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Interview]오페라 <장총>, 장수동 예술감독ㆍ이경재 연출ㆍ안효영 작곡가 “과거와 현재를 꿰뚫는 ‘장총(長銃)’의 노래”
[Culture Interview]오페라 <장총>, 장수동 예술감독ㆍ이경재 연출ㆍ안효영 작곡가 “과거와 현재를 꿰뚫는 ‘장총(長銃)’의 노래”
  • 이은영 발행인ㆍ진보연 기자/사진 김재성 작가
  • 승인 2022.03.16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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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2~23일, 대학로 아르코 대극장서 올려져
‘세종 카메라타’ 거쳐 ‘아르코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선정
“오페라 신작 발굴만큼 재공연 기회 절실”

[이은영 발행인ㆍ진보연 기자/사진 김재성 작가]한국에서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하던 우크라이나 출신 연주자 3명이 러시아 침공을 받은 조국을 지키기 위해 최근 출국했다. 콘트라베이시스트 지우즈킨 드미트로(47), 트럼펫티스트 마트비옌코 코스탄틴(52), 비올리스트 레우 켈레르(51)의 이야기이다. 악기를 연주하던 손에는 이제 무기가 들려있다. 

▲서울팝스오케스트라에서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는 지우즈킨 드미트로(왼쪽), 오른쪽 사진은 그가 우크라이나 키이우로 돌아가 총을 든 모습. (제공=서울팝스오케스트라)
▲서울팝스오케스트라에서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는 지우즈킨 드미트로(왼쪽), 오른쪽 사진은 그가 우크라이나 키이우로 돌아가 총을 든 모습. (제공=서울팝스오케스트라)

세 사람 모두 우크라이나 키이우(키예프) 국립음악원 출신 연주자이다. 2002년 입단한 드미트로가 나머지 두 사람에게 악단 가입을 권유해 한국에서 함께 뭉쳤다. 켈레르와 코스탄틴은 각각 2015년, 2016년에 이 악단에 합류했다. 서울팝스오케스트라는 1988년 창단된 민간 오케스트라로 72명의 단원 중 20여명이 외국인 단원이다. 우크라이나 단원은 4명인데, 한국인 아내와 자녀를 둔 단원 한 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모두가 고국으로 떠난 것이다. 

전쟁의 반대어는 평화이기도 하겠지만, 예술일수도 있다. 전쟁은 예술가의 삶과 정신, 그들의 작품 활동까지 파괴하기 때문이다.

슬픈 역사의 한 페이지를 그린 오페라 <장총>은 ‘악기를 꿈꾸다 무기가 되어버린 한 나무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작품은 장총의 시각에서 타인에 대한 사상의 차이로 증오가 피가 천지를 오염시켰던 한국전쟁 당시, 한 마을에서 일어난 빨치산들과 우익청년의 전투와 심리를 이야기하며, 종국에는 증오를 뛰어넘어 화해와 희망을 노래한다.

<장총>은 1952년을 배경으로 하지만, 현재를 이야기한다. 1950년대나 지금이나 세상 어느 곳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고, 21세기에도 장총은 존재한다. 갈등의 구조가 다르긴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모두가 행복하고 풍요로운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자신과 이해관계가 다르다는 이유로 폭탄을 투하하고, 누군가는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타인의 삶을 파괴한다. 반면 힘듦을 이겨내고 묵묵히 사는 사람도 있고, 다른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노래하는 사람도 있다. 저마다 삶의 모습이 다르듯 그것을 살아내는 방법도 다양하다. 

<장총>의 장총은 이런 모습들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전쟁 중에도 이를 이겨내기 위한 노력이 계속된다면 언젠가는 총소리 대신 악극단의 노래 소리가 들릴 것이라는 희망, 나중에 내가 녹아서 악기가 된다면 행복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표현하겠다는 장총의 무형의 의지가 담겨있다. 

예술은 현실에 대한 반응이다. 그 반응 속에는 인간의 삶이 들어 있고 시대의 정신이 녹아 있다. <장총>의 창작진은 현실을 어떻게 느끼고 반응해 작품으로 표현했을까.  장수동 예술감독ㆍ이경재 연출ㆍ안효영 작곡가를 지난 2월 말, 서울오페라앙상블 연습실에서 만나 들어봤다.

