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 사랑의 순간을 짚다, 디뮤지엄 기획전 《어쨌든, 사랑》
[전시리뷰] 사랑의 순간을 짚다, 디뮤지엄 기획전 《어쨌든, 사랑》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2.03.22 18: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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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6~10.30, 성수동 디뮤지엄
1세대 순정만화 작품 영상 작품화
80~90년대 출생 포토그래퍼, 일러스트레이터 참여
작품-공간구성-음악, 공감각적인 ‘사랑’ 표현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최근 브라운관에서 청년들의 풋풋하고 청량한 사랑 이야기가 자주 눈에 띤다. 귀엽고, 아기자기한 사랑이야기이지만 그 속에는 주인공들의 내밀한 개인사가 녹아있다. ‘사랑’은 굉장히 보편적인 감정이면서 너무나 익숙한 감정이기에, 우리는 ‘사랑’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함을 쉽게 놓쳐버리기도 한다. 대중이 쉽게 공감하면서, 또 다층적인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는 ‘사랑’이라는 주제로 디뮤지엄(D MUSEUM)이 전시장 이전 첫 기획전을 선보인다.

▲Romantic Days, 섹션1 (사진=디뮤지엄 제공)
▲Romantic Days, 섹션1 (사진=디뮤지엄 제공)

성수동 서울숲 인근에 새롭게 자리하게 된 디뮤지엄(D MUSEUM)의 이전 첫 기획전 《어쨌든, 사랑: Romantic Days》은 지난 16일 개막해 오는 10월 30일까지 개최된다. 로맨스의 다양한 순간과 감정들을 1세대 순정만화 작가 천계영, 이은혜, 이빈, 이미라, 원수연, 박은아, 신일숙의 대표작품과 북남미, 유럽, 동유럽, 아시아 등 다양한 지역에서 활동하는 80~90년대 출생의 청춘 포토그래퍼, 일러스트레이터, 설치 작가의 작품을 엮어서 표현한다. 작품 300여 점이 공개된다.

전시에선 종이 만화책으로 만났던 순정만화 속 인물들이 미디어 영상으로 구현되고, 만화 속 스토리 라인을 감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한다. 전시는 총 7개 주제 공간으로 구성됐다. 전시 공간마다 주제에 맞는 노란색, 파란색, 빨간색 등의 테마 컬러를 사용해 공간 별 분위기를 극적으로 조성했고, 음악과 향을 통해 ‘사랑’이라는 주제를 공감각적으로 느껴볼 수 있게 한다.

특히,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달큰하게 느껴지는 향과 천계영 작가 『언플러그드 보이』 미디어 영상 작업은 관람객에게 즉각적인 감정 변화를 이끌어 낸다. 이는 ‘사랑’이라는 주제를 얘기하고자 하는 전시 방향성을 관람객에게 입체적으로 전달해주는 장치로 느껴진다. 디뮤지엄 김정아 큐레이터는 “전시 기획단계부터 사운드와 향을 더해, 공간 별로 다양한 사랑의 감정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요소를 배치했다”라고 설명했다.

▲Honeymoon road, Palermo, 2018 ⓒPaolo Reali
▲Honeymoon road, Palermo, 2018 ⓒPaolo Reali

사랑의 감정을 다양한 요소로 전달

1세대 순정만화 작가들의 작품을 디지털 작화, 애니메이션 작업으로 새롭게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만화가 가지고 있는 특성처럼 어렵지 않게 전시내용을 전달한다. ‘사랑’이라는 대중적 주제를 주요 소재로 가져가기에, 얼핏 전시가 겉핥기에서 끝날 것이라는 걱정도 있었다. 하지만, 전시는 특색 있는 공간 구성을 통해 ‘사랑’이라는 감정에 좀 더 깊이 빠져들 수 있는 포인트를 제안한다.

‘섹션1. 사랑인지도 모르고 서툴고 수줍었던 그 때’는 천계영 『언플러그드 보이』와 유쾌한 감성으로 풋풋한 시절을 기록하는 지미 마블(Jimmy Marble), 자유로운 포즈 빈티지한 색감을 담은 와이어보스키(Lukasz Wierzbowski)의 작품을 선보인다. 이 공간의 테마 색상은 노란색으로 소년소녀 시절, 사랑을 어렴풋하게만 느끼고 있던 때를 떠올리게 한다.

