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학도를 꿈꾸는 청춘, 인문학 파먹기] 낭만 실조
[영화학도를 꿈꾸는 청춘, 인문학 파먹기] 낭만 실조
  • 윤이현
  • 승인 2022.08.01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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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현(2000년생), 몇 가지 일을 하며 글로 꿈을 써 내려가는 중이다. 류이치 사카모토와 히사이시 조의 음악, 요리 문학가 라우라 에스키벨의 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사랑한다. ‘멀리 갈 위험을 감수하는 자만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알 수 있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도전과 실패, 상처로부터 단단해지는 것들과 친해 보려고 한다. 애완 묘 ‘깨미’와 같은 방을 쓰고 있다. 최근 윤영채에서 윤이현으로 개명했다.
▲윤이현(2000년생), 몇 가지 일을 하며 글로 꿈을 써 내려가는 중이다. 류이치 사카모토와 히사이시 조의 음악, 요리 문학가 라우라 에스키벨의 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사랑한다. ‘멀리 갈 위험을 감수하는 자만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알 수 있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도전과 실패, 상처로부터 단단해지는 것들과 친해 보려고 한다. 애완 묘 ‘깨미’와 같은 방을 쓰고 있다. 최근 윤영채에서 윤이현으로 개명했다.

  연구소 출근 전까지 제법 시간이 남아 서울도서관에서 볼만한 책을 빌리기로 했다. 대출 확인증을 건네받은 뒤 건물 밖으로 나섰다. 문 너머엔 햇빛을 가득 머금은 오후 세 시의 서울 광장이 있다. 이 시간의 태양은 대게 주황빛을 띤다. 따스한 시간은 수면처럼 흘러간다. 자전거를 타며 함께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기분에 휩싸이곤 했던, 지금은 안부조차 알 수 없게 되어버린 친구 소연이를 떠올렸다. 잠시 상념에 젖어 있는데 불쑥 누군가가 시야를 가린다. 턱선을 간신히 가린 짧은 기장의 숏컷, 그녀는 편안한 차림에 꽃바구니를 들고 있다. 그리고 내게 그중 가장 예쁜 화분을 들어서 건넨다. 환한 미소와 함께.

 

꽃을 팔고 있어요.”

 

  나는 괜찮다고 답했다. 그렇게 그녀와 나는 가볍게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참 낭만적인 순간이었다. 서울의 중심 종로, 회사원과 그들을 호객하는 상인들이 즐비한 이 정신없는 도시에서 화분 바구니를 들고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 꽃과 낭만을 나누는 그 사람은 대체 누구였을까.

  다시 돌아와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요즘은 프랑스 문화에 관심이 생겨 책을 읽고 있다. 오헬리엉 루베르(Aurélien Loubert)지극히 사적인 프랑스라는 책이다. 외국인 특히, 한국처럼 프랑스와 문화적으로 교류가 적은 국가들이 가진 편견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답변이 담겨 있다. 흥미로운 주제이기도 하고 편안하게 읽기 좋은 책이라, 한 번 들면 놓기 쉽지 않다.

  ‘프랑스=낭만이라. 우리가 막연히 기대했던 것은 그곳에도 없었다. 여유롭게 시를 읊는 예술가들이 넘쳐나는 거리,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의 모습들, 신과 인간의 조화가 이루어지는 곳. 구미를 당기는 각양각색의 파스타와 라따뚜이, 요리사들과 파티시에들의 향연. 매일 축제가 벌어지는 나라가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하기도 했지만. 실제로는 그다지 로맨틱한 곳은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그들은 제법 낭만을 가지고 사는 것 같다.

  프랑스인들은 우정에 나이를 따지지 않는다.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친구들과 공원에서 가볍게 맥주나 와인 한두 잔을 즐긴다. 부활절이나 크리스마스와 같은 특별한 날엔 가족들과 함께한다. 이때 가족의 연인을 거리낌 없이 소개하며 즐거운 자리를 만든다. 친구들의 친구들을 불러들여 파티를 열기도 한다. 그렇게 부모님과 친구들은 서로 친해진다. 그들은 새로운 사람을 알아가는 것에 크게 두려움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헤어진 전 연인과도 친하게 지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결혼 없이도 아이를 낳아 키우며 사는 커플도 많고, 동성혼도 인정된다. 유교를 기반으로 성장한 우리 문화권과는 참 다르다.

  자, 이번엔 내가 지극히 사적인 대한민국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우리 사회는 예로부터 나이에 민감하다. 첫 만남에 나이나 띠를 묻는 것이 보편적이다. 한두 살 차이로 언니, 오빠와 같은 호칭이 붙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에게 저자세가 된다. 내가 보기에 호칭은 때때로 마음의 벽을 허무는 장애 요인이 되기도 한다. 자꾸만 나이로 갑과 을을 나누게 된달까.

