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문섭 개인전 《물物에서 물水로》, “조각적 사고-회화적 표현의 호응”
심문섭 개인전 《물物에서 물水로》, “조각적 사고-회화적 표현의 호응”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2.05.12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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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0~6.6, 가나아트센터
테라코타 「현전(Opening Up)」작업부터 최근 회화작 까지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조각으로 창작을 시작해, 회화 작업으로까지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며 규범화된 장르를 넘나드는 심문섭 작가의 개인전이 열린다. 가나아트센터에서 지난 10일 시작해 오는 6월 6일까지 개최되는 《물物에서 물水로》전시다. 이번 전시는 심문섭이 최근 정진하고 있는 회화 작업뿐 아니라 활동 초기부터 반복적으로 다루어 온 테라코타 작업을 함께 선보이며, 그의 작품 세계를 깊이 있게 조망한다.

▲The presentation-To the Island, 2015, Acrylic on canvas, 194x224cm(200ȣ), 76.4 x 88.2 in (사진=가나아트센터 제공)
▲The presentation-To the Island, 2015, Acrylic on canvas, 194x224cm(200ȣ), 76.4 x 88.2 in (사진=가나아트센터 제공)

심문섭은 1943년 경상남도 통영에서 출생해, 서울대학교 조소학과에서 수학했으며, 1985년부터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에 약 20년이 넘는 기간동안 재직하며 후학을 양성했다. 그는 1969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의 수상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조각은 물론 다양한 매체와 형식의 작업을 시도하며 작품 세계를 넓혀왔다. 심문섭은 한국을 비롯해 파리, 도쿄, 베이징 등에서 총 30회 이상의 개인전을 개최하며 왕성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가 일찍이 국제적인 조명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1970년대부터 전통 조각 개념에 반발하는 반(反)조각을 주창하며 전위적인 작업을 펼쳤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 모더니즘 조각의 선두로 불리는 심문섭은 70년대 초, 작가 중심적 사고에 입각해 하나의 대상을 창조하는 데 목표를 두는 대상주의적 조각을 거부하고 나무, 돌, 흙, 철 따위의 재료를 날 것으로 제시하거나, 작품을 좌대에 올리는 대신 벽에 기대고 바닥에 눕히는 등의 실험을 선보였다. 이러한 작업은 심문섭이 줄곧 천착해 온 작업의 주제, ‘물성’과 ‘시간성’을 드러낸 시작점이었다.

심문섭은 작가의 개입을 최소화함으로써 재료 본연의 물성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자 했고 돌이 흙이 되고, 다시 흙이 철이 되는 시간의 흐름을 암시함으로써 물질 간의 순환을 나타내려 했다.

▲The presentation - To the Island, 2018, Acrylic on canvas, 260x582cm, 102.4 x 229.1 in.
▲The presentation - To the Island, 2018, Acrylic on canvas, 260x582cm, 102.4 x 229.1 in. (사진=가나아트센터 제공)

그는 1975년 파리 비엔날레에 <현전(Opening Up)>을 출품하면서 주목을 받았는데, 이 작품에서 마포로 팽팽하게 맨 캔버스의 표면을 거친 사포로 문질러 천이 가진 본질적인 물질성을 강하게 드러냈다. 그리고 나아가 그는 캔버스의 헤지고 낡은 느낌을 의도적으로 구현함으로써 물질에 내재한 시간을 가시화했다. 이후 오랜 시간동안 동안 <현전>을 새로운 재료 및 기법을 통해 다양한 형태로 선보여 왔는데, 이번 전시에는 그 중 테라코타 작업을 출품한다.

심문섭은 “내가 추구하는 것은 인간과 물질이 서로 만나서 얽히는 사이에 생기는 시적인 양상”이라고 말한 바 있다. ‘만남’, ‘얽힘’이라는 그의 표현에는 물질, 그 중에서도 자연과 인간 간의 상호 작용을 추구하는 태도가 내포돼 있다.

▲The presentation-To the Island, 2019, Acrylic on canvas, 162 x 130cm(100ȣ), 63.8 x 51.2 in.
▲The presentation-To the Island, 2019, Acrylic on canvas, 162 x 130cm(100ȣ), 63.8 x 51.2 in. (사진=가나아트센터 제공)

2000년 대에 들어서는 심문섭은 회화 및 사진을 선보이며 조각가로서의 그간의 여정에서 새로운 행보를 보였다. 이는 그가 작업 초기부터 주창해온 반조각 개념의 확장을 의미하며, 그가 조각 작업에서 지향해온 것들을 회화를 통해 좀 더 명료하고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회화작업에서도 그는 작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작가의 의도를 배제하는 태도를 유지한다. 캔버스에 유성물감으로 밑칠을 한 후에 그 위에 수성 물감으로 붓질을 반복하는 작업 방식을 택해, 재료가 물성의 차이로 인해 서로 밀어내기도, 뒤섞이기도 하며, 예측 불가능한 양상을 작품 안에 담아낸다. 심문섭은 회화 작업에 <제시(The Presentation)>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는 앞서 언급한 조각 작업, <현전>과 마찬가지로 시간성을 드러내 보인다는 의미를 갖는다.

▲The presentation-To the Island, 2020, Acrylic on canvas, 400 x 360 cm(1000ȣ), 157.5 x 141.7 in.
▲The presentation-To the Island, 2020, Acrylic on canvas, 400 x 360 cm(1000ȣ), 157.5 x 141.7 in. (사진=가나아트센터 제공)

전시 제목 《물物에서 물水로》는 조각가로서 쌓아온 명성에 이어, 새로운 영역인 화업(畵業)에 매진하고 있는 심문섭의 여정과 조각적인 사고와 회화적인 표현의 이중성이 서로 호응하는 작업을 완성하려는 그의 의지를 내포하고 있다. 일생동안 물(物)에 대한 탐구를 이어온 심문섭이 물(水)을 통해 반조각의 정신을 확장하는 과정을 반추하는 기회의 시간이 될 것을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