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혜숙의 장르를 넘어서]우리의 호흡법•소리내기•말하기 등: 배우훈련법 찾아세우기 작업 2-1
[양혜숙의 장르를 넘어서]우리의 호흡법•소리내기•말하기 등: 배우훈련법 찾아세우기 작업 2-1
  • 양혜숙 한국공연예술원 이사장
  • 승인 2022.05.11 1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양혜숙 한국공연예술원 이사장

(지난호에 이어서)

어찌 되었던 나의 전통문화예술에서의 뿌리찾기 작업은, 너무나 여러 갈래로 흩어져 발전해 온 소리와 춤은 오랜 세월을 겪으며, 그 혼합된 뿌리찾기가 간단치 않을뿐더러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난맥상이다. 어떤 체계 있는 몸통을 찾아 그 몸통에서 뿜어내는 에너지의 뿌리를 찾고자 한 의욕은 어쩌면 처음부터 무리였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작업을 지속하며 많은 정리된 나의 생각을 공연이란 실제 속에 펼쳐보며 나름대로 실천할 수 있는 유익한 결론을 조금씩 도출해내고 있다.

그 답은 단 하나, 한국인의 소리는 크게 세계의 소리 체계를 <미성>을 지향하는 서양음악, 특히 독일과 이태리를 중심으로 자리 잡은 서양의 음악 체계와 중국 경극을 통하여 발전한 <가성>을 통하여 내면의 세계를 표출해 낸 소리의 세계, 더 나아가 터키와 한국에서 그 발전을 볼 수 있는 <통성>의 소리 체계, 그와 연계된 인디언들의 자연을 추구한, 자연을 닮고자 한 , 자연과 합일을 추구한 <자연의 소리>로 구분해 볼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여러 종류의 소리 체계는 그 발성이 인체의 어느 부분을 통하여 구체화되며, 그렇게 구체화된 소리가 모여 인간의 어떠한 감성을 자극하며 발전하였느냐에 따라 각기 문화의 특성을 이루어 갔으며, 더불어 함께 발전한 <박자 > 감의 연계구조는 그들 인간군의 삶의 구조와 세월을 통하여 정착되었음을 말해준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김월하 선생님의 조선시대 악(樂)을 통하여 나라와 사람을 다스리고자 한 성리학이 바탕이 되어 발전한 천상 지향의 문화 속에 뿌리내린 고귀함을 지향한 <가곡>과 <가사>의 소리를 통하여 우리에게 전해지는 소리는 요즈음의 인간. 평등을 지향하는 세계에서는 뿌리내리기 어려운 고귀하고 아름다운 소리의 세계로 생각된다. 세종대왕이 작곡하셨다는 한국의 교향곡 스타일의 음악을 들어보아야 우리는 그 고매하고 우아한, 그래서 유려하다는 차원으로 우리의 감성을 유도하고 있음을 보면 안다.

그와는 반대로 조선시대로 내려오면서 발전되고 자리 잡은 <판소리>의 소리 체계는 세상의 다수의 평민의 일상과 그 문화 군을 상대로 발전한 그야말로 각박한 현실 속에 뿌리내린 평민과 일상을 상대로 발전한 소리 군의 세계인 것이다. 이렇게 대비되며 발전해온 우리의 소리 세계는 왜정 치하의 시대를 거치고, 서양문화가 도래하면서 국악과 서양음악이라는 이분법 체계의 문화 풍토 속에서 또 다른 형태의 소리 세계를 구축해낸다. 그 속에서 끈질기게 살아남은 소리 체계가 유독 판소리로 우리의 문화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양반의 세계와 평민의 세계를 다리 놓은 <시조>의 편안하고 운치 있는 소리의 세계는 흔적도 없이 사리지기 일보직전이다. 다행히 유네스코에 세계 인류 무형문화재로 등재된 이후 월하 문화재단을 토대와 중심으로 하여 김월하 선생님이 기거하시던 수표로에 터를 잡고 버티는 김경배 선생을 중심으로 버티는 우리나라 소리문화의 한 뿌리를 근근이 지켜가고 있는 상태다.

 

故 김소희, 김월하, 성창순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이러한 소리문화의 배경을 감안할 때에 우리는 우리의 오늘을 지켜주는 판소리에 의지하며 전통을 지킨다는 명맥을 지키며 창극의 여러 변모를 경험하며 여전히 우리 소리의 명맥을 유지하려 애쓰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1991년 처음으로 우리 소리와 말, 우리 박자와 리듬을 찾아 배우 교육의 실천을 시도한 소리의 스승은 김월하 선생님과 김소희 선생님이 추천해주신 성창순 선생님을 두 산맥으로 삼아 교육 코스를 3개월간 실천하여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1991년 <배우를 위한 우리말 바로 하기 교육>을 내걸고 시행한 나의 첫 교육 과정은 이렇게 시행되었고 3,40명이 넘는 지원자 중에서 12명을 뽑아 지금의 배우로 성장한 전수환 학생을 조교로 참으로 멋진 교육을 월하 재단의 연습실로 터 잡아 월하 선생님을 모시고 가곡과 가사의 소리뿐 아니라 당시 유행하던 유행가의 창법 등 가사의 세계는 맛보기로, 주로 시조와 더불어 당시 유행가 소리 세계를 섭렵하며 즐거운 소리 교육을 진행하였다. 당시 늦깎기로 선발된 시인이며 편집 출판에 종사하며 여전히 우리 기구 사단법인 한국 공연예술원의 부원장으로 기둥 노릇을 하고 계신 조국제 부원장도 당시 우리 학생 출신이다. 성창순 선생님의 바쁘신 일정 때문에 주 1회로 한정된 성창순 선생님의 판소리 교육 또한 학생들의 신명과 의욕을 북돋아 주었다. 판소리 창법의 맛보기로 단가가 판소리 세계의 안내자임을 깨달은 것도 그 과정에서 터득한 큰 수확이었다.

참으로 의미 있는 배우 교육의 출발의 장이였다. 모두 작고하셔서 지금은 뵐 수 없는 두선생님께 존경과 사랑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