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프리뷰]1988년 노무현 의원, 2022년 관객과 닿다…연극 ‘초선의원’
[현장 프리뷰]1988년 노무현 의원, 2022년 관객과 닿다…연극 ‘초선의원’
  • 진보연 기자
  • 승인 2022.06.10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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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노무현 전 대통령 초선의원 시절 모티브
오는 7월 3일까지, 대학로 TOM 2관

[서울문화투데이 진보연 기자]1988년 11월 2일, 노무현이라는 이름을 세상에 알린 헌정사 첫 청문회가 열렸다. 

당시 초선의원이던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제5공화국 정부의 비리와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제13대 국회 청문회에서, 정곡을 찌르는 질문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이 청문회는 TV로 생중계됐고, 국민들의 뇌리에 강하게 박힌 노 전 대통령은 이른바 ‘청문회 스타’로 명성을 떨치게 됐다. 

그리고 2022년 6월 3일, 서울 대학로 무대에서 1988년의 청문회 현장이 그대로 재현됐다. 연극 ‘초선의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초선의원 시절을 모티브로 1988년의 사회상을 담아낸 작품이다. 

▲연극 ‘초선의원’ 프레스콜 하이라이트 시연 장면 ⓒ서울문화투데이
▲연극 ‘초선의원’ 프레스콜 하이라이트 시연 장면 ⓒ서울문화투데이

한국 전쟁 이후 30년 만에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대한민국에서 열린 올림픽, 모두가 열광의 도가니였던 1988년 그때의 서울. 하지만 그 이면에는 한국 사회의 부끄러운 이면이 있었다. 15살 노동자 문송면 군 수은중독 사망 사건, 노동자 대파업 투쟁 중 최루탄을 가슴에 맞은 노동자 이석규 사망 사건, 서울올림픽을 위해 진행된 강제 철거 등이 그것이다.

연극 <초선의원>은 이 두 가지 모습의 서울을 무대에 녹여냈으며,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꾼 한 명의 초선의원 ‘수호’를 통해 메시지를 전한다. 

9일 서울 대학로 TOM 2관에서 열린 연극 ‘초선의원’ 프레스콜에서 오세혁 작가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대부분 ‘마지막 순간’을 가장 먼저 얘기한다. 알면 알수록 빛나고 뜨겁고 때로는 유쾌하기도 하고 좌충우돌하기도 했던, 다양한 순간들이 많았는데, 어느 순간 그가 슬픔의 상징, 비극의 주인공으로만 기억되는 것 자체가 저에겐 좀 힘들었다”라며 “그의 인생에서 가장 뜨겁고 빛나는 순간을 그려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오래전부터 작품을 준비해왔다”라고 창작 계기를 전했다. 

몇 년 전, 고등학교 영어 교사로 근무하다 퇴직한 뒤 연극 제작에 뛰어든 극단 ‘웃는 고양이’ 오수현 대표가 오세혁 작가를 찾아와 작품 제안을 한 것이 ‘초선의원’의 시작이다. 오 작가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연극을 만드는 게 꿈이었다고 하시기에, 초선의원 시절을 다뤄보고 싶다고 말씀드렸는데 흔쾌히 수락하셨다. 그래서 이 작품이 탄생하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초선의원’은 1988년이 서울 올림픽과 청문회가 일어난 해라는 점에 주목해, 초선 국회의원의 이야기와 스포츠 경기를 접목했다. 극 중 마라톤, 탁구, 레슬링 등 스포츠 경기와 함께 청문회 사건들이 등장한다. 오세혁 작가는 “국회에서 법안을 두고 몸싸움하는 모습이 스포츠 같다는 생각을 했다. 원하는 바를 성취하기 위해 여러 전략과 전술을 사용하는 것이 비슷하지 않나”라며 “더불어, 노 전 대통령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저도 모르게 무거움이나 슬픔에 눌리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다. 어떻게 하면 시원하고 유쾌하게 할 얘기를 다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88올림픽 시기와 맞물린다는 점을 떠올리게 됐다”라고 전했다. 이어 “올림픽은 페어플레이를 향해 달려가는데, 국회는 무엇을 위해 달려가는지 비교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라고 덧붙였다.

▲연극 ‘초선의원’ 프레스콜 하이라이트 시연 장면 ⓒ서울문화투데이
▲연극 ‘초선의원’ 프레스콜 하이라이트 시연 장면, ‘최수호’ 役 성노진 배우 ⓒ서울문화투데이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하는 만큼, ‘수호’ 역을 맡은 배우들의 부담감도 적지 않았다. 성노진 배우는 “살기 좋은 세상,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한 몸을 뜨겁게 던졌던 노 전 대통령을 과연 내가 연기할 만한 깜냥이 될까 고민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공부도 정말 많이 했다. 하지만 연습 중반까지도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라며 “사투리나 억양을 흉내내볼까 싶기도 했지만, 제가 표현하는 인물은 노 전 대통령이 아닌 최수호라고 생각하면서 마음을 편히 먹으니 부담감이 줄었다. 잘 쓰인 대본을 따라가며 몰입하다보면 최수호라는 인물 속에서 노 전 대통령의 감정과 진정성이 표현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초선의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초선의원 시절인 1988년을 배경으로 하지만, 현실을 이야기하며 지금 시대의 관객들에게 공감의 메시지를 전한다. 오세혁 작가는 “과거 ‘보도지침’이라는 연극을 만들 때부터 계속 느끼는 점이 있다. 실제로 일어난 어떤 사건이나 역사를 바탕으로 하는 작품의 경우, 실제 행해졌던 말이나 글의 힘이 제가 상상으로 쓰는 것보다 훨씬 세다는 것이다. 당시에 있던 것들을 다시 발굴해서 무대 위에 잘 펼쳐놓는 게 저의 역할”이라며 “‘노무현’이라는 한 사람으로 시작된 연극이지만, 초선의원 ‘최수호’의 이야기이다. 우리 주변에도 뜨겁고 유쾌한, 당장이라도 달려와 손을 잡아주며 함께해줄 국회의원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담았다”라고 밝혔다.

▲연극 ‘초선의원’ 프레스콜 하이라이트 시연 장면 ⓒ서울문화투데이
▲연극 ‘초선의원’ 프레스콜 하이라이트 시연 장면 ⓒ서울문화투데이

오 작가는 “관객분들이 이 작품을 보고 노무현 의원 혹은 노무현 대통령을 떠올리는 것도 좋지만, 우리 주변에 이런 분들이 많아져서 우리를 둘러싼 세상이 좋아질 거라는 희망이나 믿음을 갖게 되길 바란다. 어쩌면 관객분들 중 한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며 “공연을 보러오시는 관객 한 명 한 명을 모으면, 극장 안도 하나의 작은 사회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이 비록 가볍진 않지만, 이걸 보신 관객분들이 무력감이나 슬픈 감정을 갖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무대에서 저희가 전하는 에너지를 받아서, 각자의 현장에서 뜨겁게 살아내시길 바란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