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의 무용평론]리케이댄스 20년- 이경은의 ‘복bOK’
[이근수의 무용평론]리케이댄스 20년- 이경은의 ‘복bOK’
  •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 승인 2022.07.13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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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무대에서 춤추는 무용수들의 흥이 넘쳐 객석으로 흘러내리고 무용수와 관객의 흥이 하나로 합쳐져서 로비 홀로까지 연장되는 공연은 흔치 않다. 리케이댄스(LK.DANCE Company) 20주년 기념작으로 2022년 예술창작활동 지원사업에 선정된 이경은의 ‘복bok’(6.17~19, 아르코대극장)은 이렇게 흔치 않은 공연이었다. 

객석에 입장하면 엷은 청보라색으로 덮인 무대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흰옷의 노인이 무대 안쪽에서 걸어 나와 대각선으로 움직이며 천천히 무대를 가로질러 간다. 손에는 축하의 꽃다발이 들려 있다. 발레 춤사위를 흉내 내는 여인이 뒤를 따른다. 무대 오른쪽에 혼자 앉은 악사가 전자 건반을 연주한다. 청아한 음색과 무대 조명(류백희)이 조화를 이루며 쿨(cool)한 느낌이 객석으로 전이된다.

무대 뒤쪽엔 병풍을 접은 모양의 소도구들이 늘어서 있다. 바퀴가 달려 자유롭게 이동하고 접었다 폈다가 가능한 기능성을 갖췄다. 무용수들이 이를 끌고 이동하며 자유로운 몸짓 들을 펼쳐가는 무대엔 여백이 있다. 앉아서, 누워서, 혹은 기어 다니는 다양한 몸짓들, 밝아진 조명 아래 무용수들 얼굴엔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남자 셋, 여자 여섯, 출연자 중에는 80대 여인(국민배우 박정자)부터 열 살 남짓 초등학생 소녀(허하윤)까지 남녀노소가 망라되어 있고 장애인과 비장애인, 유명인과 무명인이 한데 어울려 무대를 휘젓는다.

▲bOK(2022), Lee K-dance ⓒSang Hoon Ok

제각각 움직이던 몸들이 합체되어 기묘한 형상을 창조하기도 한다. 남녀가 만나 그리스 신화 속 켄타우로스(Centaurus, 반인반마) 모습도 만들어내고 8개 발이 달린 거미 모양을 형성하기도 한다. 춤추면서 그들은 함께 노래한다. “내 몸이 내 몸인가 네 몸인가”, 공연의 표제어며 작품의 주제가 된 메시지다. 규칙적인 박자에 맞춘 율동적인 몸짓이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무대 감을 창조한다. 안경모의 우울한 텍스트와 달리 몸들의 향연을 보는듯한 밝은 에너지가 무대와 객석을 가득 채운다. 서쪽의 흰색, 동쪽의 청색과 녹색, 북방의 검정과 남방의 붉은색, 그리고 중앙의 황색이 배경술의 의상을 통해서 오방색으로 표현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춤이고 춤은 곧 몸이다. 동양적 감각과 서양적 세련됨이 조화를 이루어낸 몸짓들로 채워지는 무대는 신선하다. 박정자가 시작한 노랫가락은 모두가 따라 하는 합창이 된다. “찔레꽃처럼 살았지, 찔레꽃처럼 춤췄지, 찔레꽃처럼 노래했지, 찔레꽃처럼 웃었지, 울었지….” 귀에 익숙한 가사 속에 20년을 버텨온 리케이댄스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예술이 갖는 자유의 본성과 상생의 가치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리케이는 온 마음이 합쳐서 성인이 되었습니다.”라고 이경은은 술회한다. 9명 출연자는 리케이댄스가 뿌리내리고 성장해온 폭넓은 관객층을 상징한다. 발레와 현대무용을 아우르고 강강술래와 농악의 상모돌리기까지 이르는 다양한 춤사위는 무용단의 광범한 공연 스펙트럼을 반영하고 전자 건반에서 태평소까지를 넘나드는 소리들(이일우)은 그들의 거침없는 음악성을 보여준다. 춤의 구성 요소 들을 모두 한 작품에 망라함으로써 이경은은 작품의 완성도와 함께 무용단의 정체성을 알려준다. 그는 춤을 통해 무엇을 표현해야 하는가를 알고 있는 무용가며 의도한 주제를 관객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는 소중한 안무가다. 리케이댄스가 예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획득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일 것이다. 작년 여름 국립현대무용단이 트리플 빌로 기획한 ‘브레이킹(Breaking)’을 보고 이렇게 쓴 기록이 있다. 

“브레이킹은 ’현대무용+힙합+국악’의 요소를 한 무대 위에서 골고루 섞어 만들어낸 비빔밥 같은 작품이다. 메시지전달보다 음악에 맞춘 자유로운 몸 자체의 반응을 중시하는 힙합의 특징을 살려 이경은은 장르, 소리, 연출,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모두 깨는 춤을 시도한다. 출연자들은 제멋대로 등장해서 마음대로 움직이고 제 나름의 놀이를 자유롭게 즐긴다. 자유로움이라는 수단을 통해 자연스럽게 작품의 질서를 형성해가는 모습을 보여준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bOK(2022), Lee K-dance ⓒSang Hoon Ok
▲bOK(2022), Lee K-dance ⓒSang Hoon Ok

예술작품이 본질적으로 갖춰야 할 ‘자유(自由)’라는 가치를 바탕에 깔고 이경은은 궁극적으로 예술이 봉사해야 할 ‘상생(相生)’이란 사회적 가치를 잊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동시대 화두를 던진다면 리케이댄스는 사랑입니다. 즉 인간애인데요, 함께 살아가는 나와는 다른 사람들: 남녀노소 장애 비장애가 손잡고 춤추는 세상을 제시하고 싶어 ‘복bOK’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있는 결핍을 메꾸고 교환, 공존하는 세상은 리케이가 제시하고자 하는 춤 세상입니다. 모든 존재는 축복이니까요.” 춤 바이러스로 웃음 만발했던 연습실 분위기가 오늘 극장에도 활짝 전염되길 바라던 그녀의 소망대로 관객들을 행복하게 해준 공연에 감사한다. 이경은의 ‘복bOK’은 ‘몽유도원무’(차진엽, 4월)와 함께 상반기 우리 무용예술계를 빛나게 한 수작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