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뷰] 故이건희 컬렉션 기증 1주년, 국중박 《어느 수집가의 초대》展 개최
[현장리뷰] 故이건희 컬렉션 기증 1주년, 국중박 《어느 수집가의 초대》展 개최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2.04.27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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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8~8.28,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국립중앙박물관-국립현대미술관, 공립미술관 5곳 협업
작품 355점 중 새롭게 공개하는 기증품 309점
정선 ‘인왕제색도’, 모네 ‘수련이 있는 연못’ 등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이번 전시는 ‘미알못’(미술을 알지 못하는 사람)도 즐길 수 있게끔 기획됐다” 전시 투어 설명을 맡은 이수경 학예연구사의 말이다. “도대체 故이건희 회장은 무엇을 수집했던 것일까. 집에 금은보화를 모아둔 것일까” 이 학예사는 지난해 이건희 컬렉션을 향한 수많은 국민의 관심이 이와 같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재와 미술품을 향한 관심도 대단했지만, ‘이건희’라는 사람의 안목과 수집품에 대한 관심도 지대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정선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정선 <인왕재색도>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지난해 최고의 이슈로 손꼽히는 故이건희(李健熙, 1942~2020) 삼성 회장의 문화유산과 미술품 기증이 1주년을 맞이했다. 이를 기념하고자, 국립중앙박물관(관장 민병찬)과 국립현대미술관(관장 윤범모)은 4월 28일부터 8월 28일까지 기획특별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고故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을 개최한다. 전시개막에 앞서 27일에는 언론공개회가 개최됐다.

이번 특별기획전에는 기증품 295건 355점을 선보인다. 이 중 컬렉션 기증 이후 새롭게 선보이는 작품은 309점이다. 이건희 컬렉션 중 대중에게 최초 공개되는 작품이 무엇인지에 대해 언론의 많은 관심이 쏠렸다. 이 학예사는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 중 다수는 리움미술관에서 전시됐던 적이 있다”라며 “어떤 작품이 전시된 적이 있고, 전시된 적이 없는지를 정확하게 확인하긴 어려워서 최초 공개 작품을 콕 짚어서 말하긴 힘들다”라고 설명했다.

특별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는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이 공동 주최하고 공립미술관(광주시립미술관, 대구미술관, 박수근미술관, 이중섭미술관, 전남도립미술관) 5개처가 참여해, 이건희 기증품 수증기관 전체가 협력한 전시다. 전시의 중심 기획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맡았고, 국립현대미술관과 협업해 주제와 공간에 맞는 작품을 선정하고 배치했다는 설명이다.

▲전시 설명을 하고 있는 이수경 학예연구사, 뒷편에는 제주 동자승이 전시돼 있다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정약용의 글, 클로드 모네의 그림…주목할 만 한 두 작품

국중박과 국현이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 꼽은 것은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의 <정효자전(鄭孝子傳)>과 <정부인전(鄭婦人傳)>, 클로드 모네가 만년에 그린 <수련이 있는 연못>(1917~1920) 이다. <정효자전>과 <정부인전>은 대중에게는 최초로 공개되는 서예작품이다. 강진에서 유배 중이던 정약용이 마을 사람 정여주鄭汝周의 요청으로 쓴 두 편의 글로, <정부인전>의 경우 정약용의 문집 『여유당전서』에도 수록되지 않아 그 내용도 처음 공개된다. 클로드 모네 <수련이 있는 연못>은 국내에선 처음으로 전시되는 작품이다.

▲정효자전, 정부인전, 정약용(1762-1836), 조선 1814년, 비단에 먹, 정효자전 17.9×132.4cm, 정부인전 16.6×160.2cm, 국립중앙박물관
▲정효자전, 정부인전, 정약용(1762-1836), 조선 1814년, 비단에 먹, 정효자전 17.9×132.4cm, 정부인전 16.6×160.2cm, 국립중앙박물관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정약용의 <정효자전>과 <정부인전>은 문화재와 근‧현대미술품을 망라하는 이번 전시에서 주목하고 있는 ‘인간’과 ‘삶의 지혜’라는 주제와도 이어지며, 작품 그 자체의 가치로도 주목할 수 있는 작품이다. <정효자전>은 서른 살에 세상을 떠난 정여주의 아들 정관일鄭寬一이 생전에 했던 효행을 기록한 작품이고, <정부인전>은 홀로 남은 정관일의 부인이 엄격하게 아들을 기른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가족의 기억을 글로 남기려 한 지역민에게 공감한 정약용의 마음이 담겨 있는 작품이며, 당시 시대에 시아버지가 며느리의 기록을 글로 남기려했다는 따뜻한 마음도 상상해볼 수 있는 작품이다.

