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뷰] MMCA 특별전 《생의 찬미》, 한국미술사 속 ‘채색화’ 다시 일으켜
[현장리뷰] MMCA 특별전 《생의 찬미》, 한국미술사 속 ‘채색화’ 다시 일으켜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2.06.02 16: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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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CA 과천관, 6.1~9.25
국현 첫 채색화 특별전, 채색화 ‘역할’ 조명
윤범모 관장 “한국 주류 미술은 채색화”
우리 삶을 둘러싼 이미지의 의미는 어디서 왔는가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돌잔치, 환갑잔치에 사용하는 병풍 속 그림, 연하장에 담겨있는 세화(歲畫) 등 우리네 삶 속에는 알록달록한 오방색이 주로 사용된 채색화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 채색화들을 대게 나쁜 기운을 몰아내고(벽사) 복을 불러들이며(길상) 교훈을 전하는(문자도) 역할을 했고, 때때로 중요한 이야기를 역사에 남기기도(기록화) 했다. 이처럼 우리 민중의 삶과 일상에 가까웠던 그림이 언제부터 미술관에서는 잘 보이지 않게 된 것일까.

▲작자미상, 매화 책거리도(8폭 병풍), 19세기, 종이에 채색, 118x292cm, 개인 소장 (사진=MMCA 제공)
▲작자미상, 매화 책거리도(8폭 병풍), 19세기, 종이에 채색, 118x292cm, 개인 소장 (사진=MMCA 제공)

채색화는 조선시대이후 문인들의 수묵 감상화 위주 미술사 서술이 주류를 이루면서 점점 자취를 감추게 됐다. 이후 장식과 기복의 ‘역할’을 지닌 회화를 순수예술로 보지 않았던 근대 이후 예술개념 형성으로 인해 오랫동안 한국 미술사에서 소외돼 왔다. 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윤범모)이 오랜 시간 한국미술사에서 멀어져있던 채색화를 다시 주목하는 전시를 기획했다.

MMCA 과천관에서 지난 1일 개막해 오는 9월 25일까지 개최하는 《생의 찬미》전시다.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최초로 이뤄지는 채색화 특별전이다. 한국미술사의 기울어진 판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한 국립현대미술관의 고민이 녹아있는 전시라고 볼 수 있다. 19세기~20세기 초에 제작된 민화와 궁중장식화, 20세기 후반 이후 제작된 창작민화와 공예, 디자인, 서예, 회화 등을 아우르는 다양한 장르 80여 점의 작품들로 구성됐고, 제15대 조계종 중봉 성파 대종사를 비롯한 강요배, 박대성, 박생광, 신상호, 안상수, 오윤, 이종상, 한애규, 황창배 등 다양한 분야의 작가 60여 명이 참여한다. 송규태, 오순경, 문선영, 이영실 등 현대 창작민화 작가 10여 명도 참여한다.

▲한국의 채색화 특별전 《생의 찬미》 개최 전시 전경 (사진=MMCA 제공)
▲한국의 채색화 특별전 《생의 찬미》 개최 전시 전경 (사진=MMCA 제공)

오방색 사랑한 한국 채색화, 재조명

지난달 31일 열린 《생의 찬미》 언론간담회에서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그 어느 때보다 상기된 표정으로 인사말을 전했다. 윤 관장은 이번 채색화 특별전을 야심작 중 하나라고 표현하며, 국립 미술관으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기획한 전시라고 방점을 찍었다.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50년 만에 기획됐던 2020년 MMCA덕수궁관 전시 《미술관에 書: 한국 근현대 서예전》과 맥락을 같이 한다. 한국 미술사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전시를 미술관이라는 공간으로 다시금 끌어오는 것이다.

조선시대 이후 점차 자취를 감췄던 채색화는 1920년대에 시작된 조선총독부 주관의 <조선미술전람회>로 더욱 한국 미술계 뒤편으로 사라지게 됐다. 올해는 <조선미술전람회>가 시작된 지 100년이 된 해다. 근대적 예술 개념이 한국 미술계를 형성시킨 지도 10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것이다. <조선미술전람회>는 ‘전시장’이라는 삶과 분리된 공간에서 미술을 처음 선보인 자리였다. 이 관전에서 우리네 삶과 함께 약동했던 ‘채색화’의 존재는 제외됐었다.

▲이숙자 백두성산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이숙자 <백두성산>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윤 관장은 “같은 동양이라 할지라도 일본이 좋아하는 색과 우리 한국에서 주로 사용하고 좋아했던 색에는 차이가 있다. 한국은 오방색을 중심으로 원색을 좋아하는 민족이다. 이러한 경향은 단청이나 고려 불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라며 “개인적인 주장이지만 ‘한국 회화사의 주류는 채색화’라고 말하고 싶다”라며 한국 미술계에서 상대적으로 가려져 있던 채색화의 위상을 다시금 재정립하고자 하는 의지를 비췄다.

