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입 안에 품은 절대반지를 탐하다”…현대인의 자화상, 창작 오페라 <텃밭킬러>
[공연리뷰]“입 안에 품은 절대반지를 탐하다”…현대인의 자화상, 창작 오페라 <텃밭킬러>
  • 진보연 기자
  • 승인 2022.04.25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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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초상 담은 ‘블랙코미디 오페라’…드라마틱한 음악으로 풍부함 더해
현실 사회상 반영되지 않은 대본, 아쉬움 남겨

[서울문화투데이 진보연 기자]영화로도 제작돼 큰 흥행을 거둔 J.R.R.톨킨의 장편소설 <반지의 제왕>에는 ‘골룸’이라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골룸의 원래 이름은 ‘스미골’로 절대반지에 마음을 빼앗긴 후 이를 차지하기 위해 친구인 디골을 살해한다. 이후 소유욕에 짓눌려 정체성을 잃은 채 절대반지의 노예로 살아가게 된다.

▲창작 오페라 ‘텃밭킬러’ 공연 장면
▲창작 오페라 ‘텃밭킬러’ 공연 장면

오페라 <텃밭킬러>의 ‘골륨’은 절대반지를 대신할 금니 세 개를 입 안에 품고 있다. 그리고 이 금니는 골륨과 더불어 그의 가족인 아들(진로)과 손자 두 명(청년, 수음)의 유일한 재산이기도 하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금니의 안위뿐이다.

진로는 20년간 구둣방을 운영해왔지만 삶의 의지가 꺾여 항상 술에 취해 사는 인물이다. 그는 “인생의 탈출구는 전쟁”이라고 말하며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전쟁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뿐만 아니라 그는 할머니의 금니를 가장 노골적으로 탐내며 금니를 하루라도 빨리 얻기 위해 할머니의 명줄을 깎자고 조르기까지 한다. 청년은 여자친구와의 결혼이 가장 큰 고민거리다. 그는 집을 구할 여력이 없어 옥상 한 켠에 이층침대를 두고 신혼생활을 시작한다. 수음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수음은 값비싼 점퍼와 포경수술에 집착하는 철없는 10대로 그려진다. 이처럼 ‘텃밭킬러’는 인물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부조리한 현실을 투영한다.

자신에게 기생하며 살면서도 금니만을 바라보는 자식들에게 이리저리 휘둘리던 할머니는 “평생동안 나를 텃밭처럼 여겨 뜯어먹는다”라고 분노하다가 결국 스스로 금니를 빼고 삼켜버린다. 

<텃밭킬러>는 서울시오페라단의 창작오페라 워크숍 ‘세종 카메라타’에서 세 번째로 선보인 작품으로 2017년 리딩 공연 이후 수정, 보완을 거쳐 지난 2019년 초연했으며, 올해 ‘제20회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를 통해 다시 한 번 관객들과 만나게 됐다. 

여러 해를 거치며 크고 작은 변화가 있었겠으나, <텃밭킬러>의 배경과 그 속의 이야기는 지금의 현실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블랙코미디 오페라라는 장르를 통해 현실의 부조리함을 풍자ㆍ비판하려 했으나, 정작 작품이 공연되고 있는 현재의 모습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탓에 어정쩡한 방향성을 가지게 됐다는 아쉬움이 곳곳에서 묻어났다. 

▲창작 오페라 ‘텃밭킬러’ 공연 장면
▲창작 오페라 ‘텃밭킬러’ 공연 장면

아들 진로는 전쟁을 두려워하는 동시에 가장 전쟁을 기다리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그의 지나칠 정도로 과도한 집착이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관객은 극이 끝날 때까지 알 수가 없다. 다만, 술에 취해있을 때가 온전한 정신일 때보다 많은 그가 절망적인 현실을 비관하던 끝에 전쟁을 인생의 리셋 버튼으로 찾았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바리톤 임희성의 애환이 담긴 목소리는, 그가 그간 겪었을 삶의 굴곡을 관객들로 하여금 공감할 수 있게 도왔다.

집안의 막내 수음의 ‘포경수술’에 대한 집착도 극의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수음은 포경수술을 하지 않아 학교 친구들과 어울릴 수 없다고 억지를 부리고, 유행이 한참 지난 노스페이스 패딩을 사달라고 할머니 골륨을 닦달한다. 학생이 등산복 브랜드의 패딩을 왜 입느냐는 질문에 대해, 별안간 ‘학교 교육이 산으로 가고 있어서’라는 뜬금없는 현실 비판이 갑자기 튀어나오기도 한다. 공연이 수년 간 개발되는 과정 속에 현실 고증에 대한 조사는 작품을 처음 만들던 그 시기에서 나아가지 못했고, 이에 대한 공백을 막연한 공교육 비판으로 몰아간 듯 했다. 

▲창작 오페라 ‘텃밭킬러’ 커튼콜
▲창작 오페라 ‘텃밭킬러’ 커튼콜

위의 아쉬운 점들에도 불구하고, <텃밭킬러>가 창작 오페라 작품으로써 완성도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음악과 연출의 든든한 서포트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안효영 작곡가는 곡 시작부터 충실한 오케스트레이션을 들려주면서도 주인공들은 가요풍의 애절한 노래를 선보였다. 음악은 빈곤함이 누구로부터 온 것인지 의문을 가지게 하는 문제제기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고 있었다. 특히 ‘골륨’ 역의 메조소프라노 심민정, ‘아가씨’ 역의 소프라노 김문진 이 두 가수는 때로는 구슬프게 때로는 화려하게 펼쳐진 음악을 최대치로 표현하며 캐릭터의 감정을 객석에 고스란히 전달했다.

무대 연출도 흥미로웠다. 구조물로 2층 무대를 만들어 소극장의 활용도를 높였고, 원근법을 활용한 구조물의 변형은 공간의 깊이감을 더했다. 

블랙코미디란 ‘아이러니한 상황이나 사건을 통해 웃음을 유발하는 코미디의 하위 장르’라고 정의된다. 세상에 대한 삐딱한 시선을 담은 그 부조리한 특성 때문에 세태 비판이나 정치,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는 경우가 많다. 작품에서 다루고자 하는 빈부격차, 청년실업, 고령화, 파행적 교육 현장 등 다양한 사회 문제를 러닝타임 100분에 압축시켜 효과적으로 전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가사에 포함된 유명 힙합 프로그램 이름이나, 최신 유행어 몇 개로 시대상을 통쾌하게 들춰내 진단하고 비판하기란 무리가 많은 시도이다.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고 분석해야만 시대를 노래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