첫 번째 섹션에서 주목할 만한 공간은 전시장을 나누는 파티션에 마련된 작은 비밀통로다. 소년소녀들의 사랑이 담긴 작품을 보러 들어가는 통로 중에는 어린아이의 키를 가졌으면 수월하게 통과할 수 있고, 성인이라면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몸을 굽혀야만 통과할 수 있는 낮은 높이의 통로가 마련돼 있다. 이 통로 이외에도 파티션을 돌아서 전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길은 있다. 허리를 숙여서 다음 공간으로 넘어가면 전시장을 가득 채운 유년 시절의 기록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섹션1 공간, 작은 비밀통로로 다음 전시공간으로 넘어갈 수 있다 (사진=디뮤지엄 제공)
▲섹션1 공간, 작은 비밀통로로 다음 전시공간으로 넘어갈 수 있다 (사진=디뮤지엄 제공)

어린 아이들이 노는 모습, 소녀들이 고개를 맞댄 모습, 사회적 시선을 모르는 듯한 자유분방한 소년과 소녀의 몸짓은 관람객을 그 시절 우리들의 사랑과 감정으로 이끈다. 또한, 이 공간에선 사랑과 우정의 묘한 경계선을 다룬 사진 작품들도 발견할 수 있다. 사회적 시선으로 정제되기 이전, 자연스러운 사랑의 형태를 만나볼 수 있다. 김 큐레이터는 “전시에 단순히 남녀에 국한된 사랑이 아닌, 폭넓은 의미에서의 ‘사랑’을 다루는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최대한 중립적이고 넓은 범주의 사랑을 담고자했다”라고 기획 방향을 설명했다.

이후 이어지는 ‘섹션2. 언젠가는 바라봐 주기를 간절히 바라던 그 밤’은 파란색, 보라색 등을 테마 컬러로 사용하며 좀 더 성숙한 사랑을 선보인다. 첫 번째 공간에서 두 번째 공간으로 이어지는 통로는 검은색 벽으로 만들어진 복도다. 따뜻한 노란색 이후, 이어지는 공간의 전환은 관람객에게 순식간에 감정의 변화를 이끌어낸다. 그리고 검은 복도 끝에서 보이는 이은혜 『블루』와 뉴미디어 아트 그룹 아이엠파인의 영상 작업은 관람객을 서정의 세계로 몰입하게 만든다. 파란색이 전달하는 청아함과 슬픔의 단면은, 복합적으로 보는 이의 감성을 건드린다. 깊은 밤,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하는 시간과 사랑의 순간을 오묘하게 섞어낸 작품이었다.

▲섹션2,
▲섹션2,  이은혜 『블루』와 뉴미디어 아트 그룹 아이엠파인 영상 작업 ⓒ서울문화투데이

사랑의 시린 면을 표현하는 두 번째 공간은 몽환적인 색조로 평범한 순간을 초현실적으로 담아내는 트리스탄 홀링스워스(Tristan Hollingsworth), 깊은 고독 속에서 스스로를 치유해 나가는 마가렛 더로우(Margaret Durow)의 사진 작업을 선보이며 감정에 더욱 깊이 있게 빠져드는 순간을 제안한다. 천장부터 바닥까지 한쪽 벽면을 모두 사용해 설치된 트리스탄 홀링스워스 사진 작품과 대형 스크린을 통해 선보여지는 아이엠파인의 영상 작업에선 확장된 공간의 면면을 느껴 볼 수 있다.

이외에도 청춘의 자유분방하고 무절제한 사랑을 표현한 공간에선 붉은색, 자주색을 사용해 '순간의 열정'을 담아냈고, 연인 간의 은밀한 사랑의 순간과 경계를 넘어서는 때를 담은 공간은 암막의 공간으로 구성해 전시의 의미를 다층적으로 전달했다. 특히, 이빈 작가의 작품과 “즐기며 살고, 열렬히 사랑하라(Live fast, love hard)”라는 모토로 청춘을 기록한 테오 고슬린(Theo Gosselin)의 작품이 전시된 공간에는 거울 벽면이 마련돼 있다. 매번 부서지고, 자신을 다시 정립하는 청춘의 순간을 담아내며 관람객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는지 물어본다.

▲섹션2, 트리스탄 홀링스워스 작품 ⓒ서울문화투데이

사랑-헤어짐-혼자로 이어지는 사랑의 심연, 갑작스러운 경향 있어

전시는 2개의 층을 사용한다. 2층 공간에서 시작돼 3층 전시장까지 이어지는 전시는, 깊이 있는 사랑으로 나아간다. “사랑은 잃고 나는 쓰네”로 시작되는 기형도 시인의 <빈집>은 사랑이 사라진 자리에 대해 솔직하게 풀어낸다. 이 시는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로 끝이 난다. 사랑의 시작, 순간, 과정을 보여줬던 전시는 3층에서 ‘사랑의 끝’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섹션4. 애타게 다시 만난 그날’은 이미라 『인어공주를 위하여』의 작품과 함께 테오 고슬린(Theo Gosselin)과 그의 연인이자 사진 작가인 모드 샬라드(Maud Chalard)의 작품, 한지를 주재료로 오브제를 만들어 공간 설치 작업을 선보이고 있는 양지윤 작가의 작품을 선보인다. 네 번째 공간은 유리창이 바로 인접한 공간이고 작품들이 높은 천장에 매달린 형태로 설치돼 있어, 더욱 몽환적인 순간을 제공한다. 잡힐 것 같지만 잡히지 않는 사랑의 매 순간을 다층적으로 표현해낸 것이 주목할 만한 지점이다.

