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훈의 클래식비평]웃음 선사한 '리타' , 음악은 아쉬움 남겨
[이채훈의 클래식비평]웃음 선사한 '리타' , 음악은 아쉬움 남겨
  • 이채훈 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 전문기자, 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 승인 2022.05.11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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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회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 폐막 공연

제20회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가 막을 내렸다. 제작발표회, 스팟콘서트, 개막 포럼에 이어 4월 23일 첫 작품 <텃밭킬러>로 막을 올려서 5월 8일 폐막식까지, 159일의 대장정이었다. 대사와 노래를 우리말로 처리하여 관객들에게 쉽게 다가서고, 수준 높은 창작 오페라를 발굴하여 무대를 제공하고, 작은 공간에서 출연자들이 관객들과 호흡을 나눈 알찬 축제였다. 작품이 4편에 불과했고, 이 중 창작 오페라가 2편 뿐이어서 아쉬웠던 게 사실이다. 오케스트라 피트를 임시로 급조하여 연주했기 때문에 원곡 그대로의 앙상블을 기대하기 어려웠다는 점은 가장 큰 한계이자 숙제로 남았다. 

제20회 소극장오페라축제의 폐막작으로 올려진 '리타' 커튼콜 장면.
제20회 소극장오페라축제의 폐막작으로 올려진 '리타' 커튼콜 장면.

5월 8일 폐막작인 <리타>는 재미있었다. 1948년 서울, 고상하고 우아한 리타(소프라노, 스페인말 ‘세뇨리타’를 줄인 이름)는 카페 레지나를 운영하고 있다. 그녀는 전남편 강대로(가스파르, 바리톤)에게는 ‘매맞는 아내’였지만, 지금은 새 남편 조다하(페페, 테너)를 매니저로 부리며 툭하면 구타를 일삼는다. 어느날 카페 레지나에 찾아온 강대로, 그는 춘희에게 붙잡힐까봐 전전긍긍하고, 조다하는 그녀에게서 도망갈 기회가 왔다고 쾌재를 부른다. 리타가 조다하를 존중하며 살겠다고 다짐하자 해피 엔딩이 찾아온다. 

“오페라 본 거 뭐 있어? 물어보면 <오페라의 유령>을 얘기해요. 그건 오페라가 아니라고 하면 화를 낸다고요.” 연출자 김태웅이 관객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듯 오페라를 처음 보는 사람도 쉽게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였다면, <리타>는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관객들은 코믹한 상황과 슬랩스틱 연기에 많이 웃었다. 연출자가 ‘낭만 코믹 오페라’로 부른 이 작품은 소극장 연극을 보는 듯한 재미가 있었다. 그러나 코믹한 상황 연출에 치중한 결과 음악을 중심에 놓지 못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다. 출연자들은 연기력이 훌륭했는데, 이는 연출자의 지도에 힘입은 바가 클 것이다. 하지만 출연자들이 ‘연기도 잘 하는 성악가’가 아니라 ‘노래도 잘 하는 연기자’로 보였다면 본말이 전도된 게 아닐까? 오페라는 뭐니뭐니해도 음악인데, 관객들이 음악의 진수에 흠뻑 빠지도록 이끌지 못했다면 아무리 재미있어도 절반의 성공에 불과한 게 아닐까? 

오페라가 시작되기 전 “핸드폰의 전원을 꺼 달라”는 멘트를 조다하가 무대 뒤 대사로 처리한 것은 위트 있는 연출이었지만 너무 길었다. “관객들의 수준을 어떻게 보는 거냐”는 영순의 멘트까지만 하고 10초쯤 시간을 준 뒤 바로 음악을 시작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영순이 지휘자를 소개하는 장면은 소극장 연극의 묘미를 살린 연출이었지만, 음악 자체를 기다리는 청중들에겐 장황하게 보였다. 오프닝부터 도니제티의 훌륭한 음악이 뒷전으로 밀려났다는 인상을 주었다. 오케스트라는 금관과 팀파니가 포함된 원래 편성보다 훨씬 축소된 7명의 소규모 앙상블이었다. 열심히 연주했지만, 원작 오페라의 음악을 전달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누구도 탓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 있었다. 

제목을 그냥 <리타>라고 했는데, 1860년 파리 초연 당시의 부제 <매 맞는 남편>이나 <두 남자와 한 여자>를 살리면 너무 설명적이 될까봐 이렇게 한 것으로 보인다. 깔끔하고 간결하게 제목을 정한 것은 좋아 보였다. 원작에서 남자인 하인 보르톨로를 김영순이란 여자로 바꿨는데, 이것도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원작을 우리말로 각색할 때 설득력이 부족한 대목이 있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18세기 제노바에서 토리노 가는 길에 있는 여관을 1948년 서울 명동의 고급 카페로 바꿨는데, 남북 분단과 제주 4·3의 소용돌이가 일어난 1948년으로 정한 이유를 찾기 어려웠다. 그 해에 강대로가 미국 여자와 결혼해서 하와이로 가려 한다는 설정은 개연성이 모자란다. 강대로가 탄 배가 침몰하고, 이춘희가 살던 집이 불탔다는 상황을 연출하려고 굳이 1948년을 택할 필요가 있었을까. 또 하나, 강대로는 자기와 춘희의 결혼 증명서를 찾으러 왔다고 하는데, 원작에서 가스파르는 리타의 사망 증명서를 떼러 온 걸로 돼 있다. 원작의 합리적인 설정을 굳이 바꿔서 헷갈리게 만들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폐막 공연, 리타 역의 소프라노 한은혜, 조다하 역의 테너 이재식, 강대로 역의 바리톤 염현준은 열심히 준비해서 훌륭한 연기력과 가창력을 발휘했다. 특히 바리톤 염현준은 윤기 있고 중량감 있는 발성, 카리스마 있는 연기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김영순 역의 엄선영은 연극, 뮤지컬, 오페라를 넘나드는 재주꾼으로, 이날 노래는 없었지만 탁월한 연기로 오페라의 코믹한 느낌을 살리는데 크게 기여했다. 우리나라의 소극장 오페라는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출연 음악가들과 스탭들의 열정과 헌신이 있었기에 이제 어엿한 성년을 맞이했다. 내년에는 더 수준 높은 작품들을 만나는 기쁨을 선사해 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