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뷰] SeMA, 권진규 작품 세계 망라하는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노실의 천사》展
[현장리뷰] SeMA, 권진규 작품 세계 망라하는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노실의 천사》展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2.03.24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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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4~5.22, 서울시립서소문본관
㈔권진규기념사업회·유족 기증 작품 포함, 180여점 전시
연대적으로 작품 공개, 권진규 작품관 전체적 조망
권진규 첫 개인전, 아틀리에 모티프 전시장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단단하고 강건한 인체의 선과 부드러운 얼굴의 곡선을 어루만지며,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간 조각가 권진규 기념전이 열린다.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개최되는 서울시립미술관(관장 백지숙)의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노실의 천사》전이다. 전시는 서소문본관에서 24일 시작해 5월 22일까지 총 60일간 열린다.

▲기사, 1953년경, 안산암, 65×64×31cm, 권경숙 기증,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사진=서울시립미술관 제공)
▲기사, 1953년경, 안산암, 65×64×31cm, 권경숙 기증,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사진=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이번 전시는 권진규 탄생 100주년과 지난해 ㈔권진규기념사업회 및 유족의 대량의 작품 기증(141점)의 뜻을 기리고자 마련됐다. 또한, 한국과 일본 조각사에 있어 중요하게 평가되는 권진규의 작품세계를 좀 더 깊이 있게 다뤄본다는 의미도 담겨있다.

지난 23일 열린 언론공개회에서 전시기획을 맡은 한희진 학예연구사는 “권진규 작가와 그의 작품은 상대적으로 연구가 많이 진행되지 않았다”라며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했던 권진규 전시와 연구가 이번 전시에 많은 도움이 됐고, 서울시립미술관의 이번 전시 역시 연구자와 미술애호가들에게 연구를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전시는 권진규의 1950년대 작품부터 1970년대 작품까지 아우르며, 그의 작품을 연대기 적으로 관람할 수 있게 한다. 이번에 기증받은 작품에선 권진규의 부조 작품과 드로잉이 상당수 포함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SeMA는 권진규의 조각 및 드로잉, 아카이브 자료 등 170여 점을 공개한다.

올해 SeMA 전시 의제 시(詩)를 토대로 준비된 이번 권진규 개인전은 1972년 3월 3일 『조선일보』 연재 기사 「화가의 수상」⑧에 실린 권진규의 시, 「예술적藝術的 산보-노실爐室의 천사天使를 작업作業하며 읊는 봄, 봄」에서 기획이 시작됐다. 이 시는 권진규의 삶과 예술을 담아내고 있다. ‘노실’은 사전 상에는 없는 말이지만, 화로 로(爐)와 방 실(室)을 사용한 단어로, 가마가 있는 방이자 아틀리에라고 볼 수 있다. 즉, 전시 제목의 사용된 ‘노실의 천사’는 그가 작업으로 구현하고자 한 순수한 정신적 실체를 뜻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1970, 건칠, 130×120×31cm, (사)권진규기념사업회 소장
▲그리스도의 십자가, 1970, 건칠, 130×120×31cm, (사)권진규기념사업회 소장 ⓒ서울문화투데이

권진규는 흔히 리얼리즘 조각가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가 작품에서 추구하고자 한 것은 영혼과 영원성이었다. 또한, 불교적 종교관이 작품 면면에 녹아들어가 있다. 구상과 추상, 고대와 현대, 동양과 서양, 여성과 남성, 현세와 내세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종래에는 이를 모두 무화(無化)하는 작품이 그의 지향점이었다.

한 학예사는 “권진규 작품이 ‘구상’이기 때문에 한국 화단에서 인정을 못 받아, 좌절감으로 이어졌고 그 과정이 그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데에 영향을 끼쳤다는 이야기가 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느낀 바로는 권진규는 일본과 한국 화단에서 인정받았으나, 그 인정이 대중적인 관심으로까지 이어지지 못한 것이 정확한 설명이라고 본다”라며 “작품이 팔리지 않고, 생활고에 시달리고, 자신이 원하는 일이 쉽게 열리지 않아 어려움을 겪은 것 같다”라고 권진규에 대한 설명을 전했다.

