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뷰] 김영은 개인전 《소리의 틀》, 소리가 가진 시간의 층위를 읽다
[현장리뷰] 김영은 개인전 《소리의 틀》, 소리가 가진 시간의 층위를 읽다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2.07.08 16: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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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 7.8~8.13
제 17회 송은미술대상 대상 수상 기념전
소리에 담긴 역사‧사회문화 탐색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전시는 작가 개인이 가진 시선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장이다. 인간의 기초적인 감각인 ‘청각’에 대한 김영은의 독창적 해석을 함께 경험할 수 있는 전시가 개최됐다. 송은에서 7월 8일부터 8월 13일까지 열리는 김영은 개인전 《소리의 틀》이다. 2018년 제 17회 송은미술대상 대상 수상 기념 개인전이기도 하다.

▲밝은 소리 A (still image), 싱글 채널 비디오, 멀티 채널 사운드, 16분 56초, 2022 ⓒ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밝은 소리 A (still image), 싱글 채널 비디오, 멀티 채널 사운드, 16분 56초, 2022 ⓒ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지난 7일, 김영은 작가가 참석해 전시를 설명하는 언론간담회가 개최됐다. 사운드, 영상, 설치 작품이 주를 이루는 전시이기에 간담회 전 참석자들이 자유롭게 전시 관람을 한 후 질의응답 시간이 진행됐다. 전시는 송은 전시장 전관 3층을 모두 사용한다. 지난해 9월 송은 신사옥 개관 이후 한국 작가의 첫 개인전이자, 김영은 작가의 8년 만의 개인전으로 많은 관심이 쏠렸다.

2층 전시장에 진입하기 전, 김영은 작가의 아카이브 영상을 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2018년 송은미술대상 대상 수상 당시 김 작가의 인터뷰 영상과 함께 그의 지난 영상 작업을 볼 수 있다. 영상은 작가의 이전 작업을 돌아보고, 이번에 공개되는 신작 6점과의 연결성을 생각하게 한다. 이번 전시에서 김영은은 <밝은소리 A>(2022), <청음훈련>(2022), <미래의 청취자들에게Ⅰ>(2022), <미래의 청취자들에게 II>(2022), <오선보 이야기>(2022), <눈물 젖은 트위스트>(2022) 총 6점의 신작을 선보인다.

▲김영은 개인전 《소리의 틀》 3층 전시 전경 (사진=서울문화투데이)
▲김영은 개인전 《소리의 틀》 3층 전시 전경, 오선보 이야기, 싱글 채널 비디오, 스테레오 사운드, 47분 5초, 2022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소리’를 해석하는 시선의 확장

김영은은 소리를 물리적, 심리적, 역사적인 관점으로 해석이 가능한 어떤 영역으로 바라본다. 개인이 소리를 인식하는 기준에 의문을 품고 음악을 형성하는 기존 시스템의 구축 과정을 살펴보는 작업을 이어왔다. 2018년 당시 인터뷰에서 그는 이전 작업인 <세미콜론;이 본 세계의 단위들>(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서울, 2011), <402호>(문래예술공장, 서울, 2011)는 ‘기호와 소리’, ‘공간과 소리’라는 주제로 탐구를 이어 완성한 작업이었다고 밝힌다.

2018년 제 17회 송은미술대상전에선 소리라는 매체가 인지적, 사회적으로 어떻게 작용돼 왔는지에 대한 관심사를 다양한 방식의 작업으로 선보였다. <발라드>(2017)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과 영국의 대치 상황 중에 병사들이 불렀던 노래를 군사장비인 보코더로 출력해, 소리와 음악이 문화와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맥락과 소리의 사회적인 작용을 살펴본다. <총과 꽃>(2017)은 대북 확성기 방송에서 선동 도구로 사용되는 사랑 노래 작동 방식에 주목해 소리와 폭력의 관계를 고찰한다.

작가는 기존의 음악적 ‘틀’ 안에서 발생하는 의미상의 충돌과 새로운 음향적 리얼리즘 생산에 주목한다. 작가는 이번 신작에서 사운드 스터디의 방식을 취해 시선의 토대를 좀 더 확장시킨다. 이번 신작들을 관통하는 주제는 소리를 둘러싼 사회문화적 기록과 역사다.

