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음과 이음》展, 첫 번째 파도(一浪)를 따르는 힘찬 물결들
《동음과 이음》展, 첫 번째 파도(一浪)를 따르는 힘찬 물결들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2.05.10 09: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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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1~23, 동덕아트갤러리 기획초대전
일랑 이종상 화백 필두, 47명 화백 참여
한국 고유 미학에 대한 세대를 넘어선 지향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세상이 변하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는 시대다. 미술계에 갑작스레 불어 닥친 NFT 열풍은, NFT가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우리 삶 안으로 가져와야하는지 알려주지 않은 채 세상에 등장했다. 요즘은 NFT 미술품에 껴있던 거품도 점차적으로 사라지고 있다. 현상만을 좇았던 이들이 절망을 맛보고 있기도 하다.

▲이종상, 원형상 -일획Ⅱ,130×162cm, 장지에 유탄, 어교, 2003 (사진=동덕아트갤러리 제공)
▲이종상, 원형상 -일획Ⅱ,130×162cm, 장지에 유탄, 어교, 2003 (사진=동덕아트갤러리 제공)

변화가 일상이 된 지금, 현상보다 본질이 중요하다는 말이 다시금 시대의 제언이 되고 있다. 이런 시대의 흐름을 돌아보며, 한국 미술이 올곧게 다시 붙잡고 나아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제안하는 전시가 준비됐다. 동덕아트갤러리에서 기획초대전으로 열리는 《동음(同音)과 이음(異音)》이다. 5월 11일 개막해 오는 23일까지 관람객을 기다린다.

새로운 현상들이 세계를 가득 채우고 있는 때일수록, 다시 돌아보고 찾아야 할 것은 근본과 원형이다. 이번 전시는 한국 미술계 원로 작가인 일랑 이종상 선생을 중심으로 한국화를 통해 한국미술의 원형이 무엇인가를 탐구한다.

▲김성희, 별난 이야기 1905, 80×141cm, 한지에 먹과 채색, 2019
▲김성희, 별난 이야기 1905, 80×141cm, 한지에 먹과 채색, 2019 (사진=동덕아트갤러리 제공)

일랑 이종상 화백은 우리 고유의 미학을 깊이 연구하고 파고들면서도, 이를 낡은 감성과 언어가 아닌 이 시대의 감성과 언어로 형상화 해왔다. 이번 전시 기획의 글을 쓴 이주헌 미술 평론가는 이 화백에 대해 “사람들이 미래와 과거를 놓고 갈등을 벌일 때 그의 시간은 과거 와 미래로 동시에 흘렀고, 그는 전진함으로써 역진했으며 역진함으로써 전진했다. 그에게 과거와 미래, 동과 서 같은 시공의 구분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어느 때, 어느 장소가 아니라 나 자신이었고, 나 자신이 천지인(天地人)의 중심이 되어 세계와 인간과 삶을 통찰하며 묘파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예술에 앞서 인간을 이야기했고, 작품에 앞서 인품을 이야기했다”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이런 격변의 시대일수록 그의 예술 인식과 세계 인식을 돌아봐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이번 전시는 첫 번째 파도인 일랑 이종상 화백과 그를 따랐던 제자와 손제자들의 참여로 완성됐다. 전시에는 총 47명의 원로, 중견, 소장, 신진 작가가 모였다. 시대의 간극을 뛰어넘어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 앞으로 신진부터 원로 세대의 미술인 모인 자리다.

▲김선두, 느린풍경-별 헤는 밤, 131×164cm, 장지에 먹, 분채, 2021
▲김선두, 느린풍경-별 헤는 밤, 131×164cm, 장지에 먹, 분채, 2021 (사진=동덕아트갤러리 제공)

이 화백의 독도그림은 수많은 후배 예술가들의 지표와도 같았다. 그의 그림이 한국인 마음속에서 하나의 준거이자 기준이 됐고, 한국인의 기상을 상징했다. 그를 따른 열성적인 제자들은 어느새 한국 화단의 한 중추로 우뚝 서게 됐다.

일랑 선생 외에 서울대를 졸업한 이철주를 필두로 송수련(중앙대), 석철주(추계예대), 오숙환(이화여대), 강미선(홍익대), 홍순주(동덕여대), 조환(세종대), 이인(동국대) 등 다양한 학교 출신의 제자들이 이번 전시에 모였다. 또한, 제자들의 제자인, 이 화백의 손제자격인 서민정(고려대)이 전시에 함께 참여하기도 한다.

▲이승철, 종이보자기, 50×38cm, 한지, 닥, 수간채색, 2015
▲이승철, 종이보자기, 50×38cm, 한지, 닥, 수간채색, 2015 (사진=동덕아트갤러리 제공)

이 화백은 “시대감각에 맞지 않으면 문화는 소멸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시대감각에 맞게끔 자신의 조형의 실험과 진화를 끊임없이 꾀했다. 이점은 그를 따른 제자들에게도 이어졌다. 전시는 변화의 시기 속 한국미술이 향해야 할 길, 한국인의 미학이 나아가야할 길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면서 그 근원을 ‘한국화’에서 찾아본다.

이 평론가는 “이 세상에 ‘로컬’ 없는 ‘인터내셔널’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작가가 ‘인터내셔널’하게 되었다는 것은 그가 지닌 ‘로컬’의 요소가 ‘인터내셔널’ 하게 승화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 평론가는 한동안 부상했던 ‘단색화’도 한국화의 정신적, 미학적 유산 없이는 설명이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다고 말한다.

▲이인, 검은, 어떤 것, 112×162cm, 캔버스천위에 혼합재료, 2022
▲이인, 검은, 어떤 것, 112×162cm, 캔버스천위에 혼합재료, 2022 (사진=동덕아트갤러리 제공)

47명의 작가가 모인 전시는 다채로운 작품을 선보인다. 한 명의 작가가 품고 있는 세계와 색채는 모두 개성이 강하고 작가적 특성이 강조된다. 그럼에도 47명의 작품은 전시장 안에서 어우러진다. 한국화가 지니고 있는 정서와 깊이가 비슷한 울림을 만들어낸다. 전시 제목 동음(同音)과 이음(異音)은 같은 소리이자 다른 소리를 내는 47개의 화폭을 의미하는 듯 하다.

변화의 파고 속에서도 단단하게 새로운 물결을 일으켜 나아간 이 화백과 그를 따른 파도들의 흔적, 그 파도의 힘과 지향을 느껴볼 수 있는 전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석철주, 자연의 기억 21-53, 194×130cm, 캔버스, 아크릴릭, 2021
▲석철주, 자연의 기억 21-53, 194×130cm, 캔버스, 아크릴릭, 2021 (사진=동덕아트갤러리 제공)

전시 기간 중에는 <한국화의 현황과 전망>을 살펴보는 세미나도 기획됐다. 오는 5월 15일 오후 4시에 동덕아트갤러리에서 개최된다. 김백균 중앙대 교수가 ‘근대 중국화의 기원’, 고충환 미술평론가가 ‘한국화의 현황과 전망’, 손연칠 동국대 명예교수가 ‘근대 일본화의 정립과정과 한국미술교육에 대한 소고’를 주제로 발표한다. 이후 이승철 동덕여대 교수가 사회를 맡아 김선두(중앙대학교 교수), 김성희(서울대학교 미술대학장), 정종미(고려대학교 교수)가 토론을 진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