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근의 얼씨구 한국음악과 문화]국가를 이끌어가고자 하는 위정자 들이 반드시 새겨야 할 ‘사무사(思無邪)’
[주재근의 얼씨구 한국음악과 문화]국가를 이끌어가고자 하는 위정자 들이 반드시 새겨야 할 ‘사무사(思無邪)’
  • 주재근 한양대학교 겸임교수
  • 승인 2022.04.13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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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고 연주하며, 사악한 마음 누르고 없애고자 한 선비 문화품격 전통 이어져야
▲주재근 한양대 겸임교수
▲주재근 한양대학교 겸임교수

1572년 임진왜란 이후 선비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있는 악보가 있다. 『양금신보(梁琴新譜)』라고 하는 악보이다. 이 악보는 전라도 남원에 피란왔던 궁중악인 양덕수(梁德壽)가 그 당시 임실 현감으로 있었던 김두남(金斗南)의 도움으로 악보를 만들어 1610년 출간한 것이다.

양덕수의 성을 따고, 새로운 거문고 악보라는 의미에서 ‘양금신보(梁琴新譜)’라 하였다. 요즈음으로 이야기하면 임실 군수가 거문고 악인의 재능을 보고 손수 경비를 지원해 악보를 출간해 준 것이다. 양금신보에는 거문고의 모양을 비롯해 조율법, 왼손·오른손 주법 등이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고, 당시 유행하였던 만대엽(慢大葉), 중대엽(中大葉), 북전(北殿), 감군은(感君恩), 조음(調音)등이 실려있다.

양금신보에 실린 ‘중대엽’ 음악의 가사(‘오ᄂᆞ리 오ᄂᆞ리쇼셔 ~’)는 2003년 한류 드라마 붐을 일으켰던 ‘대장금(大長今)’의 주제가인 ‘오나라’의 모티브로 활용되었다. 

지금까지 현존하고 있는 조선시대 고악보는 약 130여종이 있다. 대부분의 고악보가 유일본 1권만이 전해지고 있는 반면, 양금신보는 지금까지 전국 각지에서 여러 필사본이 발견되고 있다. 양금신보가 다른 고악보에 비해 인기있는 비결이 무엇일까?

아마도 다른 악보에 없는 이 말이 실려있기 때문으로 본다. 악보 머리말에 ‘거문고라 하는 것은 금지하는 것이다.(琴者禁也 금자금야) 바른  음에서 사특한 것을 금지하는 것이다.(禁止於邪而正人心也 금지어사이정인심야)’라는 글귀가 씌여 있다. 이 멋진 말이 선비들이 양성정(養性情)하는데 무엇보다 매력을 끈 것이다. 선비들은 나라의 리더가 되기 전에 자기의 몸과 마음을 바르게 가지는 것을 먼저라 보았다. 마음을 바르게 가지는 수단으로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거문고를 연주하며 마음에서 일어나는 사악한 마음을 누르고 없애고자 한 것이다.

서양의 오래된 바이올린이나 첼로 겉면에는 아무런 글귀를 새겨놓지 않고 있는 반면 조선조 선비들의 거문고에는 평소 추구하는 격언을 새겨 두었다. 조선조 거문고 가운데 유일하게 국가보물로 지정이 되어 있는 탁영금(濯纓琴, 1464~1498)이 있다.  탁영금은 조선조 초기 학자인 탁영 김일손(金馹孫)이 사용하던 거문고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거문고이다. ‘탁영(濯纓)’이라는 말은 중국 <楚辭(초사)>의 漁父辭(어부사)에서 따온 것이다.  

“창랑의 물이 맑거든 내 갓끈을 씻고(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창랑지수청혜가이탁오영) 창랑의 물이 흐리거든 내 발을 씻으리라(滄浪之水濁兮可以濯吾足 창랑지수탁혜가이탁오족)” 

김일손의 기개가 느껴지는 이 문구에서 자신의 거문고에 탁영금(濯纓琴)이라는 세글자를 새겨 놓고 마음 수양을 한 것이다.  조선조 선비들의 우상이라 할 수 있는 공자의 『논어(論語)』 <위정편(爲政編)>에 “시경(時經)의 시 삼백편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생각에 사특함이 없다고 하겠다(子曰 詩三百 一言以蔽之 曰思無思 자왈 시삼백 일언이폐지 왈사무사)”라는 말이 있다. 인간의 다양한 감정들을 노래한 가사들을 음미하며 사악함을 극도로 자제해야 한다는 지침을 이후 선비들에게 준 것이다. 

오는 5월이면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다. 문화체육관광부를 비롯하여 정부 부처들의 장관과 공공 기관장들이 새롭게 임명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 과오 중 하나가 적절한 인사를 하지 못한 것이다. 옛 선비들이 관직에 나아감에 있어서 자신의 사악함을 극도로 경계하고자 좋은 음악과 시들을 통해 수양을 게을리 하지 않음을 보아야 한다. 그리고 자리가 아니면, 때가 아니면 떠밀어도 나아가지 않았음도 새겨야 한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권력 쟁취를 위해 처절함과 추악함을 모두 보았다. 승자는 통합의 정치를 하겠다고 공언하였다. 정치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고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위정(爲政)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이 먼저 바로 서야 할 것이다. 오는 6월1일 전국 229명의 지자체장과 기초의원을 뽑게 된다. 이 수많은 리더가 되고자 하는 후보들 중에 ‘사무사(思無邪)’를 마음에 새기고 나오는 후보가 한명이라도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