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뷰] 《감각의 공간, 워치 앤 칠 2,0》展, 비대면 시대 새로운 감상법 제안
[현장리뷰] 《감각의 공간, 워치 앤 칠 2,0》展, 비대면 시대 새로운 감상법 제안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2.06.14 18: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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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CA 서울관, 9.12까지
내 손 안으로 들어온 미디어아트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팬데믹시대를 통과하며, 우리는 이전에는 해볼 수 없었던 경험을 했다. 대다수가 밀집된 공간에 모이면 안됐고, 다수가 만나기 위해서는 대면이 아닌 비대면을 통해야했다. 대면으로 느껴야 하는 예술 감상도 잠시 멈춰야 하는 시기를 보냈다. 전 세계에 불어 닥친 팬데믹으로, 세계 곳곳의 미술 전문기관은 비슷한 고민에 빠지게 됐다. 관람객이 찾아오지 않는 미술관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고, 대중에게 미술을 어떻게 전달해야하는 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감각의 공간, 워치 앤 칠 2.0》 전시 전경 4부 전시 공간 ⓒ신경섭
▲《감각의 공간, 워치 앤 칠 2.0》 전시 전경 4부 전시 공간 ⓒ신경섭

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윤범모)은 이 과정 속에서 각각의 미술관 속 미디어 작품을 스트리밍 하는 플랫폼을 만들어 선보이는 전시를 기획했다. 지난해 개설하고 첫 선을 보인 구독형 아트스트리밍 플랫폼 ‘워치 앤 칠’(https://watchandchill.kr)이었다. 지난해 이 프로젝트에는 M+ 등 아시아 4개 기관이 협력해 함께 첫 번째 전시를 선보인 바 있다.

MMCA 서울관에서 지난 10일 개막해 오는 9월 12일까지 개최되는 《감각의 공간, 워치 앤 칠 2.0》은 플랫폼 ‘워치 앤 칠’의 두 번째 전시다. 올해 전시에는 유럽과 중동 미술기관과 협업했으며, 내년에는 미주 및 오세아니아 주요 미술관들과 협력을 계획하고 있다.

올해 MMCA와 함께한 미술관은 유럽 최대 디자인 소장품을 보유한 스웨덴 아크데스(ArkDes) 국립건축디자인센터, 샤르자 비엔날레 등 국제적 영향력을 가진 아랍 에미리트 샤르자미술재단(SAF)이다. 전시는 MMCA를 포함한 3개 기관의 협력으로, 각 기관의 미디어 소장품 및 지역별 주요 작가 20여 명의 작품을 선보인다. 전시작은 온라인플랫폼에서도 즐겨볼 수 있다. ‘워치 앤 칠’ 플랫폼에 로그인을 통해 서비스 구독을 신청하면, 한 주에 한 편씩 새로 공개된 작품을 한국어/영어 자막으로 감상할 수 있다.

▲왕 & 쇠데르스트룀, ‹자라남›, 2020, 컬러, 무성, 2분 19초. 작가 소장, ArkDes 제공. 스톡홀름 가구 페어 제작지원
▲왕 & 쇠데르스트룀, ‹자라남›, 2020, 컬러, 무성, 2분 19초. 작가 소장, ArkDes 제공. 스톡홀름 가구 페어 제작지원 (사진=MMCA 제공)

MMCA 서울관에서 열리는 오프라인 전시의 특징은 건축가 바래(전진홍, 최윤희)가 미디어 환경을 공기로 은유한 모듈러 구조의 건축 설치작 <에어 레스트>와 함께 미디어 작품들을 선보인다는 것이다. 바래의 설치작 <에어 레스트>는 전시장 곳곳에, 미디어 작품을 앉아서 감상할 수 있게끔 배치돼 있다.

특히 <에어 레스트>와 미디어 작품이 어우러지면서 전시 《감각의 공간, 워치 앤 칠 2.0》만의 독창적인 공간을 보여주는 곳은 ‘3부: 트랜스 x 움직임’의 공간이다. 굉장히 긴 층고를 가지고 있는 ‘3부: 트랜스 x 움직임’ 전시 공간에는 월드 와이드 웹(www)의 물리적 현실을 조명하며 디지털 공간 안에서 마치 비물질적 존재로 느껴지는 개체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미디어 작품들을 선보인다. 이 공간에 전시되는 작품 중에는 김웅현 <헬보바인과 포니>가 있다.

