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근의 얼씨구 한국음악과 문화] 일본 가고시마현, ‘심수관요’와 ‘학과 거북이 춤의 노래’
[주재근의 얼씨구 한국음악과 문화] 일본 가고시마현, ‘심수관요’와 ‘학과 거북이 춤의 노래’
  • 주재근 이화여자대학교 초빙교수
  • 승인 2022.06.15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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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근 이화여자대학교 초빙교수

“일본의 국보급 도자기, 심수관요,

424년 15대에 걸친 심수관이 지켜내고 소중하게 전승해 낸 것은

단순한 도자기 기술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말과 노래, 문화 등 우리 민족의 정신이다”

 

일본에 우리 민족의 시조인 단군을 신으로 모시는 신사(紳士)가 있다. 다마야마 신사(玉山紳士) 또는 다마야마 궁(玉山宮)이라 불리는 곳이다. 이 신사는 가고시마현 가노야시(鹿屋市)가사노하라초(笠之原町) 미야마(美山)에 위치해 있다.

이 일본의 신사에서는 왜 단군을 신으로 모시게 되었을까? 흥미로운 이야기는 정유재란(1597~1598) 시기 전북 남원에서 출발한다.

당시 남원은 전라도의 관문으로서 왜군의 북상을 막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1597년 8월 13일부터 8월16일까지 벌어진 남원성 전투에서 56,000여 명의 왜군의 총칼에 조선군 1,000여 명, 명나라 지원군 3,000여 명, 남원 주민 6,000여 명 등 10,000여 명이 전사하였다. 일본군은 미처 피난하지 못하고 성안에 남아 있던 70여 명의 도공을 포로로 잡아 일본으로 데려 갔다. 이들이 정착하게 된 곳이 지금의 가고시마현 미야마 즉, 나에시로가와(苗代川)였다. 박평의(朴平意), 심당길(沈當吉)을 비롯한 도공들은 낯선 땅에서 훌륭한 자기를 빚으면서 실력을 인정받으며 명품 사쓰마 도자기를 만들어 내었다.

그러나 전쟁의 상흔으로 인한 괴로움과 망향의 외로움은 무엇으로도 채워지질 않았다. 그래서 1695년에 단군을 신으로 모시는 사당을 지었는데 이것이 다마야마 신사의 시초가 된 것이다. 이들은 음력 8월 15일이면 마을 사람들과 함께 조국을 향해 제사를 지내고, 이 마을 사람들은 메이지 시대까지 한복을 입었고 한국말을 하였으며 결혼도 한국인끼리만 하였다고 한다.또한, 조선 남원에서 온 도공들과 기술자들은 고국을 하루도 잊지 않고 기리었으며 고향의 노래를 부르며 서로를 위로하며 애환을 달래었다.

그 노래의 제목은 학과 거북이 춤의 노래라는 뜻의 ‘학구무가(鶴龜舞ノ歌)이다. 이 가사의 내용을 보면 놀랍게도 1610년 궁중음악기관인 장악원의 악사 양덕수가 전쟁으로 인해 남원으로 피신을 가서 만들어 낸 『양금신보』 라는 악보집에 실려 있다. 이 고악보에 속칭 심방곡(心方曲)이라고 하여 거문고 선율에 가사가 기록되어 있다. 그 가사의 내용은 오늘이 오늘과 같이 젊어지지도 늙어지지도 말고 오늘처럼 되었으면 하는 평화를 기원하고 있다.

 

오ᄂᆞ리 오ᄂᆞ리쇼셔 ᄆᆡ일에 오ᄂᆞ리쇼셔

졈그디도 새디도 마ᄅᆞ시고

새라난(나ᄂᆞᆫ) ᄆᆡ양 댱식에 오ᄂᆞ리쇼셔

 

이 ‘오ᄂᆞ리’ 라는 노래는 19세기 중반 이후 해외로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이들이 고국을 그리워하며 부른 아리랑과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남원에서 끌려와 일본 가고시마현 나에시로가와에 정착한 도공 중 심당길의 후손들은 현재 15대까지 도자기 기술을 이어오고 있다.

심당길 이후 424년 동안 이어온 도자기 명가의 맥은 메이지 유신 때 가업을 빛낸 12대 심수관을 기려 이후 자손들은 ‘심수관’이란 이름으로 이어 오고 있다. 12대 심수관은 개인 가마 심수관요(沈壽官窯)를 제작해 사쓰마 도자기를 탄생시켰으며 그의 작품 중에는 일본 국보로 지정된 것도 있다. 13대 심수관은 가고시마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14대 심수관은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 수여와 전북 남원시의 명예시민이 되었다. 현재는 15대 심수관이 가업을 잇고 있으며 아버지 14대 심수관에 이어 대한민국 명예 총영사에 임명되었다.

심수관요에서 탄생된 도자기는 조선의 예술정신과 기술이 바탕이 되어 일본을 대표하는 세계적 명품 도자기로 칭송받고 있다.

이들이 지켜내고 소중하게 전승해 낸 것은 단순한 도자기 기술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얼 즉, 말과 글, 음악 등 우리 민족의 정신이다.

오는 7월, 15대 심수관이 정효문화재단을 방문한다. 선대들이 이어 온 우리 춤과 가락의 정수를 살짝 맛볼 수 있도록 그를 위한 작은 음악회를 준비하고 있다. 그 광경을 미리 떠올리니 벌써 가슴이 벅차오른다.

극장가는 ‘범죄도시2’가 1,000만 관객을 경신하였다고 한다. 일본에 간 조선 도공의 이야기와 노래들을 소재로 한 감동의 영화가 만들어졌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