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훈의 클래식비평]베르디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 한국 초연
[이채훈의 클래식비평]베르디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 한국 초연
  • 이채훈 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 전문기자, 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 승인 2022.06.07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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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애호가의 시야·안목 넓힌 소중한 무대

베르디의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가 한국 초연됐다. 국립오페라단은 4월 베르디의 <아틸라>를 초연한 데 이어 6월 2일~5일 이 오페라를 무대에 올림으로써 한국 오페라사에 의미 있는 기록을 남겼다.

▲국립오페라단, 베르디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 공연 사진
▲국립오페라단, 베르디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 공연 사진

‘오페라의 왕’으로 불리는 베르디의 3대 인기작 <리골레토>, <일트로바토레>, <라트라비아타>는 대중들에게 친숙하고, 후기의 3대 걸작 <아이다>, <오텔로>, <팔스타프>는 오페라 매니아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는 생소했고, 그만큼 관심을 모았다. 제13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의 대미를 장식한 이 오페라는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킨 훌륭한 선물이었다. 

베르디의 젊은 시절, 이탈리아는 산산히 분열된 상태로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그의 초기 오페라 <나부코>, <롬바르디아인>, <에르나니>, <레냐노 전투> 등은 ‘리소르지멘토’Risorgimento, 즉 이탈리아의 통일독립운동과 함께 호흡했다. 그는 이를 위해 철저히 대중적인 작품을 썼다. 고답적인 비평가들의 혹평에 그는 “손님이 차고 넘칠 게 분명하다”며 오히려 기뻐했다.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는 <라트라비아타>보다 나중에 썼지만, ‘리소르지멘토’ 운동에 기여한 초기 오페라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국립오페라단은 이 작품을 대담하게 초연하여 베르디 오페라의 총체적 이해에 소중한 디딤돌을 놓아 주었다. 

▲국립오페라단, 베르디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 공연 사진
▲국립오페라단, 베르디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 공연 사진

베르디 오페라는 유럽 역사를 배경으로 한 경우가 많다.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에서도 관객들은 역사 속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게 된다. 1282년 3월 30일, 부활절 저녁기도 종소리에 맞추어 시칠리아 사람들이 일제히 봉기, 지배자인 프랑스인과 부역자 약 2천명을 살해하는 대참사가 일어난다. 이 ‘시칠리아 만종 사건’이 오페라의 배경이다. 시칠리아의 애국 청년 아리고Arigo가 프랑스 총독 몽포르테의 아들임이 드러나면서 ‘독립이냐, 인륜이냐’ 갈등이 일어나고, 아리고와 엘레나의 사랑이 겪는 우여곡절이 스토리의 축을 이룬다.

관객들은 베르디가 이 오페라를 쓴 경위를 살펴보는 또 하나의 시간여행을 떠나야 한다. 1855년 파리에서 초연할 때는 프랑스 취향인 그랜드 오페라 스타일의 대규모 무대에 발레까지 삽입했다. 그러나 프랑스 음악계의 반발로 흥행에 실패하자 베르디는 이 오페라를 이탈리아풍으로 개작하여 파르마의 레조 극장에서 다시 무대에 올렸다. 초연 때부터 민족 감정의 격류에 휘말려서 굴곡을 겪은 것이다. 베르디 사후 자주 무대에 오르지 못했지만, 최근 작품성이 재조명되면서 우리는 베르디의 걸작을 또 하나 알게 된 셈이다. 프로치다를 포함, 네 주인공에게 워낙 탁월한 기량을 요구하는 작품이라 자주 공연하기 어려웠다니, 이를 무대에 올린 국립오페라단의 시도가 더욱 값지게 다가온다.  

▲국립오페라단, 베르디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 공연 사진
▲국립오페라단, 베르디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 공연 사진

<리골레토>가 바람둥이 귀족을 비판한 ‘베르디의 <돈조반니>’라면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는 부자 간의 가슴 저미는 갈등을 담고 있는 ‘베르디의 <이도메네오>’라고 할 만 하다. 아버지 몽포르테와 아들 아리고의 애타는 마음은 시종일관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대다수 관객들에게 생소한 오페라였지만 흡인력이 높았던 것은 드라마의 힘이었다. 처음 듣는 베르디의 음악이 펼쳐지니 흥미진진했다. 베르디답게 매우 대중적인 음악이라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었고, 3막 몽포르테의 아리아와 이어지는 이중창, 마무리 열광적인 합창, 5막 엘레나의 노래와 합창이 어우러지는 결혼식 장면과 피날레 애도의 합창 등 몇몇 장면의 음악은 베르디의 어느 오페라에도 뒤지지 않는 걸작이었다. 

