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훈의 클래식 산책]삶의 찬가, 말러 <아다지에토>Ⅱ
[이채훈의 클래식 산책]삶의 찬가, 말러 <아다지에토>Ⅱ
  • 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 / 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전문 객원기자
  • 승인 2022.04.13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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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에 이어)

▲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전문 객원기자/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전 MBC 음악PD
▲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전문 객원기자/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전 MBC 음악PD

이제 구스타프 말러(1860~1911)의 교향곡, 그 거대한 세계로 한 걸음 들어가 보자. 클래식 초심자에게 말러를 권하기는 쉽지 않다. 지레 클래식에 겁먹고 도망가게 만들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말러의 교향곡은 연주 시간이 길고 강약의 폭이 크다. 그의 교향곡은 포르티시모에서 베토벤 교향곡의 세 배에 달하는 음량을 발산하지만, 솔로 악기가 실내악처럼 섬세한 앙상블을 이루기도 한다. 말러는 교향곡에 자기의 모든 경험을 녹여 넣었다. “교향곡은 세계와 같아야 합니다. 모든 것을 포용해야 합니다.” 그의 교향곡은 낭만시대 예술가들이 추구한 아름다움의 극치에 이르렀고, 그의 교향곡에 각인된 사랑과 죽음의 상념은 세기말 유럽의 정신을 상징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말러의 제자였던 대지휘자 브루노 발터는 그의 교향곡을 “가슴 에이는 사랑과 죽음의 교향곡”이라고 불렀다. 낭만 음악의 표현력의 극한에 도달한 그의 교향곡은 ‘궁극의 교향곡’이라 불릴 만하다.    

<아다지에토>는 원래 교향곡 5번 C#단조의 네 번째 악장이다. 이 교향곡은 초겨울의 얼어붙은 햇살이자 성숙한 인간이 느끼는 우수다. 그 싸늘한 오후의 햇살은 얼마나 매혹적인가! 고통스런 몸부림 끝에 솟구쳐 올라 삶을 긍정하는 금관의 포효는 얼마나 씩씩하고 찬란한가! “나의 교향곡은 내 삶의 모든 것을 표현한다. 내 교향곡에는 나의 경험, 나의 고통, 나의 존재, 나의 모든 인생관이 들어 있다. 나의 불안, 나의 공포….” 웅대한 자연시에서 질풍노도의 피날레로 이어지는 1번 <거인>, 삶과 죽음의 고통스런 변증법인 2번 <부활>, 무한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절대자와의 교감을 발견하는 3번, 어린이가 보는 천국의 행복을 노래하는 4번…. 앞의 네 곡은 분명 젊은이의 음악이다. 극단적인 고뇌와 환희를 오가며 삶의 의미를 캐묻는 것은 전형적인 젊은이의 모습 아닌가.

하지만 5번에서 말러는 더 이상 방황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고뇌는 이미 확인된 고뇌이고, 환희 또한 이미 확인된 환희다. 이것은 성숙한 인간의 음악이다. 모든 정서는 단단히 압축되고 정제된 형태로 표현된다. 앞의 작품들에서 말러는 표현을 극대화하기 위해 성악을 쓰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곡에서 그는 오직 기악만으로 새로운 세계를 구축했다. 5번은 그의 예술 한복판에 우뚝 서 있는 그의 자화상이다. 

말러는 설명했다. “이 교향곡은 거칠고 열정적이며, 엄숙하고 비극적이며, 인간의 모든 감정이 담겨 있다. 하지만 이 곡은 단지 음악일 뿐이다. 여기에는 어떠한 형이상학적 질문의 여지도 남아 있지 않다.” 말러가 이 곡을 쓴 1901년은 그의 생애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였다. 빈 국립가극장의 음악감독으로 4년째 일하며 지휘자로 확고한 명성을 얻었다. ‘괴짜’, ‘이방인’이란 편견을 너머 작곡가로도 인정받게 됐다. 무엇보다 22살의 아름다운 알마 신틀러와 사랑하는 사이가 됐다. 하지만 이 곡은 인간이 피해 갈 수 없는 비극적 운명의 얼굴이다. 22살 알마와 그 무게를 함께 나눌 수 없었던 말러의 거대한 내면, 그 고독한 세계다. 

1악장 ‘장송행진곡, 침착한 걸음으로’, 가장 행복한 시기에 쓴 교향곡이 장송행진곡으로 시작하다니, 과연 아이러니의 천재인 말러답다. 트럼펫 솔로가 연주하는 첫 주제는 멘델스존 <결혼행진곡> 주제를 비틀어 놓은 것 같다. 이어지는 오케스트라의 절규는 머리카락이 쭈뼛 일어설 정도로 강렬하다. 장송곡의 처절한 리듬과 사나운 절망의 패시지가 교차한다. 마지막 부분, 행진곡 주제를 플루트가 연주하는 대목(링크 13:18)은 귀기가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