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nterview] 제주국제관악제 이상철 조직위원장 인터뷰 “제주의 바람이 관악기를 연주한다”
[Special Interview] 제주국제관악제 이상철 조직위원장 인터뷰 “제주의 바람이 관악기를 연주한다”
  • 이은영 발행인ㆍ진보연 기자
  • 승인 2022.07.13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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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국제관악제 산 증인, 수차례 도전 ‘국제관악콩쿠르연맹 인증’ 가장 기쁘고 감사
“자신의 일처럼 열심히 해 준 많은 분들 노력 덕분 가능했던 지금의 성과”
학교악대, 아마추어악대, 그 자체로 완결성 가진 관악대로 바라봐주길 
“대중성과 전문성 조화 이루는 제주 대표 예술 축제 만들 것”
관악제 역사상 최초, 30인조 '영국 코리 밴드' 초청
8.7~16, 제주국제관악제 여름시즌 개최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 발행인‧진보연 기자]8월이면 전 세계 관악인들의 이목은 제주로 향한다. 평화의 섬 제주에서 한국의 대표적인 음악축제이자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금빛 관악 축제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관악기의 음악소리가 제주의 바람을 가득 채운 것은 19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주도문예회관 대극장을 주 무대로 한국관악협회 제주도지부가 주관하는 대한민국관악제가 그해 8월 펼쳐졌다. 대도시를 무대로 진행되던 전국관악제는 열일곱 번 만에 처음으로 제주를 찾았고, 명칭도 대한민국관악제로 바꿔 치러졌다. 

제주고교연합관악단은 1994년 일본 시즈오카현 하마마쓰시에서 열린 ‘제 8회 아시아 태평양 관악제’에 한국 대표로 참가하는 기회를 얻었다. 이를 시작으로 ‘제주국제관악제’에 대한 아이디어가 모이기 시작했고, 대한민국관악제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제’ 음악 축제로 성장하게 됐다. 

▲2021 제주국제관악제 경축음악회
▲2021 제주국제관악제 경축음악회

‘섬, 그 바람의 울림(Island, The Resonance of Wind)’을 주제로 매년 8월 열리는 제주국제관악제는 통영국제음악제, 대관령국제음악제 등과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3대 국제음악추겢로 인정받고 있다. 특히 제주국제관악콩쿠르는 2009년 국제음악콩쿠르세계연맹(WFIMC) 가입을 통해 국제적인 음악콩쿠르로 인정을 받고 있으며, 금관악기 전 부문과 타악기에서 경연이 이뤄지는 세계 유일의 관악콩쿠르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이 긴 여정에는 트롬본을 전공한 관악인 이상철 제주국제관악제 조직위원장이 언제나 함께했다. 이상철 조직위원장은 제1회 축제부터 함께해온 제주도내 3세대 관악 지도자이다. 그는 오현고 음악교사로 재직 중에도 학생관악단을 결성해 학생들을 키우는 등 도내 관악계 양성을 위해 꾸준히 활동해 왔다. 한국관악협회제주도지부 사무국장을 거쳐 부지부장, 지부장을 역임했으며,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제주문화예술재단 이사로 재직했다. 아울러 제주국제관악제에서 집행위원장 역할을 하며 축제의 위상을 높이고 입지를 넓히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이에 대한 공로로 1999년 ‘오늘의 음악가 상’, 2012년 ‘한국 음악상 본상’을 수상한 바 있다. 

27년 동안 제주관악제와 동행한 이상철 조직위원장은 “‘바람의 음악’ 관악은 ‘바람의 고장’ 제주를 더욱 제주답게 만든다”라며 애정을 드러낸다. 바다 속을 솟구쳐 오르는 해녀들과 함께 호흡하는 관악의 도시 제주에서 그를 만나, 세월이 묻은 금빛 음악에 담긴 이야기를 들어봤다. 

▲제주국제관악제 이상철 조직위원장
▲제주국제관악제 이상철 조직위원장

매년 제주에는 관악 소리가 울려 퍼진다. 여름시즌에는 청소년관악단과 마에스트로 콘서트 등 관악단 위주의 공연이, 가을시즌에는 관악작곡콩쿠르 및 전문앙상블 공연이 진행된다. 아마추어와 프로, 그리고 전 세대를 아우르는 대규모 축제를 어떻게 꾸려나가고 있는지?

