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뷰] 《올 어바웃 러브》展, 혐오‧차별을 넘는 ‘사랑’에 대해
[현장리뷰] 《올 어바웃 러브》展, 혐오‧차별을 넘는 ‘사랑’에 대해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2.05.20 09: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5.19~7.17, 아르코미술관 기획초대전
재외 한인작가 곽영준, 장세진 국내 첫 전시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국제입양문제, 신체와 성(性)의 혼성성을 작품 안으로 가져와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며, 주류라고 칭해지는 세계의 권위를 해체하는 예술적 실천을 시도하고 있는 작가들의 기획초대전이 열린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 박종관) 산하 아르코미술관(관장 임근혜)이 19일부터 7월 17일까지 개최하는 《올 어바웃 러브: 곽영준&장세진(사라 반 데어 헤이드)》전시다.

▲
▲ 《올 어바웃 러브》 2층 전시장 전경 (사진=아르코 제공)

전시 개막에 앞서 지난 18일에는 곽영준, 장세진(사라 반 데어 헤이드) 작가가 참여한 언론공개회가 열렸다. 이번 전시는 아르코미술관이 주제를 잡아 기획한 전시이지만, 국제 미술계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한국계 미국인 곽영준 작가와 한국계 네덜란드인 장세진 작가를 소개하는 개별 개인전이라고도 볼 수 있다.

1층 공간에는 장세진(사라 반 데어 헤이드) 작가의 대형 설치 작업 <어머니 산신(山神) 기관>과 영상 작업 <브뤼셀 2016>이 전시된다. 국제입양문제를 다루고 있는 작업과 브뤼셀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담은 브뤼셀의 일상을 통해 세계에 만연한 인종화(人種化) 현상을 짚은 작품이다. 입양아이자 한국계 네덜란드인이라는 자신의 이방인적 정체성을 토대로 한 경계 위의 작품들을 공개한다.

2층 공간에는 곽영준 작가의 조각, 영상, 드로잉 17점이 전시된다. 그리스로마 신화 속 헤르메스와 아프로디테의 양성구유 자손 헤르마프로디토스를 모티프로 한 시리즈 작품을 선보이며 신체에 대해 확장된 시각을 제안한다. 또한 2013년 작업 <슬로우댄스>를 통해 전통적 성역할에서 오는 혼란과 이를 통해 가부장적 권력에 질문을 던진다. 곽영준의 조각, 영상 작품은 이성애 중심 사회의 가부장적인 시선과 타자화의 폭력성에 온몸으로 맞서는 퀴어적인 몸짓을 담고 있다.

1, 2층 공간을 작가별로 구분해 작품을 배치해 같은 전시이지만 층별 다른 느낌을 선보인다. 또한, 곽영준과 장세진 작품의 핵심으로 볼 수 있는 주제들을 전면으로 끌어와 작가의 방향성과 세계관도 느낄 수 있게 한다.

▲브뤼셀, 2016, 2017, HD,DCP, 디지털 필름, 33분
▲장세진(사라 반 데어 헤이드), 브뤼셀, 2016, 2017, HD,DCP, 디지털 필름, 33분 (사진=아르코 제공)

사회적 변화를 이끄는 ‘사랑’-재외 한인 작가 연결성, 아쉬움 남아

입양문제, 서구 중심적 사고관, 젠더와 성 역할에 대한 이분법적 정의 등은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조금 멀리 떨어져 바라보면 이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에 만연한 차별과 폭력에 대한 이야기이고, 작품들은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각 개인들의 예술적 실천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번 기획초대전의 제목 《올 어바웃 러브》는 작년에 타계한 사회운동가이자 페미니즘 사상가인 벨 훅스가 1999년에 출판한 동명의 책 제목에서 가져왔다. 훅스는 ‘사랑’을 이성애에 한정하지 않고, 자신과 타인의 성장을 위해 자아를 확장하고자 하는 의지로 정의하고, 사랑의 실천을 차별과 폭력 등 사회 문제의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전시는 서로 다른 매체와 방법으로 작업하는 두 명의 작가를 ‘사랑’이라는 주제로 함께 소개하며, 개인들이 공감과 연대가 사회적 변화를 이끄는 힘이 될 수 있음을 제안한다.