▲오페라 ‘장총’ 창작진 인터뷰 장면 (왼쪽부터)안효영 작곡가, 장수동 예술감독, 이경재 연출, 이은영 발행인 ⓒ김재성 작가
▲오페라 ‘장총’ 창작진 인터뷰 장면 (왼쪽부터)안효영 작곡가, 장수동 예술감독, 이경재 연출 ⓒ김재성 작가

오페라 <장총>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잡았다는 호평을 받으며 초연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창작오페라 부문에 선정되며 처음 세상에 나오게 됐는데, 이 작품이 무대화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하다.

안효영 이 작품은 ‘세종 카메라타’에서 처음 시작됐다. 서울시오페라단의 오페라 창작 시스템인 ‘세종 카메라타’는 한국 창작오페라 콘텐츠를 연구ㆍ개발하기 위해 작곡가, 작가들이 뜻을 모아 결성한 모임이다. 창작진들은 하나의 작품을 탄생시키기 위해 ‘연구ㆍ개발-보완ㆍ수정-재보완ㆍ수정-레퍼토리 정착’의 과정을 거친다. 한 번에 긴 호흡의 작품을 만들어 바로 무대에 올리는 것은 어려운 상황이니, 25분짜리 공연을 만드는 것으로 시작했다. 정식 공연이 아닌 리딩 공연 형식으로 작품을 처음 선보였는데, 많이들 좋아해 주셨고 나도 더 키우고 싶은 욕심이 났다. 그러던 차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산실 창작오페라발굴지원 사업과 신청 시기가 잘 맞았고, 다행스럽게도 선정되어 김은성 작가와 함께 작품의 규모를 확장시키게 됐다. 

장수동 창작산실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젊은 작곡가가 오페라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유일한 통로다. 응모한 팀들 가운데 다섯 개의 작품이 실연심의에 참여하고, 그 중 최종 2개 작품에 공연 제작비를 지원한다. 젊은 연출가와의 작업을 희망했던 안효영 작곡가와 김은성 작가가 처음 찾았던 건 사실 내가 아닌 나의 딸 장누리 연출이었다. 하지만 장누리 연출은 런던에서 공연으로 올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안효영 작곡가와 오페라 <텃밭킬러>로 인연이 있던 이경재 연출이 다시 한 번 연출을 맡고 서울오페라앙상블이 함께 작품에 참여하게 됐다. 

이경재 부연을 하자면, <장총>의 쇼케이스 연출은 장누리 연출이 맡았었다. 그런데 장 연출의 영국 공연 시기와 <장총> 공연 준비 기간이 맞물리는 바람에, 당장 새로운 연출이 필요하게 됐고 급하게 제안을 받아 작품에 참여하게 됐다. 

▲오페라 ‘장총’ 공연 장면
▲오페라 ‘장총’ 공연 장면 ⓒ최원규

전쟁이라는 상황과 이를 겪는 인물들의 심리 등을 음악 안에 담아내고, 무대로 표현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무엇인가?

안효영 이 작품뿐만 아니라 어느 작품을 하든지, 극 중 캐릭터나 대본이 나의 도구가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작업에 임한다. 나의 음악을 보여주기 위한 도구로 삼지 않으려 한다. 나아가 대본을 잘 보여주기 위한 작곡은 무엇인지 생각한다. 
<장총>에서는 무엇보다 캐릭터를 드러낼 수 있는 모티브들을 잘 만들어내는 게 중요했다. 또한 적재적소에 배치된 모티브들을 어떤 방식으로 드러내며, 그것이 어떻게 변주될지 전체적인 계획을 잘 세우는 것이 나에겐 굉장히 중요했다. 이러한 구조를 만드는 데 시간을 많이 할애했다. 

장수동 대학로에서 아주 핫한 김은성 작가가 훌륭한 대본을 써주었지만, 지금까지 연극 대본을 주로 써왔기 때문에 아무래도 연극적 어법에 익숙하다. 안효영 작곡가는 연극적 색채가 짙은 이 대본을 음악적 언어로 번역해 오페라로 만들었다. 하나의 작품이 무대에 오르기까지는 보통 2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쇼케이스 공연 전에 다듬고, 총 공연 전에 오케스트레이션을 하고. <장총>이 관객들과 만나기까지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이번 공연은 초벌구이라고 생각한다. 유약을 발라 다시 가마에 넣어 재벌구이를 한 결과물을 보려면 얼마간의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음악적인 근거가 있으니 발전 가능성은 충분하다. 

