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뷰]“핀란드 안무가가 그린 정중동의 몸짓”…국립무용단 <회오리>
[현장리뷰]“핀란드 안무가가 그린 정중동의 몸짓”…국립무용단 <회오리>
  • 진보연 기자
  • 승인 2022.06.27 16: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24일부터 26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 공연
핀란드 테로 사리넨 안무가 참여
초연 후 8년 만에 국립극장 공연

[서울문화투데이 진보연 기자]국립무용단이 1962년 창단 이래 처음으로 협업한 외국 안무가가 있다. 핀란드를 대표하는 테로 사리넨이다. 

<회오리>는 국립무용단이 핀란드를 대표하는 안무가 테로 사리넨에게 ‘한국 전통춤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공연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해 2014년 탄생한 작품이다. 초연 후 세 차례의 국내 공연과 함께 2015년 프랑스 칸 댄스 페스티벌, 2019년 일본 가나가와예술극장 초청 공연 등을 거치며 국립무용단의 대표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다. 

▲국립무용단 ’회오리’ 프레스콜 장면시연
▲국립무용단 ’회오리’ 프레스콜 장면시연 ⓒ국립극장

테로 사리넨 안무가는 클래식 발레로 출발해 현대무용, 일본 전통 무용과 부토까지 섭렵하고 '자연주의'라는 춤 철학을 구축했다. 하늘을 지향하고 각을 이루는 성향이 짙은 서양 춤에 비해, 땅을 지향하는 그의 움직임은 국립무용단의 움직임과 닮았다. 

한국무용 고유의 우아한 선과 역동적이고 현대적인 안무가 매혹적으로 어우러지는 <회오리>는 총 3장으로 구성된다. 순환하는 바다의 큰 흐름을 연상시키는 1장 ‘조류(Tide)’는 끊임없이 밀려드는 파도와 같은 움직임을 통해 반복적인 인생의 흐름을 표현한다. 인간의 근원과 내면을 탐구하는 2장 ‘전파(Transmission)’에서는 과거 조상들로부터 내려온 지식의 전수와 전파를 통해 인류의 근원을 탐구한다. 3장 ‘회오리(Vortices)'는 자연과 근원의 이해를 통한 외부로의 확장을 표현한다. 작품을 주도하며 전체의 흐름을 이끄는 것은 각각 ‘블랙’과 ‘화이트’를 상징하는 두 커플과 그들의 매개자 ‘샤먼’이다. 

<회오리>의 조명과 무대는 1993년부터 테로 사리넨과 호흡을 맞추고 있는 미키 쿤투가 맡아 북유럽 특유의 간결하고 감각적인 미장센을 보여준다. 

▲국립무용단 ’회오리’ 프레스콜 장면시연 ⓒ국립극장
▲국립무용단 ’회오리’ 프레스콜 장면시연 ⓒ국립극장

무대는 디귿(ㄷ)자로 배치된 단과 댄스플로어, 빛을 가린 여러 개의 막이 전부다. 무대 자체는 단순하지만 흑과 백의 대비가 강렬한 조명을 통해 입체적이고 꽉 찬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노란색 댄스플로어 위 무용수와 뮤지션들이 대칭을 이뤄 서로 마주 보게 해 관객의 시선을 무대로 집중시켰다. 조명은 무대와 관객 사이에 거대한 터널을 만들기도 하고, 빠른 전환으로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해 극의 분위기를 이끌며 무용수의 움직임을 더욱 신비롭게 감쌌다. 

흑과 백의 그러데이션이 아름다운 의상은 에리카 투루넨이 디자인했다. 한복과 부채에서 영감을 얻어 투명하고 하늘거리는 얇은 소재의 실크와 오간자를 사용했다. 천의 주름을 마치 동물의 방패를 떠올리게 하는 다양한 입체적 형태로 변주했다. 의상은 무용수의 움직임으로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내거나 작품 내용에 부합하는 주제를 표현하기 위한 또 다른 도구로도 활용됐다.

‘자연주의’라는 자신의 춤 철학을 구축해온 안무가 테로 사리넨은 한국 춤이 지닌 독특한 호흡과 선, 낮은 무게 중심이 주는 매력에 감탄했다고 한다. 하늘을 지향하고 각을 이루는 성향이 짙은 서양 춤에 비해 테로 사리넨의 움직임은 땅을 지향하는 성향을 갖고 있어 국립무용단의 움직임과 공통점이 있다.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안무가는 깊은 호흡으로 발을 디디는 무용수와 빠르게 교감하며 작품을 완성했다. 

▲국립무용단 ‘회오리’ 안무가 테로 사리넨 ⓒ국립극장

테로 사리넨은 지난 23일 프레스콜에서 한국 춤이 지닌 정중동(靜中動)의 미학을 언급했다. 그는 “정제된 움직임 속 분출되는 에너지가 있다는 것이 한국 무용수들의 장점”이라며 “한국 전통춤은 무용수의 움직임이 멈추더라도 그 여운이 계속 남아 에너지가 관객에게 전달된다”라고 말했다. 이어 “철학적으로 접근하자면 우리는 계속 땅에 연결되어야 한다. 꿈을 꾸고 창작도 하지만 그 모든 것의 출발점이 땅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이번 공연에서 ‘샤먼’ 역을 맡은 국립무용단 무용수 송설은 “안무가가 땅의 기운과 바닥에 깊게 뿌리를 내리라고 강조하는데, 이런 안무법이 한국무용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라고 전했다.

음악은 전통을 소재로 독특한 구조 쌓기를 통해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해 온 장영규가 맡았다. 박순아(가야금)·나원일(피리)·이승희(소리)·천지윤(해금)의 라이브는 제의적 춤사위에 생동감을 더했다. 간결한 미장센 위로 상상력을 자극하는 장영규의 음악이 만나 유연한 흐름(flow)을 극대화하고, 강렬한 춤과 어우러진 미니멀한 사운드의 음악은 태고의 원시적인 에너지를 끌어내 폭발시켰다.

▲국립무용단 ’회오리’ 프레스콜 장면시연 ⓒ국립극장
▲국립무용단 ’회오리’ 프레스콜 장면시연 ⓒ국립극장

팬데믹으로 한동안 멈췄던 국립무용단의 해외 공연도 이 작품으로 재개된다. 지난 2월 개관한 핀란드의 전문 무용 공연장인 ‘헬싱키 댄스하우스’는 개관 후 첫 해외 초청작으로 <회오리>를 선정했다. 사리넨은 “이 공연은 서로 다른 문화와 전통이 만나 악수를 하는 작품”이라며 “애정을 갖는 이 작품을 드디어 핀란드 무대에 선보일 수 있게 되어 영광이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