세계 속 차별과 혐오로 읽어볼 수 있는 갈등과 배제의 문제를 전시장으로 끌어들이며, 넓은 의미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이끌어나가는 시도는 어렵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굳이 이와 같은 이야기를 재외 한인 작가를 통해서 시도할 이유가 있었을 지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

▲전시투어에서 작품을 설명하고 있는
▲전시투어에서 작품을 설명하고 있는 장세진(사라 반 데어 헤이드) 작가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아르코미술관은 지금까지 기획초대전을 통해 잘 알려지지 않은 국내 중견 작가들을 소개해왔다. 언론공개회에서 임근혜 관장은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한인 작가들을 소개하면서, 해외 미술계 속, 한인 작가들의 활동과 한국미술의 정체성을 짚어보고자 했다”라고 말했다.

국내에 익숙하지 않은 한인 작가들을 한국 미술관에 처음 소개하는 자리로서 이번 전시는 의미를 갖지만, ‘재외 한인 작가’라는 정체성과 그에 대한 탐구를 ‘사랑’이라는 주제 안에서 함께 잘 품어냈는지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작가들은 차별과 폭력의 문제 속에서 한인으로 특정되지 않는 이방인으로서의 자신을 녹여냈다. 기자는 곽영준, 장세진 작가에게 자신에게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은 존재하는지, 그것을 작품에 표현하는 지에 대한 질문을 했다.

장세진은 한국 입양아들은 해외로 나가는 ‘편도 티켓’만을 발급받은 존재들이라고 말했다. 솔직히 한인 입양아는 자신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 않고, 한국인으로 주장하기도 법적으로, 사회적으로 어려움이 많다고 설명했다.

장 작가는 “나는 한국인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한국어를 할 수 없고, 사실 이방인은 아닌데 한국에서도 가끔 이방인처럼 느껴진다”라며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은 내게 모호한 영역이다. 작품 안에서도 한국적 요소를 찾는다면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국에서 나를 초대한다는 것은 내게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었고, 앞으로 나와 비슷한 한인 작가나 입양 문제를 다루는 작품들이 한국에 더 많이 소개되길 바란다”라는 뜻을 전했다.

이에 비해 곽영준 작가는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은 내게 의미가 크다”라고 답했다. 곽 작가는 미국에서 태어나 뉴욕과 뉴저지에 형성된 한인사회에서 유년을 보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한인 사회와 미국인 사회 양쪽에서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곽 작가는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드물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 느끼니 ‘내가 한국 사람이었구나’와 같은 생각이 자주 들었다. 개인적인 성격이나 성향 같은 것이 한국 사람들과 많이 비슷했고, 한국 대중과 대중문화에서 많이 느낀다”라며 “이번 전시가 나 뿐 만 아니라 해외 곳곳에 있는 한인 작가와 한국에 있는 이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곽영준, 장세진(사라 반 데어 헤이드) 작가가 지니고 있는 한인에 대한 정체성과 한국에서 여는 전시의 의미는 작가 개별적으로 큰 의미를 갖고 있었다. 또한, 그들 작품이 한국에 선보여지는 것을 통해 현재 한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도 여러 의미를 전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재외 한인이라는 정체성은 이번 전시와는 연결성을 갖기 부족해보였다.

▲곽영준, 헤르마프로디토스의 폭로 II, 2017, 화이버글래스 직물, 레진, 에폭시 점토, 은박, 페인트, 99 x 61 x 18 cm
▲곽영준, 헤르마프로디토스의 폭로 II, 2017, 화이버글래스 직물, 레진, 에폭시 점토, 은박, 페인트, 99 x 61 x 18 cm (사진=아르코 제공)

권력을 지닌 시각에 의문을 던지다

아르코미술관은 시대가 변함에 있어 첨예한 사회적 의제들을 미술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전시 공간 안으로 기획하고 있다. 올해에는 이동‧경계‧지역‧공동체를 주제로 다루고 있다. 이번 《올 어바웃 러브: 곽영준&장세진(사라 반 데어 헤이드)》전시는 표면적으로 명확하게 짚고 있는 문제들이 있다. 입양문제, 젠더 문제 등이다. 하지만, 작품 면면을 살펴보면 하나의 문제 안에 교묘하게 얽히고설킨 세계 속 다양한 혐오와 차별의 문제를 마주할 수 있다.

