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혜숙의 장르를 넘어서] 한국인의 ‘발음의 음폭과 용량의 가능성’
[양혜숙의 장르를 넘어서] 한국인의 ‘발음의 음폭과 용량의 가능성’
  • 양혜숙 한국공연예술원 이사장
  • 승인 2022.06.15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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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꼭 60년 전의 일이다. 우리 부모님들은 잘못을 하여도 야단치시는 일이 없으셨다. 조용히 이름을 한번 더 불으시면 무언가 내가 잘못하여 고쳐야 할 부분이 있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가위를 드릴 때  뾰족한 끝이 부모님 쪽으로 가게 건넨다던지, 또는 부모님이 부르시면 급한 마음에 마당을 뛰어 와 신발 한 짝을 저쪽에 던져버리고 엄마나 아버지 앞에 섰을 때에도 "혜숙아, " 이름 한번 부르시면 무언가 잘못된 것을 내가 찾아 고쳐야 했던 어린 시절은 혼나는 일이 없이도 부모님의 삶의 테두리에서 내가 벗어나지 못한 채 본연의 '발가벗은 나'를 보지 못한 채 살아오고 있음이 내 안의 큰 숙제로 남아 있을 때였다.

부모님이 너무 올바르게 우리를 키워주시고 있다는 믿음 속에서도 나는 나의 자유분방함을 풀고 살아보지 못하는 채 시집가 애 낳고 나의 가능성과 한계를 모르는 채 인생을 마감할까 봐 초조할 때에, 나는 독일 정부가 주는 장학금으로 유학을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고 뛸 듯이 기뻤다. 우선 부모님을 떠나 그들의 삶의 철학과 신조에 맞추어 살지 않고 나 스스로의 한계와 가능성을 더듬어 볼 수 있다는 가능성과 불안에 몸을 던져보기로 한 것이다. 다행히 시험에 합격하여 나는 독일로 유학을 가게 되었고, 유학생활은 나에게 많은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그리하여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독어독문학과의 졸업논문으로 R.M. Rilke(1875 - 1926)의 시와 그의 시속에 비친 시대관, 다시 말해 그가 산 혼란의 시대 속에서 그의 번민과 희열의 시의 세계가 어떻게 태어날 수밖에 없었는지가 궁금했다. 두 달을 방에서 꼼짝 않고 나오지도 않은 채 졸업논문을 쓰는데 바쳤다. 그러고도 그 의문은 풀리지 않아 독일을 건너가서 <시인 그의 시대정신> 이란 제목으로 박사과정을 밟게된다.

당시 박사과정에 열려있는 R.M.Rilke의 제목만을 보고 자격도 갖추지 못한 내가 용감하게도 지도교수의 면담시간에 들어가 나의 관심 분야를 얘기하고 생각한 제목까지 제안해, 내가 정한 대로 지도교수의 제자가 되었다.

 

시로 출발한 독일유학

표현주의 연극 탐구로 드라마로 옮겨가

 

나의 지도교수 Klaus Ziegler 박사는 서슬이 퍼런 나치시대에 용감무쌍하게 <반 나치 운동>을 한 3명의 거인 학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감옥에서 얻은 천식으로 생을 마감하셨다. 순수한 호기심, 어떻게 서양의 전통 속에 뿌리내리고 있는 <논리와 이성>을 추구하는 시대에 무당이나 갖고 있을 영감과 즉흥의 예지로 세상의 잘못된 뿌리를 감지하고 용감한 산문과 시로 시대를 읽고 비판의 날을 세울 수 있었는지가 내게는 크나큰 궁금증이었다. 그래서 감히 교수님의 박사과정 강의를 청해 들으러 갔던 것이다. 교수님은 나의 의구심과 열정을 보셨는지 내가 제안한 제목으로 나는 덜컹 거인 학자라는 별명의 소유자인 교수님의 박사과정 제자가 되었다. 그 덕분에 많은 것을 경험하며 단 1년으로 허락된 장학금이 4년으로 연장되며 편안히 행복하게 유학생활을 할 수있었다.

그러나 나의 관심과 호기심은 Rike에 머무르지 않고 당시 혼란의 유럽에서 새로 태어나 시대를 풍미하고 있는 표현주의 시대를 주목했다. 열을 뿜으며 분출하는 표현주의 연극으로 옮겨 가 특히 그 다양하게 분출하는 힘으로 치솟는 표현주의 드라마 연구에 푹 빠지게 된다.

당시 인문대학 학장으로 부임하시어 석사 제도를 독일에 처음으로 도입하신 박사과정 지도교수를 찾아뵙고 나의 뜻을 제안하여 나는 Rilke에 관한 논문을 석사논문으로 마감한다. 그리고 박사논문도 내가 제안한 <표현주의 드라마 속의 서사극 이론>이란 제목으로 시의 장르에서 드라마 장르로 바꾸어 오늘에 이르게 된다.

박사를 끝내고 교수가 되어 금의환향한다는 꿈은 꿔보지도 않은 채 나의 삶의 여정과 끝없이 이어진 탐구의 여정은 우리나라 공연예술의 전통과 그 현대화로 이어지고 있다. 나의 학문적 호기심을 놓아주지 않은 채, 지금의 나는 <한극>의 전도사가 되어 세계화, 국제화 시대에 우리나라의 공연예술의 향방을 찾아 세우는데 열중하고 있다.

이러한 나의 끊임없는 호기심과 열정은 연극과 무대예술의 기본인 우리 민족의 말의 전달이 무대예술에서 어떻게 해야 시대에 맞는, 시대를 이끄는 방향타가 될 것인가에 대한 관심과 고민으로 차있다. 그래서 나의 과제는 시의 장르에서 드라마로 옮겨가 오늘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