▲정약용-정효자전, 정부인전을 설명하는 이수경 학예사와 취재진 (사진=서울문화투데이)

클로드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은 모네의 말년 작품으로 그가 시력을 점차적으로 잃어가고 있을 때에 제작된 작품이다. 그래서 수련과 연못의 형태가 선명하지 않고, 빛의 변화에만 집중하며 대상이 흐릿하게 표현돼 있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 이 표현 경향은 이후 추상화 출현을 예고하는 표현법으로 평가 받았다. 미술사에서 구상과 추상의 경계에 서있는 작품을 선보이면서, 인간이 세상을 지각하는 다양한 방식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는 작품이다.

▲수련이 있는 연못, 클로드 모네(1840-1926), 1917-1920년, 캔버스에 유채, 100.0.×200.5cm, 국립현대미술관
▲수련이 있는 연못, 클로드 모네(1840-1926), 1917-1920년, 캔버스에 유채, 100.0.×200.5cm, 국립현대미술관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수집가의 ‘집’과 수집가의 ‘시각’을 담다

이번 특별전은 총 2부로 구성돼, <제1부-저의 집을 소개합니다>와 <제2부-저의 수집품을 소개합니다>로 꾸려졌다. 각각의 주제 안에서도 작은 소주제 별로 공간이 구성돼 있다. 전시 투어에 앞서 이 학예사는 ‘미알못’(미술을 알지 못하는 사람)을 위한 전시를 기획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관람객들이 미술 작품과 문화재를 보다 쉽고 가깝게 이해하고 접할 수 있도록 편안한 공간을 조성했다는 설명이다. 전시 공간 기획에 있어서 관람객의 흥미를 유발하려 스토리를 입히려고 노력한 점이 느껴졌다.

▲다도 공간처럼 조성된 1부 전시 공간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실제 1부 공간으로 들어서면 수집가의 앞뜰, 거실, 작가의 방, 정원 등을 쉽게 상상해 볼 수 있게끔 공간이 조성돼 있다. 제주 동자석이 전시된 공간은 작은 앞뜰 같은 느낌을 풍기고, 공간 정중앙에 도자작품이 전시된 곳은 다도를 즐길 수 있는 공간처럼 조성해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다도 공간에서는 찻잎을 볶는 향이 은은하게 퍼지는데, 아모레퍼시픽과 협업으로 구현된 향이다.

1부 공간을 관통하고 있는 주제는 ‘가족’과 ‘수집가 이건희의 안목’이다. 1부에선 가족을 생각해볼 수 있는 장욱진(張旭鎭, 1917~1990)의 <가족>과 이 집안의 주인과도 같아 보이는 남자와 여자의 초상 작품을 선보인다. 그리고, 18세기 <백자 달항아리>와 김환기의 1950년대 <작품>을 함께 배치해 이건희 회장이 주목했던 한국적 정서와 미학을 고미술과 현대미술을 관통하는 방식으로 관람객에게 전달한다.

▲가족, 장욱진(1918-1990), 1979년, 캔버스에 유채, 15.5×22.5cm, 국립현대미술관
▲가족, 장욱진(1918-1990), 1979년, 캔버스에 유채, 15.5×22.5cm, 국립현대미술관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수집가의 집’으로 설정된 1부 공간에서 한 가지 주목해볼 만한 것은 ‘수집장’이다. 실제 작품들을 수집해 모아둔 장처럼 꾸며진 한 쪽 벽면은 이건희 회장이 얼마나 다양한 작품을 수집했는지 단편적으로 느껴볼 수 있게 한다. 수집 장 안에는 정말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 돼 있고, 그 경향은 단 하나로 읽히지 않는다. 이 학예사는 “수집가의 컬렉션을 주제에 상관없이 함께 선보이면서 그의 안목을 보여주려 했다”라며 “이 수집장에 전시된 작품 중에는 그 용도를 알 수 없는 것들도 있다”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집이라는 공간을 설정하고 배치된 작품들은 보다 편안하게 관람객에게 다가오게 된다. ‘이건희 회장이 수집했던 고가의 미술품이 무엇일까?’라는 장벽을 뚫고, 관람객이 한 명의 수집가의 집으로 초대받아 작품을 관람하는 방식의 기획은 ‘어렵고, 비싼 미술품’이라는 경계를 조금 허물 수 있는 시도로도 느껴진다.

▲1부 공간에 조성된 '수집장' 형태의 전시공간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제2부-저의 수집품을 소개합니다>는 1부에서 살짝 선보였던 수집가의 수집장을 좀 더 세밀하게 펼쳐보는 주제 공간이다. 2부 공간은 총 4개의 소주제로 구성됐다. 첫 번째 ‘자연과 교감하는 경험’, 두 번째 ‘자연을 활용하는 지혜’, 세 번째 ‘생각을 전달하는 지혜’, 네 번째 ‘인간을 탐색하는 경험’으로 작품을 선보인다. 전시 작품 종류로는 첫 번째 공간에서는 조선시대 산수화와 현대 회화, 두 번째 공간은 토기와 도자기, 금속공예품, 세 번째 공간은 불교미술과 전적류, 네 번째 공간은 개인의 주체적 각성을 다룬 예술품으로 공간을 채웠다.

