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용인서 고려 초기 백자 흔적 찾아
문화재청, 용인서 고려 초기 백자 흔적 찾아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2.04.25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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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이후 진행된 세 번째 발굴 조사
생산 관련 시설 및 왕실 제기 출토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용인 서리 고려백자 요지에서 고려 초기 백자 생산관련 시설의 흔적과 왕실 제기들이 출토됐다. 문화재청(청장 김현모)의 허가를 받아 용인시(시장 백군기)와 (재)서경문화재연구원(원장 임영호)이 조사를 진행해 얻은 결과다.

▲발굴된 백자 제기 (사진=문화재청 제공)
▲발굴된 백자 제기 (사진=문화재청 제공)

용인 서리 고려백자 요지는 1980년대 호암미술관이 고려 시대의 자기 가마터를 조사해 사적으로 지정된 유적으로,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서리 335-1번지 일원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고려 초부터 백자를 생산했던 가마터로 중국의 자기제작 기술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정착한 대표적인 가마 중 하나다. 1984년부터 3차례 걸쳐 발굴조사를 진행했고, 작년 6월부터는 사적 남쪽 구역을 제4차 발굴조사 중에 있다.

이번 조사에서는 건물지와 답도(통로), 계단, 저장구덩이, 폐기장 등 백자 가마 관련 시설을 확인했고, 유물로는 고려도자의 가장 이른 형태인 선해무리굽 백자완(사발)을 비롯해 각종 제기 조각과 기와 조각 등이 출토됐다. 유물들은 이곳이 고려 초기부터 백자를 생산하면서 한편으로는 왕실에 제기를 공급한 주요 생산지임을 알려준다.

특히, 조사지역의 북쪽 건물지 외곽 구덩이 한 곳에서 보(簠), 궤(簋) 등의 왕실 제기와 갑발(匣鉢) 등 2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됐다. 대부분 상태가 양호한 편으로 완형의 제기가 다량으로 출토된 사례는 국내에서는 이번이 처음이다. 보와 궤는 중국 송나라 때 출판된 <삼례도>와 <고려도경> 등의 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는 왕실의 제기로, 고려도자 연구는 물론, 왕실의 통치철학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보궤 매납유구 전경
▲보궤 매납유구 전경 (사진=문화재청 제공)

보(簠)는 ‘벼와 조’를 담는 그릇’으로 외면은 네모난 형태, 내면은 원형의 형태다. 궤(簋)는 ‘기장’을 담는 그릇’으로 이 유물은 외면이 원형, 내면은 네모난 형태를 갖추고 있다.

도자제기는 유교적 정치이념을 통해 국가를 통치했던 고려 왕실이 국가제사를 지낼 때 사용했던 기물이다. 1059년 (고려 문종 13년)에는 제기도감(祭器都監)까지 설치해 관리하기도 했다. 이번 발굴조사에서 양호한 상태의 제기가 다량으로 출토된 건물지 일원은 용인 서리 고려백자 요지 내에서 왕실 제기를 공납하기 전에 선별작업을 하던 곳이거나 임시 보관소, 혹은 공납 후 불필요한 제기를 일시에 폐기한 장소였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문화재청은 이번 발굴조사가 고려 왕실 제기의 제작과 납품 과정은 물론, 용인 서리 유적의 역사적 의미를 재확인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