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숙의 문화읽기]문화지성 김종규와 돈암서원 책판의 귀환
[성기숙의 문화읽기]문화지성 김종규와 돈암서원 책판의 귀환
  •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무용평론가
  • 승인 2022.05.11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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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무용평론가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무용평론가

우리 문화계에서 김종규 선생은 특별한 존재다. ‘문화대통령’, ‘문화계의 대부’, ‘문화계 마당발’ 등 선생을 수식하는 용어는 실로 다채롭다. 무엇보다 선생은 출판 업적과 문화유산 보존에 헌신한 공로가 크다. 1960년대 중반 형님이 운영하던 삼성출판사에 첫 발을 내디딘 이래 출판업에 인생 전반을 묻었고, 1990년 국내 최초로 삼성출판박물관을 개관하여 출판문화의 정신문화적 가치를 일깨웠다. 2000년대 이후엔 문화유산국민신탁 활동에 열과 성을 다하고 있다. 문화유산국민신탁은 지난 2007년 유홍준 문화재청장 시절 설립되었다. 김종규 선생은 출범 당시부터 지금껏 무보수 봉사직으로 한국 문화유산 지킴이 역할을 자처해 왔다. 

주지하다시피, 문화유산국민신탁은 국민과 기업, 단체, 국가, 지자체에서 기부 또는 증여받거나 위탁받은 재산과 회비 등으로 운영된다. 문화유산국민신탁이 영국의 내셔널트러스트를 모델로 했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보다 내밀한 시선으로 들여다보면 조선시대 향촌사회의 자치규약인 향약(鄕約) 정신과도 맞닿아 있다. 

10여년 전 조정래의 장편소설 『태백산맥』의 배경이 된 전남 보성여관을 복원한 것을 계기로 문화유산국민식탁은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이후 울릉도 도동리 일식가옥을 비롯 부산의 고급 일식가옥 정란각, 그리고 서울 정동의 중명전을 복원하여 위탁관리하고 있다. 그 외 서울 통인동 이상의 집, 경주의 윤경렬 옛집, 군포 동래정씨 동래군파 종택 등도 문화유산국민식탁 품안에 있다. 또 미국 워싱톤에 있는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을 공유유산화하는 작업에도 힘을 보탰다. 이른바 ‘K-헤리티지(K-Heritage)’를 선도하는 중심에 서 있는 셈이다. 

문화유산국민신탁이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재 NGO 단체로 발돋움하기까지 김종규 선생의  역할은 가히 절대적이라 하겠다. 선생은 문화유산의 복원과 보존을 위한 재원마련 방책으로 광범위하게 구축된 인맥을 활용한다. 그의 인맥은 문화계를 넘어 정계, 관계, 재계 등으로 확장되어 거대한 산맥을 이룬다. 이를 배경으로 문화계 안팎을 누비는 선생의 마당발적 행보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일년 365일 김종규 선생의 일정은 매우 촘촘히 짜여져 있다. 선생은 하루에 몇 개의 일을 소화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출판계 현장을 비롯 박물관, 미술관, 공연장 등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달변의 축사’를 통해 주최측을 격려하고 성원한다. 그럼에도 피곤한 기색을 찾을 수 없다. 비결이 뭘까?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스스로 좋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선생이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논어』의 글귀에 답이 있다.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무엇을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 

‘사회 환원’ 삶의 중요한 가치 삼은, 김종규 선생의 특별한 행보

최근 김종규 선생이 오직 좋아서 한 일이 큰 화제를 낳았다. 지난 4월 7일, 삼성출판박물관이 소장한 책판 54점을 기호유학의 본산인 논산 돈암서원에 기증했다는 훈훈한 소식이 전해졌다. 기증된 책판은 『가례집람』, 『사계선생연보』, 『사계선생유고』, 『사계전서』, 『경서변의』, 『신독재선생유고』, 『신독재전서』, 『황강실기』 등이다. 희소적 가치가 크다. 값어치를 셈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이 학계의 평가다. 

