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스큐라, 이정웅 개인전 《notwithstanding》
옵스큐라, 이정웅 개인전 《notwithstanding》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2.07.13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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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했지, 비가 그치면 모든 것이 바뀔 거라고.”
영국 활동 이후 10여년 만의 개인전, 7.24까지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뒤섞인 시공간, 다층적인 상징물을 통해 화면 속 판타지내러티브를 구사하는 이정웅 작가의 개인전 《notwithstanding(그럼에도 불구하고)》이 개최된다. 옵스큐라(성북구 성북로 23길)에서 오는 24일까지 만나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이 작가의 10여 년 만의 국내 개인전이다. 영국 활동으로 잠시 떠나 있던 고국을 찾아 신작을 포함한 12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이정웅, 고목나무와 흰두꺼비, 2022, Oil on canvas, 100 x 100cm (사진=옵스큐라 제공)
▲이정웅, 고목나무와 흰두꺼비, 2022, Oil on canvas, 100 x 100cm (사진=옵스큐라 제공)

이정웅의 작업은 뒤섞여진 시공간과 이미지들이 파편적으로 나타난다. 또한 장옷과 기모노, 검은 돌과 하얀 대리석, 불타는 나무와 가공돼 결이 드러난 나무, 흐르는 내천과 잠겨있는 수도꼭지 등의 대립 상징도 다수 찾아 볼 수 있다. 이정웅의 작품을 마주하면, 대다수는 이런 상징을 통해 그 안에 담긴 의미나 뜻을 알아보려 할 것이다. 물론 그의 이전 ‘몽(夢)’, ‘라퓨타(Laputa)’ 시리즈에서는 상징의 해석이 작품의 아이덴티티와 연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정웅, 원숭이의 전언, 2022, Oil on canvas, 100 x 100cm
▲이정웅, 원숭이의 전언, 2022, Oil on canvas, 100 x 100cm  (사진=옵스큐라 제공)

하지만, 이번 신작에서는 상징적 사물들을 더 이상 해석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없다. 오히려 이는 방어적인 상징적 베일에 가깝다. 상징적 의미가 있을 것 같은 낯선 사물들에게 눈이 묶여버리면 아무 소득이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는 라퓨타 이후 이정웅의 새로운 시리즈 시작점에 있다.

《notwithstanding(그럼에도 불구하고)》 은 이정웅의 판타지가 상징 중심에서 탈-상징으로 변화하는 기점이다. 이번 그의 판타지는 실재계적 어떤 것(근원)으로 해석되지 않고 상상계 안에서 진화를 추구한다. 그의 판타지는 실재계적 어떤 것(근원)으로 해석되지 않고 상상계 안에서 진화를 추구한다. 작가는 문학의 형태로 진화의 시도를 제안한다. “고목나무와 흰 두꺼비, 물길을 따라 쪼개지고 쓰러졌다, 타일이 있는 붉은 벽, 불타는 나무를 위한 춤, 안개.” 현상 서술적인 작품 제목의 모둠은 작품 간의 상호 작용을 일으키고 상상을 증폭시킨다.

▲이정웅, 가지가 부러진 검은 나무의 이름은 없었다(Nobody knows about the name for the broken black tree.), 2020, Oil on canvas, 130 x 162 cm, C
▲이정웅, 가지가 부러진 검은 나무의 이름은 없었다(Nobody knows about the name for the broken black tree.), 2020, Oil on canvas, 130 x 162 cm, C (사진=옵스큐라 제공)

덧붙여, 이번 전시에서 이정웅은 “인 더 레인(In the Rain)”이란 제목의 짧은 이야기를 선보인다. 모든 작업이 마쳐진 결과물 앞에서 작가는 상상의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그의 이야기는 이정웅 작품 속으로 진입할 수 있는 초대장과 같다. 관람객이 단 한 가지 유의해야 할 것은 이야기는 작품의 안내서가 아니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