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타는 목마름으로”…독재에 맞선 저항시인 김지하 별세
[부고]“타는 목마름으로”…독재에 맞선 저항시인 김지하 별세
  • 진보연 기자
  • 승인 2022.05.09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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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여년 투병생활 끝 8일 오후 자택서 타계
70년대 민청학련 사건으로 옥고, 사형 선고 받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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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시인

[서울문화투데이 진보연 기자]군사 독재시절 반독재‧민주화 운동을 펼친 저항시인 김지하(본명 김영일) 시인이 지난 8일 별세했다. 향년 81세. 

‘타는 목마름으로’, ‘오적’ 등 현대사의 굴곡을 시에 담아낸 김지하 시인은 1년간의 투병 생활 끝에 강원 원주시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임종은 김지하 선생과 동거 중이던 둘째 아들 김세희 토지문화재단 이사장 내외가 함께 했다.

1941년 전라남도 목포에서 태어난 시인은 1954년 강원도 원주로 이주했고, 서울 중동고를 나와 1959년 서울대 미학과에 입학했다. 입학한 이후부터 4.19 혁명, 민족통일전국학생연맹 등 학생운동에 참여했다. 1964년 서울대 문리대에서 열린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 조사를 쓰는 등 반독재 투쟁에 앞장서다 체포되어 수감생활을 하기도 했다.

대학을 졸업한 직후인 1969년 시 전문 문예지 <시인>에 김지하라는 필명을 사용해 ‘서울길’, ‘황톳길’, ‘비’ 등 5편의 시를 발표하며 세상에 나왔다. 이후 그는 유신 독재에 저항하며 반독재‧민주화의 상징으로 불렸다. 1970년 <사상계>에 권력층의 부정부패를 판소리 가락으로 풍자한 ‘오적’을 발표한다. 개발독재 시대 부정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한 이들을 을사오적에 빗대 비판한 이 시로 인해 김지하 시인은 반공법 위반으로 또 한 번 체포되지만 국내외로 논란이 지속되자 한 달 후 석방된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을 배후 조종했다는 혐의를 받아 사형 선고를 받았으나 무기징역으로 감형된다. 사형을 선고 받은 직후부터 구명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노암 촘스키, 장 폴 사르트르 등 국제적인 지식인들이 석방 호소문에 서명하는 등 압박이 거세지자 김지하 시인은 1975년 형집행정지 처분으로 출옥한다. 그러나 체포가 거듭되어도 김지하 시인은 세상에 대한 발언을 멈추지 않았다. 70년대 대표적인 저항시 ‘타는 목마름으로’(1975) 발표, 옥중기 ‘고행-1974’에서 인혁당 사건 조작 폭로 등으로 다시 체포됐다가 1984년 사면 복권된다.

첫 시집이었던 <황토>(1970) 이후에 <타는 목마름으로>(1982) 시집을 출간하고 1980년대에는 생명사상에 빠져든다. 시집 <애린>(1986), '이 가문 날에 비구름'(1988) 등 작품을 내놓고 90년 이후에도 <중심의 괴로움>(1994), <화개>(2002) 등을 출간한다.

1975년 아시아 아프리카 작가회의 로터스 특별상, 1981년 국제시인회 위대한 시인상, 브루노 크라이스키상, 2002년 제14회 정지용문학상, 제10회 대산문학상, 제17회 만해문학상, 2003년 제11회 공초문학상, 2005년 제10회 시와 시학상 작품상, 2006년 제10회 만해대상, 2011년 제2회 민세상 등을 수상했으며, 노벨문학상·노벨평화상 후보에도 올랐다.

김 시인은 1970년대 저항시를 주로 발표했으나 1980년대 이후부터 생명사상을 몰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1986년 ‘애린’을 세상에 내놓은 이후 생명사상, 한국의 전통 사상 등 주로 철학에 바탕을 둔 많은 시를 발표하는 듯 했으나 1991년 명지대 학생 강경대 군이 경찰에 폭행당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이에 항의하는 분신자살이 이어지자 조선일보 칼럼에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우라’는 글을 기고,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민주화 운동의 상징으로 불리며 진보 진영에서 존경받아왔으나 일부에서는 ‘변절자’라며 비판하기도 했다. 특히 선생의 구명운동을 위해 세워진 자유실천문인협의회(현 작가회의)에서는 그를 제명시키기도 했다.

10년 뒤 ‘실천문학’ 여름호 대담에서 칼럼과 관련해 해명하고 사과의 뜻을 표명했다. 2012년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를 공개 지지했다. 2018년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지했던 것을 잘못된 판단이었다며 촛불집회와 미투 운동을 긍정적인 견해를 전했다.

김지하 시인은 시집 <흰 그늘>(2018)과 산문집 <우주생명학>(2018)을 끝으로 절필을 선언했다.

빈소는 원주 세브란스기독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1일이다. 장지는 배우자인 김영주 전 토지문화재단 이사장이 잠든 원주 흥업면 선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