처음부터 이렇게 진행됐던 건 아니다. 올해로 제주국제관악제가 27회를 맞게 됐는데, 그동안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전문가들이 아니라 축제를 잘 몰랐던, 다만 관악을 너무 사랑하는 토박이 관악인들이 연대감을 가지고 서로 힘을 보탰기에 그 도움들이 더욱 값지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종류의 악기 중 제주에서 ‘관악’이 발달한 이유가 무엇일까?

아무래도 지형적 요인이 크다고 생각한다. 바람이 많이 부는 섬 제주에서는 돌담도 관악기가 된다. 바다에서는 해녀의 숨비소리가 있다. 바다 깊이 들어갔다가 일시에 뿜어내는 숨비소리 역시 관악의 원리와 같다. ‘바람의 음악’ 관악은 ‘바람의 고장’ 제주를 더욱 제주답게 만든다. 

첫 시작은 전국 단위인 ‘대한민국관악제’였으나, 이후 국제 단위인 ‘제주국제관악제’로 그 규모가 확대됐다. 

제주국제관악제가 하루아침에 탄생한 것은 아니다. 한국관악협회에서 주최하는 전국관악제가 1992년 17회 만에 처음으로 제주도에서 개최됐다. 이를 기념해 전국관악제 대신 ‘대한민국관악제’라는 이름을 새로 붙였고, 하루만 진행하던 행사를 3일로 늘려 진행했다. 국내 관악인들만의 축제였던 행사는 1994년 7월 일본 하마마쓰에서 열린 ‘제8회 아시아 태평양 관악제’에 한국 고등학교 대표로 ‘제주고교 연합악대’가 참가한 것을 시작으로, 그 규모를 해외까지 확장해나갔다. 

각 나라별로 다르긴 하겠지만, 관악하는 사람들의 공통 관심사가 이 축제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문화권이 다른 전 세계 사람들이 ‘관악’이라는 관심사로 모인 만큼, 함께 연대하기도 하고 서로 다른 점을 공유하기도 한다. 다른 축제와 차이점이 있다면, 제주국제관악제의 아카데미 기능은 권위 있는 프로가 아마추어에게 가르치는 방식이 아니라, 다양한 예술인들이 모여 부족한 점을 깨우치고 뛰어난 점을 자연스레 흡수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에 유명 예술가나 전문가를 초청하는 것보다, 학생은 학생대로 아마추어는 아마추어대로, 프로는 프로대로 함께 소통하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것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 

다양한 관악인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축제 진행 방식은 유의미하나, 자칫 축제의 원래 취지와 목적, 정체성이 흐려지지 않나 이런 우려도 있을 것 같다.

그 부분에 대한 고민은 분명히 있고, 지금도 보다 나은 진행 방식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출발해 지금의 모습을 띄게 됐지만,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너무 아마추어 적이다, 프로그램 정돈도 안 된다’는 지적과 눈총도 많이 받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냉정히 말하자면,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오케스트라단처럼 (국내 관악이) 세계적인 규모를 갖추고 있진 않다. 군악대가 있긴 하지만, 모병제가 아니기 때문에 유럽의 경찰악대, 소방악대처럼 프로 관악대의 형태라고 보긴 어렵다. 이에 국내 관악단은 대부분 학생과 청소년, 아마추어 구성이 많은 상황이다. 

해마다 제주국제관악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모사업에 지원하고, 채택이 돼서 지원을 받고 있다. 하다 보니 그간의 활동을 인정받아 꾸준히 채택이 되고 있지만, 처음엔 평가 받는 것 자체가 상당히 어려웠다. 아마추어 행사도 아니고 프로 행사도 아니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하지만 학교악대, 아마추어악대가 더 나은 악대를 만들기 위한 ‘과정’이라고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그 자체로 완결성을 가지는 관악대로 바라봐주길 바란다. 

▲영국 코리 밴드
▲영국 코리 밴드

코로나19에 대한 우려감 등으로 올해 해외 참가팀은 세 팀에 그쳤지만, 코로나 발생 이전인 2019년에는 25개국 3,800명이 참가한 바 있다. 참여팀은 현저히 줄었지만 올해 축제에는 이례적으로 과감한 지원을 통해 초청하게 된 악단이 있다고 들었다.

