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숙의 문화읽기]대구시립무용단의 새 좌표, ‘K-Modern Dance’
[성기숙의 문화읽기]대구시립무용단의 새 좌표, ‘K-Modern Dance’
  •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무용평론가
  • 승인 2022.05.25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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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종 무대에 버티고 있는 두 개의 튜브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아이튜브'라고 불리는 원통은 상상의 공간으로 산화된다. 무용수들은 튜브 안에서 홀로 혹은 따로 또 같이 더불어서 다양한 움직임을 직조한다. 그들이 쏟아내는 상징적 동작과 은유적 표현은 관객의 시선을 압도한다. 원통을 오브제로 완급이 조율된 다채로운 움직임과 때론 깊은 침묵에서 관객은 실존하지 않는 상상의 세계를 여행한다. 존재의 근원을 성찰하거나 스스로 실존적 의미를 되새긴다.

김성룡 대구시립무용단 예술감독 안무의 '아이튜브'(i tube) 작품에 대한 짧은 인상이다. 지난 15일 창단 41주년을 맞은 대구시립무용단이 서울 남산자락에 있는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 올랐다. 한국현대무용협회(이사장 이해준) 주최로 열린 2022 국제현대무용제(MODAFE: International Modern Dance Festival)에 초청되어 관객과 조우했다.

주지하듯, 대구시립무용단은 1981년 한국 최초의 현대무용(Modern Dance) 전공 무용단체로 창단됐다. 2011년 국립현대무용단 창단 이전, 대구시립무용단은 전국 14개 국공립무용단 중 유일하게 현대무용 전공으로 구성된 단체였다. 그만큼 존재감이 남달랐다.

초대 단장 김기전을 필두로 구본숙, 안은미, 최두혁, 박현옥, 홍승엽을 거쳐 현재 김성룡 예술감독에 이르기까지 40여 년 축적된 예술적 역량이 예사롭지 않다.

함경도 함흥 출신인 김기전 초대 단장은 특유의 강인한 정신과 여장부적 기질로 대구시립무용단의 예술적 토대를 닦았다. 후임 구본숙은 프로페셔널리즘을 강화하고 해외 교류의 물꼬를 트는데 앞장섰다. 파격의 안무가로 회자되는 안은미는 독창적 발상과 특유의 감각으로 대구시립무용단의 새 지평을 열었다.

대구 출신 소장파 안무가 최두혁은 대구시립무용단 최초의 남성 예술감독으로서 실험적이고 역동적인 활동으로 주목받았다. 뒤이은 박현옥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현대무용 장르에서 요원하게만 인식됐던 이른바 대중화를 모색하는 한편, 대구 춤의 브랜드화를 표방하여 관심을 끌었다.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을 지내고 대구시립무용단 수장이 된 홍승엽은 혹독한 트레이닝을 통해 무용수들의 기량을 한층 끌어올렸다. 나아가 깊은 사유의 소산인 철학적 주제의 수준 높은 안무로 단체의 위상을 높이는 등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다.

바통을 이어받는 김성룡 예술감독은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 탐문과 사회부조리를 치밀하고 정교한 공연문법으로 풀어냈다. 작품성과 대중성을 겨냥한 그의 전략은 적중했다. 치열한 창작정신과 집요하고 끈질긴 안무근성이 성공의 열쇠라 여겨진다. 예술단체 수장으로서 최근 몇 년 지구촌을 강타한 펜데믹 상황을 슬기롭게 헤쳐간 것도 평가할 일이다. 그뿐만 아니라 작년엔 대구시립무용단 40년 역사를 반추하는 행사를 통해 존재의 근원을 되짚었다.

김성룡 단장, 치열한 창작정신, 집요하고 끈질긴 안무근성 성공 열쇠
모다페 개막초청작 '아이튜브'(i tube), 지난 15일 국립극장 해오름 올라

대구지역에서 이토록 현대무용이 화려하게 꽃피운 배경은 무엇인가? 격동의 시기 척박한 토양에서 현대무용의 씨앗을 뿌리고 가꾼 춤의 선구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일제강점기 대구는 경의선이 관통하는 교통의 요충지로 경제적, 문화적으로 풍요로운 도시였다. 세계적인 무용가로 한 시대를 풍미한 최승희, 조택원의 대구공연은 늘 화제를 몰고 왔다. 그들이 선보인 소위 모던댄스 스타일의 이국적 몸짓은 문화적 충격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결정적으로 6·25전쟁 때 대구는 서울에서 피난 내려온 문화예술인들의 집결지였다. 화가, 문인, 음악인, 연극인 등 장르를 망라해 대구로 향했다. 무용인 또한 다를 바 없었다. 『춤』지 발행인 조동화가 조직한 한국무용단에 합류하여 송범, 김진걸, 김문숙, 주리 등 신무용 2세대들이 대구로 피난하여 활동을 이어갔다. 아동문학가 마해송과 그의 아내인 현대무용가 박외선 또한 대구에 둥지를 틀었다. 그들의 아들인 재미의사이자 시인으로 명성 높은 마종기의 문학적 소양이 잉태된 곳도 바로 대구였다. 6·25전쟁 중 대구는 한마디로 '문화수도'로 통했다. 대구지역의 문화적 자양분이 전쟁의 포화 속에서 싹터 나왔다는 것은 퍽 역설적이다.

지역 출신 무용가들의 헌신도 빼놓을 수 없다. 일본 유학파 김상규가 대표적이다. 이시이 바쿠(石井漠) 문하에서 서양 모던댄스를 체득한 김상규는 창작과 교육을 통해 대구 및 영남지역의 무용발전을 위해 일생을 헌신했다. 대구 현대무용 제1세대를 대표하는 김기전과 그의 남편 무용평론가 정순영의 역할도 컸다. 김기전·정순영 부부는 창작과 비평, 그리고 문화운동을 통해 대구지역 춤의 예술적 진화를 견인했다. 이러한 토대 위에서 대구시립무용단이 탄생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으로 대구시립무용단의 예술적 좌표는 무엇일까? 우선 국지성을 벗어나 세계를 향해야 한다. 대구를 넘어, 대한민국을 넘어, 모던댄스의 본향인 세계무대로의 질주를 상상해 본다. 이은영(서울문화투데이 편집인)이 지난 해 창단40주년 기념 인터뷰에서 제시한 조언대로, 새로운 한류 'K-Modern Dance'를 선도하는 주력 단체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무엇보다 대구광역시의 창의적이고 전략적인 지원이 필요한 때이다.

 

* 이 칼럼은 매일신문에도 함께 게재됐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