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리뷰] 《아스테카, 태양을 움직인 사람들》展, 죽음을 새로운 시작으로 바라본 문명
[현장 리뷰] 《아스테카, 태양을 움직인 사람들》展, 죽음을 새로운 시작으로 바라본 문명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2.05.02 18: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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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 5.3~8.28
한국-멕시코 수교 60주년 기념 전시
멕시코‧유럽 11개 박물관 참여, 아스테카 유물 208점 공개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아메리카 대륙 3대 문명 중 하나인 ‘아스테카’를 다룬 특별전 《아스테카, 태양을 움직인 사람들》이 열린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민병찬) 상설 특별전시실에서 오는 3일부터 8월 28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한국과 멕시코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추진됐으며, 멕시코 국립인류학박물관을 비롯해 독일 슈투트가르트 린덴박물관, 네덜란드 국립세계문화박물관 등 멕시코와 유럽의 11개 박물관이 참여했다. 각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아스테카 유물 208점이 공개되며, 이 중에는 최근 멕시코시티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발굴 조사에서 확인한 중요문화재들도 포함돼 있다. 2일 언론공개회를 통해, 국중박은 아스테카 문명에 대한 전시를 처음으로 선보였다.

▲독수리 전사 상, 전사모양 기둥 (사진=서울문화투데이)
▲독수리 전사 상, 전사모양 기둥 (사진=서울문화투데이)

민병찬 국립중앙박물관장은 “2009년 잉카문명 전시, 2012년 마야문명 전시에 이어 메소아메리카의 또 하나의 문명을 소개할 수 있어 기쁘다”라며 “2012년엔 직원으로서 마야문명 전시를 담당했는데, 당시에 마야 유물과 함께 아스테카 유물들을 보며 ‘그래도 멕시코 대표유물은 아스테카 문명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보고 느꼈던 문화재들을 한국에서 전시할 수 있게 돼 감회가 새롭다”라고 말했다.

최신 연구 성과 담긴 ‘아스테카’ 특별전

아즈텍(Aztec) 문명으로도 알려져 있는 아스테카(Azteca) 문명은 마야, 잉카 문명과 더불어 메소아메리카에 속한 3대 문명 중 하나다. 우리나라 외래어표기법에 따르면 ‘아즈텍’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영어식 표기이자 발음이다. 현지 발음을 존중한다는 외래어표기법 원칙에 따라 국립중앙박물관은 ‘아즈텍’이 아닌 ‘아스테카’로 해당 문명을 지칭했다. 현재 중‧고교 교과서에도 ‘아스테카 문명’으로 표기 돼 있다.

아스테카는 11세기, 12세기 초반에 수도 테노치티틀란(현재의 멕시코시티)을 중심으로 흥성한 문명이다. 400년에서 5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이중 200~300년은 역사와 신화가 혼재된 시기이고 200년 정도가 확실한 역사로 남아있다.

▲언론공개회에서 답변을 하고 있는 독일 슈투르가르트 린덴박물관 이네스 데 카스트로 관장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세계사의 중요한 문명 중 하나인 아스테카 문명은 우리에게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문명이다. 대게 아스테카 문명은 인신공양을 하는 잔혹한 문명이자, 스페인 정복자를 자신들의 신으로 오해해 허무하게 멸망을 맞이한 문명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전시는 아스테카 문명을 보다 깊이 있게 탐구하며, 대중에게 알려진 내용들이 아스테카 문명의 극히 일부분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아스테카는 1521년 스페인 정복자에 의해 멸망을 맞이했고, 이 유적들은 1978년이 돼서야 발굴되기 시작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현재도 계속해서 발굴이 진행 중에 있고, 학계에서도 아스테카 문명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사실이 개진되고 있는 중이다.

이번 전시는 멕시코시티 중심부 및 대신전 템플로 마요르 주변에서 진행한 10년간의 고고학 발굴 성과를 대중에게 첫 선을 보이는 자리다. 지난 10년간의 발굴과정에서는 대지의 여신 조각품, 14개의 새로운 조각품이 발굴됐으며 아스테카의 복잡다단한 종교세계를 추측할 수 있는 자료가 많이 발견 됐다.