▲오페라 ‘장총’ 이경재 연출
▲오페라 ‘장총’ 이경재 연출 ⓒ김재성 작가

판타지적 요소가 가미된 소재의 참신함이 있지만 <장총>의 시대적 배경은 이미 문학과 공연예술을 비롯해 수많은 콘텐츠로 제작됐기에, 관객이 새로움을 느끼기엔 한계가 존재했을 것으로 보인다. 기존의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기 위해 특별히 신경 쓴 점이 있다면?

이경재 사실 시대적 배경은 크게 염두해 두진 않았다. 이 작품이 원하는 가장 목표가 무엇인가가 궁금했고, 대본가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가 중요했다. 창작 오페라인 이 작품의 경우 레퍼런스가 따로 없기 때문에, 이 공연을 기점으로 나중에 더욱 발전해갈 가능성이 높은 작품이다. 앞서 안효영 작곡가가 ‘작가가 원하는 것을 음악으로 전달하고 싶었다’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같은 맥락에서 나는 그 메시지가 잘 들리는 그림을 그리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1953년 빨치산이라는 배경은 큰 의미를 가지지 않을 수 있다.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빨치산에 관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피폐화된 것들이 정화되는 과정과 그 안에서 예술의 역할이었다. 시대적 상황, 의인화된 사물과 인간들이 공존하는 설정 등이 다소 상징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근본적으로는 특정 장르나 시점에 국한되지 않은, 이야기 전달을 위한 연출에 가장 집중했다. 

극작가나 작곡가의 기획 의도와 연출가의 해석에 있어서 부딪히는 지점은 없었는지?

이경재 다른 고전 오페라를 할 땐 워낙 오래된 작품이다 보니, 해석의 차이가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장총>과 같은 창작 초연은 살아 있는 작곡가와 대본가를 만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직접적으로 들을 수 있어 오히려 그런 마찰은 없었다. 
대한민국 오페라 사(史)에서 안효영 작곡가의 작품은 하나의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장총>이 창작산실에서 수작으로 선정되어 나라의 지원을 받아 무대에 올랐지만, 과연 이 작품이 완벽하게 좋은 작품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완성형’이라 불리기엔 아직 만들어지는 과정의 작품이니 아쉬운 점이나 개선될 점이 물론 있을 것이다. 작품을 올리기 전부터 여러 이야기를 나눴지만, 무대에 실제로 올린 후에 발견된 부분들도 있기 때문에 추후 보완된다면 더욱 좋은 작품으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한다. 

<장총>은 다양한 음악을 모티브로 삽입하는 음악적 센스가 특히 돋보였다. 연극적 요소가 많은 특성을 고려하며, 극의 흐름에 따라 음악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떻게 통일성 주었는지. 

안효영 작품에 차용한 곡은 차이코프스키 심포니, 쇼팽 이별의 노래(Chopin Etude Op.10 No.3), 전라도 상여소리, 1950년대 유랑극단 가요 등이다. 전체적으로 통일성을 가져가는 문제는 캐릭터 모티브를 확실하게 잡아놓고, 그것들을 확실하게 배치 해놓고 시작하니 오히려 편했던 것 같다. 
<텃밭킬러> 같은 경우는 넘버 오페라라서 구간마다 완결성을 보여야 했기 때문에, 오히려 시간도 오래 걸렸고 넘버마다의 완성도를 요구했다. 반면 <장총>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작품이라 생각하고 쭉 하나로 끌고 갔기 때문에, 배치에 대한 공부는 필요했지만, 배치 후에는 통일성에 대해 그렇게 고민하지 않을 수 있었다. 

호른 솔로 대목은 차이콥스키 5번 뿐 아니라 호른 선율 메들리로 하면 어땠을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안효영 지금도 다양한 음악들이 나오기 때문에, 더 많은 음악을 추가하면 혼란스럽지 않을까 싶다. 다만, 호른의 멜로디가 뒷부분에서 쭉 흘러가는 것이 아쉬워서 주신 의견일 것 같은데, 그 부분이 입체적으로 보강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나 역시 했다. 

이경재 호른 솔로 대목이 아쉽다는 의견이 관객으로서 동의하는 바이다. 100년산 졸참나무가 잘리고 깎이어 탄생한 장총은 본시 아름다운 악기가 되고 싶었으나, 시절은 그를 장총으로 만들었다. 특히 장총의 방아쇠를 이루는 것이 호른이지 않나. 무기가 악기로 치환될 수 있는 가능성, 이 부분에 대한 음악적 이야기를 보태어 준다면 작품이 더욱 풍부해지고 이해하기도 쉬울 것 같다. 

