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혜의 조명 이야기] VIVID SYDNEY와 우리의 숙제
[백지혜의 조명 이야기] VIVID SYDNEY와 우리의 숙제
  • 백지혜 디자인 스튜디오라인 대표, 서울시좋은빛위원회 위원
  • 승인 2022.07.13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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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지난 5월 중순부터 6월중순까지 시드니행 비행기는 만석이었다. 우리의 지구 반대편의 호주는 이제 가을로 접어들어 스산하게 추워지는 시기로 바다물에 반사된 반짝이는 햇살과 더불어 하얗게 빛나는 오페라하우스도 고도가 낮아진 태양 때문에 에너지를 잃은 듯 보이는 계절인 것이다. 호주 여행의 성수기는 12월로 여름휴가와 크리스마스로 이 시기에 호주 여행을 하려면 꽤 일찍부터 서둘러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 이외의시기, 5,6월은 비수기여야 맞다.

오히려 북반구의 봄에서 여름을 넘어가는 시기는 관광하기에 최적의 날씨이다. 유럽여행을 떠나거나 동남아시아, 멀리 미국여행을 계획하는 것도 이 시기이다. 너무 덥지 않고 너무 춥지도 않고..그럼에도 불구하고, 엔데믹 분위기에 첫 해외지로 시드니로 선택한 이유는 세계 적인 수준의 빛축제로 꼽히는 비비드시드니 VIVID SYDNEY 때문이다.

오랫동안 빛축제는 리옹, 리옹의 빛축제라는 공식이 지배적이었으나 비비드 시드니가 시작한지 10여년만에 어깨를 나란히 하는 축제가 되었다. 사실 리옹의 빛축제 페테 드 루미에르 Fete De Lumiere 와 비비드시드니는 비교가 불가하다.

페테 드 루미에르는 리옹 시민들이 종교적인 이유로 자발적으로 시작, 오랜 시간동안 그 명맥을 유지하다가 관 주도하에 도시의 아이덴티티로 발전시킨 사례로, 해마다 화제인 이슈를 테마로 정하여 스토리텔링이 탄탄한 컨텐츠를 제공하며 다양한 조명기술이 축제의 도구가 된 것은 전통적인 촛불의식 뿐 아니라 리옹시 경제개혁을 위해 게임산업을 장려했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코로나 이전 리옹 빛축제에 갔었을 때 조명세미나 장의 테이블에 색색의 명주실 놓여 있었는데 실크 산업이 주인 리옹시의 경제활성화 전략이 포함된 것이었다.

이렇게 리옹의 빛축제는 도시의 다양한 가치를 빛,조명기술을 통해 알리기 위한 축제인 것이고 그래서 리옹의 시민들은 도시조명에 관한 모든 일상의 불편을 기꺼이 감수한다. 예를 들어, 축제기간 4일 동안 리옹의 거리의 일부가 조명 장치나 조명 조형물 설치를 위해 차량이 통제되고, 거리의 가로등이 조도를 낮추기 위해 감싸지거나 일부 가리워져 어두워져도 불편을 호소하지 않는다. 또한 밤 늦게까지 조명이 불을 밝힌 조명 예술작품이나 건물에 프로젝션된 영상들 때문에 내 집 창문으로 빛이 들어와도 민원을 재기하지는 않는 분위기이다.

리옹의 도시조명국 관계자에 의하면 축제에 대한 자부심 뿐 아니라 그 어느 도시보다 높은 수준으로 요구되고, 검토되는 야간경관에 대해 리옹시민들은 불평보다는 매우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한다.

반면, 오페라 하우스의 도시 시드니는 해안선을 따라 조성된 초록의 공원과 흰색의 주택들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곳이었다. 도심은 오랫동안 영국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던 탓인지 런던과 유사하게 역사적인 건물과 현대식 건물이공존하며 공원의 풍부했다. 오페라하우스 밖에 없는 줄 알았던 시드니에 다양한 수목과 산책로가 아름다운 식물원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상업건축물이 있다는 사실을 이번 여행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대부분 시드니를 관광한 사람들은 오페라하우스 주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20년전의 나처럼.