정말 다양한 장르를 다 아우르고 있는 이건희 컬렉션의 방대함을 품을 수 있는 기획이었다. 2부 공간은 4개의 공간 별로 다양한 감각을 전하는 방식으로 조성됐다. 하나의 작품, 한 명의 작가 특징을 파악하기위해 집중하는 방식이 아닌, 다양한 작품들이 함께 호흡할 수 있는 방식이다. 기획 공간 안에서 작품들은 문화재와 미술품의 경계를 넘나들며 관람객들에게 본질적인 감성을 전한다.

▲강요배'홍배'와 분청사기 전시 공간 (사진=서울문화투데이)
▲강요배'홍배'와 분청사기 전시 공간 (사진=서울문화투데이)

강요배 작가의 <홍매>와 분청사기를 나란히 배치함으로써, 현대화의 독특한 질감을 문화재에서도 함께 찾아볼 수 있게 했다. 화려한 색감을 가진 <십장생도 병풍>과 생명력을 담고 있는 김흥수의 <작품>을 같이 배치해 조선과 현대를 관통하는 생명력에 대해서도 느껴볼 수 있게 한다. 국보 <인왕재색도>는 어두운 공간에 전시하면서, 작품이 가지고 있는 아우라를 관람객이 온전히 마주할 수 있게 했다.

불교미술과 전적류를 전시한 세 번째 공간도 주목할 만하다. 일반 관람객에게는 읽을 수 없는 책, 문서라는 느낌이 강한 전적류를 인류가 가진 지혜를 담고 있는 문서로 조명하면서, 과거의 역사‧문화, 현재를 살아갈 수 있는 교훈들을 짚어주는 작품으로 해석한다.

▲만선, 천경자(1924~2015), 1971년, 종이에 채색, 121.0×105.0cm, 전남도립미술관
▲만선, 천경자(1924~2015), 1971년, 종이에 채색, 121.0×105.0cm, 전남도립미술관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세 번째 소주제 공간에서 선보이는 <삼현수간첩>은 유학자 송익필, 성혼, 이이가 30년 넘게 주고받은 편지를 모은 서간첩으로, 세 학자가 편지로 성리학을 토론하거나 국가 경영의 주의사항을 일러주며 우정을 이어나간 기록이다. 전시장에는 <삼현수간첩> 일부를 한글로 적어 전시했는데, 이이의 대제학 임명소식을 듣고 쓴 송익필이 쓴 편지 부분이 있다.

“행동거지 하나하나 반드시 도道로서 하고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이익을 도모하거나 공을 세우겠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라는 글귀다. 이 학예사는 “전적류는 선조의 지혜와 교훈을 읽어볼 수 있는 작품으로, 지금 우리나라 고위공직자들이 이곳에서 <삼현수간첩>을 읽고 갔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2부 전시공간 세 번째 ‘생각을 전달하는 지혜’ 전경 (사진=서울문화투데이)

문화재‧미술품…인간의 지혜

이번 《어느 수집가의 초대》 전시기획에 있어서 학예사들은 문화재와 근‧현대미술품을 시기적으로 분류하지 않으려했다는 설명이다. 각기 다른 시대에 창작된 다양한 방식의 작품들을 인간이 쌓아온 지혜와 고민, 세상을 받아들이는 시각의 기록으로 전시하며 관람객이 그것을 온전히 마주하게끔 한다.

▲축사를 전하는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축사를 전하는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사진=서울문화투데이)

박물관과 미술관의 협업으로 준비된 전시인 만큼 조금 다른 결의 해석과 시각이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한 명의 수집가의 시각과 그 수집가가 모은 작품 속 ‘인간’이라는 큰 주제를 끌어내면서 전시는 하나의 주제로 모일 수 있었다.

축사를 전한 황희 문체부장관은 “이번 전시를 보면서, 작품 뿐 아니라 관람객에게 작품을 잘 선보이기 위한 연출에서도 놀라움을 느꼈다”라며 “이건희 컬렉션 뮤지엄이 만들어져야 하는 이유가 느껴지는 전시였다”라는 솔직한 감상을 전했다. 이어 “이건희 컬렉션이 불러일으킨 문화유산의 사회적 환원이라는 기증 문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잘 유지되길 바란다”라며 축사를 마무리 했다.

▲작품, 김환기(1913-1974), 1950년대, 하드보드에 유채, 54.0×26.0cm, 광주시립미술관
▲작품, 김환기(1913-1974), 1950년대, 하드보드에 유채, 54.0×26.0cm, 광주시립미술관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문화유산과 미술품은 좀 더 많은 이들이 그것을 즐기고 향유할 때, 그 빛을 발한다. 꽤 오랜 시간 한 사람의 컬렉션으로 정말 다양한 문화유산들이 숨겨져 있었다. 지금에서라도 국민의 품으로 문화유산과 미술품이 돌아온 것을 감사해야하는 것일까. 이건희 컬렉션을 향한 다양한 시각은 계속 유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지금 한 수집가의 집이 모든 국민에게 공개됐다. 그 초대에 즐겁게 응해보는 것도 좋은 선택일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