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훈의 클래식 비평] 제20회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 관람기 ① - 치마로사 '비밀결혼'
[이채훈의 클래식 비평] 제20회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 관람기 ① - 치마로사 '비밀결혼'
  • 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전문 객원기자
  • 승인 2022.04.27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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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코믹 오페라의 효시, 등장인물 6명의 다양한 앙상블
▲이채훈 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 전문 객원기자, 한국 PD연합회 정책위원

봄이 한창이다. 소극장오페라축제가 중반으로 접어들며 열기를 더하고 있다. 4월 23일 <텃밭킬러>를 시작으로 <로미오 vs 줄리엣>, <비밀결혼>, <리타>가 한 차례씩 공연되어 올해 출품작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공개 오디션으로 출연자를 뽑은 참신한 시도, 어려운 여건에서도 제작발표회와 거리공연 등 다양한 사전 행사로 분위기를 띄운 노력이 돋보였다. ‘실험과 모색’을 추구해 온 이 축제는 올해 특히 코로나로 지친 관객들을 위해 ‘위로와 치유’를 표방했는데, 이 목표를 어느 정도 이룬 것으로 보인다.

4월 26일(화) 공연된 <비밀결혼>은 도메니코 치마로사의 대표작으로, 1792년 빈에서 초연된 뒤 밀라노, 바르셀로나, 런던, 리스본, 파리에서 큰 인기를 얻은 코믹 오페라다. 그의 오페라는 18세기 말에는 모차르트의 인기를 능가했다. 그는 화가인 친구가 “모차르트보다 자네가 더 뛰어나다”고 칭찬하자 불편해져서 “누가 자네더러 라파엘로보다 낫다고 하면 기분이 좋겠는가” 되물은 걸로 유명하다. 그는 페르골레지와 로시니를 잇는 이탈리아 코믹 오페라의 중요 작곡가다. <비밀결혼>이 오페라 애호가들의 각별한 관심을 모은 것은 이 작품이 오페라 역사에서 갖는 중요한 위치에 비해 덜 알려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날 공연은 우리말로 노래하여 관객들에게 웃음과 위안을 주었다. 가사를 번역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닐텐데, 코믹한 느낌을 잘 살린 훌륭한 번역 덕분에 공연이 생기가 있었다. 막이 오르기 전 “경고! 웃음이 나올 때는 큰 소리로 웃으세요”라는 재치있는 자막을 보여주었는데, 실제로 관객들은 여러 차례 폭소를 터뜨렸다. 욕설과 비속어를 애교 있게 구사한 대목들(이 무슨 129, 찐꼰대, 똘아이, 귀~족같다 등)이 웃음을 자아냈다. 피달마가 파올리노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파, 파, 파, 파~”라고 더듬거린 것은 모차르트 <마술피리> 중 파파게노와 파파게나의 이중창을 연상시키며 미소를 머금게 했다. 로빈슨 백작의 대사 일부를 영어로 처리한 것도 자연스런 웃음을 선사했다.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 치마로사 '비밀결혼' 공연 (사진=이채훈 제공)

이상은(카롤리나), 김은미(엘리제타), 류현수(피달마), 정능화(파올리노), 양석진(제로니모), 김종표(로빈슨 백작) 등 6명의 주인공은 아름답고 유쾌한 앙상블을 들려주었다. 모차르트는 "오페라에서 대본은 음악에 순종하는 딸“이며, ”이탈리아 오페라들이 대본이 좀 엉성해도 성공하는 이유는 음악이 계속 흐르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이 작품은 아주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조반니 베르타티의 대본은 다소 흠이 있는 게 사실이다. 특히 피날레, 로빈슨 백작이 엘리제타와 결혼하기로 마음을 바꾸고, 몰래 결혼한 딸을 아버지 제로니모가 용서해 주는 대목은 너무 느닷없어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러나 시종일관 흐르는 아름다운 앙상블 덕분에 관객들은 대본의 흠을 너그럽게 눈감아주게 된다. <비밀결혼>은 모차르트의 <코지 판 투테>처럼 아름다운 앙상블이 끊임없이 이어지는데, 6명의 성악가는 고른 기량으로 편안한 화음을 이뤄냈다. 특히 엘리제타를 맡은 소프라노 김은미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다.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 치마로사 '비밀결혼' 공연 (사진=이채훈 제공)

오케스트라는 극장 여건에 맞도록 5명으로 축소했다. 소극장 공연답게 실내 앙상블로 연주한 것도 나름 매력이 있었지만, 이 작은 앙상블로는 강약 대비와 텍스처 변화를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작은 악단으로 연주하니 비슷한 템포와 무드의 음악을 끝없이 나열한다는 느낌으로 흐를 위험이 있었다. 무대 디자인과 소품, 조명은 단순하고 깔끔해서 호감을 주었다.

욕심을 부리자면, 우리말로 공연할 바에야 차라리 현대의 한국으로 무대를 옮기는 좀더 과감한 연출을 시도할 수는 없었을까 싶다. 웃음의 포인트가 오직 대사에 국한돼 있어서 극적인 감동을 주기에는 다소 미흡했던 게 사실이다. 음악은 유창하게 흘러갔지만, 등장인물의 내면의 갈등을 깊이 있게 전달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카롤리나와 파올리노는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부모의 허락 없이 ‘비밀결혼’을 강행했을 테고, 엘리제타와 피달마가 겪는 고통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 이들의 감정 변화가 좀 더 농도짙게 표현됐더라면 감동을 배가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는 한류의 흐름 속에서 우리 창작 오페라의 수준과 역량을 가늠할 기회로 기대를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