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뷰] 2022 밀라노 한국 공예전 《다시, 땅의 기초로부터》…한국 ‘소박미’에 집중
[현장리뷰] 2022 밀라노 한국 공예전 《다시, 땅의 기초로부터》…한국 ‘소박미’에 집중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2.06.08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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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 디자인위트 6일간 전시
강신재 감독 기획, 한국‧이탈리아 작가 22명 참여
밀라노 한국공예전 10주년, 양국 협업 시도
자연으로부터 시작된 소재에 집중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꾸밈이나 거짓이 없는 수수한 아름다움 ‘소박미’를 중심으로 한국의 미학으로 선보이는 공예 전시가 이탈리아에서 개최된다.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박보균, 이하 문체부)와 (재)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원장 김태훈, 이하 공진원)이 2022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선보이는 2022 밀라노 한국공예전 《다시, 땅의 기초로부터(Again, From The Earth’s Foundation)》이다. 지난 7일 개막해 오는 12일까지 밀라노 펠트리넬리(Fondazione Feltrinelli)에서 열린다.

▲2022 밀라노 한국공예전 《다시, 땅의 기초로부터(Again, From The Earth’s Foundation)》 개막 현장 (사진=공진원 제공)

올해는 밀라노 디자인 위크가 60주년이 되는 해이자, 한국이 밀라노에서 ‘한국공예전’을 선보인지 10주년이 되는 해다. 10년간의 문화적 교류의 역사와 의의를 기록하고 기념하기 위해 이번 전시에선 양국의 문화융합을 시도한 작품을 선보인다. 전시 기획은 2017년 밀라노 트리엔날레 한국관 공간을 연출하고, 이탈리아 에이닷 디자인 어워드 등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강신재 예술감독이 맡았다.

지난달 30일에는 밀라노 현지 전시 개막 전,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김태훈 원장과 강신재 예술 감독, 이형근, 김계옥, 김혜정 작가 등이 참석한 언론간담회가 열렸다. 본격적인 전시 설명 전,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김태훈 원장의 지난 10년간 밀라노 한국공예전의 성과 발표가 있었다.

김 원장은 “지난 10년간 밀라노 한국 공예전을 통해 올해까지 217명의 한국 작가가 전시에 참여했고, 지난해에는 한국공예전이 베스트 프로그램으로 선정되기도 했다”라며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하게 된 한국 공예전은 ‘한국 공예’의 정수를 보여주면서, 한국과 이탈리아의 문화융합을 시도하는 전시로 기획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2022 밀라노 한국공예전 언론간담회에 참석한 김태훈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원장 (사진=서울문화투데이)

한국의 소박미와 팬데믹‧기후 위기 속 자연의 가치를 연결

간담회에선 강신재 감독이 전시를 설명했다. 강 감독은 2022 밀라노 한국공예전 《다시, 땅의 기초로부터》는 한국의 ‘소박’이라는 미학에 집중한 전시임을 강조했다. 덧붙여, 복도와 메인공간으로 조성돼, 긴 동선이 형성되는 전시 공간 특징을 활용한 전시를 선보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강 감독이 표현한 한국의 ‘소박미’는 자연스러운 본질의 기운을 담고 있는 아름다움이다. 이를 토대로 자연의 본질이자 원초적인 존재 땅, 하늘, 태양을 공간 키워드로 잡아 전시를 기획했다.

전시작들은 자연과 땅에서 얻어지는 소재를 활용하는 작품들로 구성됐다. 금속, 섬유, 목, 유리, 한지 등을 활용한 총 100여점의 작품이 전시된다. 이 중에는 이탈리아 디자이너 세 명과 한국의 전통 공예 장인 세 명의 협업 작품도 포함 돼 있다.

▲2022 밀라노 한국공예전 《다시, 땅의 기초로부터(Again, From The Earth’s Foundation)》 전시장 전경 (사진=공진원 제공)

이번 전시에서 특징이라고 볼 수 있는 지점은 70평정도 크기인 메인 공간에 구현된 길이14m, 폭 7m의 땅이다. 실제로 흙을 깔아서 ‘땅’으로 구현된 전시대에 공예작품들이 전시된다.

강 감독은 “작가들의 작품은 자연에서 온 것이기에, 자연에 바로 배치해보고 싶었다”라며 “마치 공예 작품들이 광활한 대지에 자연스럽게 놓인 듯한 장면을 연출하면서 ‘땅의 기초에서 공예가 태어나고 흙으로 돌아간다’라는 철학적 표현을 담고자 한다”라고 전시를 설명했다.

