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훈의 클래식 비평]셰익스피어의 향기와 현대적 연출의 신선함
[이채훈의 클래식 비평]셰익스피어의 향기와 현대적 연출의 신선함
  • 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 / 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전문 객원기자
  • 승인 2022.07.13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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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발레축제의 백미, ‘로미오와 줄리엣’
▲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 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전문 객원기자 / ‘소설처럼 아름다운 클래식 이야기’ 저자
▲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 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전문 객원기자 / ‘소설처럼 아름다운 클래식 이야기’ 저자

제12회 대한민국발레축제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가장 많은 관심을 끈 공연은 발레축제 측이 예술의전당과 공동제작한 <로미오와 줄리엣>이었다. 전국 규모의 오디션으로 선발한 젊은 무용수들이 허용순 안무를 중심으로 땀 흘려 이뤄낸 성공적인 무대였다. 1940년 키로프 발레가 초연한 원작은 연출이 어려워서 자주 공연하기 힘들다고 하는데, 이번 축제에서는 2007년 허용순이 현대적으로 재창조한 버전으로 국내 발레 팬들에게 잊지 못할 선물을 안겨 주었다. 

로미오의 윤전일, 줄리엣의 신승원은 아름다운 용모와 드라마틱한 표현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1막 마지막을 장식하는 발코니 장면이 역시 압권이었다. 숨이 멎을 듯 벅찬 음악에 맞춰 사랑으로 요동치는 젊은이의 마음을 절절하게 묘사했다. 화려하고 역동적인 군무에 관객들은 숨을 죽였다. 1막 가면무도회 장면의 웅장한 주제, <고전> 교향곡의 가보토 주제가 나올 때 펼쳐진 군무는 활기 있고 역동적이었다.  

첫 장면, 베로나의 당구장에서 몬터규 가문과 카풀레트 가문이 다투는 군무는 다소 산만해 보였다. 양가의 남자들 뿐 아니라 여자들까지 싸우도록 했기 때문에 심란한 느낌이 들었다. 남녀가 평등하므로 여자도 남자처럼 싸울 수 있겠지만,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란 책이 말하듯 화해의 희망을 여성에게 두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다. 군무는 1막 무도회 장면에서 안정감과 균형미를 찾았지만, 2막 베로나 광장의 싸움 장면에서 다시 어수선해졌다. 전체 공연에서 ‘옥의 티’였다고 생각한다. 

몇 가지 연출의 디테일도 아쉬웠다. 음악의 마지막 음이 천천히 사라지고 있는데 막이 휙 내려온다든지, 마지막 장면에서 줄리엣이 너무 빨리 자살해 버린 대목 등은 충분히 감정이입할 시간을 빼앗아 버렸다. 

이날 공연은 세계 최고 수준의 공연과 비교되는 불운을 피해 가기 어려웠다. 볼쇼이나 마린스키의 동영상, 특히 강수진이 줄리엣으로 열연한 슈투트가르트 발레의 공연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인터넷 시대, 관객들의 안목과 기대수준이 매우 높은 게 사실이다. 남성 군무의 경우, 비보이 그룹의 무용과 비교될 수도 있으니 테크닉과 예술성에서 이들을 압도해야 하는 과제도 있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멀고, 흘려야 할 땀이 많을 것이다. 세계 최고 수준이 되기 위해 개선해야 할 점들은 제작진과 출연진께서 더 잘 아실 것이다.

▲대한민국발레축제 ‘로미오와 줄리엣’ 커튼콜
▲대한민국발레축제 ‘로미오와 줄리엣’ 커튼콜

프로코피에프의 음악을 라이브로 연주하지 않고 녹음을 튼 것은 물론 아쉬웠다. 예산 문제 때문이겠지만, 이 공연의 역사적 의미를 감안하면 당연히 오케스트라가 연주해야 했다. 음향이 실제 오케스트라보다 커서 작위적인 사운드라는 게 금세 느껴졌다. 녹음 음원이 최상의 연주가 아니었던 것도 아쉽다. 싸움 장면에 나오는 현악의 빠른 스케일은 한 음 한 음 또렷이 소리를 내야 하는데 그냥 휙 질주해 버렸다. 줄리엣의 달콤한 테마를 클라리넷이 제시할 때 관능미를 느끼게 해 주면 좋을텐데, 별다른 표정 없이 연주했다. 발코니 장면에서 금관의 음향은 죽죽 뻗어나가지 않고 웅얼거리는 느낌이었다. 클라우디오 아바도 지휘 베를린 필하모닉(1996)이나 런던 심포니의 녹음(1967)을 사용했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몇 가지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셰익스피어 원작의 향기와 현대적인 연출의 신선함을 동시에 맛보게 해 준 좋은 공연이었다. 혼신의 힘을 다해 멋진 무대를 선사해 준 모든 분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