대학에서 한국 채색화에 대한 연구나 교재가 명확하게 없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함께 반성의 태도도 보였다. 한국 미술에서 ‘채색화’가 지니고 있는 역사적 가치와 중요도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고, 주목하지 않았다는 반성이다.

윤 관장은 “한국 미술계에서 ‘채색화’를 새롭게 바라보고자 한 시도인 만큼 부족한 지점도 존재할 것이지만, 새로운 시도라는 점에서 너그럽게 봐주길 바란다”라는 말 또한 전했다.

▲이정교, 사방호, 2022, 자작나무 합판에 채색, 800x800x235cm(x4)
▲이정교, 사방호, 2022, 자작나무 합판에 채색, 800x800x235cm(x4) (사진=MMCA 제공)

새로운 시도에 대한 혼란 존재하나, 필요한 기획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이전에는 하지 않았던 시도를 선보이는 만큼 언론간담회에서는 우려 섞인 질문도 나왔다. 김달진 서울아트컬처 대표는 “‘채색화’는 일반적으로 한국화의 한 장르로써 인식돼왔다. 그런데, ‘채색화’를 주제로 한 전시에서 한국화 작품 이외에 조각, 영상, 그래픽디자인, 회화 작업도 선보이고 있다. 이러한 미술관의 시도를 채색화의 경계를 허무는 것으로 봐야 하는 것인지, 되레 채색화에 대한 혼란을 야기하는 것이 아닌지 궁금하다”라고 물었다.

전시를 기획한 왕신연 학예연구사는 이번 전시가 ‘채색화’가 지닌 여러 가지 면모 중 ‘역할’에 집중해 기획된 전시라는 점을 강조하며 답을 전했다. 전통적으로 한국 채색화는 ‘역할’을 지니고 있는 그림이었다. 보는 이에게 복을 기원하거나, 나쁜 기운을 몰아내고, 종교적 의미를 녹이거나 민족의 의식을 고양시키고자 하는 의미를 드러냈다.

왕 학예사는 “이번 전시는 ‘이 시대의 채색화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해, 나아가 지금 우리는 어떤 이미지들을 통해 과거 채색화가 머물렀던 자리를 채우고 있는지 묻고 있다”라며 “어떤 그림들이 나쁜 기운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고, 우리의 안녕을 기원하는지, 어떻게 우리 삶을 기록하고 교훈을 전하고 있는지, 이번 전시를 통해 관람객이 함께 생각해보길 바란다”라고 답했다.

▲한국의 채색화 특별전 《생의 찬미》 개최 전시 전경 (사진=MMCA 제공)

‘한국적인 그림’, ‘한국 채색화’라는 용어가 무엇을 정의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도 있었다. 왕 학예사는 현재 한국화, 민화라는 용어 또한 논란 중에 있는 언어라고 설명하며, 이번 전시는 꽤 넓은 영역에서 한국화와 채색화를 다뤄보고자 했다고 말했다. 전시에서는 근대 이후 채색화에 집중해 90년대 이후, 보편적으로 공인돼 온 ‘채색화’를 주요 작품들로 선보인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이전에는 없었던 시도를 한만큼, 전시에 혼란스러움을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국 미술사에서 소외돼 있던 장르를 재조명한다는 점에서 필요한 시도였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단순히 역사적인 시각으로 채색화를 재조명하는 것에만 집중하지 않고 ‘현대미술관’의 시각으로 채색화에 접근한다는 점이 전시의 흥미로운 지점 중 하나다.

‘지금 시대의 채색화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고민으로 미술관은 전통적인 상징을 지니고 있는 채색화와 함께, 지금의 의미로 재해석한 작품들을 함께 배치해 선보인다. <욕불구룡도>와 <오방신도>, <호작도>와 같은 전통적인 도상의 작품을 선보이면서, 전통적인 도상을 하고 있지만 지금 시대에 전하는 의미를 담아 제작된 조계종 중봉 성파 대종사의 <수기맹호도>를 함께 전시한다.

▲조계종 중봉 성파 대종사 <수기맹호도>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자고 있던 호랑이가 깨어나는 순간을 담은 <수기맹호도>를 제작한 성파 대종사는 이 그림으로 젊은이들에게 긍정적인 기운을 전하고자 했다. 성파 대종사는 “잠시 자고 있던 사이 나라를 빼앗긴 민족이 다시금 나라를 되찾고 세계적으로 알려진 국가를 일으켰다. 힘든 시기를 겪고 다시 일어난 민족의 모습을 호랑이로 표현했고, 이 그림을 통해 힘든 상황에 있는 젊은이들에게 다시금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과 기원을 전하고자 했다”라고 그림에 대해 설명한다.

