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훈의 클래식비평]'로미오 vs 줄리엣' 맛깔난 음악, 산만한 무대
[이채훈의 클래식비평]'로미오 vs 줄리엣' 맛깔난 음악, 산만한 무대
  • 이채훈 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 전문기자, 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 승인 2022.05.1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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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회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 창작오페라
▲이채훈 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 전문 객원기자, 한국 PD연합회 정책위원<br>
▲이채훈 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 전문기자, 한국 PD연합회 정책위원

'로미오 vs 줄리엣'은 결혼 10년차 부부인 로미오와 줄리엣의 애증 이야기다. 오페라 가수인 두 사람은 “죽어도 같이 못 살겠다”는 이혼 위기의 커플인데,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에 캐스팅되면서 미묘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서로를 너무나 잘 아는 두 사람은 리허설과 공연 중 상대의 노래, 연기, 성격, 외모를 시시콜콜 지적하며 다툰다. 두 사람은 극중 역할과 실제 관계를 오가며 진심을 찾아가는 심리적 여정을 경험한다.  

오페라 속에 오페라가 있어서 <팔리아치>를 연상시키는 흥미로운 구성이었다. 신동일 작곡가의 음악은 맛깔났다. 두 사람의 솔로와 듀엣은 다양한 템포와 표정을 구사하여 적절히 변화를 주었다. 오케스트라는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플루트, 클라리넷, 타악기의 앙상블이었는데, 특히 4종류의 악기를 혼자 연주한 타악기 주자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신동일 작곡가는 “기악 파트보다는 성악가의 노래가 잘 들리도록 했다”고 밝혔다. 5월 4일의 출연자가 이런 작곡가의 의도를 충분히 살렸는지는 다소 의문이다. 로미오 역의 김태형와 줄리엣 역의 박다정은 아름다운 외모와 뛰어난 노래로 열연했지만, 음악의 맛을 100% 살리는 최고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박다정의 목소리는 줄리엣 역에 어울렸지만 김태형의 목소리는 너무 힘이 들어가 있어서 답답하게 느껴졌다.  

단 두 명이 출연하기 때문에 단촐한 연극적 재미를 기대했지만 전체적으로 산만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서로 지긋지긋해진 지금,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진 10년 전, 관계가 삐끗하기 시작한 3년 전을 오가는 시간 설정이 복잡했다. 여기에 현실과 오페라를 오가는 격자식 구성까지 더해지니 출연자가 두 명인데도 산만했다. 세트, 소품, 조명, 의상, 분장을 신속히 바꿀 수 없는 소극장 무대의 한계 때문에 어려움이 가중됐을 것이다. 

연출자 조은비는 관객과의 대화에서 “대본을 데칼코마니처럼 썼고, 무대 디자인을 대칭적으로 했다”고 설명하며 “이 부부의 특징은 악보와 포스터, 이태리어, 프랑스어 사전 등”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러한 의도가 관객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됐는지 다소 의문이다. 대사에서 “몇번을 말해”란 말로여 소통의 어려움을 강조했는데, 같은 대사가 여러 번 나오는 것은 그리 효과적이지 않았다. 앞부분에서 “너는 내 인생의 바리케이트” 등 두 사람 사이가 끝났다는 노래가 되풀이 나오는 것도 오페라의 진행을 더디게 했는데, 앙상블로 간결히 처리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줄리엣이 죽어있는 대목에서 로미오가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을 성찰하는 대사나 노래가 있었으면 구성의 완성도를 좀 더 높일 수 있었을 것 같다. 좀 더 다듬을 여지가 있는 대사도 있었다. “로미오는 너 너는 나의 로미오”에서 ‘너, 너’가 되풀이된 것은 뻑뻑하게 들렸고, “되돌릴 수 없는 건 없는 것”은 되돌릴 수 있다는 말인지 없다는 말인지 헷갈렸다. 

소극장오페라축제에 출품된 창작오페라 '로미오VS줄리엣'의 커튼콜.
소극장오페라축제에 출품된 창작오페라 '로미오VS줄리엣'의 커튼콜.

무대 한 가득 육면체 박스를 쌓아 놓은 것을 “집 나가려고 부부가 싸 놓은 짐”으로 알아본 관객이 몇 명이나 될지 의문이었다. “부부의 캐릭터를 미니멀하게 표현했다”지만, 무대를 꽉 채운 박스 더미는 부담스러웠다. 작곡가는 “플루트는 여자, 클라리넷은 남자를 표현했다”고 설명했는데, 비좁은 오케스트라 피트 속에 갇혀 있는 플루트와 클라리넷이 그런 역할을 하는지 알아 들은 청중은 별로 없을 것 같다. 타악기 주자가 맹활약했는데, 실제 연주 모습을 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면 무대 주인 행세를 하고 있는 박스 더미를 치우고 6명의 연주자들이 무대 위에서 연주하도록 했으면 훨씬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명만으로 처리한 미니멀한 무대에서 두 성악가와 여섯 명의 앙상블이 함께 연주했다면 음악을 충분히 돋보이게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