한국의 ‘소박미’를 중심으로 자연과 연결점을 만들고, 우리가 실생활에서 사용하고 있는 공예품 또한 자연의 한 부분임을 얘기하는 이번 전시는 결국 모든 인간이 공감할 수 있는 ‘자연 존중의 미학’으로 나아간다. 강 감독은 “무분별하게 소유했던 모든 물질적 욕망들을 내려놓고 자연의 소박한 이치에 겸손히 귀 기울여야 할 지금에 영감을 주는 전시가 되길 바란다”라며 전시가 전하는 바를 밝혔다.

전시가 지향하는 바가 명확한 만큼 전시작들도 자연에서 발한 소재와 기법을 사용한 작품으로 의도적으로 선정됐다. 강 감독은 “기예적인 미학을 지향하는 공예인들에게서는 섭섭하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근원과 근본으로 돌아가고, 땅에서 나는 것들로 작품을 꾸려보고 싶었다”라며 “땅 위에 어떻게 전시를 잘 구현할지 설레는 느낌”이라고 간담회에서 전시를 앞둔 소회를 밝혔다.

▲제2의막(幕), 동, 옻칠, 김계옥 (사진=공진원 제공)
▲제2의막(幕), 동, 옻칠, 김계옥 (사진=공진원 제공)

한-이 22명 작가, 자연에서 시작된 각양각색 작품관 선봬

이번 전시에는 한국, 이탈리아의 총 22명의 작가가 참여한다. 미켈레 데 루키×박강용/류남권, 마리오 트리마르키×이형근/이지호, 프란체스코 파신×허성자, 김태연, 김계옥, 김혜정, 이규홍, 정재나, 류은정, 강석근, 이상민, 강승철, 정다혜, 정현지, 이능호, 엄윤나, 윤정희 작가다.

이능호 작가는 거대한 흙덩이를 수만, 수십 만 범 두들겨 오브제를 완성시킨다. 그의 작품에는 인간이 자연의 소재에 쏟은 시간과 온기가 머물러 있는 듯하다. 김계옥 작가는 0.3mm의 동선을 코바늘 뜨기로 엮어 그 위에 옻칠을 입혀서 작품을 완성 시킨다. 작가가 만들어낸 하나의 면은 ‘어떤 기억들의 조합으로 이뤄진 낯설지만 익숙한 공간, 의식 속에 현존하지만 지금 여기에 존재하지 않는 부재된 것들의 공간’을 표현한다.

밀라노 한국공예전에 참가하는 비교적 젊은 작가인 정다혜는 제주도 말꼬리를 이용한 작품을 선보인다. 아주 연약한 소재로 엮어 올린 하나의 오브제는 연약한 것들의 연대로, 말꼬리 소재만이 가지고 있는 탄성을 지니고 있다. 김혜정은 자연스러운 선 안의 단아함을 표현하는 도자작업을 선보이는 작가다. 그는 스스로의 도자 작업을 ‘물과 바람의 힘을 이용해 물질을 변용하는, 자연의 법칙과 혼돈을 탐구하는 행위’로 정의한다. 자연의 소산이 자연의 힘을 통해 변용을 추구하는 과정을 담고 있는 작품으로 볼 수 있다.

▲Altar for offering to the gods, 유기, 이형근&이지호 X Mario Trimarchi 1
▲Altar for offering to the gods, 유기, 이형근&이지호 X Mario Trimarchi 1 (사진=공진원 제공)

한국 전통 공예 장인 세 명, 이탈리아 디자이너 협업

이번 밀라노 한국전에서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이번 전시를 통해 최초 공개되는 한국 장인들과 이탈리아 디자이너들의 협업작이다. 작품들은 디자인 기획부터 제작까지 장기간 협업을 통해 완성됐다.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13호 옻칠장 박강용은 이탈리아 디자인계를 이끌었던 리더로 알려져 있는 미켈레 데 루키(Michele De Lucchi)와 협업을 진행했다. 미켈레 데 루키가 디자인한 톨로메오(Tolomeo) 램프는 1987년부터 아르떼미데(Artemide)에서 생산한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램프로 기록돼있다. 현재 그는 건축‧디자인‧공예 등 전 분야에 걸쳐 세계적인 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박 장인과 미켈레 데 루키의 협업작은 ‘자연의 본질에 입각한 순수한 형태’를 디자인 요소로 잡아 진행됐다. 미켈레 데 루키는 ‘옷은 바느질을 사용한 건축’이라 말한다. 그는 이번 협업 작업에서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고 ‘바느질 기법’을 사용해 작은 유닛을 조합해 입체적 월(wall) 오브제를 디자인했다. 옻칠로 완성된 작은 유닛들은 바느질의 형태로 연결돼 직경 1m가 넘는 큰 작품으로 완성됐다. 이탈리아 디자이너의 디자인과 한국 장인의 손에서 새롭게 모습을 바꾼 자연의 소산물이 연결된 작품이다.

