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뷰] 레안드로 에를리치 《바티망(Bâtiment)》展, 중력을 거슬러 바라보는 새로운 일상
[현장리뷰] 레안드로 에를리치 《바티망(Bâtiment)》展, 중력을 거슬러 바라보는 새로운 일상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2.07.28 09: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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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들섬 노들서가, 7.29~12.28
‘바티망’, ‘교실’, ‘잃어버린 정원’ 등 대형 작품 공개
한국 전시만의 특징 없는 ‘바티망’ 아쉬움 남아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평범한 일상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는 전시가 개최됐다. "내게 일상은 현실에 의문을 던질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다"라고 말하며 일상에서 시작된 거대한 설치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아르헨티나 작가 레안드로 에를리치의 전시 《바티망(Bâtiment)》이다. 전시는 노들섬 노들서가에서 오는 29일부터 12월 28일까지 개최된다. 이번 전시는 한-아르헨티나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이머시브 콘텐츠 기획‧제작사 미쓰잭슨 주최한다.

▲레안드로 에를리치 《바티망(Bâtiment)》전시에서 '바티망' 작품 참여 시연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서울문화투데이)

레안드로 에를리치(Leandro Erlich, 1973)는 수영장, 탈의실, 정원 등 일상적인 공간을 주제로 거울이나 프로젝터 등의 장치를 활용해 익숙한 공간을 새롭게 지각하게 하는 작품을 선보여 오고 있다. 전시 제목이면서,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바티망>은 실제 건물 모양의 거대한 파사드와 거울로 구성된 작품이다. 관람객들은 직접 작품 안으로 들어가 각자 창의적인 포즈를 취하며 자유롭게 작품을 즐길 수 있다. 마치 중력에서 벗어난 듯한 초현실적 시각 경험을 하게 된다.

작가는 2000년 휘트니 비엔날레에 참가한 바 있으며, 2001년에는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작가로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수영장(Swimming Pool>을 선보였다. 2019년에는 아트 바젤 마이애미에서 66대의 모래 자동차를 이용해 21세기 교통 상황을 묘사한 초대형 설치 작품 <중요함의 순서(Order of Importance)>가 가장 주목 받는 작품으로 선정됐다. 한국에서는 2012년 개최된 첫 개인전 《Inexistence》(송은)를 시작으로 2014년 한진해운 박스 프로젝트 《대척점의 항구》(MMCA), 2019년 《그림자를 드리우고》(SeMA)를 선보인 바 있다.

<바티망>은 지난 2004년 프랑스 파리에서 공개된 이후 18년간 런던, 베를린, 도쿄, 상하이 등 전 세계 대도시들을 투어하며 대중적인 인기를 이어왔다. 특히 2017년 도쿄와 2019년 베이징에서 진행된 투어에는 일평균 약 4,500명 이상을 모으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27일 기자간담회에서 줌으로 취재진과 소통하는 레안드로 에를리치 작가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이번 전시를 위해 작가는 아르헨티나에서 한국까지 왔지만, 입국 시에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아 지난 27일에 열린 언론간담회에 직접 참석하진 못했다. 대신에 줌(Zoom)을 통해 취재진과 인사를 나누며, 전시 개최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레안드로 에를리치는 “2012년부터 MMCA(국립현대미술관), SeMA(서울시립미술관), 송은에서 개별적으로 작품을 선보인 적은 있지만, <바티망>과 <잃어버린 정원(Lost Garden)>과 같은 대형 작품을 전시하게 된 것은 처음이라 기대가 크다”라며 “한-아르헨티나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열린 전시라는 점도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아르헨티나 아티스트들을 대신해 한국 관람객들에게 인사를 나누고 싶다”라고 전시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레안드로의 작품은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눠볼 수 있다. 현실 그 자체를 이해해볼 수 있는 작품과 현실을 왜곡시키는 작품이다. 이번 전시는 2개의 층에 나눠서 전시된다. 이 중 현실 그 자체를 인지하고 조금 떨어져서 감상해볼 수 있는 작품들은 1층에서 만나볼 수 있고, 지하 층에서 현실을 왜곡시키는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1층 전시공간 작품, 세계의 지하철(Global Express, 2011) (사진=서울문화투데이)
▲1층 전시공간 작품, 세계의 지하철(Global Express, 2011)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전시는 작가의 대형 작품인 <바티망>을 비롯해 <잃어버린 정원(Lost Garden, 2009)>, <교실(Classroom, 2017)>을 선보이고 영상‧사진 작품들도 함께 공개한다. 3개의 대형 작품 이외에 영상 작품 2점 사진 작품 10여 점 정도가 공개되는데, 전시 작품 수가 적은 편으로 작가의 세계관을 깊이감 있게 경험해 보기엔 아쉬움이 남는다.

