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혜의 조명 이야기] 도시조명의 색과 그 의미
[백지혜의 조명 이야기] 도시조명의 색과 그 의미
  • 백지혜 디자인 스튜디오라인 대표, 서울시좋은빛위원회 위원
  • 승인 2022.05.11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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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몇일전 ‘서울월드컵경기장, 한달간 보랏빛으로 물든다’ 는 기사를 보고 흥미로웠던 부분은 ‘보랏빛’에 대한 설명이었다. 그 색의 출처가 미국의 색채연구소 펜톤에서 발표한 2022 올해의 색 '베리페리(Very Peri)'라는 것이었다.

누구나 미술시간에 한번쯤은 들었을 팬톤은 색일람표(PANTONE Color Specifier)를 만든 회사로 저마다 다르게 보고, 표현하는 색상을 소통할 때 꼭 필요한 색채언어인 팬톤 스케일로 유명하다. 이 회사는 매년 그 시기의 이슈나 트렌드를 담아 올해의 색을 발표하는데, 2022년 올해의 색으로 베리페리가 선정된 것이다. 베리페리는 에너지로 가득찬 붉은색과 평온한 분위기의 파란색이 혼합된 색으로 설명하며 대비되는 반대의 가치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시기, 현실에서의 디지털 세계, 메타버스를 담았다고 한다. 특이하게도 올해의 색, 베리페리는 기존의 색 체계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색으로 이제까지 살아보지 못했던 변화의 세상을 살기 위해 새로운 관점,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어 새로운 색을 선정했다고 한다.

엘이디 광원의 사용으로 다양한 컬러 조명 연출이 가능해졌고, 알록달록 수많은 컬러조명이 도시 전역에 퍼져 랜드마크 건축물, 다리를 비추고 있어도 ‘왜 그 색인가?’라고 묻는 사람도, ‘왜 이 색이다’라고 답하는 사람도 없었다.

서울로 7017 프로젝트를 디자인한 비니마스 Winny Mass가 갤럭시 블루라고 부르며 짙푸른 색 조명으로 물들인 서울로 야경을 제안했을 때, 그것의 의도나 컬러의 톤, 느낌에 대한 질문 대신 우리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상 파란색 조명은 곤란하다’는 이야기만 되풀이 했다. 또 파크원의 붉은 색 조명이 한강을 핏빛으로 물들여 무섭다는 민원이 있다고 조명을 흰색으로 바꾸는 것을 검토해보라는 터무니 없는 요청에 난감해 하던 기억도 있다. 그래서 월드컵 경기장의 지붕에 컬러조명 연출을 하는데 그 컬러에 대한 논리, 의미를 공유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안다.

올해의 색 베리페리를 또 다른 글에서는 ‘가장 따뜻한 파란색’이라고 묘사한 것으로 보면 우리가 아는 ‘보라색’과는 조금 차이가 있으리라 예상된다. 짐작컨대 붉은색과 파란색이 일대일로 혼합된 보라가 아닌 파란색에 붉은 기운이 도는, 그래서 부드러운 느낌의 청색광이 아닐까

 

색상 의미 공유돼야 감흥 주고 가치 높일 수 있을 것

 

유럽에서는 신뢰, 깊이감을 나타내는 청색 계열 조명을 도시에 적용하는 것에 대해 매우 호의적이다. 프랑스의 개념예술가 얀 카르살레 Yann Kersale는 특별히 청색광을 자주 사용한다. 그는 주황색 나트륨등으로 가득한 파리 구도심을 배경으로 Grand Palais 라는 청색 빛의 야간 랜드마크를 만들어 내었고, 지루해 보이는 콘트리트 구조물, 잠수함기지Nuit des Docks에서는 건축 요소 간의 깊이감을 극대화하는데에 청색광을 사용하였다. 그는 공원에서 나무의 풍성함을 강조하기 위하여 파랑과 녹색의 조명을 여러 겹으로 비추도록 계획하며 노랑이나 주황, 적색과 같은 따뜻한 색의 조명은 숲을 표현하는데 적절하지 않다고 이야기 하였다.

청색광으로 가장 유명해진 장소는 Buchanan Street, Glasgow 일 것이다. 영국의 조명디자이너 스피어스 Jonathan Speirs가 디자인 한 이 프로젝트는 도시를 창백하게 보이게 한다며 꺼려했었던 청색광에 대한 재평가를 이끌어 내었고 나아가 도시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다양한 사례들이 나오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스피어스는 유럽의 오래된 도시들이 가로등에 의해 주황색 덩어리로 보여져 아무런 흥미도 주지 못한다며 백색광으로 비추어지는 건축물과 보행로를 분리하기 위해 컬러 조명을 적용하고자 하였고, 그가 선택한 보행로의 조명 색상은 스코트랜드 국기 색상인 청색이었다.

도시의 야간경관에서 컬러 조명은 주목성을 높이고 매력적인 이미지가 되도록 한다. 중요한 것은 연출되는 색상은 그 의미가 공유되었을 때 시민들에게 감흥을 줄 수 있으며 그 가치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반포대교 무지개분수의 오색찬란한 색상보다 월드컵공원의 보라색 조명을 의미있게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은 그 속에 담긴 의미 때문인 것이다.

최근 부산의 광안대교와 부산항대교에는 노란색과 청색의 조명이 켜졌다. 남산타워에도 디디피와 세빛섬에서도 같은 색의 조명을 볼 수 있다. 노랑과 파랑은 우크라이나 국기의 색상으로 세계의 평화를 기원하고 전쟁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위로하는 의미를 담은 빛이다.

이런 빛이 가장 아름다운, 큰 감동을 주는 도시의 조명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