▲김영은 개인전 《소리의 틀》 2층 전시 전경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이번 전시는 국제표준음고 A, 청음훈련, 오선보와 같은 서양 음악의 요소들과 민족지학적 오디오 레코딩의 인류학적 시도들이 한국음악과 만나는 지점을 포착한다. 음악적 선호에 대한 의문, 역사와 문화가 어떻게 우리의 청감각을 형성해 왔는지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한국인의 전통 음악적 귀가 서양 음악적 귀로 전환되는 근대화 과정을 조명한다. 나아가, 우리의 귀는 현재 어디에 놓여있는지 질문하며 음악을 구성하는 ‘틀’의 구축 과정을 살펴본자.

김 작가는 “기존에 고찰해왔던 ‘기호와 소리’, ‘공간과 소리’에서 현재는 소리를 둘러싼 사회 문화, 역사적 특징으로 옮겨왔는데, 소재에 대한 변화가 있었다고 해서 이전의 고민들이 완결된 것은 아니다”라며 “언제든지 이전의 지점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으며, 시도한 소재들에 계속 한 쪽 발을 담근 채 세계를 확장해나가는 것이라고 본다”라며 ‘소리’를 중심으로 확장돼가고 있는 자신의 창작관에 대해 설명했다.

작가는 소리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확장된 계기로 2017년에 겪었던 이주의 경험 언급했다. 김영은은 2017년 30대 중반의 나이로 미국으로 이주를 하게 됐는데, 이 과정으로 ‘완전한 관찰자적 이주민’의 일상을 경험하게 됐다. 한국에서의 삶과 다른 방식의 일상 속에서 작가는 미국이 가진 혼성적 문화, 미국 한인이주민 사회에서 볼 수 있는 ‘아메리카 드림’의 정서 등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김영은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 한국의 역사를 다시금 인지하고 고찰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미래의 청취자들에게 I (still image), 싱글 채널 비디오, 스테레오 사운드, 7분 58초, 2022
▲미래의 청취자들에게 I (still image), 싱글 채널 비디오, 스테레오 사운드, 7분 58초, 2022 ⓒ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소리에 담긴 역사적 기록 되풀이

신작은 모두 한국의 역사적 사실에서 발상을 얻는다. 한국에 서양의 소리가 들어온 과정(<밝은소리 A>), 한국의 고 악보가 한국인에 의해 서양 기보법으로 역보된 일화(<오선보 이야기>) 등을 전면으로 드러내며, 소리를 둘러싼 역사, 한국의 정체성을 따라가게 한다.

특히, <미래의 청취자들에게Ⅰ>은 과거의 소리를 추적하는 디지털 퍼포먼스 영상으로 소리가 담고 있는 시간과 역사성을 깊이 있게 다뤄낸다. 이 작업은 19세기 말 미국의 인류학자들이 사라져가는 원주민의 음악과 언어를 축음기로 녹음해 제작한 민족지학적 레코딩에 대한 단상에서 출발한다.

영상에서 들리는 노래는 1896년 미국의 인류학자 앨리스 플레쳐(Alice Fletcher)가 워싱턴에서 유학 중이던 세 명의 조선인에게 직접 공연을 요청해 왁스 실린더에 녹음한 <사랑노래 – 아라랑 1>이다. 왁스 실린더는 물성이 연약하고 환경에 민감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왁스 표면에 기록된 소리는 서서히 사라지며 노이즈화된다.

작업에서 작가는 노이즈를 지울 수 있는 프로그램 ‘노이즈 리덕션 플러그인(noise reduction plugin)’을 반복적으로 사용해 노래의 잡음을 줄이며 한 걸음씩 과거로 다가간다. 이 과정은 과거의 노래를 더 선명하게 들리도록 유도하지만, 소프트웨어가 소음으로 인식한 이 노래는 프로그램이 실행될 때마다 음향적으로 더욱 파편화되고, 점점 남아있는 소리는 없게 된다.