▲국립오페라단, 베르디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 공연 사진
▲국립오페라단, 베르디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 공연 사진

무대 연출의 감각은 세계 수준이라고 할 만 했다. 파스텔톤의 단순한 디자인이 산뜻하게 다가왔고, 막이 바뀔 때마다 적절히 변화를 주어서 지루하지 않았다. 프랑스인과 시칠리아인을 주황색과 푸른 색으로 구분하여 보기에 편안했다. 엘레나의 오빠와 아리고의 어머니 등 죽은 이를 상징적으로 등장시키고, 죽은 어머니가 아리고를 몽포르테에게 인도하도록 연출한 것도 관객의 공감도를 높였다. 4막에서 구형의 천체를 엘레나가 짊어지게 한 것도 그녀의 고뇌를 자연스레 강조한 세련된 연출이었다. 2막 춤곡에서 군중들이 장단을 맞추게 한 것도 자연스러웠다. 조명도 매우 섬세하게 활용했다. 어머니의 편지를 읽을 때 무대가 밝아지고, 합창 대목에서 주황색 장막을 돋보이게 한 것은 스토리의 흐름을 살리면서 등장인물의 감정을 강조하는 효과가 있었다. 특히 주황색 장막이 밝아지는 대목은 시칠리아 민중의 승리를 암시하는 듯하여 감동을 주었다.

▲국립오페라단, 베르디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 공연 사진
▲국립오페라단, 베르디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 공연 사진

6월 3일(금) 둘째날 공연을 보았다. 홍석원 지휘의 코리아쿱 오케스트라는 만족스러웠다. 클라리넷의 크레센도, 적절한 루바토와 표정 변화까지 섬세하게 짚어낸 연주였다. 네 명의 주인공 – 엘레나 김성은(소프라노), 아리고 국윤종(테너), 몽포르테 한명원(바리톤), 프로치다 김대영(베이스)를 비롯한 성악가들도 모두 열연했다. 엘레나 역의 김성은은 맑고 아름다운 목소리가 돋보였고, 5막 합창과 어우러지는 대목에서 훌륭한 표현력으로 큰 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기운이 부족해서 그랬는지 고음에서 음정이 몇 차례 낮아져서 다소 불안했다. 4막 아리아는 매우 아름다웠지만, 마지막 음정이 거의 반음 가까이 떨어져서 안타까움을 남겼다. 아리고 역의 국윤종은 처음에는 다소 굳은 느낌을 주었지만 3막에 접어들면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고, 3막 이중창과 4막 아리아에서 열광적인 갈채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목에 힘이 들어간 듯한 발성 습관은 듣는 이를 다소 피곤하게 만들 위험이 있었다.

▲국립오페라단, 베르디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 공연 사진
▲국립오페라단, 베르디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 공연 사진

저음의 남성 성악가들 중에 뛰어난 사람이 많은 듯하다. 몽포르테의 한명원과 프로치다의 김대영은 시종일관 안정된 성량과 표정으로 음악을 이끌었다. 오페라 전체에 생기가 있었던 것은 프로치다를 맡은 베이스 김대영의 공이 컸다. 그가 2막 아리아에서 청중들을 압도한 순간부터 음악에 몰입도가 크게 높아졌다. 3막 이중창은 열광적인 박수를 이끌어 냈는데, 몽포르테 역의 바리톤 한명원의 탄탄한 목소리가 큰 몫을 했다. 

자막은 대체로 무난했지만, 의미가 좀 더 명료하게 전달되도록 손질할 여지가 있어 보였다. 우리말과 영어를 병기했는데, 우리말 자막보다 영어 자막이 더 깔끔해 보였다. 제목은 ‘시칠리아 섬’이라 하는 것보다 그냥 ‘시칠리아’로 하는 게 낫지 않을까? ‘대만섬’, ‘제주도섬’처럼 중언부언하는 느낌이다.

▲국립오페라단, 베르디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 공연 사진
▲국립오페라단, 베르디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 공연 사진

한 음악평론가는 “3막 2장 초반 ‘사계절의 춤’이 빠지고 무도회 초반에 엘레나와 프로치다가 아리고에게 총독 암살 계획을 알리는 장면이 생략된 게 의아하다”고 지적했다. ‘사계절의 춤’을 생략한 것은 베르디 자신이 프랑스판에 있던 발레를 이탈리아판에서 생략했으므로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3시간을 넘는 공연 시간을 감안하면 오히려 잘한 일로 보인다. 이 오페라를 잘 아는 분이 볼 때. 총독 암살 계획을 알리는 장면을 특별한 이유 없이 생략한 게 아쉬울 수 있다. 하지만, 처음 감상하는 입장에서는 스토리의 흐름이 끊긴다는 느낌을 받지는 않았다. 오히려, 5막 구성을 유지하면서 막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갈등 상황을 꺼내 놓은 게 너무 장황하게 느껴졌고, 더 간결하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19세기 청중과 21세기 청중의 차이일 수도 있겠다. 유튜브로 원작을 다시 보면서 판단할 일이다.  

국립오페라단의 이번 공연으로 한국 애호가들의 베르디 이해 수준이 한 단계 높아졌다. 감사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