장세진(사라 반 데어 헤이드)의 <어머니 산신(山神) 기관>은 19세기 유럽의 태양계 천체모형(orrery)을 확대해 사람이 들어 갈 수 있는 방 크기의 박스 안에 설치한다. 이 곳에서 공전하고 있는 해와 달은 각각 어머니와 아이를 상징한다. 이 두 존재는 각각의 속도로 만날 듯 만날 수 없이 계속 공전한다. 그리고 동시에 상자 안에는 마치 영(靈)의 존재가 전하는 이야기처럼 국제입양으로 자식을 잃은 한국인과 방글라데시인 두 어머니의 얘기가 재생된다.

장 작가는 작품을 통해 국제입양 이면에 있는 식민주의, 제국주의적 관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작업을 위한 인터뷰 과정에서 실제 부모를 잃어 고아라고 알려진 입양아(200,000~300,000명 국제입양 사례)들 중 95%는 실제 고아가 아니고 어머니가 살아있었다”라며 “한국전쟁 이후 한국은 해외입양의 시초와도 같았고, 이는 식민 지배를 받았던 국가에서 지배계급 국가로의 입양을 보내는 구조를 만들었다. 이 점은 한국이 인지하고 있어야 하는 지점이다”라고 작품에서 제기하고 있는 문제를 언급했다.

▲어머니 산신(山神) 기관, 2017_, 모터, 플라스터, 페이퍼 마쉐, 판넬, 사운드, 드로잉, 텍스트, 가변설치 (2)
▲장세진(사라 반 데어 헤이드), 어머니 산신(山神) 기관, 2017_, 모터, 플라스터, 페이퍼 마쉐, 판넬, 사운드, 드로잉, 텍스트, 가변설치 (사진=아르코 제공)

작품 설명 과정 중 장 작가는 고아라고 허위 조작된 다수의 입양아들은 어머니로부터 훔침(stolen) 당한 존재라고 표현하며, 입양 문제에 대한 강한 감정을 표했다. 그는 “엄마는 아이를 키울 권리가 있고, 아이는 엄마와 같이 있을 권리가 있는 존재들이다. 왜 엄마가 아이를 키울 수 없는 환경이 여전히 이어지고, 입양이 진행되고 있는지 질문해봐야 한다”라고 자신이 탐구하고 작업하고 있는 주제에서 뻗어나갈 수 있는 사회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입양문제 안에는 인종적 문제 뿐 만 아니라, 전통적인 남녀 성역할과 여성 인권에 대한 이야기도 녹아있다. 또한, 서구주의적 시각에서 동양의 것을 미개하다고 여기는 시선도 느껴볼 수 있다. 그의 이런 시각은 입양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고, 브뤼셀의 일상을 통해 표현한 <브뤼셀, 2016> 면면에도 깔려있다.

<브뤼셀, 2016>은 장 작가가 브뤼셀 레지던시 프로그램 참여 당시 제작한 작품인데, 이 당시는 프랑스 파리 테러 이후 벨기에 브뤼셀 테러가 일어났던 시기다. 인종 간 혐오가 극대화된 때,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자신의 친모에게 보내는 영상 편지 형식의 작품에선 두려움과 무력감을 만나볼 수 있다. 나레이션에는 “오늘은 옆방에 묵고 있는 동료 예술가가 ‘길에 다니는 무슬림들이 정말 싫고 무서워’라고 말했어요. 그래서 저는 ‘나는 너의 그런 시선이 무서워’라고 답했어요”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테러 이후 일상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는 혐오의 말들과 시선으로 작가는 주류 시선에 가려진 이면을 끈질기게 파고들어간다.

