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I미술관, 기물파손죄 아닌 《김을파손죄》展
OCI미술관, 기물파손죄 아닌 《김을파손죄》展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2.04.19 16: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을 초대전, 오는 6월4일까지
굳은 틀을 깨는 김을의 드로잉, 설치작 선봬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3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치고, OCI미술관(관장 이지현) 1, 2, 3층 전관을 사용하는 김을 작가의 초대전 《김을파손죄》가 개최된다. 전시에는 김을 작가 다수의 신작과 미공개작을 포함한 700여 점의 작품이 공개된다.

▲A Painter Holding a Rolled Burlap, mixed media, 16×9×7㎝, 2018
▲김을, A Painter Holding a Rolled Burlap, mixed media, 16×9×7㎝, 2018 (사진=OCI 미술관 제공)

형식과 재료를 가리지 않는 그의 작업은 그의 ‘드로잉적 태도’, ‘드로잉적 사고’란 무엇인지를 직관적으로 느끼게 한다. 전시장에선 그림과 씨름하고, 벽에 집어던지고, 찢어버리는 그의 대(對)그림 난투극이 펼쳐진다.

김을 작가는 그림을 사랑한다기보다, ‘그림 이 새끼’라고 칭하며 그림을 모질고 야멸차게 대한다. 여기에 더해 “나는 그림을 정말 못 그리는 화가다”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내뱉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12시간 씩 그림을 그리며, 그의 독창적인 세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김 작가가 미술 세계를 짓는 핵심 재료는 ‘정직’이다. 그럴듯한 거짓을 파하고, 자기만의 드로잉적 사고와 태도를 따른다. 김 작가의 드로잉은 굳은 틀을 ‘깨는’ 것이고, 거짓에 물든 회화는 ‘감옥’에 가둬야 한다. 그래서 이번 전시의 아이콘은 틀을 깨는 망치와, 뻥을 잡는 감옥이다. 영문 제목도 EULLdalism(김을+반달리즘)이다.

▲Twilight Zone Studio 2022,mixed media,dimensions variable, 2022
▲김을, Twilight Zone Studio 2022,mixed media,dimensions variable, 2022 (사진=OCI 미술관 제공)

전시장 1층에는 김을 작가의 작업실을 그대로 구현한 집 한 채가 놓여있다. 그 안에는 김 작가의 작업 흔적이 빽빽하게 전시돼 있다. 이 공간은 TZS(Twilight Zone Studio)로, 황혼이 질 때의 모호함과 몽롱함을 갖고 있는, 무엇이든 떠올릴 수 있고, 그 어떤 것도 될 수 있는 중간 지대이자 자유 지대인 그의 작업실을 뜻한다.

TZS 공간 옆으로는 그림이 싫을 때마다, 끄는 장난감들이 배치돼 있다. 관람객들은 이 장난감을 직접 끌어볼 수 있다. 김 작가는 “그림 그리기 싫을 때, 이놈을 끌면, 그림 그려주니까. 하하-”라고 얘기한다. 김 작가의 세계와 고민, 멈춤의 시간을 입체적으로 느껴볼 수 있다.

2층에선 대형 감옥이 전시된다. 감옥의 까만 쇠창살 사이로 흰 캔버스가 다른 캔버스를 밟고, 비뚜름히 서 있다. 어딘가 불만스러운 몸짓으로도 읽어볼 수 있다. 김 작가는 캔버스에게 벌을 주는 설치 작품을 선보인다. 진실하지 못한 회화는. 낮게 달린 어두컴컴한 낡은 조명 아래에서 개과천선을 기다려야 한다.

▲Jail, mixed media, 205×180×200㎝, 2022
▲김을, Jail, mixed media, 205×180×200㎝, 2022 (사진=OCI 미술관 제공)

1,2층에서 작가의 메인스튜디오를 구현했다면, 3층에서는 김 작가가 글씨와 그림으로 표현한 2015년의 매일이 전시된다. 361점의 작품은 공간을 사방으로 휘어 감는다. OCI미술관 김영기 수석 큐레이터는 “술을 하지 못하는 작가가 무리하는 바람에 4일이 비는 것도 3층 전시작의 재미 중 하나”라고 소개한다.

김 작가는 작품에 대한 극적인 일화, 각별한 영감을 떠올리며 작품을 소개하기보다 묵은 생각의 틀을 파손하면서, 우직하게 그려온 것만을 얘기한다. 김 작가는 작품에 대해 “내가 그린 건 맞긴 한데…기억이 없다. 에스프레소나 한 잔 마셔야겠다.”라는 제 갈길만 걸어가는 답을 내어놓는다. 전시장은 김 작가가 추구해오곤 지나왔던 시간과 고민들이 그대로 나열돼 있다.

▲Toys, mixed media, dimensions variable, 2006~2021 (2)
▲김을, Toys, mixed media, dimensions variable, 2006~2021 (사진=OCI 미술관 제공)

전시 기간 중에는 4월 23일에 ‘작가와의 대화’ 행사가 개최되고, 5월 27일 오후 7시에는 직장인들을 위한 위해 ‘야간 전시 투어’ 행사도 준비돼 있다. 김을 작가가 전시장을 돌며 관객을 직접 안내한다. 행사 참석 및 전시 관람 무료이며, 행사 예약 및 전시 관람 문의는 OCI미술관(02-734-0440)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