권진규는 유복한 과정에서 태어났지만, 자신이 추구하는 고독한 예술 세계로 들어가 스스로의 작품 세계를 순수하고 집요하게 다듬어간 작가였다. 세상을 떠나기 전 불교에 침잠했던 그는 작업을 할 때엔 예술로 수행을 행했다. 이번 전시는 그의 작품을 연대기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과정을 면밀하게 느껴볼 수 있고, 끝에서는 그의 후기 작품을 통해 권진규가 궁극적으로 추구한 정신이 무엇인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전시는 총 3개의 주제로 구성됐다. 1947년부터 1958년까지 작품을 전시하는 ‘입산(入山)’, 1959년부터 1968년까지 작품을 선보이는 ‘수행(修行)’, 1969년부터 1973년 작품이 포함된 ‘피안(彼岸)’ 순으로 이어진다.

입산, 1964–65년경, 나무, 109×93×23cm,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기증,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입산, 1964–65년경, 나무, 109×93×23cm,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기증,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사진=서울시립미술관 제공)

권진규 아틀리에를 전시장으로 가져오다

SeMA 서소문본관 1층 전시실을 사용하는 이번 전시는 권진규의 아틀리에와 그의 첫 개인전이 공간 기획의 모티프가 됐다. 전시에 사용되는 좌대는 삼공블럭(구멍이 세 개 뚫린 시멘트 벽돌)으로 조성돼 있다. 이는 1965년 신문회관에서 개최된 《권진규 조각전》에서 사용했던 방식을 재현한 것이다.

전시장 중앙부에는 원형의 전시대가 놓여있는데, 권진규 아틀리에에 있던 우물을 형상화한 것이다. 테라코타 작품을 주로 한 권진규에게 물은 필수적인 요소였다. 사각 테두리 형태의 공간을 전시장에 구현해 ‘가마’의 느낌과 그 안에 작품을 배치함으로써 가마 안에서 완성됐던 권진규의 세계를 보여주는 기획도 선보인다. SeMA의 올해 기관 의제인 ‘제작’의 시각으로 권진규의 시간을 들여다보고, 그 공간을 전시장에 구현함으로써 마치 권진규 아틀리에에 들어와 있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권진규에게 있어 아틀리에는 자신이 추구하는 영원성과 내면, 무형의 언어를 제작하던 공간이었다. 세속을 떠나 이상을 추구하는 과정의 중간지대였다고 볼 수 있다. 권진규의 작품이 놓여있던 전시장과 아틀리에를 구현함으로써, 전시는 관람객 또한 현세와 이상의 중간 지대로 진입하는 순간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언론공개회에 참석한 백지숙 관장은 “권진규의 작품을 최대한 많이 보여주면서, 그의 작품이 가진 의미를 현대화해 당대적 의미를 획득할 수 있는 순간을 만들고자 했다”라며 “그의 제작공간과 제작과정을 전달하면서 그가 추구했던 재료와 그가 바라본 시각이 오늘의 감각과 이어지길 바란다”라며 전시의 의미를 전했다.

▲우물을 형상화한 전시장 전경
▲우물을 형상화한 전시장 전경 ⓒ서울문화투데이

마치 작가 아틀리에에 초대된 것 같은 느낌의 전시장 속에서 관람객들은 권진규 작품에 녹아있는 무경계성과 영원성 같은 이상(理想)의 표현들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전시에 공개된 유족 인터뷰 영상에서 권진규 작가의 조카 허명회 고려대 명예교수는 “외삼촌은 모델의 외면을 중시하기보다, 모델 내면의 기운을 끌어내 작품에 담고, 모델도 내면의 힘이 있는 사람을 찾았던 것 같다”라는 말을 한다. 유 학예사는 “여성, 남성을 넘나들고 구상과 추상, 동양과 서양을 넘나들었던 그의 작품은 가름이 분명해야했던 당대에 쉽게 이해되기 어려운 작품이었을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권진규가 작품을 선보였던 시대에서 50여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의 작품은 현재에 어떤 의미로 다가올 수 있을까. 195,60년대보다 지금 사회가 좀 더 그 경계가 흐려진 때라고 느낀다. 그럼에도 현 사회에도 여전히 분명한 경계는 존재하고 있다. 권진규의 작품은 50여년 후 이제 지금의 경계를 흔들며 발화(發話)를 시작했다.