민화의 한 장르인 ‘평생도’를 동시대 인물의 서사를 담아 제작된 작품도 선보인다. 나오미의 <용오름>이라는 작품으로, 이 작품 안에는 동‧서양의 옛그림을 차용해 생의 시간 속 사건들을 표현한다. 또한, 지금 시대에서 하는 공부와 결혼의 모습, 노년의 모습들을 담아내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관람객에게 공감되는 즐거움을 전한다.

기록화를 선보이는 공간에서는 망자(亡者)의 영혼을 천도(薦度)하는 의식에서 예배의 대상이 되는 감로도 문성&병문 <흥천사 감로왕도>와 함께 팬데믹 시대에 구원에 대한 염원을 담은 이영실의 <영축산 감로도>가 함께 전시돼 있다. 전통적인 도상을 가지고 있는 불화를 보여주며, 동시에 현 시대의 사건을 담고 있는 작품을 나란히 배치했다는 점에 계속해서 ‘지금 시대의 채색화는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느낄 수 있게 한다.

▲ 이영실 <영축산 감로도>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이건희컬렉션 이종상의〈원형상(源型象) 89117-흙에서〉 첫 공개

‘채색화’에 방점을 찍은 전시이지만, ‘채색화’라는 주제로 보지 않아도 주목할 만한 작품들이 여러 점 공개된다. 먼저 전시의 문을 여는 의미, 관람객을 마중하는 의미를 담은 스톤 존스턴 감독의 <승화>는 한국적인 벽사 이미지 처용을 국립무용단과 협업해 제작한 영상 작품이다. 시카고 출신의 비주얼 아티스트 스톤은 이번 작업으로 처음 ‘처용’을 접하게 됐는데, 그는 처용이 가진 서사에 매료돼 단순히 역병과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것에서 나아가 인류 최초부터 가지고 있었던 폭력성의 승화까지 아우른다.

▲스톤 존스턴, 승화, 2021, 4채널 영상, 사운드 설치, 12분
▲스톤 존스턴, 승화, 2021, 4채널 영상, 사운드 설치, 12분 (사진=MMCA 제공)

한국적 상징을 외국인 감독의 시선으로 해석한 지점에서 색다른 한국의 이미지를 만나볼 수 있고, 전통적인 처용과 현대적인 도시의 이미지 조합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영상이 전시되는 공간은 4면이 스크린으로 둘러싸여진 공간이다. 4개의 스크린에는 청, 백, 적, 흑의 처용이 춤을 추고 관람객이 공간 중앙에서 황색의 처용이 돼 작품과 함께 호흡하면서 감상할 수 있게끔 한다.

이번 전시에는 대작 작품도 여러 점 공개된다. 그 중에는 벽화로 제작됐던 이종상의 〈원형상(源型象) 89117-흙에서〉가 있다. 동판 위에 안료를 얹어서 구워내는 동유화 기법으로 제작된 이 작품은 총 407점의 패널로 구성됐고, 작품의 크기는 높이 3.7m, 폭 12.3m에 달한다. 이종상은 한국화의 원형을 철학적으로, 도상으로, 재료로 끊임없이 탐구하며 지평을 확대해온 작가로 이 작품은 전통적인 배산임수 명당의 개념을 떠올리게 한다. 지난해 이건희컬렉션으로 기증된 작품으로 1989년 작가의 개인전 이후 최초로 공개되는 작품이다.

▲이종상 〈원형상(源型象) 89117-흙에서〉 (사진=서울문화투데이)

대작 작품으로는 성파 대종사의 <금강전도>, 이숙자의 <백두성산> 등도 공개된다. <백두성산>은 대기권에서 바라본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을 담고 있다. 이숙자는 사실을 근거로만 작업을 하는 작가인데, 백두산을 중심으로 해와 달을 함께 배치하기 위해 기상(氣象)상 가능한 현상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기상청에 문의까지 하고 제작에 들어간 작업이라고 한다. 한 민족이 지니고 있는 기운이 무엇이고, 우리를 둘러싼 자연이 어떤 것인지를 선명하게 담아낸 산수화로서의 채색화를 만나볼 수 있다.

자칫 전통적인 도상에 메여 학술적인 느낌의 기획이 될 수도 있었지만, 전시는 한국이 계속 이어오고 있었던 채색화의 경향을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조명한다. 채색화가 무엇인지에서 나아가, 동시대적으로 어떻게 작용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볼 수 있게 하는 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