  한국에서 부모는 비교적 어려운 존재로 인식된다. 부모와 자식이 이런저런 고민을 이야기하거나 연인을 소개하기란 쉽지 않다. 편안함의 뒤로 다음 단계나 다른 기대가 개입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친구 부모님과 어색함 없이 대화를 주고받는 건 더더욱 상상하기 힘들다. 다른 어른들과는 비교적 편하게 대화를 주고받는 나로서도 몇몇 친구의 부모님을 제외하고는 대하기가 어렵다.

  한국에서 연애는 사랑을, 이별은 곧 관계의 단절을 의미한다. 개인적으로 전 연인들과 친구로 지내본 적도 있었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원래 친구였던 사이도 아니고, 서로 좋은 마음으로 관계를 종결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괴로웠다. 내가 한국 정서에 깊게 젖어 있어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프랑스에서 이별 후에도 연락을 주고받으며 사이좋게 지내는 옛 연인들이 많다는 것만큼은 진심으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는 애매함보다 관계의 정립을 중시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 또한 그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연인끼리 동거를 하거나 결혼 없이 아이를 갖는 것은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상당히 예민한 이슈였다. 한국의 가정 형태는 남과 여가 만나 이룬 부모와 자녀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보편적인 현상에서 벗어날수록 사회적 시선을 견디는 것은 지극히 개인의 몫이 된다. 따라서 부모가 여여 커플이거나, 남남 커플과 같은 동성혼은 아직 우리 사회에서 받아들여 지지 못한다. 남녀 부부일지라도 아이를 낳지 않는 일명 딩크족또한 특수한 가정 형태로 분류된다. 프랑스와는 참 다르다.

  물론 일 일이 열거할 수 없이 한국만이 가진 장점도 많음을 안다. 그러나 지극히 개인적으로 느끼는 우리나라는 낭만 실조그 자체다. 20대 중반의 나는 생각한다. 한국에 태어나 산다는 것은 안정성에 기대고자 끊임없이 실체 없는 무언가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고. 그리고 우리는 믿는다. 스스로가 원해서 이런 길을 선택하는 것뿐이라고. 글쎄, 과연 그럴까.

  요즘 우리에게 낭만이 있는가. 이해와 관용의 눈길이 있었던가. 지친 기색의 직장인들이 피곤을 누르려 커피를 마실 때 나누는 의미 없는 말들, 한때 사랑했던 사람을 잔인하게 끊어내야 한다고 믿는 상처받은 존재들, 보편적이지 않은 삶을 선택한 이들에게 차가운 시선을 던지면서도 사실은 속으로 그들을 동경하고 있을지 모를 우리. 우리에게 낭만은 없다. 나 또한 그렇다. 다른 영역에서만큼은 한국이 월등히 높은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을지 몰라도, 다양성과 감수성 그리고 낭만만큼은 세계 꼴찌 수준이 아닐까.

  아무튼, 이런 낭만 실조의 한복판에서 꽃과 낭만을 나누다니. 그 한 사람 덕분에 그날의 기억은 영화처럼 각인되었다. 조금은 헤졌지만 꼼꼼하게 빤듯한 티셔츠, 화장기 없이 자연스럽게 햇살에 드러낸 피부, 가볍고 시원하게 자른 머리 그리고 깊은 보조개가 아직도 생생하다.

 

꽃을 팔고 있어요. 혹시 예쁜 꽃이 필요하지 않으신가요?”

 

  이날 이후 나는 수수한 낭만을 만들고 있다. 곧잘 사람들 눈을 피해왔지만, 이제는 바라볼 수 있을 때 더 자세히 그들과 눈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내가 가진 가장 예쁜 보조개를 드러내어 씨익 웃는다. 소중한 사람들에겐 자주 편지를 보내고 있다. 수업 때 빚은 술을 내려 그들과 함께 마시며 세상 사는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나눠본다. 참 다행인 건, 원래부터 우정엔 국경도 나이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겐 주변에 다양한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다. 특히 요즘은 친구네 가족들과 심지어는 그들의 지인들까지도 매우 가깝게 지내고 있다. 가끔은 직접 구운 채소 구이와 밥을 접시에 담아 테라스에 앉아 먹기도 하며, 그렇게 나름의 낭만을 즐기며 살고 있다.

  내가 이렇게 소소한 낭만을 찾아본다고 해서, 집 나간 우리의 낭만이 돌아오는 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나의 낭만은 가득 채우며 살고 싶다. 그리고 그것을 누군가에게 나눌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마치 지금쯤 프랑스의 시골에서처럼 예쁜 꽃을 바구니에 담고 있을 것만 같은 그녀처럼 말이다. 함께 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어딘가에서 책을 가득 실은 자전거를 몰고 있을 나의 친구 소연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