전시 기간 중 연계프로그램으로 시민문화유산 ‘권진규 아틀리에’ 특별 개방이 진행된다. 전시간 중 매주 토요일 13시부터 18시까지 개방하며, 미술관에서 13시와 14시에 셔틀버스를 운행할 예정이다. 전시장 속에서 만난 그의 내면과 작품관이 실제 표현된 공간을 방문하며, 관람객들은 권진규의 작품 세계를 보다 깊이 있게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지난 23일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노실의 천사》 언론공개회 현장 ⓒ서울문화투데이

여성상, 동물상…본질성·영원성을 담다

권진규는 모델을 두고 작업을 하는 조각가였다. 자신이 키우던 고양이나 동네에서 볼 수 있었던 새들 또한, 그의 모델이 됐다. 권진규의 특징적인 작품이라고 볼 수 있는 ‘여성 흉상’ 역시 그가 여성 모델을 많이 접할 수 있었던 상황에서 시작됐다.

신문회관 개인전 이후 권진규 작업에 감명을 받은 이화여대 재학생 이선자는 권진규의 제자로 들어오게 된다. 권진규는 이선자를 가르치면서, 그를 모델로 한 자소상을 많이 제작했다. 전시의 두 번째 섹션 ‘수행’에 전시된 작품명을 보면 <선자>라는 동명의 작품들이 많이 등장한다. 작가는 제자 이선자의 친구들을 모델로 한 작품도 제작했다. 또 개인전에서 알게 된 유준상을 통해 서라벌 예대 학생들을 소개받고, 강사생활을 하며 알게 된 홍익대 학생들도 모델로 자주 만났다. 이때부터 권진규는 여성 두상, 흉상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의 여성 두상, 흉상 작업은 각기 다른 모델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얼굴과 시선은 정면을 바라보고, 얼굴 아래는 가감하게 생략돼 있다. 이 시기의 작품 중 홍익대 서양화과 장지원을 모델로 한 <지원의 얼굴>은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사각형의 공간 속 배치돼 있는 <지원의 얼굴>이 가진 힘은 어마어마하다. 긴 목을 앞으로 살짝 빼 시선을 위로 두고 있는 작품은 얼굴 안에서 또렷하고 분명한 기백이 전해진다.

▲지원의 얼굴, 1967, 50×32×23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사진=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지원의 얼굴, 1967, 50×32×23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사진=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지원의 얼굴> 맞은편에는 남성 흉상인 <곤스케>가 전시돼 있는데, 여성과 남성 흉상이 거리를 두고 일직선으로 배치된 전시는 관람의 재미를 더한다. 두 작품이 품어내는 다른 결의 기운과 작품표면의 다른 질감을 비교해서 관람하면 권진규의 표현법을  깊이있게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여성 흉상 이외에 작은 크기의 여성 전신상에서도 권진규 작품의 매력을 느껴볼 수 있다. ‘입산’에서 ‘수행’까지 이어지는 권진규의 여성 전신상을 보면, 여성의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인체의 힘을 느껴볼 수 있다. ‘입산’ 전시공간에 쓰인 전시 설명에 따르면 권진규는 여성을 대상화하기보다는 보다 강건한 여성상을 보여주는 데에 집중했다고 한다.

여성 전신상이 전시된 공간에는 추상적 형태로 표현한 <태>(아이 밸 태胎로 추측해볼 수 있다)와 <잉태한 비너스>의 작품도 함께 전시돼 있는데, 이 작품들은 여성의 몸이라기보다 생(生)의 모습을 더욱 담고 있는 듯하다. 또한, 여성 전신상은 정말 다양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데, 그것이 하나의 인간의 움직임으로 느껴진다는 것이 흥미로운 지점으로 느껴졌다. 여성과 남성의 신체성을 외적으로 지니고 있지만, 남성과 여성의 구분을 무의미하게 하며 이를 통해 본질성을 표현했다.

