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토슈즈를 신은 춘향, 날아오르다”…유니버설발레단 <춘향>
[공연리뷰]“토슈즈를 신은 춘향, 날아오르다”…유니버설발레단 <춘향>
  • 진보연 기자
  • 승인 2022.04.12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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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8~20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발레로 전한 고전 ‘춘향’

영화나 드라마의 단골 소재인 ‘춘향전’을 서양의 발레에 담아낸 유니버설발레단(UBC)의 <춘향>이 지난달 국립극장에서 관객들과 만났다. 그동안 다양한 장르의 무용 무대에 올랐던 만큼, 관객들은 새로운 모습의 ‘춘향’을 기다리며 극장을 찾았다. 

▲2022 발레 ‘춘향’(한상이 강민우) ⓒUniversal Ballet_Photo by Kyoungjin 8
▲2022 발레 ‘춘향’(한상이 강민우) ⓒUniversal Ballet_Photo by Kyoungjin 8

이 작품은 2007년 5월 고양아람누리에서 첫 선을 보였고, 2010년 재연됐다. 전 국립무용단 단장 배정혜가 연출을 맡았던 초연 버전은, 2001년 안무해 국립무용단의 레퍼토리가 된 ‘춤, 춘향’을 기본 틀로 하다 보니 UBC만의 개성이 약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후 UBC 창단 30주년이던 2014년 안무, 음악, 무대, 의상의 대대적인 개정 작업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지금의 ‘발레 춘향’을 선보이게 됐다. 

<춘향>은 원작에 집중해 스토리와 캐릭터를 변형 없이 담아내면서도, 원작과 배경지식이 없는 관객들이 봐도 충분히 즐길 수 있을만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작품은 춘향과 몽룡의 애틋한 사랑과 이별, 재회 이야기를 그대로 좇으면서도 발레 문법을 충실하게 지킨다. 때문에 토슈즈를 신은 춘향과 몽룡이가 2시간 동안 무대 위를 뛰어다니지만 어색하거나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강민우와 한상이는 올해 <춘향> 공연으로 성공적인 데뷔를 치뤘다. 강민우는 춘향에 빠져 공부는 뒷전으로 하다, 아버지의 명으로 과거시험길에 오르고, 변학도의 악행을 처단하는 과정에서 점차 성장하는 몽룡의 변화를 서사적으로 연기해 공감을 이끌어냈다. 또한, 자신에게 닥친 상황을 운명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저항하며 마침내 사랑을 쟁취하는 춘향의 올곧은 성품을 몸짓으로 담아낸 한상이의 표현력에 객석의 관객들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뛰어난 두 무용수의 역량을 최대치로 볼 수 있는 안무의 연속이었지만 그럼에도 아쉬운 점은, 춘향의 독무에 임팩트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몽룡의 일필휘지처럼 춘향의 캐릭터성이 드러나는 안무가 부재하다고 느껴졌다. 

▲2022 발레 ‘춘향’(한상이 강민우) ⓒUniversal Ballet_Photo by Kyoungjin 8
▲2022 발레 ‘춘향’(한상이 강민우) ⓒUniversal Ballet_Photo by Kyoungjin 8

<춘향>의 백미라 불리는 춘향과 몽룡의 세 가지 파드되 역시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1마겡서 혼인서약 후 첫날밤을 보내는 춘향과 몽룡의 ‘초야 파드되’는 사랑에 빠진 두 연인의 설렘과 긴장을 서정적으로 표현했다. 1막 후반부에 이어지는 안타까운 헤어짐의 슬픔을 담아낸 ‘이별 파드되’는 ‘초야 파드되’와 대조를 이루며 애절함을 더했다. 2막의 대미를 장식하는 ‘해후 파드되’의 격정적이고 드라마틱한 안무는 다소 단조로울 수 있는 무대를 가득 채웠다. 

군무의 화려함도 빠지지 않는다. 1막 후반부에 등장하는 이별 장면 속 장엄한 여성 군무와 2막 장원급제와 어사출두 장면에서 등장하는 역동적인 남성 군무가 강렬함을 남겼다. 

아울러, 향단(발레리나 오타 아리카)과 방자(임선우)의 움직임은 발레라는 장르의 특징을 살리는 감초 역할을 했다. 자칫 방정맞고 정신없다 느껴질 법한 향단과 방자가, 춘향과 몽룡의 곁에서 소리 대신 움직임으로 역할을 대신하니 캐릭터의 재미와 분위기가 살아났다. 

이정우 한복 디자이너가 제작한 의상은 ‘발레’라는 장르적 요소와, ‘춘향’이라는 한국적 소재를 동시에 만족시킨 일등공신이라 할 수 있다. 화사한 색감과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그대로 드러내는 소재로 동작에 풍성함을 더했다. 무용수들이 움직일 때마다 비단이 바람에 흩날리듯 가볍게 휘날렸다. 특히 1막 후반부에 등장하는 이별 장면 속 장엄하고 화려한 여성 군무에서, 무색의 바람이 손으로 만져질 듯 형상화 되는 모습은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를 이끌어냈다. 

다만, 극 내내 사용된 차이콥스키 음악의 활용 부분에 있어선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극 중 무용수들이 국악기를 활용한 안무를 하는 장면에서, 실제 국악적 요소가 가미된 음악적 편곡이 있었다면 ‘한국 발레’로서의 <춘향>이 더욱 돋보였으리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