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현장과 현상 사이]사계의 노래는 ‘리서치 콘서트’이자 ‘캐릭터 콘서트’
[윤중강의 현장과 현상 사이]사계의 노래는 ‘리서치 콘서트’이자 ‘캐릭터 콘서트’
  •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 승인 2022.06.15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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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여성 서사’였다. 내겐,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의 ‘사계의 노래’가 그랬다. (6. 11~12. 경기아트센터 대극장) ‘사계의 노래’는 ‘사적인 계절의 노래’였다.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의 성악 단원 6인의 개인적 삶에 초점을 맞췄다. 4명은 경기민요, 2명은 정가 전공이다. 그들은 모두 여성이다. 인터뷰를 바탕으로 해서 그들의 내면을 끄집어낸 공연형식이었다. 지금까지 잘 몰랐던 각자의 삶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여성으로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무엇일까? 전통노래를 선택한 그녀들에게 있어서, 그 노래는 어떤 의미일까? 지금까지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던 ‘여성의 노래’ 또는 ‘노래의 본질’을 6인의 여성을 통해서 객석에 차분하고 깊게 전달되었다. 리서치(손소영)를 충실하게 한 덕분이었고, 무엇보다도 같은 여성인 연출가만이 가능한 접근이었다. 

새로운 여성연출가의 탄생 

유현진의 연출은 극찬해야 한다. 지금까지 국악공연 또는 민요공연과는 차원이 달랐다. 의상부터 화려한 색채감과 결별하고, 흑백의 모노톤으로 일관했다. 그러니 그녀들의 모습과 노래에 더 몰입하게 해주었다. 겉보다는 속을 보게 되는 공연이고, 곡조보다 가사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특히 김용호 작가의 사진이 큰 역할을 했다. 그건 그녀들의 겉모습이 아니라, 그녀들의 감춰진 속내였다. 그동안 무대에서는 드러내지 주저했던 모습이, 한 사진작가의 사진을 통해서 비로소 드러낸 것이다. 

이향하 음악감독의 음악은 품격있고, 경기민요 또는 정가의 익숙한 반주에서 산뜻하게 결별하고 있었다. 이향하는 전체적인 사운드를 잘 만들고자 하는 의도가 읽혔다. 그러니 정작 6인의 소리꾼이 부르는 노래 자체에 대한 집중도가 때론 떨어지기도 했다. 반주악기를 최초화했을 때, 여성서사가 더욱 읽히고 교감을 하게 되었다.

이 공연을 살린 또 하나는 ‘발림의 확장’이었다. 지금까지 경기민요 또는 정가를 전통노래를 부를 때의 익숙한 발림(손의 움직임)에서 벗어나서, 가능한 범위에서 신체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안무(이선시)가 좋았다. 이건 그냥 일반적인 안무를 그녀들에게 적용한 것이라기보다는, 그녀들을 알고 전통노래에 익숙한 입장에서 출발한 것인 듯 보였다. 

노래말에서 나를 끄집어내다 

6인6색(六人六色)이란 말처럼, 이 공연에 등장한 가객(歌客)은 각자의 개성을 드러냈다. 나의 언어로 그녀들을 말한다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계절 ‘심현경’은 ‘역경’이었다. ‘산타령’을 선택한 그녀는 청산의 노송처럼 풍설을 겪어내려 했던 삶의 고단함이 전달되었다. 그래서 그녀를 앞으로 더욱 응원해주고 싶었다. 두 번째 계절 ‘하지아’는 ‘관능’이었다. ‘건드렁타령’의 사설을 진짜 안다면, 이 노래는 ‘19금’ 이상인데, 하지아는 노래 속에 내재된 관능을 품격있게 무대에서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세 번째 계절 ‘함영선’의 키워드는 ‘가족’이었다. ‘미운정 고운정’이 점철된 가족사를 ‘토속노래’를 통해서 전달하면서, 오래도록 남아있을 잔잔한 감흥을 관객에게 전해준다. 

네 번째 계절 ‘박진하’가 등장할 때부터 눈물이 핑 돌았다. 그녀의 사진이 그랬고, 그녀의 노래가 그랬다. 그녀가 이번에 무대에 등장했을 땐, 노래를 세련되게 잘 부르고자 하는 마음이 없어 보였다. 박진하는 그녀의 ‘엄마’가 되고 싶었을까? ‘엄마’처럼 노래하고 싶었을까? ‘슬픔 반, 소리 반’의 노래엔 분명 진정성이 듬뿍 배어있었다. 

다섯 번째 ‘조윤영’은 반전이었다. 그녀의 ‘사랑’과 ‘이별’은 매우 상투적인 통과의례일지라도, 조윤영의 그것을 ‘품격’이라는 키워드였다. 아직도 시린 마음의 정서로 차갑게 느껴졌지만, 나는 그녀의 노래를 통해서 정가(正歌)라는 장르도 누가 어떻게 부르느냐에 따라서 ‘서슬이 살아있는 노래’가 될 수 있음을 경험했다. 

마지막으로 등장한 여섯 번째 ‘강권순’은 다소 아쉽다. 악장의 입장에서, 자신은 뒤로 물러서고 단원을 돋보이게 하고자 하는 의도였을까? 강권순은 대가임은 분명하지만, 앞의 5명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그녀 자신이 보이진 않았다. 진정성이 노래와 연결되지 못했다. 하지만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의 성악파트를 이끌어가는 악장으로서의 그녀의 카리스마는 높이 인정한다. 

장르에 묻혔던 ‘개인의 발견’ 

지금까지 이런 콘서트는 없었다!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의 ‘사계의 노래’를 ‘리서치 콘서트’이자 ‘캐릭터 콘서트’라고 명명하고자 한다. 장르에 묻혔던 개인을 끄집어낸 것이다. 거기엔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여성’ 또는 ‘젠더’와는 또 다른 깊은 울림이 있었다. 많은 사람에겐 그저 전통노래의 하나로만 여겨졌던 그 노래 속에서, 각자 자신을 찾아내고 거기서 자신의 이야기를 살갑게 풀어낸 공연은, 지금까지 없었던 공연형태이다. 이런 형태의 공연은 우리 국악공연이 지향해야 할 매우 바람직한 한 방향이다. 장르에 묻혔던 ‘개인의 발견’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어 보인다. 이 공연에 관계한 모든 분께 박수를 보낸다. 

*이번 호부터 ‘윤중강의 뮤지컬 레터’가 ‘윤중강의 현장과 현상 사이’로 변경됩니다. 독자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