▲‘수행(修行)’ 섹션에 전시된 다양한 여성 흉상 ⓒ서울문화투데이

한 학예사는 “권진규는 작업을 시작할 때 대상을 오랫동안 관찰해, 대상의 본질성과 영원성을 작품 안에 표현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라며 “사실 권진규에게 기물이나 사람이나 동물이 큰 차이가 없었던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권진규는 여성, 남성상을 제작하면서 동시에 동물상도 많이 제작했다.

권진규는 동서양 고대 미술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과거부터 인간과 관계를 맺어 온 동물을 작업대상으로 삼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권진규는 특히 말을 많이 제작했는데, 권진규의 말 작품에는 말이 가진 힘과 근육을 느껴볼 수 있다. 인간의 신체를 표현하면서 동물의 선까지 더듬어간 그의 작업과정이 매력적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그룹BTS 멤버 RM이 소장하고 있는 ‘말’ 작품이 공개돼 주목을 받기도 했다.

▲여성좌상, 연도미상, 테라코타, 개인소장 ⓒ서울문화투데이
▲여성좌상, 연도미상, 테라코타, 개인소장 ⓒ서울문화투데이

<가사를 걸친 자소상>, 권진규의 지향점

백 관장은 권진규에 대해 ‘어떤 사조나 분위기에도 휩쓸리지 않고 확고하게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한 예술가’라고 표현했다. 1950년부터 시작된 그의 작품은 꾸준하게 권진규의 세계를 담고 있다. 조각 작업에서는 새로운 제작기법인 ‘건칠’을 도입하면서, 건칠 특유의 거칠거칠한 표면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사회적 평가는 냉담했고 연이어 해외전시, 동상제작 일들이 무산되며 그는 좌절에 빠진다. 그리고, 1973년 고려대학교 박물관에서 소장한 자신의 작품을 보고 아뜰리에로 돌아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권진규의 1970년대 작업은 삼베에 옻칠을 하는 건칠 기법과 때에 따라 작품 표면에 모래를 덧입히는 기법을 통해 거칠거칠한 표면을 구현한다. 그런 표면의 질감은 작품에 담긴 깊은 감정의 응어리가 묵직하게 전달한다. 그의 후반 작업인 <가사를 걸친 자소상>은 자신을 승려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긴 목을 지니고 두 눈이 위를 향하고 있는 작품은 그가 계속 표현해왔던 감정의 응어리가 모두 사라진 상태로도 보인다.

한 학예사는 “불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는 용납되지 않지만, 종교를 떠나 이 작품을 마주했을 때 생의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한 그의 의지가 느껴졌다”라며 <가사를 걸친 자소상>을 전시 가장 마지막 작품으로 배치한 이유를 밝혔다.

▲자소상, 1969-70, 테라코타, 49×23×30cm,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서울문화투데이
▲자소상, 1969-70, 테라코타, 49×23×30cm,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서울문화투데이

권진규에게 씌워진 이미지는 고독한 천재, 당대의 인정을 받지 못한 예술가라는 이미지가 있다. 하지만, 그 이미지들을 다시금 열어보면, 올곧게 자신의 작품 세계를 펼쳐온 예술가이자 가치있는 작품을 일궈온 작가로 볼 수 있다. 연대기적으로 구성된 전시는 그의 작품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 하며, 권진규가 끝내 무엇으로 도달하고자 했는 지 느껴볼 수 있는 전시다.

작품에서 나아가 권진규의 글과 그의 책, 드로잉을 통해 그가 추구했던 세계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창구를 다양하게 제공한다. 불어, 영어, 일본어, 한자, 한국어가 모두 섞인 권진규 기록을 번역해 전시장에 공개한 것도 주목할 만 한 지점이다.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 전시를 끝내고, 7월부터 10월까지는 광주 순회전을 개최한다. 그리고 서울시립 2023년 남서울미술관을 권진규 상설전시관으로 조성해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탄생 100주년을 맞은 권진규의 작품과 그의 시각이 지금 이 시대에 다시금 살아 숨 쉴 수 있는 시작으로 전시가 작용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