우리 관악제 역사상 처음으로 일부 앙상블이 아닌 30인조가 넘는 전문 관악단을 초청하게 됐다. 바로 영국의 코리 밴드이다. 1884년 영국 웨일즈 론다밸리에서 처음 시작된 코리 밴드는 영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서 연주하며 역동적인 음악을 연주하는 단체이다. 축제의 예산이 많지 않다 보니 이렇게 많은 인원이 포함된 대형 밴드의 공연을 선보이는 것은 처음이다. 항공ㆍ숙박을 전부 부담해야 했기에 큰 지출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도민들과 국내 관악팬들에게 코리 밴드의 온전한 무대를 선물하고 싶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유럽식 정통 금관악기로만 구성된 영국식 브라스밴드의 독특함을 통해, 새로운 음악이 주는 감동을 느끼는 시간이 되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국내 유일의 국제 관악축제로서 입지를 굳건히 하고 있지만, ‘로열 에든버러 밀리터리 타투’ 등 해외의 대규모 페스티벌 사례들을 찾아보고 롤모델로 삼으며 그 기반을 다졌을 것 같은데 어떠한가?

축제가 만들어질 초기 단계엔 필요에 의해서 시작됐기 때문에 어떤 목표를 두진 않았다. 그리고 어느 정도 우리만의 축제가 완성된 지금은, 조금 시건방진 이야기 같지만 오히려 다른 이들의 롤모델이 됐다. ‘제주국제관악제’는 축제와 콩쿠르, 아카데미 기능까지 하고 있는데 이를 두고 처음엔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다. 하지만 정체성을 가지고 꾸준히 발전시켜나가니 하나의 장르가 된 것이다. 제주국제관악축제 자체가 하나의 장르다. 이에 대한 자부심이 굉장히 크다. 

콩쿠르에서 저음 악기와 고음 악기 부문을 나눠서 경연이 진행되는 것도 굉장히 특이하다.

처음엔 같이 하다가, 3회부터 제주도청 담당공무원이 예산을 미리 올려준 덕분에 격년제로 하던 축제가 연례 축제로 변경됐다. 이에 짝수 해는 전문앙상블 축제 및 국제관악콩쿠르, 홀수 해는 밴드축제로 성격을 달리하여 개최됐다. 각각 전문성과 대중성에 집중해 경연을 치렀다. 하지만 예산이 한정된 탓에 1999년 다시 난관에 봉착하게 됐다. 이 시기에 제주시와 손을 잡고 공동주최하게 되면서, 행ㆍ재정적 기반을 확보한 제주국제관악제는 점차 안정화됐다. 이후 콩쿠르는 호른, 트럼펫, 트롬본, 베이스, 유포니움, 튜바 그리고 금관5중주 및 타악기 등 8개 부문이 생겼다. 짝수 해는 베이스트롬본 등 4개 악기를, 홀수 해는 트럼펫 등 4개 악기 부분으로 진행된다. 

특히 관악기 중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는 저음 파트가 따로 경연 부문에 포함된 것이 더욱 눈에 들어왔다.

말씀하신 것과 같은 이유로, 일부러 저음 악기를 더 신경 썼다. 특히 유포늄 같은 악기는 오케스트라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관악기이다. 고음과 저음의 중간 역할을 하는데, 세계적으로 이 악기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는 점이 참으로 안타깝다. 콩쿠르도 거의 없기 때문에 제주국제관악콩쿠르 유포늄 콩쿠르에 대한 지원과 관심이 매우 뜨겁다.

▲소방청 중앙소방악대
▲소방청 중앙소방악대

제주국제관악콩쿠르는 병역 혜택이 인정되는 29개 음악 분야 콩쿠르 가운데 하나다. 국내에서 개최되는 국제 음악 콩쿠르는 3개뿐이라 경쟁도 치열할 것 같다.

제주국제관악콩쿠르 경연은 지난 2009년 국제음악콩쿠르세계연맹(WFIMC)에 가입됐고, 2위 이내 입상한 내국인에게는 병역혜택이 주어진다. 인정 부문은 호른, 튜바, 트럼펫,트롬본이다. 국내에서는 서울국제음악콩쿠르,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와 함께 가입되어 있으며 관악으로는 유일하다. 