독일 슈투르가르트 린덴박물관 아메리카 부서 큐레이터 도리스 쿠렐라는 “최근 발굴 과정에서는 금으로 된 장식품이 많이 발견됐다. 과거에는 아스테카가 금을 수입만 했을 것이라고 여겼는데, 아스테카 고유의 금 또한 있었음을 알게 되는 성과가 있었다. 금 장식품을 한국에 보여주는 선물의 의미로 선보이게 됐다”라며 새롭게 발견되고 있는 사실에 대해 전달했다.

네덜란드 국립세계문화박물관과 전시를 공동 기획한 독일 슈투르가르트 린덴박물관 이네스 데 카스트로 관장은 이번 전시가 아스테카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아스테카 문명을 유럽의 입장에서, 침략자의 입장에서만 해석해왔던 것은 아닌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아스테카 문명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시각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스페인 정복자들의 기록을 통한 시각과 고고학적 발굴 조사를 통한 이해의 방법이다. 이번 전시는 1978년 이후 행해진 고고학적 발굴 조사 및 지난 10년 간 대중에게 공개하지 않고 쌓아온 고고학적 발굴 조사를 기반으로 기획됐다. 스페인 정복자의 시각에서 벗어나, 아스테카 문명이 가지고 있던 고유한 우주관과 세계관을 통해서 그들의 역사를 다시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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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투리니의 고문서> 또는 <여정의두루마리>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아스테카 문화‧역사‧생활방식을 모두 담아낸 전시

이번 특별전은 아스테카의 역사와 문화 전반을 다루는 형식으로 구성됐다. 전시는 총 5부로 꾸려졌으며, 아스테카의 세계관과 신화를 시작으로 자연환경과 생활 모습 및 정치, 경제 체제를 소개한다. 그리고 수도였던 테노치티틀란의 모습과 그 가운데의 핵심적인 건축물인 대신전, 템플로 마요르에 대해 살펴본다.

아스테카는 그들만의 독특하고 복잡한 세계관과 신화를 가진 문명이다. 전시는 이를 소개하기 위해서 전시 초입에 7분짜리 영상을 상영한다. 아스테카는 수많은 신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세계가 움직이고, 태양이 움직일 수 있다고 믿은 문명이었다. 그래서 신의 희생에 감사하고, 인간들 또한 희생을 해야 한다고 여겼다.

신에 대한 믿음과 공경이 크기도 했지만, 아스테카 문명이 바라보는 신의 모습은 양면적이었다. 즉, 신은 전지전능한 힘을 통해서 세상을 이롭게 하고 순환할 수 있게 하는 존재면서, 인간이 신을 노하게 한다면 얼마든지 재앙을 내릴 수 있는 존재라고 바라봤다. 신을 향한 믿음과 두려움이 문명 전반에 깔려있었다.

▲물과 풍요의 신 찰치우틀리쿠에 화로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물과 풍요의 신 찰치우틀리쿠에 화로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아스테카는 수많은 신을 모시고 있는데, 그들의 주식이었던 옥수수에 대한 신과 곡물을 잘 자라게 하는 바람의 신, 물의 신 등이 있었다. 최근 발굴 과정에서는 음악과 쾌락의 신, 오락의 신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스테카의 자연환경과 생활 모습을 통해서 문화가 형성되고 종교가 융성하게 됐음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아스테카에 대한 이미지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전쟁을 기반으로 주변 국가에서 강력하게 공물을 징수하고, 인신공양을 일삼았다는 것이다. 아스테카 문명에는 실제 용맹한 전사들이 많았고, 이를 높게 평가했다.

3부 공간 ‘정복과 공물로 세운 아스테카’에는 전사들이 사용한 무기 <아쿠아우이틀 검>이 전시돼 있다. 고문서와 스페인 사람들의 기록에 따르면, 흑요석으로 만든 이 검은 사람을 두 동강 낼 수 있을 정도로 치명적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날이 망가졌을 때 갈아 끼우기도 용이해 기동성이 좋은 무기였다고 한다.