▲오페라 ‘장총’ 안효영 작곡가
▲오페라 ‘장총’ 안효영 작곡가 ⓒ김재성 작가

장총에게 꼭 입히고 싶었던 음악적 주제의식이 특별히 있었다면?

안효영 장총이 등장할 때부터 땅에 묻힐 때까지 8분에 6박자 베이스 리듬을 갖는다. 처음부터 전라도 상여소리를 넣으려고 계획했고, 이를 쓸 수 있는 멜로디를 구상했다.

상여소리를 쓸 수 있는 가장 심플한 베이스이면서 장총의 처지를 드러낼 수 있는, 죽은 이들의 이름을 외칠 때 잘 어울릴만한 모티브가 뭘까 염두하며 작업했다. 

음악 작업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어떤 것이었나?

안효영 말로는 배치를 해놓고 작업해서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고 했지만, 모를 땐 배치를 구상하는 것 자체가 어렵고 막막하다. 많은 오페라들을 반복해서 보고 스코어를 계속 들여다보며 공부를 했던 게 도움이 됐던 것 같다. 알반 베르크의 보체크(Wozzeck), 푸치니의 외투(Il Tabarro) 그리고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인 잔니 스키키(Gianni Schicchi) 등의 작품을 정말 많이 들여다봤다. 그 작곡가들이 한 작품 안에서 어떻게 통일성을 가지고 가는지, 그걸 공부하는 자체로 어려웠고, 그 과정에서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작곡도 사실 연출이다. 무대에서 어떻게 표현될지 상상을 하면서 작업을 하는데 잘 그려지는 장면이 있는가 하면, 안개가 낀 것처럼 떠오르지 않는 장면도 있다. 모든 장면을 확신을 가지고 쓴 게 아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이 오페라 작곡가로서 계속 발전해야 할 부분인 것 같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명확하게 갖고 있지 않으면, 표현이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 작업은 나에게 기쁨으로 자리했다. 기악곡을 쓸 땐 이런 희열을 잘 못 느꼈던 것 같은데, 워낙 문학을 좋아하다보니 작업 자체가 너무 즐거웠다. 좋은 텍스트에 내가 만든 음악이 더해져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됐을 때의 기쁨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 

주역인 장총이 내레이터 정도 역할에 그친 느낌인데 고통스런 액션을 좀 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주역인 장총을 좀 더 역동적으로 연출할 생각은 없는지?

이경재 좋은 지적 감사하다. 하지만 의도한 연출이었다. <장총>이라는 것은 작품의 타이틀일 뿐만 아니라 작품의 메인이 되는 의인화된 사물인데 너무 드라이한 거 아니냐는 장수동 예술감독의 의견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시작부터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 코러스처럼 진행을 해야 (관객들이) 더 잘 들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목표를 위해 장총과 졸참나무는 수단으로 삼았다. 

인터뷰를 진행하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새롭게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다. 극 중 길남과 선녀가 가까워지는 계기, 개연성이 조금 부족하다고 느껴졌는데 이 부분에 대한 의견이 궁금하다.

이경재 앞서 ‘배우들의 이야기가 들리게 만들겠다’라고 언급한 이유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작품에서 가수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한다. 6명이 자신의 이야기를 5분씩만 하더라도 30분, 10분씩 한다면 남는 시간은 50분뿐이다. 여기에 합창 파트까지 더해진다면, 우리가 관습적으로 알고 있는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과 그 안에 있는 이벤트가 차지하는 비중이 작을 수밖에 없다. 때문에 인물과 인물 사이에 교집합을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이 부족한 건 사실이다. 물론 없진 않지만, 말씀하신 바와 같이 둘이 만나는 지점에서 ‘길남이 정화될 것이다’라는 정보를 입수할 수 있는 계기의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오페라 ‘장총’ 장수동 예술감독
▲오페라 ‘장총’ 장수동 예술감독 ⓒ김재성 작가

이 시대에 <장총>이 관객들에게 사랑 받은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며,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이경재 힘들어도 꾸준하게 계속 하다 보면 언젠가는 좋은 세상이 오리라는 메시지를 가장 담고 싶었다. 이것이 결국 <장총>이 말하고자 하는 바라고 생각했다. 시대적 배경의 아픔을 드러내고 이 상황을 보여주는 것보다는, ‘먹고 살기도 바빠 죽겠는데 연극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따라 나서는 구도를 삽입함으로써 지금의 현실이 비유적으로 드러나길 바랐다. 