이번에 기증된 책판은 원래 돈암서원에 있던 것들이다. 50여년 전 김종규 선생이 인사동에 떠돌던 책판을 당시 서울 변두리 집 두 채 값을 주고 매입하여 소장해 왔다고 한다. 선생은 “문화유산은 제자리에 있을 때 값어치 있는 것”이라 여긴다. 따라서 이번 돈암서원 책판 기증은 원래 주인에게 돌려준다는 의미가 깃들어 있다. 쉽지 않은 일이다. 또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이른바 ‘사회 환원’을 삶의 중요한 가치로 삼고 있는 김종규 선생의 특별한 행보라서 더욱 빛나는게 아닐까.

지난달 7일 돈암서원에서 “사계의 귀환-돈암서원 목판 기증식” 행사가 열렸다. 유실된 문화재가 본래의 자리로 귀환한 것을 축하는 자리였다. 문화유산의 역사적 가치와 더불어 기증의 의미를 반추케 했다. 또한 돈암서원에 봉안된 사계 김장생(金長生, 1548~1631)의 예학정신을 새삼 일깨우는 기회를 제공했다.

김장생은 조선 중기의 정치가, 사상가로서 예학(禮學)의 태두로 불린다. 송이필에게 입문하여 예학을 공부했고, 조선유학의 대가 이이·성혼 문하에서 성리학을 배웠다. 인조반정 이후 서인의 영수로서 관직에 나아가 정국운영에 결정적으로 관여하면서 당대 최고 실력자로 통했다.  김장생은 양란 이후 사화와 반란, 잦은 전쟁 등으로 조선의 지배체제가 흔들리자 혼란한 국가 기강을 바로잡고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이념적 체계로서 예학을 표방했다. 예학은 엄격한 질서와 정교한 형식을 중시하는 학문으로 조선 중기의 시대정신을 반영한다.    

사계 김장생은 예학을 주제로 다양한 저작을 남겼다. 『상례비요』 4권을 비롯 『가례집람』, 『전례문답』, 『의례문해』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밖에 『근사록석의』, 『경서변의』 그리고 시문집으로 『사계선생전서』가 전한다. 아들이자 제자인 김집을 비롯 송시열, 송준길, 강석기, 장유 등이 사계가 정립한 조선 예학의 법통을 이었다. 조선예학의 종장인 사계는 1688년부터 문묘에 배향되기 시작했다. 논산의 돈암서원을 비롯 전국 십 여곳의 서원에서 사계 김장생 선생이 제향되고 있다. 한국유학사에서 그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2019년 문화재청 주도로 돈암서원을 비롯 한국의 서원 아홉 곳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한국의 서원이 유네스코에 등재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교육과 사회적 관심, 문화적 전통 등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은 결과의 소산인 것이다. 1634년 건립된 돈암서원은 기호유학의 종가로서 서인계 학맥의 거점 역할을 한 유서 깊은 곳이다. 한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살아남은 몇 안되는 서원 중 하나로 기록된다.   

알다시피, 서원은 조선시대 대표적 엘리트 사립교육기관으로 통한다. 유가의 나라인 중국의 서원을 모델로 했으나 차츰 우리 고유의 문화와 사상으로 발효되어 무르익었다. 조선의 서원은 강학, 제향, 출판 등 여러 역할을 담당했다. 돈암서원은 제향의 기능에 방점이 있었다. 이번 책판의 존재에서 돈암서원이 강학과 제향 못지않게 출판을 통한 기록화 작업에도 뚜렷한 족적을 남겼음을 알 수 있다. 개인 소장 책판을 본래의 장소인 돈암서원에 아무 조건없이 기증한 김종규 선생의 남다른 행보를 통해 한국유학사의 한 지류를 엿본다. 더불어 우리시대 대표적 문화지성 김종규 선생의 숭고하고 심오한 정신을 새삼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