VIVID SYDNEY 는 동절기의 관광활성화를 위해 계획되었다고 한다. 추운 겨울, 리옹을 방문하여 거리를 구석구석 걸어다니게 하는 빛축제를 벤치마킹하였다고 하지만 결과는 매우 다르다.

비비드 시드니는 내부에서 발견하는 전통의 발전이 아닌 외부로 부터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 발전시키는 방식을 택했다. 우선 아날로그에서 최첨단의 조명기술까지 그 방식을 다양화 하였고 조명 뿐 아니라 실험 음악, 창의적인 지식을 교환하는 세미나 등 분야도 확대하여 다양한 볼거리와 들을 거리 그리고 정보가 모이는 축제로 만들고자 하였다. 키컬러 바이올렛과 블루가 온 도시 전역에 퍼져있어 축제의 장에 와 있음을 매순간 느낄 수 있었고, 매일 저녁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 투광되는 영상으로 축제의 시작을 알려 사람들은 오페라하우스 주변 카페에서 맥주를 마시며 이 순간을 함께하기 위해 인산인해를 이룬다. 수변을 따라 즐비하게 늘어선 카페, 음식점들도 하버브릿지의 조명쇼를 바라보며 저녁식사를 하는 사람들로 가득하고 산책길에는 비비드한 색상과 패턴의 고보조명을 따라 걷는 재미에 빠진 사람들의 모습이 매우 즐거워 보였다.

축제의 볼거리는 여기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주변의 현대식 건축물의 장식조명도 이 시기에는 평소와 다르게 연출되어 빛축제의 일부가 되며, 시드니 전역의 관광지, 심지어 동물원이나 배를 이용하여야만 갈 수 있는 작은 휴양지 섬까지 크고, 작은 프로그램들을 마련하여 일주일 머무는 동안 시드니 전역을 돌아볼 수 밖에 없도록 한다. 따라서 비비드 시드니를 보러오기 위해서는 여름휴가, 크리스마스 시기 만큼 시드니 전역의 호텔, 음식점 등 서둘러 예약을 해야 한다.

친환경 정책을 강력하게 시행하고 있는 호주답게 티켓이나 안내장 하나 종이로 만들지 않고 모두 모바일을 이용하도록 되어 있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불편하겠지만 - 내가 그랬다 아직은 글씨, 그림이 작은 전화기로 뭘 보는 것이 쉽지 않다. - 거리에 쓰레기 하나 없이 깨끗한 것도 큰 다름이다.

대부분의 주거지와는 떨어진 관광지나 도심, 상업지역에 축제 사이트가 마련되어 있어 시민들이 빛공해와 같은 불편함을 감수해야하는지 알 길은 없었으나 코로나로 2년 만에 열리는 올해의 빛축제에 예년에 비해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고, 그 규모도 확장된 것이라고 하니 올해 겨울, 리옹을 비롯하여 북유럽 등지에서 재개될 빛축제에 대한 기대가 크다.

빛축제는 분명 관광을 활성화하고 그로인해 경제적인 이득을 가져오는 것임은 틀림없으나 그 목적과 형식에 대한 민과 관 간의 확실한 합의가 있어야 성공 그리고 지속가능성의 확률이 높아진다.

작년 DDP에서 열린 서울 라이트는 세계적인 작가를 초빙하여 최첨단 조명기술을 이용하여 수준 높은 콘텐츠를 선보였다. 코로나라는 복병을 만난 것도 이유이지만 많은 사람이 즐기기에 지나치게 수준이 높다는 평과 제한된 컨텐츠로 디디피 일대를 돌아보게 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의견들이 있었다.

한강변을 탈바꿈하여 문화관광코드를 마련하고 광화문 광장에 미디어쇼를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여도 이들이 빛축제의 장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와서 보고 즐기며 서울을 돌아볼 수 있는 상징적인 행사가 되기 위하여 고민해야 하는 것들이 적지 않다. 필연적으로 불편을 감수해야하는 서울시민과는 어떤 합의와 의식의 공유가 필요할지.. 빛축제를 계획하기 전에 반드시 해야할 숙제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