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뷰] 히토 슈타이얼 아시아 첫 개인전 《데이터의 바다》
[현장리뷰] 히토 슈타이얼 아시아 첫 개인전 《데이터의 바다》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2.05.12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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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CA 서울관, 오는 9월 18일까지
신작 ‘야성적 충동’ 최초 공개, 대표작 23점
동시대 최전선의 예술 선봬
▲지난달 MMCA 언론간담회에 참석한 히토 슈타이얼 (사진=MMCA 제공)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영국 미술 전문지 아트리뷰에서 2017년 미술계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선정된 미디어 작가이자 영화감독, 비평가인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 1966년 독일 뮌헨 출생)의 아시아 첫 개인전이 한국에서 열린다.

국립현대미술관(관장 윤범모) 서울관에서 지난달 29일 개막해 오는 9월 18일까지 열리는 《히토 슈타이얼—데이터의 바다》전시다. 이번 전시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커미션 신작 <야성적 충동>을 최초 공개하며, 작가의 작품 세계 전반을 아우르는 대표작 23점을 선보인다.

지난달 28일 열린 《히토 슈타이얼—데이터의 바다》 언론공개회에는 동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를 만나기 위해 많은 취재진들이 몰렸다. 전시를 기획한 배명지 학예사의 설명에 따라 전시투어가 진행된 이후 언론사 공동인터뷰가 진행됐다. 짧은 시간동안 이뤄진 대화에서, 작가는 코로나19 시기 본인이 겪은 변화와 함께 팬데믹, 전쟁, 기후위기를 겪고 있는 지금 시대를 바라보고 있는 관점을 공유했다. 또한, 최근 미술계에 불어닥친 NFT, 코로나 시대 미술관의 역할 등 생생한 동시대적 고민에 대한 작가의 생각도 들어볼 수 있었다.

아시아 첫 개인전 개최지로 ‘한국’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작가는 유머러스한 대답을 전했다. 히토는 “내가 한국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한국 국립현대미술관이 나를 선택해준 것이다. 나를 간택해줘서 정말 기쁘다”라고 말했다.

히토 슈타이얼은 2017년 MMCA과천관 《역사를 몸으로 쓰다》 전시에 참여하며, MMCA와 연이 닿게 됐다. 이후 2018년 다시 한 번 한국을 찾아 전시 기획을 준비하게 됐고, 당초엔 2020년 전시를 기획하고 있었다. 하지만, 팬데믹으로 인해 2022년이 돼서야 히토 슈타이얼의 개인전이 한국 관람객을 찾아오게 됐다.

전시 제목인 《데이터의 바다》는 히토 슈타이얼의 논문 「데이터의 바다: 아포페니아와 패턴(오)인식」(2016)에서 인용한 것으로, 오늘날 또 하나의 현실로 여겨지는 디지털 기반 데이터 사회를 새롭게 바라보고자 하는 전시 기획 의도를 담고 있다. 전시는 그의 신작을 먼저 선보이며 총 5부로 구성됐다. ‘데이터의 바다’, ‘안 보여주기-디지털 시각성’, ‘기술, 전쟁, 그리고 미술관’, ‘유동성 주식회사-글로벌 유동성’, ‘기록과 픽션’순이다.

▲히토 슈타이얼, 자유낙하, 2010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전경 2022)
▲히토 슈타이얼, 자유낙하, 2010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전경 2022) (사진=MMCA 제공)

미디어 작품이기 때문에, 작품 별 감상 시간이 일정시간 소요된다. 하지만, 필수적으로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히토 슈타이얼의 작품에선 즉각적으로 세계를 향해 던지고 있는 의문의 시각과 질문이 느껴진다. 또한, 전시 공간이 조금 어둡게 조성돼 있어 미디어 작품이 전하는 감각적 경험이 더욱 증폭돼 전달된다.

히토 슈타이얼은 가속화된 글로벌 자본주의와 디지털 사회 및 포스트 인터넷 시대 이미지의 존재론과 그것의 정치·사회적 맥락을 분석하면서 미디어, 이미지, 기술에 관한 주요한 논점을 제시해왔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각종 재난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기술은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가? 디지털 시각 체제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지구 내전, 불평등의 증가, 독점 디지털 기술로 명명되는 시대에 동시대 미술관의 역할은 무엇인가?” 등의 질문을 던진다.

▲히토 슈타이얼, 소셜심, 2020
▲히토 슈타이얼, 소셜심, 2020 (사진=MMCA 제공)

주요하게 살펴볼 작품으로는 인공지능, 로봇공학 등 디지털 기술 자체를 인간과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조명하는 최근작 <소셜심>(2020)과 국립현대미술관 커미션 신작 <야성적 충동>(2022) 등이 있다. <소셜심>은 총 5개의 채널로 구성돼 있는데, 이중 첫 번째 방에 설치된 4개의 채널에서는 경찰 아바타들이 춤을 추는 모습을 담고 있다. 이는 코로나19 당시 거리두기 등 사회적 이슈로 시위에 나선 대중과 경찰관들의 동작을 사회적 안무로 해석해 표현한 작품이다.

영상 속 구현된 이들의 춤은 2020년 팬데믹 기간 중 일어난 시위 현장의 사망자, 부상자, 실종자 수와 같은 데이터의 추이와 인공지능의 논평에 따라 달라진다. 수치로만 파악할 수 있었던 팬데믹의 상황을 복합적인 감감으로 경험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경험을 해볼 수 있다.

▲지난달 MMCA 언론간담회에서 공동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히토 슈타이얼 (사진=MMCA 제공) 

신작 <야성적 충동>은 인간의 탐욕이나 두려움으로 시장이 통제불능 상태가 되는 상황을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으로 명명한 영국의 경제학자 존 매이너드 케인스의 개념을 인용한 작품이다. 구석기 시대 벽화가 그려진 동굴을 중심으로 스페인 양치기들이 가진 생태학적 힘을 교차시키며, 비트코인이나 대체불가능토큰(NFT) 등 새롭게 등장한 야생적 자본주의 시장에 대해 논의를 전개시킨다.

투어 이후 진행된 공동인터뷰 시간에는 일반 관람객이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질의가 있었다. 히토는 이 질문에 “Take it easy, 쉬엄쉬엄 하세요. 한 번에 모든 것을 이해하려하지 마요”라고 답했다. 히토 작품은 미시적인 주체의 이야기로 거시적인 세계의 흐름을 작가만의 언어로 표현한다. 작품 안 작가의 모든 의도와 발상을 느끼고 이해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지금 동시대 가장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작가의 작품을 현장에서 느껴보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