 듯 하다.

▲총 6페이지 분량의 故송방웅 나전장 자필 편지, 전반 3페이지는 ‘나전장’ 정의를 정리했고, 후반 3페이지에선 주름질, 끊음질 지정종목에 대한 본인 견해를 밝히고 있다.
▲총 6페이지 분량의 故송방웅 나전장 자필 편지, 전반 3페이지는 ‘나전장’ 정의를 정리했고, 후반 3페이지에선 주름질, 끊음질 지정종목에 대한 본인 견해를 밝히고 있다. (사진=서울문화투데이)

한국공예가협회 이 회장은 전통공예인들의 성격으로 외골수 같은 면을 특징으로 말한다. 자신의 작업을 꾸준히 올곧게 파고 들어온 장인들에게 있어 자신이 추구하는 학설과 기술은 가장 옳은 것이 되곤 한다. 이는 공예계 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동일하게 이뤄지고 있는 논쟁의 형태다. 다만, 전통 공예계에서 건강한 토론과 논의가 이뤄지지 않는 것은 관련 학자와 공예인들이 움직이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회장이 공예계 전반에 산재해있는 오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끊임없이 주장한 바는 단 한 가지였다. 그는 “나전칠기 역사와 여러 논쟁점에 대해 공개토론회를 열고, 자정적인 노력을 펼치고 싶다”라며 “후대가 우리 전통을 보다 정확하게 공부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고 싶다”라고 말했다.

공예계 전반에 제기된 여러 문제들을 취재하며 한국 공예계 1세대라고 불리는 곽대웅 교수, 이칠용 회장의 의견을 들어봤다. 또한, 현대 옻칠 공예로 주목받고 있는 정해조 작가의 견해와 입장을 들어볼 수 있었다. 50여 년간 한국 공예계에 자리하며 연구를 이어온 이들은 누구보다, 공예에 대한 애정이 있었다. 또한, 후대를 위한 공예 역사 재정립과 연구에 대한 의지도 많았다. 이들이 가진 오랜 세월의 역사와 지식이 부디 후대로 잘 이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