안효영 작품 안에 메시지는 여럿 있고, 나에게 위로를 주고 마음을 가다듬게 한 메세지도 있다. 그러나 나는 공연을 볼 때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이거야”가 느껴지는 순간, 답답해지고 재미가 없어지더라. 내게 중요한 건 ‘메시지의 전달’보다는 나를 통과한 대본이 어떤 식의 음악적 구성으로 채색되어 ‘계속해서 관객으로 하여금 극에 몰입하게하고 인물에 동화되게 하고 그 시간을 즐기게 하는가’이다. 그게 이루어진다면 각자가 알아서 자신만의 메시지를 가져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오페라 시장이 발전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무대를 올리는 게 아닐까 싶다. 지금보다 국내 작품의 비중을 키우기 위해선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는지?

이경재 어떤 변화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시간이 필요하다. 한국을 대표하던 김치와 불고기가 지금의 BTS로 변하기까지 최소 30년은 걸렸다. 그들이 들인 물량과 시간, 노력과 비교해 봤을 때, 70년 역사를 가진 대한민국 오페라는 어떤 인력들이 지지하고 어떤 노력들이 있어 왔는지 생각해봐야 할 때이다. 이제는 지속적인 서포트와 관심을 통해 작품들이 거듭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돼야 한다. 다행히 창작산실이라는 지원 사업이 생겼고, 장수동 감독님의 서울오페라앙상블을 비롯해 우리나라 오페라 시장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 주시는 분들이 계시지만 이것만으로는 아직 부족하다. 지금의 대한민국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들을 세계에 펼쳐 보이기 위해서는 이를 발굴하고, 개발하고, 성장시킬 시간이 필요하다.

장수동 환경이 좋지 않지만, 이만큼 창작오페라를 하는 나라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외국의 경우 1년에 신작 한 개만 나와도 화제가 된다. 늘 하는 작품만 올린다. 곡을 써서 새롭게 선보이는 작품은 거의 없다. 작은 시도라도 꾸준히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외형적이고 장식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소소한 시도들이 모여 앞으로 나아갈 길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안효영 재공연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다.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단 무대에 올려봐야 무엇을 개선해야 할지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한 번의 기회도 소중하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준비하지만, 여러 번 무대를 올려야 보이는 것들도 분명 있다. 이러한 기회들이 작가뿐만 아니라 작곡가들에게도 많이 주어지길 바란다.

새롭게 구상하고 있는 곡, 작품이 있나?

안효영 우선 4월에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진행되는 제20회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에 <텃밭킬러> 재공연으로 참여하게 됐다. 더불어 <양철지붕>이라는 창작오페라 쇼케이스도 4월에 예정되어 있다. 

이경재 제20회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 운영위원으로서 함께한다. 개인적인 작업으로는 다가올 4월 대전에서 열리는 2022 스프링페스티벌에서 코믹오페라 <결혼대소동>을 공연한다. 이 작품은 로시니가 음악학교 3년차(18세)에 작곡해 대중적으로 인정받은 첫 번째 작품으로, 국내에서는 처음 선보이게 됐다. 원작의 배경을 현대로 옮겨 관객들을 찾아갈 예정이다. 이밖에도 창원에서 오페라 <나비부인> 그리고 수원시향과의 협연도 계획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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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장총’ 공연 장면 ⓒ최원규

어떤 작곡가, 어떤 감독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안효영 계속 무대를 어려워하는 사람이고 싶다. 작곡가는 작품을 1차로 만드는 사람이니, 그만큼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냥 막연히 하다 보면 초심을 잃을 수가 있는데, 더 잘해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열심히 하다보면 언젠가는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장수동 동시대 언어로 오페라가 거듭나지 않으면, 우리끼리만 하는 장르로 머무르기 마련이다. 시대적 언어로 시대정신을 담은 작품을 남긴 감독으로 기억되고 싶다.

이경재 참여하는 모든 분들이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오페라를 꾸준히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 목표가 부정확한 상태에서 열심히만 한다면 일을 통해 행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작품을 통해 행복해지기 시작한다면 내가 한 일이 자부심이 될 것이다. 모두가 열심히 하고 있지만,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과 자긍심이 아직은 텃밭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세계 앞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작품을 꾸준히 아티스트들과 함께 만들어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