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훈의 클래식비평]오페레타 '메리 위도우', 다양한 음악과 춤으로 힐링 선사
[이채훈의 클래식비평]오페레타 '메리 위도우', 다양한 음악과 춤으로 힐링 선사
  • 이채훈 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 전문기자,(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 승인 2022.05.08 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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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즐겁고 유쾌하기 바란다”
제13회 대한민국오페라축제, 경상오페라단

<메리 위도우>는 오페레타 전통의 끝물을 장식한다. 1861년 파리에서 히트한 연극 <대사관 사람들>을 1905년 빈에서 레하르가 오페레타로 재창조해서 크게 히트시켰다. 오페레타는 “오페라와 뮤지컬의 경계에 있는 비교적 가벼운 오페라”를 가리키는데, 20세기에 창작된 이 작품은 오페레타가 뮤지컬로 진화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오펜바흐 <지옥의 오르페우스>, 요한 슈트라우스 <박쥐> 등 19세기 오페레타들이 낭만 시대의 문화를 보여주며 귀족 사회를 풍자했다면, <메리 위도우>는 상류 시민 사회의 속물근성과 금전만능주의를 비판하면서도 참된 사랑을 부각시키는 내용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이 작품은 베를린, 런던, 파리에 이어 1907년 뉴욕에서 1년 내내 공연되어 미국 초기 뮤지컬의 탄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음악이 청중들에게 쉽고 유쾌하게 다가오기 때문에 뮤지컬 창법으로 공연해도 무방할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오페라축제에 출품된 오페라 '메리위도우'의 커튼콜 장면 .
대한민국오페라축제에 출품된 오페라 '메리위도우'의 커튼콜 장면 .

5월 6일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메리 위도우>는 음악사의 한 모퉁이를 직접 체험할 수 있게 해 준 의미 있는 공연이었다. 재작년부터 이 작품을 공연해 온 (사)경상오페라단은 올해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에서 이 작품을 선택했다. 지난 2년 동안 코로나로 힘든 나날을 보낸 관객들에게 유쾌한 힐링을 선사하기에 적절한 작품이었고, 제작진과 출연진의 감회도 남달랐을 것이다.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즐겁고 유쾌하기를 바란다”는 기획의도가 잘 살아난 것으로 보인다. 음악은 시종일관 흥겨웠다. 부드럽고 경쾌한 빈 왈츠의 정취가 바탕을 이루지만, 프랑스 보드빌(Vaudeville 노래, 춤, 연극이 결합된 버라이어티 쇼) 풍의 음악, 헝가리와 폴란드의 전통 춤곡, 말이 질주하는 듯한 갤럽Gallop, 씩씩한 리듬의 행진곡 등이 이어졌다. 1막 파리의 폰테베드로 대사관, 2막 한나의 정원, 3막 카페 막심으로 꾸민 한나의 응접실 등 세팅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색채의 음악으로 신선함을 유지했다. 

3막, 주인공 한나와 다닐로의 유명한 왈츠는 가장 큰 박수를 받았다. 한나 역의 소프라노 박유리는 소리의 결이 매우 곱고 섬세했다. 강약 기복이 좀 심한 건 아쉬움을 남겼다. 다닐로 역의 바리톤 박정섭은 매력과 개성이 넘치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목에 힘이 들어간 발성 때문에 다소 불편하게 느낀 청중도 있었을 것 같다. 두 사람은 준수한 외모와 아름다운 목소리로 열연했다. 2막, 발렌시엔과 카미유의 이중창은 압권이었다. 오케스트라의 관악기가 근사한 앙상블을 들려주었고 발렌시엔 역의 서주희, 카미유 역의 이상규의 열정적인 노래가 가슴을 적셨다. 소프라노 서주희는 시종일관 안정된 노래와 연기로 제 몫을 훌륭히 해냈다. 테너 이상규는 미성이 돋보였는데, 조금만 더 꽉찬 소리를 들려주었다면 주연급으로 손색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케스트라는 전체적으로 훌륭했지만, 바이올린 솔로 부분이나 대사의 배경 앙상블을 연주할 때 음량이 다소 작게 느껴졌다. “여자의 마음은 어려워”라고 노래하는 장면 등 몇몇 대목은 음악을 반복하여 관객들이 박수를 치며 동참하도록 유도했는데, 좋은 시도였다고 생각된다. 

오페레타에서 춤을 빼놓을 수 없다. 레하르의 신나는 음악에 어울리는 다양한 춤이 즐거움을 배가시켰다. 군중 장면과 무용 장면을 역동적으로, 자연스레 처리한 연출이 무용에 생기를 더했다. 무대는 화사하면서도 너무 요란하지 않은, 센스있는 디자인이었다. 폰테베드로Pontevedro라는 나라는 가상 국가인데, 발칸 반도에 있는 몬테네그로를 모델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한나의 재산이 프랑스로 넘어갈 경우 이 나라가 큰 타격을 입는 걸로 설정했는데, 1막 대사관 장면에서 이 나라가 처한 상황을 간략히 소개해 주었다면 극의 몰입도를 높일 수 있었을 것 같다. 가령, 폰테베드로 왕이 영상 메시지를 통해 절박한 상황을 전달하도록 연출하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음악이 나오지 않는 대사 부분은 좀 더 간결하고 스피디하게 처리했으면 좋았겠다.

공연은 우리말로 이뤄졌다. 가사와 대사를 번역하는 게 쉽지 않은데, 요즘 일상 언어를 적절히 구사하여 재미를 더했다. ‘명품과 짝퉁’, ‘막장 드라마’, ‘카드 한도 초과’, “안방도 개방해야 해, 자유무역시대에 웬 보호무역?” 등의 우리말 대사가 관객들에게 익살스레 다가왔다. 한나의 돈을 보고 몰려든 남자들을 군대식으로 줄 세운 것도 한국식의 재미있는 연출이었다. 위도우(독일어 Widwe, 영어 Widow)는 번역하기 까다로운 단어다. ‘미망인’은 “남편이 죽었는데도 아직 따라죽지 않은 사람”이란 뜻이고, ‘과부’(寡婦)는 그런 여성이 스스로 낮춰서 부르는 말이다. 둘 다 적절치 않은 말이고 마땅한 대안이 없으니 그냥 ‘위도우’라고 한 게 올바른 선택으로 보인다. 등장인물 이름 중 ‘까뮈’는 작가 알베르 카뮈Camus와 같은 이름으로 오인될 수 있으니 카미유 생상스리고 할 때처럼 ‘카미유’Camille로 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셰익스피어 희곡에 오트 니콜라이가 곡을 붙인 오페라 <윈저가의 유쾌한 아낙네들>(1849)과는 다른 작품이니 헷갈리지 말기. 팬데믹 2년 동안 고생한 끝에 엔데믹으로 접어드는 지금, 최선을 다해 멋진 무대를 선사한 (사)경상오페라단, 그리고 모든 출연자와 제작진에게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