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의 무용평론]KUM 무용단, 김운미의 은퇴공연- ‘그 길 위에 서다’
[이근수의 무용평론]KUM 무용단, 김운미의 은퇴공연- ‘그 길 위에 서다’
  • 이근수 무용평론가/경희대 명예교수
  • 승인 2022.04.13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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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미, 학문과 예술, 더블 타깃의 학구파
▲이근수 무용평론가/경희대 명예교수
▲이근수 무용평론가/경희대 명예교수

의과대학에 임상교수와 기초교수가 있듯이 무용과에는 실기교수와 이론교수가 있다. 실기교수가 이론을 가르치는 대학이 많은 것은 어쩔 수 없지만 학생들이 깊이 있는 이론교육을 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무용미학, 역사, 비평, 인문, 공연기획, 예술경영 등은 실기교수가 담당하기엔 버거운 과목들이기 때문이다.

실기와 이론을 겸비한 무용교수가 흔치 않은 상황에서 김운미(金雲美)는 특이한 존재다. 국가무형문화재 27호 승무이수자인 그가 30년간 한양대학 무용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KUM무용단을 창단하고 공연 창작을 게을리 하지 않은 것은 그의 실기교수적 면모다. 다른 한 편으로 그가 춤과 테크놀로지의 융복합 연구를 목적으로 대학 내 타 학과 교수들과 공동으로  ‘우리춤연구소’를 설립하고(2005) 한국 춤의 정량화작업을 계속해온 것은 이론가적 면모라고 볼 수 있다.

필자가 ‘누가 이들을 춤추게 하는가’(2010)를 출간하면서 김운미 교수를 <학문과 예술, 더블 타깃의 학구파>라고 지칭한 것은 이러한 배경 때문이었다. 올해로 그가 정년을 맞았다. KUM무용단의 2022년 정기공연으로 퇴임을 기념한 것이 <그 길 위에 서다>(2.6, 국립극장 해오름극장)공연이었다. 이날 발간된 ‘한국 춤, 60년의 궤적’이란 제목의 작품집엔 ‘인생은 춤이 되고 춤은 역사가 되다’란 부제가 붙어 있다. 

‘KUM’은 김운미(Kim Un Mi)의 이니셜과 일치한다. 1993년 창단된 김운미 무용단의 바뀐 이름이다. ‘KUM(쿰)’을 ‘꿈’으로 읽는다 해도 크게 틀린 것은 아니다. ‘꿈’을 소리 나는 대로 쓰면 ‘KUM’으로도 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22 KUM DANCE COMPANY 기획공연’이 '과거의 꿈'(1부, Dream of the Past), '우리의 꿈'(2부, Our Dream), '미래의 꿈'(3부, Dream of the Future)으로 기획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무용단의 발자취를 영상으로 보여준 ‘과거의 꿈’에는 ‘조선의 눈보라’, ‘1919’, ‘함’, ‘신화상생’을 비롯한 KUM무용단의 30년 역사가 영상으로 정리된다. ‘현재의 꿈’은 김운미 교수와 함께 김경숙, 박숙자, 태혜신, 이미희를 비롯한 13명의 기라성 같은 무용가들이 함께 무대에 선 ‘이매방류 승무’다. 출연자 모두가 하나같이 무용학박사들이다. 3부를 구성하는 ‘미래의 꿈’은 ‘걷다, 바라보다, 그리고 서다’의 3장으로 짜여있다. 

‘ㅅ’자 형 철제 사다리가 무대를 가로질러 한 곳에 멈춘다. 사다리 위에 올라선 여인이 처마 끝에 풍경(風磬)을 매달면 학교종이 치듯 풍경소리가 울리기 시작한다. 한 줄 두 줄 주렴처럼 내려진 마디마디에 매달려 있는 풍경들은 수많은 제자를 길러낸 교육자로서의 삶을 은유한다. 무리를 이루며 무대를 가로질러가는 여인들은 꿈을 찾아 무용과의 문을 두드린 학생들이다. 남녀의 듀엣이 펼쳐지고 듀엣은 자연스럽게 군무로 확장된다. 드넓은 대지 위에 길이 생기고 춤을 찾는 사람들이 그 길을 걷기 시작한다. 길을 인도하는 목탁소리가 들려온다. 길은 학교이고 길을 찾은 그들에게 춤은 꿈이다. 춤 길에서 사람들이 조우하고 그들의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각자의 머리마다에 나무 한 그루씩이 심겨진다. 심겨진 작은 나무에 물을 주면서 정성껏 가꿔 커다란 나무로 키워내고 이 나무들이 숲을 이루어내야 한다. 우뚝 선 나무에서 씨앗이 우수수 땅에 떨어지고 씨앗이 무수한 열매를 맺는다. 무대에 다시 등장한 철제 사다리 끝에서 춤이 펼쳐진다. 춤꾼들이 손을 맞잡고 몸과 몸을 연결하며 하늘을 우러러 손을 높이 뻗어 올린다. 

3부의 춤은 서연수가 안무를 맡았다. 은퇴공연무대에 김운미 본인의 작품이 아닌 제자의 작품을 올린 것도 예사롭지 않다. 서연수는 지제욱, 김신아, 장윤기, 안지형 등 김운미가 키워낸 재능 있는 제자 들 중 하나다. ‘모헤르(MUJER)무용단’을 창단한 후 ‘Red Symphony’, ‘집속의 집’, ‘하루’ 등을 안무했고 현재 KUM무용단 대표를 맡고 있다. 강렬하고 짙은 호소력을 지닌 춤사위를 통해 부드러움 속에 숨겨진 강한 내공이 느껴지는 춤을 춘다. 표정이 살아있는 무용수들이 무대를 꽉 채우며 전후좌우를 자유롭게 휘젓는데도 공간에 넉넉한 여백이 들어나는 것은 김운미의 무대를 그대로 닮았다.

김운미는 대전여중•고를 졸업한 희소가치의 무용가다. 어린 나이에 충청도 창작무용의 대모 격인 어머니(이미라)로부터 춤을 전수받은 모녀전승(母女傳承)의 표본이다. ‘강인한 겨레의 힘(1919)’ ‘여성이여 깨어나라(함)’ ‘너와 나의 상생(신화상생)’은 김운미 춤이 지난 30년간 일관되게 추구해온 핵심 주제를 춤으로 표현한 대표작들이다. 이러한 중심가치가 ‘KUM무용단’에 대한 사제전승(師弟傳承)을 통해 이어지고 확장되어가기를 바라는 것은 김운미의 꿈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