▲Untitled, Paris, 2020 ⓒTheo Gosselin
▲Untitled, Paris, 2020 ⓒTheo Gosselin

이후, 전시는 사랑의 순간순간을 아름답고 보드랍게 표현한다. 그런데, 마지막 공간인 ‘섹션7.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는 지금 이순간’에 이르러선 ‘사랑의 끝’에 대해서 얘기한다. 검붉은 색을 사용한 이 공간에선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 온 만화가 신일숙의 대표작 『아르미안의 네 딸들』과 연극적인 미장센에 내면의 감정을 담는 델피 카르모나(Delfi Carmona)의 작품으로 사랑이 떠나간 이후를 짚는다. 이 공간에선 “우린 같이 있으면서도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했지”, “둘이 이야기가 끝나는 곳에 그 찬란한 시작이 있다고”와 같은 문구를 전시하며 사랑이 떠난 이후 감정을 짚는다.

전시 마지막은 신일숙 『아르미안의 네 딸들』의 주인공 레 마누의 당당한 뒷모습이 담긴 영상 작품이 대미를 장식한다. 거대한 스크린 속 담긴 레 마누의 모습과 전시장 양측 벽면에 쓰인 “당당하고 품위 있는 사자가 되어라. 내 운명을 조종하는 것은 나…”, “인생은 언제나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그 의미를 갖는다”라는 만화 속 대사는 사랑 이후 ‘혼자’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앞선 6개의 전시 공간에서 사랑의 다양한 면과, 소년시절과 청춘을 아우르는 사랑의 순간을 보여주고, 갑작스레 이별과 혼자가 된 나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는 일곱 번째 섹션은 조금 갑작스러운 느낌을 준다. 세상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사랑의 매순간을 짚어본 전시가 결연하게 혼자가 되겠다는 주인공의 서사로 끝맺어진다는 것이 약간의 아쉬움으로 남는다. 앞선 6개의 공간에서 세밀하게 쌓아온 사랑의 다양한 빛깔이, 갑자기 인생에 그다지 쓸모 없는 것으로 느껴지는 마무리로도 보였다.

▲섹션7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는 지금 이순간' 전시 공간, 혼자가 된 나를 표현한다 (사진=디뮤지엄 제공)
▲섹션7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는 지금 이순간' 전시 공간, 혼자가 된 나를 표현한다 (사진=디뮤지엄 제공)

특별히 마지막 공간을 ‘있는 그대로의 나’로 구성한 이유가 있는지에 대해 질문했다. 이에 김 큐레이터는 “전시는 계속해서 타자와 관계하는 사랑의 형태를 담고 있다가, 마지막 섹션에서 혼자가 된다. 둘이었다가 혼자가 되고, 다시 둘이 되는 그 수 없는 과정 속에는 유기적으로 나 자신이 계속 존재한다”라며 “혼자가 되는 순간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 보다는, 우리 모두가 이 과정 속에 있고, 그 과정 또한 모두 사랑하는 순간이라는 것. 이것을 관객들과 나누고 싶었다”라며 사랑의 모든 과정을 표현하는 전시 방향에 대해 설명했다.

디뮤지엄은 이번 전시 기획에 있어 출판사 민음사와 협력해 소설과 시에 등장하는 글귀들을 전시장 밖 이동 공간 곳곳에 배치했다. 전시장을 나와서도 전시에 대한 여운이 이어질 수 있게 한다.

성수동 서울숲에서 새로운 공간을 선보이면서 첫 기획전으로 선보인 디뮤지엄의 이번 전시는, 디뮤지엄의 주 관람객 층인 2030청춘 세대를 겨냥한 전시로 느껴진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주제가 모든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소재이고, 1세대 순정만화 작가들의 작품이 참여한 전시이기에 좀 더 폭넓은 관객층에게 다가갈 수 있을 것으로도 보인다.

▲섹션4 공간, 양지윤 설치 작품 ⓒ서울문화투데이
▲섹션4 공간, 양지윤 설치 작품 ⓒ서울문화투데이

이번 전시 《어쨌든, 사랑》의 모든 공간에서 촬영이 가능하다. 공간별 특색 있는 분위기가 인증샷을 남길 수 있는 핫플레이스로 주목받을 듯하다. 전시는 보편적인 주제로 트렌디한 분위기를 조성해 성공적으로 감각적인 공간을 구현해냈다. 자칫 감성적인 공간을 조성하느라, 전시의 핵심이 전해지지지 않는 경우도 존재하는데 디뮤지엄의 기획전 《어쨌든, 사랑》은 주제와 대중성을 잘 아우르고 있다. 항상 가깝게 존재하는 감정이기에 그 가치를 잊고 있었던 ‘사랑’에 대해 다층적으로 접근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전시는 매주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전11시부터 오후 8시까지 운영된다. 관람요금은 성인 18,000원, 청소년(14-19세) 9,000원, 유아 및 어린이(36개월-13세) 6,000원이다. 전시 관련 자세한 정보는 디뮤지엄 공식홈페이지(https://daelimmuseum.org)에서 찾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