▲아쿠아우이틀 검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이처럼 뛰어난 군사적 능력을 가지고 있는 아스테카 문명은 정복전쟁을 일삼으며 체계적인 공물 징수 시스템을 세워 먼 거리에 있는 도시국가까지 효과적으로 통치했다. 이 점은 주변국의 공물을 약탈한 것으로도 볼 수 있지만, 또 다른 시각에서는 멕시코 전역의 큰 유통망을 구축한 것으로도 해석해 볼 수 있다. 서로 다른 생태환경의 다양한 물자와 문화를 함께 공유하며 멕시코 전역을 연결한 것이다.

아스테카는 정복전쟁 과정에서 곡물만을 약탈하진 않았다. 수많은 포로들을 잡아와 자국의 검투사와 대결을 벌여 인신공양의 제물로도 바쳤다. 5부 공간인 ‘세상의 중심, 신성 구역과 템플로 마요르’는 수도 테노츠티틀란의 신성 구역에서 벌어진 다양한 제의와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살펴본다.

이 공간에는 제단석, 칼 등을 전시하고 있다. 또한, 아스테카에서 중요한 신이었던 <지하세계의 신 믹틀란테쿠틀리> 소조상을 통해, 아스테카 문명이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고 인지하고 있었는지 선보이고 있다.

▲얼굴모양 제의용 칼, 멕시코 템플로마요르박물관)
▲얼굴모양 제의용 칼, 멕시코 템플로마요르박물관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전시 설명을 맡은 정현 학예연구사는 “아스테카에서 이뤄졌던 인신공양을 옹호하거나 미화시키려는 의도는 없고, 다만 스페인 정복자의 시각에서 과장되게 전해져 온 것은 아닐까 질문을 던져보고자 한다”라며 “잔혹한 인신공양이 사실은 사람들을 지배하고 주변 정치집단을 통치하기 위한 방편이었을 수 있었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했다”라고 말했다.

5부 공간을 끝으로 아스테카 문명은 스페인에 의해 정복당해 멸망하는 구성으로 마무리된다. 정 학예사는 “아스테카의 멸망이 허무하게 이뤄졌다고 여겨지기도 하지만, 사실은 아스테카 주변국과 스페인의 동맹으로 인해 정복전쟁이 성공할 수 있었고, 유럽에서 전해진 천연두 바이러스도 아스테카의 멸망을 가져온 요인이었다”라고 설명했다.

▲지하세계의 신 믹틀란테쿠틀리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이번 특별전은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아스테카’라는 문명을 전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준다. 전시장 곳곳에는 원주민 그림문자로 제작한 『멘도사 고문서』 속 이미지를 활용한 시각적 설명이 제공된다. 마치 그림책을 읽는 듯한 느낌은 아스테카의 생활상을 쉽게 인지할 수 있게 도와준다.

신의 형상을 한 석상도 한국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형태이기에 관람객에게 색다른 감흥을 전달해준다. 국중박은 멕시코에 실제로 갈 수 없어도, 그곳의 분위기를 최대한 담아내고자 노력했다는 설명이다. 우리와는 전혀 다른 시각의 우주관과 세계관에 대한 경험 경이로움과 흥미로움을 전달해준다.

이번 특별전에서 주요 전시작으로 꼽히는 <지하세계의 신 믹틀란테쿠틀리>는 전시 포스터에도 사용된 조소상이다. 아스테카에서 죽음의 신이기도 한 이 신은 우리나라의 저승사자와는 전혀 다른 결의 모습을 하고 있다. 공포스럽다기보단, 조금 친숙한 모양새를 하고 있는 듯도 한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이승의 세계를 중요시 여겼던 우리의 문화와 달리 아스테카 문명은 ‘죽음’을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고도 바라봤다.

▲신전을 장식한 독수리 머리 석상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신전을 장식한 독수리 머리 석상 (사진=서울문화투데이)

문명은 여전히 발굴이 진행 중이고, 지금도 계속 새로운 사실들이 나타나고 있다. 시대의 시각이 달라질수록 역사에 대한 해석도 달라질 것이다. 때문에, 이번 전시는 고정된 지식을 전달하는 전시라기보다,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았던 새로운 문명권을 소개하는 전시에 가깝다. 한국과 멕시코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기획된 전시인 만큼, 이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서로 다른 문명권이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에게 한 발 다가서는 전시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