<바티망>은 2004년 작품을 선보인 이후, 시리즈의 형태로 프랑스, 영국, 일본, 중국 등 다수의 국가에서 전시돼 왔다. 프랑스 파리에서 선보인 건물 파사드를 기본 골조로 작품을 선보여 왔는데, 작가는 파리 ‘바티망’이 가장 상징적이고 모든 도시에 친숙한 형태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국가별로 그 나라의 언어로 된 간판을 부착하거나( <Chinatown> 베이징, CAFA 아트 뮤지엄, 2019) 그 나라의 가옥 형태를 띤(<Tsumari-House> 일본, 에치고쯔마리아트트리엔날레, 2006) <바티망>을 선보였다.

▲해외의 바티망
▲해외의 바티망 (좌측부터) Chinatown, 베이징, CAFA 아트 뮤지엄, 2016/ Tsumari-House,일본, 에치고쯔마리아트트리엔날레, 2006 (사진=미쓰잭슨 제공)

작가는 2019년 당시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한 《그림자를 드리우고》에선 <수영장(Swimming Pool)>에 석가탑을 변주한 작품, 남북 관계를 녹여낸 <구름>이라는 작품을 선보이며 한국의 특징을 담기도 했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바티망>을 선보이는 만큼 한국의 특징이 담긴 <바티망>을 기대했지만, 그렇지 않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레안드로는 “이번 전시에서는 한국을 토대로 한 작품은 전시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한국 문화를 인상적으로 느끼고 있고, 아마 내 작품 기저에 한국의 문화가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교실(Classroom, 2017)
▲교실(Classroom, 2017) (사진=미쓰잭슨 제공)

주목해볼 만한 작품으로는 <교실(Classroom, 2017)>이 있다. 레안드로는 2017년 제작된 작품으로 2022년 코로나 팬데믹 이후 교실에 드리워진 트라우마와 심리적 단절을 새롭게 이끌어낸다. 작가는 마르첼로 단타스 큐레이터의 말을 인용하며 “2017년 당시 <교실>을 창작할 때, 나는 어릴적 추억에 대한 향수를 토대로 그 감정을 불러일으키고자 작품을 만들었고 작품에서 그러한 감정이 전해졌다고 한다. 하지만 3년 뒤 코로나 팬데믹이 세계를 덮치면서 학생들은 학교를 나갈 수 없게 되고, 비대면 수업에 익숙해져야 했다. 마르첼로 단타스 큐레이터는 팬데믹 이후 <교실>이 역사적 변화를 거쳐 우리에게 새로운 감각을 전한다고 말했다. 작가로서 그러한 해석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라고 설명한다.

<교실(Classroom, 2017)>은 텅 빈 교실 앞에 설치된 유리창을 통해 관람객들이 교실 안에 앉아있는 자신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게 한다. 전시장 조명으로 인해 관람객들의 상체 부분만 유리창에 비치게 되는데, 이는 스산한 교실에 남겨진 팬데믹 시기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퍼니처 리프트(Furniture Lift) 1,
▲퍼니처 리프트(Furniture Lift) (사진=미쓰잭슨 제공)

레안드로는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풍경, 중력을 거스르는 일상적 공간을 다룬 작품으로 관람객에게 새로운 관점을 제안한다. 작가는 우리가 믿고 있는 현실이란, 인간이 만든 공간, 건축물에 대한 동의를 바탕으로 한다고 설명한다. 그 동의를 받아들이고 공통적으로 인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을 떠올릴 때 우리가 상상하는 것은 결국 어떻게 보면 인간들 사이에 공통적으로 합의된 ‘무엇’일 수 있는 것이다.

작가의 이런 발상은 결국, 우리가 ‘현실’을 떠올림에 있어 ‘적어도 우리의 상상 속에선 모두가 합의한 ‘현실’을 떠올리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을 남긴다. 우리의 ’현실‘ 또한 누군가의 창조물일 수 있다는 말로도 해석해볼 수 있다.

레안드로는 “내가 중력을 거스르고, 현실을 왜곡하는 작품을 창작하고 있지만 그 안에 어떤 가설, 사상, 논리를 담진 않는다. 나는 일상의 공간을 통해 우리에게 모험을 제안하고 싶다. 내 작품을 보고 질문을 던지며, 현실을 다시 이해하고 자각하는 경험을 하길 바란다”라며 자신의 창작관을 설명했다.

▲수영장(Swimming Pool) 2
▲수영장(Swimming Pool) 2 (사진=미쓰잭슨 제공)

거대한 규모의 <바티망> 작품과 유리창, 거울을 사용한 시각적 착시를 불러일으키는 작품들은 관람의 흥미를 더하고, 재미있는 포토스팟이 될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전에 개최됐던 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작품 수이지만, 작가의 초기작도 관람해볼 수 있는 기회다.

전시 입장료는 성인 15,000원, 청소년‧어린이 10,000원이다. 인터파크, 네이버 예약 등을 통해서 티켓을 구매할 수 있다.