▲미래의 청취자들에게 II, 축음기, 왁스실린더, 1분 40초, 2022 ⓒ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작가는 민족지학적 레코딩이 품고 있는 양가적인 감정을 주목한다. 미국인 인류학자의 이 행위는 원주민 음악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애정에서 시작됨과 동시에, 이 노래를 녹음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은 <아라랑 1>이 사라질 원주민의 음악이라고 예견하는 것이다.

작품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작가는 노이즈 리덕션 플러그인으로 노래에 담긴 과거로 돌아가는 영상 작업 <미래의 청취자들에게Ⅰ>과 함께 <미래의 청취자들에게 II>를 함께 선보인다.

<미래의 청취자들에게 II>는 1900년대에 생산된 축음기를 전시장에 가져다 놓고, 작가의 목소리로 왁스 실린더 위에 다시 녹음된 <아라랑 1>을 들려주는 작품이다. 소음으로 귀결되는 근대 민족지학적 레코딩의 존재 방식을 현재 시점에서 한 번 더 되풀이해 그 유효기간을 연장한다. 이를 통해 작가는 민족지학적 레코딩에 드리워진 죽음의 이미지를 상쇄 시킨다.

이번에 김영은이 선보이는 신작 중 4점은 영상 작업으로, 작품을 모두 관람하려면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작가는 송은 2, 3층에 전시된 4점의 영상 작품은 작품의 토대가 된 소리가 가지고 있는 맥락을 인지할 때 깊이 있는 이해가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지하 2층에서 선보이고 있는 13대의 스피커로 재생되는 <눈물 젖은 트위스트>는 좀 더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눈물 젖은 트위스트>는 일제강점기부터 90년대까지 법적 금지곡으로 지정됐던 20여곡의 대중 음악을 다시 불러와 재생 시킨다. 작가는 노래의 개성적인 음악적 특성이 드러나는 부분을 발췌하고 연주해 본래의 타임코드 상에 다시 배치한다. 하나의 노래로 합쳐진 분절된 소리들은 전시 공간 안에 배치된 여러 대의 스피커를 통해 서로 다른 위치에서 그 음향적 존재를 드러낸다.

작가는 대중가요는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자 해당 시기의 대중적 정서가 녹아있는 저장소라고 봤다. 송은 지하 1층 큰 면적의 공간에 놓인 13대 스피커의 존재는 일제강점기부터 90년대까지의 대중 정서를 상징하는 듯 맞춰지지 않은 각자의 소리를 낸다. 이 작업은 소리 바깥의 정치적인 이유로 금지된 노래들의 음악적 가치를 복귀시키고 있다. 그것은 음(音)의 형태를 띠고 있는 소리이면서 당시 시대의 언어로도 읽힌다.

▲김영은 개인전 《소리의 틀》 지하 2층 전시 전경, 눈물 젖은 트위스트, 멀티 채널 사운드 설치, 5분 루프, 2022 ⓒ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익숙하기에 잊고 있던 ‘청각’에 대한 새로운 인지

김영은이 구현하고 있는 소리에 대한 고찰과 작업은 쉽게 인지하고 받아들이기에는 어려울 수 있다. 작업에 사용되고 있는 소리의 맥락을 이해한다하더라도 어떤 역사적 사실이나 서술에 집중해 작품이 발화하고 있는 메시지를 간과할 수도 있다. 간담회 중에는 대중에게 낯설 수 있는 표현의 작품들을 관람객이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지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김 작가는 “전시장이라는 공간이 소리에 집중하기 쉽진 않은 공간이다. 개인적인 욕심이지만,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이 소리에 온전하게 집중해 특별한 청각적 경험을 하길 바란다”라며 “소리를 통해서도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관점 연구가 가능하다는 점을 느끼길 바란다”라는 답을 전했다.

4개의 영상 작품, 2개의 사운드, 설치 작품으로 이뤄진 이번 전시는 개별의 작품을 관람하기 위해 시간을 들여야 한다. 그 시간은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감각인 청각에 대한 새로운 인지를 열어준다. 너무나 익숙하기에 가끔은 ‘청각’이라는 감각이 있었는지도 잊고 사는 일상 속에서 ‘청각’이 지니고 있는 다양한 층위를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세계를 인지하는 한 작가의 세계관과 시각을 느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