▲2022 밀라노 한국공예전 《다시, 땅의 기초로부터(Again, From The Earth’s Foundation)》 전시장 전경, Lacca Ottchil Cucita_나무, 옻칠_박강용&류남권XMiChele De Lucchi 협업작 (사진=공진원 제공)

국가무형문화재 유기장 이형근은 디자이너이자 건축가인 마리오 트리마르키(Mario Trimarchi)와 협업을 진행했다. 마리오 트리마르키는 협업기간 중에 이 유기장과 3번이나 줌으로 화상회의를 하며, 이번 프로젝트에 열정을 보였다고 한다. 그는 이번 밀라노 한국공예전의 전시 주제를 접하고 ‘모든 쉽게 만들어지고 버려지는 현대사회’에 초점을 두고, 사물 하나하나를 만드는 것도 ‘신에게 제물을 받치듯 긴 노고와 공을 들여야 함’을 강조하는 작품을 선보였다.

작품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오르고, 받치고, 드높인다는 의미를 산을 오르는 험난하고 다양한 과정(노고)의 형태로 풀어냈고, 유기로 완성된 제단 위에 올려진 각각의 오브제는 각각 과실, 향, 꽃, 불, 눈물을 상징한다.

간담회에 참석한 이 유기장은 마리오 트리마르키 디자이너와의 협업에서 느꼈던 신선함에 대해 전했다. 이 유기장은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것에 집중해 작업을 했는데, 예술품으로 보이는 것을 만들 우리가 사용하지 않은 디자인을 접할 수 있어서 새로웠다”라며 “공예품 안에서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 있었고, 방짜유기로 저런 작품을 만든 것이 기적과 같았다고 느낀다”라고 말했다.

이 유기장 말에 이어 강 감독은 “사실 방짜 유기에선 ‘용접’이라는 과정은 없다. 장인의 자존심도 걸린 문제였는데, 협업과정에서 ‘용접’이 제안됐고, 이 장인이 고민을 많이 한 걸로 알고 있다. 그 과정을 지나 완성한 작품”이라며 프로젝트 과정상의 에피소드를 덧붙였다.

▲2022 밀라노 한국공예전 언론간담회에서 협업 소회를 전하는 국가무형문화재 유기장 이형근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완초장 이수자 허성자는 프란체스코 파신(Francesco Facchin) 디자이너와 협업을 진행했다. 프란체스코 파신은 평소 세계 여러 각국의 ‘머리 짐(머리에 짐을 지는 문화)’에 관심이 많았는데, 이번 프로젝트를 접한 그는 먼저 한국 문화에 대한 리서치를 통해‘갓’을 디자인 모티브로 직접 제안해왔다.

이번 협업에서 허 이수자와 프란체스코 파신은 ‘갓’의 형태를 띠고 있는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트레이를 선보였다. 결합됐을 때는 갓 본연의 기능을, 분리됐을 때는 바구니(트레이)의 기능을 줘 익숙한 형태에서 새로운 시도를 입혔다는 점에서 신선함을 느껴볼 수 있다.

한국 전통 공예에 입혀지는 국적이 다른 시선은 새로운 공예품의 ‘시작’을 만들어낸다. 디자인 제안과 제작 협업에서 나아가, 좀 더 본질적인 이탈리아 디자이너 창작관과 한국 전통 공예 장인들의 신념 협업이 이뤄졌으면 어떠한 결과물이 나왔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하지만, 지난 10년 간 한국과 이탈리아 문화 교류의 결실이라는 점에서 이번 협업은 큰 의미를 갖는다.

▲Pepa K, 왕골, 허성자 XFarncesco Faccin, 450X450X200
▲Pepa K, 왕골, 허성자 XFarncesco Faccin, 450X450X200 (사진=공진원 제공)

끝으로 공진원은 밀라노 한국공예전 10주년을 또 하나의 발판으로, 앞으로는 한국 공예품의 산업판로 확장 등의 지향점을 가지고 나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이 가진 미학 중 하나인 ‘소박미’가 전 세계를 휩쓴 팬데믹과 다가오고 있는 기후 위기에 맞설 작은 인류의 힘으로 이탈리아에서 빛을 발하길 바란다. 한국에서는 밀라노 한국 공예전을 온라인으로 즐겨볼 수 있다. 푸오리살로네 누리집(www.fuorisalone.it), 공진원 누리소통망에서 확인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