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혜의 조명 이야기] 리틀아일랜드
[백지혜의 조명 이야기] 리틀아일랜드
  • 백지혜 디자인 스튜디오라인 대표, 서울시좋은빛위원회 위원
  • 승인 2022.05.25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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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뉴욕시 맨해튼섬의 서쪽은 1980년대까지 부두의 부서진 잔재와 녹슨 창고건물 그리고 주차장이 방치되어 있었다. 1980년대 말 이 지역에 대한 재개발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1992년 부터 본격적인 개발계획이 수립되었는데 기본적인 컨셉은 맨해튼의 건물숲로부터 벗어나 공공이 휴식할 수 있는 오픈 스페이스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허드슨강 공원 프로젝트는 어언 30년이 흘러 550 에이커 공원이 조성되어있고 레저, 스포츠 행사 및 교육 프로그램들이 열려 시민 뿐 아니라 관광객에게까지 사랑을 받고 있는 듯하다. 나 역시 업무 혹은 휴가로 맨해튼을 가게되면 언제부터인가 반드시 하이라인파크를 끝까지 걸어 미트패킹 디스트릭트까지 간 다음 허드슨 파크를 거슬러 올라오는 일정을 넣곤 하는데 낮에는 짬을 내기 어려워 주로 오후 늦게 시작하게 된다.

굳이 이시간을 택하는 이유는 어쩌면 이 루트가 서쪽에 위치한 덕에 일몰을 즐길 수 있고, 해가 진 뒤 어둠 속에 드러나는 모습도 즐길 수 있어서 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올해 뉴욕을 방문하면서 설레었던 것은 라틀아일랜드를 직접 보게 되리라는 기대였다. 코로나 여파로 작년에서야 대중에게 열린 리틀 아일랜드는 허드슨리버파크 프로젝트의 하이라이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4년 영국의 건축가 헤더윅스튜다오가 계획안을 발표했을 때 ‘그림’ 이라고 생각했있는데 실제 지어져 - 여러가지 사정으로 꽤 오래 시간이 걸렸다 - 현실이 된 것이다. 인공섬 리틀 아일랜드는 허드슨리버파크의 기본 개념을 따라 도시를 떠나 자연에서 휴식하고 즐기는 컨셉으로 건축가는 ‘다리를 건너는 행위’로 도시를 떠나는 퍼포먼스를 의도하였다고 한다.

132개의 튤립 혹은 버섯모양의 파일은 - 건축가는 화분을 의도하였다 - 그 높이를 달리하며 섬의 고저를 만들고 마치 자연인 양 언덕을 오르내리도록 설계하였다. 사계절 다른 모습을 연출하도록 식재를 계획하여 지금은 봄꽃들이 화려하게 피어 있었고, 하이라인공원처럼 걷고, 멈추고, 앉는 행위를 위한 계획들이 쉽게 눈에 들어왔다.2.5에이커에 불과한 인공섬을 충분히 산책할 수 있도록 구불구불 산책로를 만들고 평평한 지상에는 먹고 마실 수 있는 공간과 700명 정도 수용이 가능한 공연장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이 섬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섬 내부가 아니라 섬 주변으로 조망되던 모습이어서 이것을 위해서 굳이 육지로부터 섬으로 분리해냈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기찻길을 따라 일직선으로 조성된 하이라인파크가 서쪽 조망만 가능했다면 리틀아일랜드에서는 섬을 돌며 동서남북 조망 지점 별로 자유의여신상과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그리고 월드트레이크타워 등 다양한 뉴욕시의 모습을 즐길 수 있었다. 해가 지면서 조명이 점등되고 그제서야 동행한 지인은 “아.. 조명이 있었구나”란다.

 

은은한 빛과 수목 ·그림자, 섬 전체 드라마틱한 밝음과 어둠으로 낮보다 더 매력적

 

산책로를 비추는 폴은 작은 크기의 조명기구를 여러 개 사용하여 열매처럼 달린 형태로 나무들 사이에 잘 눈에 띄지 않도록 설치한 덕에 꼭 필요한 인공장치물이지만 자연 속에서 이질적이지 않았다. 수목을 비추는 등은 수목의 생장에 맞추어 그 높이를 조정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인상적이었고 무대를 위한 현수등의 과감한 노출은 자연과 예술이 공존하는 섬이라는 표시 같았다.

은은한 빛과 수목에 의한 그림자는 섬 전체에 드라마틱한 밝음과 어둠을 만들어 낮보다 더 매력적인 라틀아이랜드라는 평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하다. 섬을 뒤로하고 나오면서 출입구에만 조명을 설치한 파일구조물의 명암이 그 형태를 강조하여 더욱 인상적이있고 출입구를 벗어나 마주한 광경은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을 비롯한 맨해튼의 마천루들의 화려한 야경으로 다리 위에 서 있는 내가 돌아가야 하는 방향을 알려주는 듯했다.

얼마전 서울시에서 한강 중심의 도시공간 구현을 위해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한강변 공간구상’용역에 착수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2007 한강르네상스 마스터플랜을 통해

워터프런트 계획이 수립되었었고 2030 한강변 관리계획에서도 생태복원, 관광상품화에 대한 노력이 진행되어왔다. 콘크리트 호안은 자연형으로 바뀌었고 반포대교의 무지개분수, 새빛섬과 같은 명소도 생겼다, 노들섬도 그 기능을 갖게되고 선유도는 재생과 문화를 담고 젊은이들의 인스타그램에 자주 등장한다. 쓰레기처리장의 오명을 벗고 난지도는 가족들이 캠핑하는 캠핑장으로 인기가 높다.

문제는 이들이 통합적인 개념과 각각의 정체성을 갖지 못할 뿐 아니라 개발 방향이나 방법, 실현된 결과가 한강의 경관적 가치나 서울시민의 기대에 적합하지 않아보인다.

우리는 코로나를 경험하며 외부공간에 대한 기대는 커져 한강변이나 공원과 같은 오픈 스페이스에서의 휴식에 대한 요구도 늘어났다. 게다가 관광이 자유롭게 이루어지면 한국을 방문하는 관광객을 위해 우리의 아이덴티티를 담은 상징적인 도시의 공간들이 필요해 질 것이다. 이제라도 서울, 한강의 위상에 맞는 구상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아울러 한강에서 바라보는 서울의 모습도 같이 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