▲《감각의 공간, 워치 앤 칠 2.0》 전시, 3부 전시공간 ⓒ신경섭
▲《감각의 공간, 워치 앤 칠 2.0》 전시, 3부 전시공간 ⓒ신경섭

이 작품은 북한을 여행한 사람들이 유튜브에 올린 영상을 편집해 유니콘이라는 허구적 존재와 함께 등장시킨다. 역사적, 사회적 사건과 가상현실의 요소를 결합한 영상조각 또는 퍼포먼스를 통해 디지털 환경과 현실 사이 균열된 의미를 발생시키고, 또 다른 실재를 구축하는 작업이다. 대한민국 국민은 남한 사람이기에 여행할 수 없는 북한의 영상과 교묘하게 얽히는 유니콘의 존재는 기이한 서사를 완성해나간다.

동시대의 대중이 아주 밀접하게 경험하고 있는 디지털 공간이 불러일으키는 이질감은 관람객에게 독특한 감각을 전한다. 관람객들은 이러한 작품을 <에어 레스트> 설치작에 앉거나 늘어진 자세로 에어쿠션을 껴안고서 감상할 수 있다. 전시장에서는 “편안히 쉬어가세요(Please seat and Chill)”이라는 안내문으로 편안한 감상법을 유도한다. 편안한 자세로 이질적인 감각을 전하는 미디어 작품을 감상하는 경험은 관람객에게 묘한 괴리감을 불러일으킨다. 반대로, 이제까지 낯설게만 느껴졌던 미디어 작품들은 편안한 공간에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면서 대중과 현대미술의 거리감을 좁히는 듯도 하다.

▲김웅현, 헬보바인과 포니, 2016, 컬러, 유성, 25분 47초. MMCA 소장
▲김웅현, 헬보바인과 포니, 2016, 컬러, 유성, 25분 47초. MMCA 소장 (사진=MMCA 제공)

이번 전시를 기획한 이지회 학예연구사는 지난 9일 열린 언론간담회에서 전시를 통해 이제까지 우리가 쉽게 겪어볼 수 없었던 이색적인 감각을 선보이는 데에 집중했다고 밝혔다. 디지털 시대의 ‘감각’이란 무엇인지, 기술과 인간의 감각체계 사이의 관계는 어떻게 이어질 수 있는 것인지 동시대 미디어 작품들은 끊임없이 질문한다.

이전과는 좀 더 다른 방식의 관람 방법을 제안하는 전시는, 일반 관람객들이 쉽게 접할 수 없었던 디지털 공간만의 감각체계에 대한 접근 기회도 열어준다. 전시작 중 하나인 제나 수텔라의 <니미아 세티>라는 작품은 기술과 생물학을 결합시켜 의식너머 세상을 조명한다.

<니미아 세티>는 컴퓨터의 관점에서 곰팡이, 낫토, 박테리아와 같이 살아 있는 유기체 등의 움직임과 소리를 수집해 머신러닝하고, 구조화된 낫토균의 행동 알고리즘과 초기 화성인의 언어를 기록한 소리, 인간의 신경망의 구조를 혼합하며 다른 종 간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언어를 생성해낸다. 작품을 감상할 때 헤드폰을 끼면, 이 언어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작품은 인간이 일반적으로 발상할 수 없는 새로운 존재들과 그 존재를 인식하는 낯선 방법을 제안한다.

▲제나 수텔라, ‹니미아 세티›, 2018, 컬러, 유성, 12분. SAF 소장
▲제나 수텔라, ‹니미아 세티›, 2018, 컬러, 유성, 12분. SAF 소장 (사진=MMCA 제공)

전시는 ‘감각의 공간’이라는 제목처럼 또한, 디지털 스크린의 평면성을 넘는 다양한 공감각을 소환하고 있다. 전시는 익숙하지 않은 관람법과 익숙하지 않는 감각을 우리 곁으로 가져다 놓으면서, 현재 우리의 세계가 어디까지 변화하고 나아가고 있는 지 전달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