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탁의 문화섬 나들이] 백남준 되살리기 프로젝트를 제안한다-국립현대미술관(과천)에서
[황현탁의 문화섬 나들이] 백남준 되살리기 프로젝트를 제안한다-국립현대미술관(과천)에서
  • 황현탁 작가
  • 승인 2022.07.13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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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투데이는 아직도 일반 국민들이 섬처럼 느끼는 문화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문화현장을 탐방하는 연재기사를 게재할 예정이다. 문화예술 정책부서와 현장에서 오래 근무하였고, 인문학 여행서를 출간한 황현탁 작가가 담당한다. 첫 번째 글로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다다익선>을 관람하고 쓴 문화한국 위상제고를 위한 제안을 게재한다.

▲황현탁 작가
▲황현탁 작가

1969년 8월 ‘국립현대미술관’이라는 정부기관이 생기고 그해 10월 경복궁내 건물 한 동(棟)에서 미술관이 개관된다. 1973년에는 덕수궁 석조전으로 장소를 이전하였으며, 1986년 과천에 미술관을 신축하여 터전을 마련하였다. 2013년에는 국군기무사령부가 있었던 종로구 소격동에 서울관을 개관하여, 더 많은 국민들이 미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편의성을 제고하였다.

과천 미술관 건물을 들어서 매표소를 지나 입장하면 중앙현관에서 ‘비디오아트의 창시자 백남준(1932~2006)의 작품 <다다익선(多多益善)>’을 마주하게 된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념하여 1986년 제작에 착수, 1988년 9월에 완성된 작품으로, 10월3일 개천절을 상징하는 1003대의 CRT(음극선관)TV모니터로 구성되어 있다. 바닥 지름 7.5m, 높이 18.5m인 <다다익선>은 백남준의 최대크기 작품으로 위로 올라갈수록 지름이 좁아지는 타워형 작품이다. 상영되는 영상 이미지는 한국의 경복궁, 부채춤, 고려청자 등과 프랑스의 개선문,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등 각국의 문화적 상징물과 샬럿 무어맨의 연주 모습을 담은 ‘다다익선 Ⅰ’ 등 모두 8개다.

개관 이후 하루 8시간씩 계속 상영하다보니 모니터가 노후화되고 고장이 잦아 수리를 거듭하였으며, 화재까지 발생하여 2018년에 작동을 중단하게 되었다. 2019년에 국내외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 국내에서 생산이 중단된 TV모니터는 중고품을 확보하여 보수하고, 불가능한 경우 LCD, LED, OLED 등 신종 TV모니터로 교체하기로 방침을 정한 바 있다.

현재는 복원작업을 위해 작품 외부에 작업자 이동에 필요한 구조물을 설치하고 지난 5월부터 시험가동 중에 있는데, 상영시간을 제한하여 공개하고 있다. 작품외부 구조물은 철거하면 좋겠지만, TV모니터 고장수리 점검을 위해 상당기간 그대로 두어야할지도 모른다고 한다.

▲백남준, 다다익선 (사진=황현탁 제공)
▲백남준, 다다익선 (사진=황현탁 제공)

<시대를 보는 눈 : 한국근현대미술>이라는 제목으로 열리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작품전(2020.7.21.~2022.7.31.)에도 TV모니터가 들어간 백남준의 작품 3점이 전시되고 있으나 TV모니터는 ‘먹통’이다. 국내외 유수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백남준의 작품 중 CRT TV가 들어간 작품은 모두 같은 운명에 처해 있는데, 기술적인 문제가 있어 대부분 작품에서 TV화면은 작동되지 않은 채 전시되고 있다.

백남준의 각 작품마다 전자회로가 달라 소장자가 모니터만 바꾼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닌 만큼, 정부는 지금이라도 ‘백남준의 손’으로 불리는 그의 작품 전문 테크니션 ‘이정성 장인’에게 ‘도제식으로라도 전문가를 양성하도록 충분한 여건을 만들어 주고’, 그를 포함 전문가 파견 요청이 있으면 국내외를 불문하고 출장을 보내서라도 정상적으로 작동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오래전부터 전통기·예능 보유자와 전수자를 지원하고 있는 것처럼, 세계적인 작가작품 수리복원에 나서는 것도 문화보존전승에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인구 5천 만 명이 넘으면서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 이상인 소위 ‘5030클럽’ 7개국에 들어간 대단한 나라다. 그러나 다른 나라 국민들처럼 ‘문화’에 그리 익숙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클럽멤버가 된 지 오래되지 않은 탓도 있지만, 그동안 ‘잘 살아보자’는 데 온 힘을 쏟다보니 문화를 가까이 할 여유가 없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꼭 우크라이나에 파병하거나 재난을 당한 빈곤국가에 인도적 지원을 하는 것만이 5030클럽 국가 한국이 국제사회에 기여하는 것은 아니다. 어느 나라도 문화사업 지원에 반대하지 않을 것이며, 예술작품 수리, 복원 지원은 이해관계가 상충되지 않는 고상한 프로젝트로, 유대의 끈을 더 돈독하게 할 것이다.

▲백남준, 라디오데이 (사진=황현탁 제공)
▲백남준, 라디오데이 (사진=황현탁 제공)

한국의 대중음악, 영화가 소위 한류(K-Culture)라는 이름으로 지금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신명 끼’가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에겐 마당이 없거나 스스로 좁은 마당에 안주했지만. 이제부터는 문학, 공연 등 다른 분야에서도 낭보가 울려 퍼질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려면 우리 스스로 더 많이 읽고 보고 느끼고 즐기는 연습이 필요할 것이며, 그런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국립현대미술관에는 우리가 돈을 들여 일본의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 미국의 조나단 보로프스키의 <노래하는 사람>, 프랑스의 베르나르 브네의 <세 개의 미결정적 선> 등 여러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물론 일본에서 활동하는 이우환의 <사방에서>, 미국에서 활동했던 박이소의 <무제>, 프랑스에서 활동하였던 이응노의 <군상> 등도 소장하고 있지만.

백남준만큼 전 세계적으로 기억될 한국인은 없었다.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거나 잘 알려진 한국인을 국내적으로 기리는 일은 당연하지만, 외국에서 그들을 오래 기억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우리의 일이다. 그분들의 활동무대나 영역을 얼마든지 우리 것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큰 돈 들이지 않고도 대한민국의 국격(國格)을 높일 수 있는 길은 멀리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