과거에 비해 우리나라 클래식 연주자들의 세계적 위상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K-클래식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장르에 대한 관심도 높아짐에 따라 연주자의 수 또한 많아졌다. 뛰어난 연주자들이 많아지는 만큼, 콩쿠르 내 한국인들의 경쟁도 가열된 것이 사실이다. 특히 병역 혜택이 주어지는 국제 음악 콩쿠르가 몇 없다 보니 참여자의 수, 그 중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대상 범위의 참여자 수가 과거에 비해 훨씬 많아졌다. 건강한 경쟁을 통해 뛰어난 연주자들이 더욱 많이 발굴되길 기대하는 바이다.

1995년 축제가 시작됐을 때부터 지금까지 쭉 역사를 함께하고 있다. 그동안 관악제를 이끄는 동안 무수히 많은 일들이 있었을 텐데, 마음 쓰라린 기억과 잊지 못할 정도로 행복했던 기억을 하나씩 꼽아본다면?

지난 2008년 6월에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임성철 전 제주국제관악제 사무국장님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1992년 제주시립합창단 단무장을 맡으며 제주 음악예술계의 산파 역할을 해온 분이다. 제주국제관악제가 시작될 때부터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기까지 묵묵히 일을 해오셨다. 정말 어려울 때 고생만 하시다가 축제의 기틀이 제대로 잡혀갈 때쯤 돌아가신 것 같아, 임 사무국장님을 생각하면 항상 마음이 아프다.

가장 기분 좋았던 날은, 2009년 4월 19일이다. 서울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에서 제주도립교향악단이 공연할 때였는데, 인터미션 시간에 갑자기 전화를 한 통 받게 됐다. 이름만 알고 만난 적도 없던 서울대학교 김승근 교수님이 멜버른을 준 것이다. ‘제주국제관악콩쿠르가 국제관악콩쿠르연맹에서 방금 인증을 받았다’라는 소식을 전해주더라. 수차례 도전 끝에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았다는 사실이 정말 기쁘고 감사했다. 

사실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내 직위가 바뀌고 책임을 지는 자리에 오르다 보니 내 이름이 좀 더 자주 드러나고 조명을 받게 되는 것 같다. 혼자 이룰 수 있는 것은 없다. 언제나 자신의 일처럼 열심히 해주시는 많은 분들의 노력 덕분에 가능했던 지금의 성과인데, 포커스를 매번 나만 받게 되는 게 굉장히 죄송스럽기도 하다. 특히 임성철 사무국장님은 제주국제관악콩쿠르가 국제 콩쿠르 인증을 받기까지 1년을 채 남기지 않고 돌아가셨기에 아직도 애석한 마음이 크다.

▲제주국제관악제 루드비히스부르크 청소년관악단 야외 공연 모습
▲제주국제관악제 루드비히스부르크 청소년관악단 야외 공연 모습

8월과 10월에 축제를 통해 관객들과 만나게 될 예정이다. 대중성과 전문성을 겸비한 예술축제로 관광 효과까지 이끌어내는 막중한 사명감을 짊어지고 있는데, 앞으로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축제를 진행할 계획인가?

제주국제관악제는 전부 무료 공연입니다. 앞으로는 구체적으로 세분화시켜서 실내 공연 중 일부는 유료화 될 예정이지만, 그래도 야외 공연의 비중이 훨씬 높다. 여름과 제주, 그리고 관악의 하모니가 정말 좋다. 제주 해변 공연장이라든지, 서귀포 천지연 폭포 야외공연장 등은 전부 제주국제관악제와 연관이 되면서 건물이 생겼다. 우리 축제가 도화선이 된 것이다. 제주 관광 환경에 예술이라는 새로운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 이것은 우리의 자부심이기도 하다. 앞으로 우리 축제가 나아갈 방향성이 아닐까 싶다. 정말 감사하게도 제주 도민들의 한결같은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는데, 앞으로도 도민들을 먼저 만족시키는 축제를 위해 노력하다보면 관광객들의 취향까지 만족시키지 않을까 싶다. 지역에 관심을 받지 못하는 축제는 생명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지금껏 해왔듯이 전문성을 살리며 콩쿠르와 전문 앙상블 연주자들을 통해 깊이를 더하면, 제주를 방문하는 연주자들이 다른 동료 연주자들에게 소개할 것이고 이것이 곧 관광으로도 이어질 것이라 예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