▲전시투어에서 작품을 설명하고 있는 곽영진 작가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조각, 영상, 드로잉 작품을 선보이는 곽영준 작가는 양성을 가진 존재를 형상화한 조각 작품으로 신체가 지니고 있는 다양한 의미에 대해 말한다. 양성의 존재의 상징과도 같은 헤르마프로디토스(헤르메스와 아프로디테의 양성구유 자손)를 모티프로 한 작업들은 대게 치마를 위로 들어 올리는 행위, 또는 바지를 내리는 행위를 통해 정체성을 노출 시킨다. 때문에 곽영준 작가의 작품에서 역시 옷감을 들어 올리는 듯한 손과 흘러내리는 옷감과도 같은 형태를 찾아볼 수 있다.

작품 설명에 앞서 곽 작가는 기자들에게 전시장을 돌아보며, 작품을 느끼고 그에 대한 경험을 가져가길 바란다고 얘기했다. 작품에 대한 설명에 있어서 쉽게 말을 꺼내기보다 오랫동안 고민하며, 최소한의 언어만을 전달하는 듯 했다.

곽 작가는 “몸에 대한 시각적 해석을 확장시키는 작업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신체는 많은 것을 담고 있는데, 피부 아래에는 더욱 많은 것이 존재 한다”라며 “새로운 공간적 경험을 하고 새로운 이미지를 마주하면서 통찰을 얻길 바란다. 만약 이 공간과 이 주제가 불편하다면, 불편함이 왜 존재하는 지에 대해서도 고민해봤으면 좋겠다”라고 작품을 설명했다.

영상작업 <슬로우댄스>는 곽 작가 스스로가 영상의 주인공이 된 작품으로 이성애적 결합으로 만들어진 전통적 가정이 배경이 된다. 3개의 채널의 영상이 재생되는 작업인데, 각각 세 존재의 시선을 의미하고 있다. 이분법적 젠더에 불편함을 느끼는 나, 집 그 차제, 이 집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이다.

<슬로우댄스>가 상영되는 공간은 칸막이로 가려진 공간 안인데, 이 칸막이 벽에는 또 하나의 큰 구멍이 있고 관람객은 그 틈으로도 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 이는 관람객 또한, 작품 안으로 끌어들인다. 은밀한 공간을 훔쳐보는 또 하나의 존재로 관람객이 작품과 함께 존재할 수 있게 한다.

전시 작 중 <성스러운 퀴어 미래를 위한 원무>는 이번 전시에서 처음 선을 보이는 곽 작가의 신작이다. 작가 주변 퀴어 지인들의 손을 주물로 떠서, 이어 붙여 큰 원을 만든 작품이다. 이는 퀴어의 희망적인 미래를 기원하는 춤의 손동작이며, 연대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고 천장에 매달려 세계에 하나의 원을 만든 작품은 다른 세계로 넘어갈 수 있는 통로로도 상징된다.

▲곽영준, 슬로우 댄스, 2013, 3 채널 HD 비디오, VHS, HD 비디오 변환 사운드, 14분 20초, 크리스토퍼 리치몬드 협업
▲곽영준, 슬로우 댄스, 2013, 3 채널 HD 비디오, VHS, HD 비디오 변환 사운드, 14분 20초, 크리스토퍼 리치몬드 협업 (사진=아르코 제공)

아르코미술관 기획초대전 《올 어바웃 러브: 곽영준&장세진(사라 반 데어 헤이드)》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주목하고 논의되고 있는 의제들을 전시장 안으로 가져왔다. 곽영준, 장세진의 작품과 세계는 굉장히 선명한 듯 하다. 하지만, 작품을 파고들어갈수록 미처 인지할 수 없었던 또 다른 시각과 문제들이 수면 위로 올라온다.

《올 어바웃 러브(All about love)》 전시는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을 담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우리는 ‘사랑’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진 못한다. 안다고 해도, 계속해서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영역이 ‘사랑’일 것이다. 곽영준과 장세진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사랑의 형태를 알려주며, 관람객이 모를 수도 있는 ‘사랑’의 또 다른 형태들을 제안하고 있다. 우리가 몰랐고, 모르고 싶었던 영역에 대한 표현은 접할 수 있는 전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